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발]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두 번째 안겨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특히 마지막 씬에서의 다이넬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압권이기는 하지만,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엔 형제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그가 지금까지 연출한 [하드 에이트][부기 나이트](1997년)[매그놀리아](1999년)[펀치 드렁크 러브](2002년)는 할리우드가 내놓을 수 있는 최상품의 영화다.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 안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상업적 긴장관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심층을 파고 드는 깊이 있는 연출로 뛰어난 미학성을 확보한다.
흥행에 실패한 데뷔작과는 달리 두번째 작품인 [부기 나이트]는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크게 성공했다. 70년대 미국의 포르노 산업을 배경으로 거대한 성기를 가진 남자가 포르노 스타로 성공해서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며 제 2의 타렌티노로서 주목받은 그는, 지적 성찰과 감각적 재능을 고루 갖춘 드문 재능의 소유자이다.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펀치 드렁크 러브]에 이어 5년만에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만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그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표현하고 있다. 서부개척 시대의 한 유전업자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신성의 대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다.
업튼 싱클레어의 1927년작 [오일]을 영화화 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아카데미에서는 감독상을 놓쳤지만 전미비평가협회의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품상 미술상 촬영상 등을 휩쓸었고 골든글로브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연기 인생 최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두 번째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내면의 어두운 욕망에 점차 파괴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뛰어나게 형상화함으로써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업톤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Oil]의 전반부 1/3만을 영화화 한 이 작품은 주인공 플레인뷰 역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I'm finished]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끝난다.
석유개발업자 다니엘 플레인뷰(다이넬 데이 루이스 분)는 찾고 있는 석유는 찾지 못하고 알콜중독에 찌든 삶을 보낸다. 석유개발 탐사 도중 아버지를 잃은 어린 아이 H.W(딜런 프리지어 분)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함께 서부를 방황하며 땅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해서 유전을 개발하려는 플레인뷰의 노력은 좀처럼 결실을 얻지 못한다. 그러던 중 서부의 작은 도시 리틀 보스턴에 거대한 석유가 묻혀 있다는 비밀 정보를 입수한 플레인뷰는 H.W와 함께 메추리 사냥꾼으로 가장해서 그곳으로 향한다. 틀림없이 석유가 묻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플레인뷰는 목사 엘라이 선데이(폴 다노 분)의 부친이 경영하는 목장을 헐값에 인수하고 유전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무에서 유를 찾아가는 석유업자 플레인뷰의 성공담, 혹은 그의 굴곡진 인생행로가 아니라 플레인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애증의 인간관계이다. 특히 플레인뷰와 그의 아들 H.W의 관계, 그리고 플레인뷰와 리틀 보스턴의 목사 엘라이 선데이와의 관계는 이 영화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석유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플레인뷰의 모습은 성공한 남자의 인생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유정을 찾아내고 송전관을 연결해서 거대 석유회사를 따돌리고 부를 축적하는 플레인뷰의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플레인뷰가 찾으려고 했던 것들, 석유와 석유를 통한 부의 획득은 그의 인간성을 파괴시켜간다. 플레인뷰의 파괴되어가는 내면은 양아들인 H.W와 리틀 보스턴의 목사 엘라이 선대이와의 관계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사랑으로 키웠던 자신의 아들이 실제로는 자신과 핏줄관계가 전혀 없는 다른 사람의 자식이고, 다만 석유개발을 위해 사람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녔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또 리틀 보스턴이라는 소도시에서 광신교 집단을 이끌고 있는 엘라이 선데이와의 긴장된 관계는 플레인뷰가 종교마저, 신마저, 자신의 부의 축적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향후 전개될 거대한 파멸을 예고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성과 속, 신성한 종교적 가치와 타락한 물질적 욕망의 대립적 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감독은 플레인뷰의 삶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영화의 주제로 인도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상승과 하강의 변증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데,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은을 찾기 위해 광산의 지하 땅굴로 내려가는 플레인뷰가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과 연결되면서 그의 상승과 추락의 삶을 예고한다. 특히 리틀 보스턴의 사막지대에서 석유를 찾는 과정에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검은 석유와 그 물줄기가 솟구치면서 지붕에 올라가 있던 어린 아들 H.W가 땅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하나의 상승이 하나의 하강을 불러 일으키는 긴장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레인뷰는 자본주의의 화신이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석유를 찾고 돈을 벌며 명예를 얻으며 성공한다. 엘라이 선데이의 존재는 미묘하다. 그는 목사로서 한 무리의 종교집단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그 집단이 신성한 종교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편집증적인 왜곡된 시각과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미국 자본주의 내에서 성장하는 타락한 종교의 한 모습을 엘라이 선데이를 중심으로 한 교파를 통해 보여준다. 성과 속의 대결로까지 확대되는 후반부의 깊이 있는 울림은, 다니엘 플레인뷰와 엘라이 선데이의 날카로운 대결에서 비롯된다.
수십년 같이 산 아들 H.W와의 인연을 부정하고, 종교적 가치를 부정하는 플레인뷰는 신성에 도전하는 악마인가? 그가 마지막에 외치는 [I'm finished]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이 끝났다는 것일까? 사악한 신과의, 혹은 신을 팔아 황금을 챙기는 사악한 무리와의 대결이 끝났다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의식하고 있듯이,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혀 자기파멸로 향하는 그 끝을, 자기 자신에게 알리는 말일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물질적 탐욕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속물적 욕망과 성스러운 종교적 가치를 부딪치게 해서, 삶의 본질적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좋은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영화를 볼 때보다는 그 뒤의 긴 여운이 더 소중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