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개념 및 차이에 대한 역혁적 고찰 gunsih 2007.10.29 16:42 55
보통법(common law)은 영국의 역사에서 발달한 일종의 관습법이다.
보통법(common law)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하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왕이 지배하였지만, 봉건영주의 힘이 매우 강하였다. 따라서 영국은 왕이 국가를 지배하는 권한과 봉건영주가 자신의 봉토를 지배하는 권한이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즉, 영국은 역사적으로 지방의 일은 지방이 처리하는 지방자치제도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인 것이다.
중세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그러하듯이 영국도 지방영주의 권한과 왕의 권한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었다.
즉, 지방봉건영주의 권한이 크면 왕이 권한이 약화되고 왕의 권한이 크면 지방영주의 권한이 약화되었던 것이다.
영국은 처음에는 지방영주의 힘이 강했지만, 점차적으로 왕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군역과 세금을 부담시켰으며, 왕의 마음대로 부당한 벌금이나 사람들(자유민)을 체포하기에 이르기 된다. 그리고 왕은 뛰어난 부하들(행정관료)를 곁에 두고 그 권한을 휘두르면서 스스로 입법과 행정, 사법의 역할을 모두 행사한다.
그러나 1215년 존 왕이 자신의 권한을 지나치게 남용함에 따라 지방의 영주들은 왕의 권한을 제지하기에 이른다.
이때 지방영주들이 왕의 권한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것이 보통법(common law)의 기원이다.
보통법(common law)은 그 뒤에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더 구체화되고 더욱 많은 이론적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귀족들이 왕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왕보다 우월한 권한으로 인정되는 관습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보다 우위에 있는 보통법(common law)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귀족에게 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결국엔 왕이 가지고 있던 사법권을 귀족들이 빼앗아 오게 된다.
따라서 보통법(common law)의 시작은 사법권한의 분야에서 귀족들이 왕에 우선하는 관습법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은 관습법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즉, 사법권을 행사할 때 명문으로 정해져 있는 법이 아니라, 명문이 없는 규정에 의해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문법의 체계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법관의 마음대로 모든 것이 행해지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상식적이고 정형적인 사건만 취급하는 형태이다.
사법권이 귀족의 마음대로 행사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특히나 왕이 마음대로 행사하는 사법권을 귀족이 '함부로 행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빼앗아 온 것인데 이를 마음대로 행사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귀족이 담당하는 사법권은 정형적이고 일반적인 사건에 한하게 된다. 그래서 이름도 보통법(common law)이 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보통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규율하는 법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이렇게 귀족은 정형적이고 일반적인 사건만을 담당하다 보니 비정형적이고 특수한 사건들 즉, 아주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들에 대한 재판은 귀족이 담당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귀족들이 왕에게 사법권을 빼앗아오긴 했지만, 사법권 전부가 아니라 common적인 사건들에 대한 사법권만 가져왔을 뿐,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사건들에 대한 사법권은 아직 왕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왕이 재판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왕이 직접 재판을 한 것은 아니며, 왕의 밑에 있는 뛰어난 신하들이 재판을 하였다.
왕의 신하들도 귀족이었기 때문에, 결국 보통사건에 대한 재판은 왕의 반대파에 속하는 귀족들이, 특수사건에 속하는 사건들을 왕의 지지파에 속하는 귀족들이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때. 왕이 행사하는 재판권은 보통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형평에 맞게 사건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사건마다 이익형량을 하고 개인의 잘잘못이나 특성들을 고려하여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재판을 한 것이다. 이처럼 왕이 행사하는 사법권의 근거가 귀족들이 행사하는 사법권의 근거인 보통법(common law)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형평법(equity)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혁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분리는 역사발전을 거듭하면서 계속 발전하였다. 왕이 담당하던 사법권도 실질적으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법귀족이 행사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중에는 귀족이 보통법(common law)에 의한 재판과 형평법(equity)에 의한 재판을 모두 담당하게 된다.
형평법은 보통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한 영역에 적용되면서 발전하였고, 보수적이고 일반적인 보통법을 근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보통법과 형평법은 전형적인 관습법과, 비전형적인 형평성을 대변하면서 불문법의 양대 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사회가 극도로 다양화되고 소송사건도 과거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전형적인 사건과 비전형적인 사건을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전형적인 사건에는 보통법이, 비전형적인 사건에는 형평법이 적용된다는 공식의 전제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됨에 따라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개념 구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이 통합되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영미법계열에서 학술적으로 형평법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형평법이라는 법 실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