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처럼 범인을 알아 맞춘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를 신탐이라 부릅니다.
사람 안의 다중 인격을 꿰뚫어 보는 출중한 능력,
그러나 그 자신도 반쯤은 미쳐 보입니다.
형사 실종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이상 야릇하면서도 흥미로운 심리게임
지금부터 그들만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한적하고 깊은 밤, 한 인도인이 몰래 맨홀 뚜껑을 훔치려 듭니다.
낌새를 눈치채고 이미 잠복근무중인 경찰들의 기습!
경찰이다!
거기 서!
그러나 쏜살같이 내빼는 범인!
두 형사가 그 뒤를 쫓지만 어두운 숲이라 추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범인을 놓치고만 경찰!
그런데!
또 한명의 형사가 어디론가 감쪽 같이 사라졌습니다.
(기사) “왕국주 형사 실종 18개월째”
형사 한 명이 절도 용의자 검거 현장에서 실종된 채
1년 반이 넘도록 행적이 묘연한 가운데
전직 형사 번은 신문이나 뒤적이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너 이거 갖고 싶어 했잖아?
(얘들 다 있는데 / 너만 없잖아?)
(돈 아까운데 그냥 훔쳐)
(아무도 안 보는데 어때)
(가방에 슬쩍 / 집어넣으라니까)
야 임마, 훔치라고 / 꼬드기지 마!
너 말이야, 너! / 난 네가 보여
우는 척 하지마! / 연기인 거 다 알아!
하지만 뭔가 좀 괴팍한 구석이 있는 것 같죠?
어느날 현직 형사가 그를 찾아옵니다.
번 선배!
강력반 호 입니다
내가 자넬 아나?
이미 형사 뱃지까지 반납한 마당에 강력반 형사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번.
5년 전 / 이틀 같이 일 했었죠
게다가 번은 경찰 일을 관두면서 자기 귀를 잘라
이미 미치광이 형사로 소문이 나 있는 마당입니다.
선배님 조언이 필요해서요
이렇게 해서 다시 경찰 일에 개입하게 된 번.
그는 왕 형사의 실종 사건 수사에 뛰어 들게 됩니다.
왕 형사가 실종된 지 9개월 뒤
복면강도가 마작판에서 / 8만불을 털었어요
한 발도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CCTV에 경찰이 사용하는 / 38구경 권총이 잡혔죠
3일 뒤,
현금수송트럭 무장강도사건이 있었어요
경비 세 명이 살해되고 / 170만불이 털렸죠
수거된 탄환이 왕의 총에서 / 발사된 것으로 밝혀졌죠
열심히 사건 개요를 경청하고 있던 찰라
(저 미친 놈을 왜 불렀어?)
번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이기에
누군가 그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상황이 전달되는 것이겠죠.
(저 또라이가 잘도 하겠다!)
(시간 낭비야)
(뭘봐, 또라이?!)
(이 미친놈 때문에 될 일도 안 될거야!)
(뭐? 어쩔건데?)
저 기억하시죠?
옆 팀에서 근무 했었잖아요?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실제로는 분명히 남자인데 번의 눈엔 눈에 쌍심지를 켠 여성이 보입니다.
남자의 또 다른 다중 인격인 셈이죠.
입 닥쳐!
다 들었어, 난 네가 보여 이것아!
(이런, 미친 놈!)
그렇습니다. 번은 사람의 다중 인격을 꿰뚫어 보는 것이죠.
경찰은 바로 그런 번의 신통력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해 보려 합니다.
그의 촉수에 걸린 유력한 용의자!
바로 왕 형사가 실종 되던날 현장에 함께 있던 치와이 형삽니다.
그런데 번의 눈에 그는 7명의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7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인물인 셈이죠.
한 사람과 여러 명의 인물을 교차해 가며 보여주는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는 다중 인격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강조해 보입니다.
한 사람의 내면 안에 이처럼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가 공존할 수 있다는 얘기겠죠.
자, 그렇다면 이들 일곱개의 인격 가운데 범인은 과연 누굴까요?
스스로 범행 현장을 찾아가 사건을 재현해 보는 번.
범인처럼 똑같이 행동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거침 없이 편의점 직원을 쏜 범인과
현금 수송 트럭 강탈범은 동일범일까요?
번은 일차 결론을 내립니다.
범인은 두 명이야
총도 두 개가 사용됐지
한 놈은 잔인한 살인마이고
마작판에서 주인을 / 안 죽인 강도는 딴 놈이야
특별한 근거도 없이 범인을 두명이라고 단정 짓는 번.
저것 봐!
신의 계시야
수사방향이 맞다는 걸 말해주는 거야
게다가 엉뚱하게도 신의 계시를 운운하는 걸로 봐선,
그 역시 정신 세계가 온전해 보이진 않습니다.
단지 괴팍한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까요?
게다가 그는 늘 아내를 데리고 다니는데요.
분명히 오토바이에 태운 아내,
그러나 호의 눈에는 그 혼자 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내는 번의 상상 속의 인물일까요?
영화 <매드 디텍티브>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번의 눈에 비친 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호가 바라보는 모습이 진실일까?
번이 만약 상상을 보고 있다면, 그가 지목한 용의자 역시 번짓수를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번이 가지고 있는 신통력이란 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단지 상상의 세계에 갇혀 버린 미치광이에 불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추격하는 호 형사.
그리고 호 형사를 돕기 위해 차를 몰고 나선 번.
어디 있어? 안보여
난 선배가 보이는데요
그런데 번의 눈에는 엉뚱한 소년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선배 때문에 정말 혼란스러워요
잔뜩 주눅들어 있는 소년의 모습.
그건 호 형사의 또 다른 인격일까요?
진정해. 이미 사건은 해결됐어
복면 쓴 남자를 봤는데
그만 놓쳐버렸어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한번 혼란스러워집니다.
정황상 번이 호 형사의 다중 인격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죠.
영화 <매드 디텍티브>는 이처럼 형사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사이코 스릴러 특유의 흡인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깊이 끌어 들입니다.
거기서 관객들은 안갯속 같은 모호함을 느끼지만, 그건 꽤 매혹적인 모호함입니다.
번이 유력한 용의자로 꼽는 치와이 형사와
호 형사는 함께 인도인 절도 용의자 검거에 나섭니다.
이들은 그를 이미 왕 형사 실종 사건의 범인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울에는 치와이의 다중 인격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호의 다중 인격인 주눅 든 소년까지.
인도인 옆의 거울에는 역시 잔뜩 겁에 먹은 소년의 모습이 비칩니다.
그리고 현장에 나타난 번!
[총격]
거울 방 총격신에선 위가휘 감독과 함께 영화를 공동 연출한
두기봉 감독 특유의 액션 누아르적 감각이 유감 없이 발휘됩니다.
총 내려놔!
총 내려놔!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 네 사람.
과연 이들 중 누가 범인일까요?
등장 인물과 관객을 한꺼번에 미로 속에 가두고
결코 쉽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흥미로운
심리 퍼즐 게임을 선사하는 영화,
<매드 디텍티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