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자치도가 #동학농민운동 참여자 #후손들에게 1인당 연 120만 원씩의 수당을 주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병자호란 유공자도 보상하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 내란 특검도 하자 이런 조소 섞인 반응이 많았는데요.
왜 갑자기 지원을 한다는 것인지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 박한솔 기자와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박 기자,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그러니까 132년 전 사건이에요.
그런데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한 겁니까?"
"네. 1894년 조선은 관리들의 부패와 이로 인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고종의 처가인 민씨 척족들의 매관 매직은 경제와 행정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켰는데요.
지금의 전북 부안에 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지친 농민들이 무장 봉기하며 동학운동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훈 대상은 아닙니다.
국가의 수립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인데요.
애국지사는 1910년 일제 국권 침탈 전후부터 해방 전까지의 공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순국선열은 이보다 더 넓은 1895년 을미사변부터로 보는데, 을미사변이 훗날 의병 활동의 모태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학운동은 일본이 조선을 좌지우지하게 되기 직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부군은 동학운동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해서도 유공자로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더 궁금한 게 말이죠. 132년 전 사건이잖아요.
그럼 누가 주도했는지, 그리고 또 후손은 누군지 그런 것들이 엄격하게 구분이 안 될 것 같은데요"
"네,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 후손인지 밝히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시는 근대적인 행정 시스템 사법 체계가 도입되기 전인데요.
물론 전봉준 같은 주요 인물이라면 재판 기록이 남아 있지만,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기록조차 없습니다.
심의위원회는 증빙 자료가 없다는 유가족들의 질문에
'자료가 없으면 가족 간 전승되는 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해 보내주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후손 여부도 가족 증명서가 아닌 족보로 증명하는 실정입니다.
분명한 사료가 뒷받침돼야 하는 보훈 심사와는 거리가 먼데요.
실제로 보훈부의 독립 유공자 인정 비율은 신청자의 6.7%에 불과한데,
동학운동은 신청자의 무려 83.2%가 참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주무대가 전북이었다' 이거는 맞는 거 같죠.
그런데 이게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사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지자체가 나서느냐, 여기에 대한 비판도 있어 보입니다.
"네. 국가적 예우가 필요하다면 특별법 개정을 통한 국비 지원의 순서겠습니다.
왜 전북도만 인당 120만원이라는 지방세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건지도 의문입니다.
현재 경증 장애 아동 등 취약계층 수당이 연 130만원 수준이고,
전북도를 기준으로 참전 유공자가 받는 평균 참전 수당은 140에서 150만원 수준으로 비슷합니다.
형평성 논란에 온라인상에선 '연개소문 후손입니다. 저도 120만원 주세요'라든지,
'행주산성 건설 노동자들 피해 보상금도 줘야 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점도 시점이지만 동학운동 참여자도 아니고 그 후손들이
참전 유공자나 취약계층과 비슷한 금액을 지원받는 게 맞는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전북도가 재정 자립도가 가장 낮죠."
"네, 전북 재정 자립도는 26.7%로 17개 시도 중 최하위입니다.
전국 평균이 47.3%라 그 절반 수준에 그치는 건데요.
없는 곳간 바닥까지 긁어내서 후손까지 지원하려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뭐 돈이 넉넉하다면 폭넓게 지원하는 거 뭐 당연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대상이 뭐고, 왜 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 기자,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