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고
@ 창단 - 1962년
@ 해체 - 1981년
@ 우승 - 없음
@ 준우승 - 3회
@ 연도별성적
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71 |
박선오 |
8강 |
|
8강 |
1회탈락 |
|
72 |
박용민 |
1회탈락 |
1회탈락 |
|
1회탈락 |
|
73 |
박용민 |
4강 |
|
1회탈락 |
8강 |
|
74 |
김인식 |
|
|
|
1회탈락 |
|
75 |
김인식 |
1회탈락 |
|
|
1회탈락 |
|
76 |
김인식 |
1회탈락 |
|
|
1회탈락 |
|
77 |
김인식 |
|
1회탈락 |
8강 |
16강 |
|
78 |
고광적 |
|
|
|
1회탈락 |
|
79 |
백대삼 |
|
|
|
8강 |
|
80 |
나해룡 |
|
8강 |
|
8강 |
|
81 |
김인식 |
8강 |
|
|
32강 |
|
@ 프로 지명&입단선수 명단
74 김성호 (우우/C/영남대-아마롯데(78)-경리단(80)-포철(82)/OB(84년 1차)-빙그레(86)/87년은퇴)
74 최정우 (좌좌/OF/한전(74)-성무(76)-한전(79)/MBC(82년 창단맴버)-빙그레(85)/85년은퇴)
75 유종천 (우우/UP/성균관대-포철(79)-성무(81)/삼미(83년 2차)/83년은퇴)
78 김시철 (우우/P/요미우리(78)-포철(80)/MBC(82년 창단맴버)/82년은퇴)
@ comment
프로야구 창단무렵에 해체되면서 배출된 프로선수들은 별로 없지만 배문고는 60년대 서울의 강팀들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배문고 야구팀이 명문팀중 하나였다는 것은 배문고 출신중 명지도자들이 많은 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배문고가 탄생시킨 최고의 투수가 바로 김인식감독입니다... 김인식은 배문고 창단무렵에 활동했던 특급투수로 고교대표와 국가대표에서 활약했고, 불과 28세의 나이로 처음 감독을 맡아 비록 약한 전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명감독에 오르게 되는 지도자생활의 시작을 모교에서 시작하게 되죠...
김인식감독 재직시절 김시철이라는 유망한 강속구 투수가 배출되었는데 원래 재일교포였던 이 선수는 졸업을 몇달 앞두고 배문고를 중퇴, 일본 요미우리구단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한국으로 복귀했고 결국 재활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사라진 선수입니다...
배문고가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2년, 즉 67년 대통령배 4강진출과 청룡기 준우승, 이듬해인 68년 대통령배 준우승시절 당시의 명단을 보면 포수 김대권과 유격수 백기성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군산상고 감독을 지내다가 프로에서도 명코치로 이름을 날린 백기성과 83년 광주일고 3관왕, 87년 천안북일고 3관왕을 비롯 총 10군데의 고교야구팀을 맡았던 명장 김대권감독, 이밖에 최한익 현대피닉스 창단감독, 신현석 전포철감독 등이 배문이 배출한 기라성같은 아마지도자들입니다...
배문고출신의 프로선수중 가장 선배격인 최정우도 MBC청룡의 창단맴버로 프로에 입단해 선수로서의 기록은 보잘 것 없지만 LG와 롯데에서 코치로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기도 합니다...
배문고는 70년 백창현이라는 투수의 활약으로 청룡기에서 대구상에게 2:1 석패해 준우승한 이후 약체팀으로 전전하다가 결국 창단 20년만에 해체되었습니다...
첫댓글 배문 야구부가 부활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스하키부도 생각납니다.
숭인동에 있던 동대문스케이트장에서 시합보러 가곤 했는데
합판에 송진가루 뿌리고 스틱으로 퍽 컨트롤 연습하고 자전거 쥬브로 체력훈련하던 선수들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