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문지기가 되고자 한 김구
1905년 우리나라가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게 되자 김구는 더욱더 교육사업에 힘을 썼습니다. 애국심과 충성심만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가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호를 백범(白凡), 이름을 김구(金九)로 고쳤습니다. 김구의 어릴 적 이름은 김창암이었고 동학에 들어가며 김창수로 고쳤습니다. 감옥을 탈출한 후 김구(金龜)로 바꾸었는데 그것을 다시 김구(金九)로 고친 것입니다. ‘백범’의 ‘백(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에서 따온 것이고, ‘범(凡)’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김구는 당장에라도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가 다른 애국지사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김구는 임시 정부의 문지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독립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지기 대신 김구는 경무국장이 되었고, 내무총장을 거쳐 국무령을 맡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김구는 동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을 펼쳤습니다. 1932년 1월, 한인 애국단의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본 천황의 마차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고, 4월에는 윤봉길이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의 문무 고관들을 죽이고 부상을 입혔습니다.
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통일된 조국을 꿈꾼 김구
1945년 12월 28일, 일본에서 해방된 우리나라를 5년 동안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네 나라가 신탁 통치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결정에 김구는 화가 치솟았습니다. 신탁 통치는 나라를 두 동강이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탁 통치를 위해 그은 삼팔선을 없애고, 우리의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굳건하게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남과 북에 따로 정부를 세웠다가는 나라가 영원히 두 동강이 나고 겨레가 서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일 정부를...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문지기가 되고자 한 김구
1905년 우리나라가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게 되자 김구는 더욱더 교육사업에 힘을 썼습니다. 애국심과 충성심만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가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호를 백범(白凡), 이름을 김구(金九)로 고쳤습니다. 김구의 어릴 적 이름은 김창암이었고 동학에 들어가며 김창수로 고쳤습니다. 감옥을 탈출한 후 김구(金龜)로 바꾸었는데 그것을 다시 김구(金九)로 고친 것입니다. ‘백범’의 ‘백(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에서 따온 것이고, ‘범(凡)’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김구는 당장에라도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가 다른 애국지사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김구는 임시 정부의 문지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독립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지기 대신 김구는 경무국장이 되었고, 내무총장을 거쳐 국무령을 맡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김구는 동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을 펼쳤습니다. 1932년 1월, 한인 애국단의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본 천황의 마차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고, 4월에는 윤봉길이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의 문무 고관들을 죽이고 부상을 입혔습니다.
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통일된 조국을 꿈꾼 김구
1945년 12월 28일, 일본에서 해방된 우리나라를 5년 동안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네 나라가 신탁 통치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결정에 김구는 화가 치솟았습니다. 신탁 통치는 나라를 두 동강이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탁 통치를 위해 그은 삼팔선을 없애고, 우리의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굳건하게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남과 북에 따로 정부를 세웠다가는 나라가 영원히 두 동강이 나고 겨레가 서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일 정부를 세우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 남북 협상을 갖고, 네 가지 사항에 북측과 합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대했던 남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한과 북한에는 각기 다른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김구는 조국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동포의 총탄에 원통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김구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나라를 사랑하고, 모든 일의 1순위가 나라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몸과 마음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이 책 《궁금해요, 김구》에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김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 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독립운동가 김구의 이야기를 통해 나라의 소중함과 함께 이 나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애쓴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 보세요.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임정 100주년이니 많은 관심 받을것 같아요^^
아이들이 김구 선생님은 잘 모르더라구요. 열심히 읽히려고 해요.
김구선생님은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 시리즈 그림들이 다 좋은 거 같아요. 축하드려요!
그림 괜찮다는 소리, 정말 좋아요.^^
추카! 올해는 아이들에게 이 책 꼭 읽을수있도록 !
책 보내준다 말만 하고.ㅠㅠ 주소 좀 보내주면 몇 권 챙겨서 꼭 보낼게용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1.20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