ᆢ
결국 우리가 변견을 떠나 자성을 깨치고 중도를 성취하면 쌍차쌍조(雙遮雙照)의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어 삼라만상과 항사묘용이 여기에 원만구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空)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일체가 원만구족한 것을 공이라 하며 공이 또 공이 아니어서(不空), 일체 삼라만상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不見精麤 寧有偏黨 (불견정추 영유편당)
세밀하고 거칠음을 나누어 보지 않는다면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하나의 공(空)’이란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일체 명상(名相) 즉 이름과 모양이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을 말합니다. 일체 시비분별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으므로 삼라만상 그대로가 중도 아닌 게 없습니다.
분별한 것에 집착하면 공을 여의게 됩니다. 하나의 공이 양단(兩段)이란 걸 알면, 연등이 부처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산천초목 그대로가 부처라는 안목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에는 어떤 개념도 붙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개념을 세우면 개념이 본래 공인 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개념 그대로가 공이고, 마음이고, 부처인 것입니다.
‘마음의 작용’이라든지 ‘본래 마음’이라든지 현상으로 펼쳐져 있는 공, 연기, 중도가 다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구조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한 번 살펴보면서 법에 대한 안목을 키워 가시면 좋겠습니다. ()()()
첫댓글 거룩한 부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