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일기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원을 둘러보았다.
여름 풀꽃은 불볕더위를 더는
이기지 못하는 듯 거의 마르고
시들어 버렸다.
개천 바닥은 잡초의 세상이 되어
한껏 푸르른 빛으로 가득하다.
억새무리들도 가을을 기다리며 꽃피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꽃마당에는 코스모스가 호시탐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드문드문
성급히 꽃잎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일제히 머리를 들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힘차게 알릴 것이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여울물은
곧 넘칠 태세이다. 산동네 언덕이라
물난리를 당할 기회는 없을지라도
나라 전체가 태풍이 관통하는 길목이라니 걱정이다.
통과의례와 같이 매년 여름이면
물난리로 고통을 되풀이 해야하니
인간의 지혜는 진보하지 않는 것
처럼 여겨진다.
어릴 때 시골에서 물난리는 흥겨운
놀이를 하듯 하천으로 달려가 불어나
사납게 흐르는 물살을 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놀이 문화가 눈뜨고
볼 수 없었으니 자연재해도 눈을
호강시키는 도구였다.
누군가 회룡포가 물에 잠긴 모습을
보고 자연의 힘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어릴 때를 기억하다 보니 초등학교
생활이 문득 생각났다. 우연히
지난 해에 쓴 "그리운 선생님들"이란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내게는 선생님들이 많은 편이다.
뒤늦게 공부를 한 덕분에 대학원에
이르기 까지 배운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 중에는 가끔 소식을 주고
받는 좋은 스승도 계신다.
요즘은 세상이 험하여 선생의 존재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슬픈
풍조가 가득해졌다. 더욱이
초등학교 교사는 너무 힘든 극한의
직업이라고 한다.
메말라가는 세태를 보며 그 옛날
철부지들을 가르쳐주신 고마운
선생님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아무쪼록 이번 태풍에 모두
별일없이 건강하게 보내기를
기원하며.
2023.8.10 비오는 말복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