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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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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스벤슨 photo Donkey Sanctuary 홈페이지 |
과묵하고 인내심이 강한 당나귀는 등에 십자가 문양의 털이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예수가 죽임을 당할 때 십자가의 그림자가 당나귀 등에 새겨졌다는 전설은 기독교도들이 신봉하는 ‘믿음’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교도에게 당나귀는 개와 더불어 ‘재수없는 동물’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무슬림은 신에게 기도를 하는 동안 당나귀나 개를 보거나 울음소리를 들으면 기도 효과가 전부 사라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스벤슨이 종교적 열정에서 당나귀에 관심을 가졌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유럽인에게 일반화된 이미지를 감안할 때 개·고양이·새와 같은 애완동물과는 전혀 다른 신성한 의미를 가진 동물이 바로 당나귀라는 점이다.
“말은 독일, 안장은 이탈리아, 기수는 프랑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경마 경영은 영국”이란 말이 있다. 대영제국의 힘은 한순간에 그치는 파워가 아니라, 계속 하나로 이어가는 경영에서 나온다. 전형적인 영국인 피를 타고난 스벤슨은 당나귀 보호운동을 통해 새로운 동물보호운동의 모델을 창조해낸다. 동물보호를 명분으로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의존형이 아닌, 자신의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기부금을 통해 운영되는 독립형 NPO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풀뿌리 운동이다.
지금까지 당나귀 보호소를 거쳐갔거나, 머물고 있는 당나귀는 모두 1만4000마리다. 당나귀를 통한 각종 프로그램에서 모여드는 기부금은 2009년 기준으로 총 4000만달러에 달한다. 직원이 약 500명 있지만, 대부분 자원봉사자다. 기금의 대부분은 보호운동에 찬성하는 소액 기부자들로부터 모금된다.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지사형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구체화할 수 있는 동력(動力), 즉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한 수익사업(?)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나귀 보호소와 인연을 맺는 사람은 1년 평균 20만명이다. 이들 중 10여만 명 정도는 데번을 직접 방문해 자녀들과 함께 당나귀 체험에 참여한다. 1년 365일 문을 여는 당나귀 보호소에는 입장료가 따로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부금을 두고 간다. 버림받은 당나귀를 보호하자는 취지에도 동의하지만, 당나귀를 통해 얻는 ‘실질적인 도움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치료 효과도
스벤슨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당나귀의 역할을 어린이 교육에서 찾았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작은 당나귀 동물원이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며 어린이들과 대화를 하는 장면은 스벤슨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당나귀는 유순하고 인간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비교적 관리하기가 편한 동물이다. 코끼리·호랑이·원숭이 같은 동물은 직접 학교에 데려가기도 어렵고, 관리도 어렵다. 말은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타기가 어렵고 위험하기도 하다. 힘이 센 당나귀는 직접 등 위에 올라탈 수도 있고 기대어 먹이를 주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는, 호기심 충만한 동심을 만족시켜 줄 최적의 동물이다.
스벤슨은 당나귀를 어린이 교육과 연결시킨 것뿐만 아니라 치료(Therapy)에도 활용했다. ‘어린이와 당나귀를 위한 신탁(Trust for Children and Donkeys)’이란 NPO를 별도로 만들어, 신체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에게 당나귀를 친구로 만들어줬다. 정상적이지 못한 어린이를 당나귀 등에 태우고 부모와 함께 놀러다니는,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도 간단한 치료 프로그램이다. 정식 조련사 자격을 갖고 있는 당나귀 전문가가 뒤에 따라가고 부모가 양편에서 자식과 대화를 하면서 숲속으로 돌아다니는 식이다. 동물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천천히 걸어가면서 여행을 즐기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과묵하고 느린 당나귀의 천성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참가하는 3세대 동반여행도 적지 않다.
어릴 때 소나 말의 등 위에 한번이라도 올라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지. 대부분 집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정상적이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의 선물 이상으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자신감을 통해 대인관계가 원만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숲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철학을 논의한, 이른바 소요학파(逍遙學派)의 창시자이다. 발밑의 돌부리를 피하면서 사방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과 걸음을 맞추면서 얘기를 나누는, 공간 감각에 기초한 ‘유(有)산소 학파’이다. 오감, 나아가 육감을 예민하게 만드는 곳은 꽉 막힌 실내가 아닌, 나침반이 돌아가는 열린 자연공간이다. 인간의 뇌는 전혀 모르는 곳을 여행할 때 최대한 활용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당나귀 보호운동 전세계로 확산
현재도 일주일에 15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 치료 프로그램은 당나귀 여행에 필요한 각종 지식을 함께 가르치는 공간 감각 학습장이기도 하다. 영어, 신호판, 숫자, 색깔, 식물채집, 동물이름, 당나귀와의 대화, 위험이 갑자기 닥칠 경우의 대응방안을 함께 가르친다. 교실에서 배우는 공부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말과 마찬가지로 당나귀를 탈 경우 척추가 똑바로 세워지고, 자세가 반듯하게 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다.
치료프로그램은 자기만족형 슬로건이 아니다. 실제 효과를 본 어린이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2008년 5월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섯 살의 에드워드는 또래 친구와의 대화가 원활하지 못한 어린이였다. 유치원에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에게 말을 하지 않는(Selective Mute) 소년이었다. 그런 아이가 당나귀와 함께 생활한 뒤부터는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걸고, 대화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치료 프로그램은 두 살짜리 어린이부터 참가하지만, 70대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실버용도 있다.
기부금 모금을 위한 아이디어로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당나귀 미인대회’도 빼놓을 수 없다. 당나귀가 얼마나 잘생겼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란 당나귀를 사육해준 주인과 가족에게 영광을 돌리는 대회이다. 누런 잇몸을 드러내며 얼마나 크게 웃는지는 ‘미인 당나귀’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이다. 매년 여름철 영국과 유럽의 신문·방송이 즐겨 다루는 단골 뉴스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이다.
당나귀 보호운동은 영국만이 아니라 프랑스, 그리스, 독일, 케냐, 멕시코 등 전 세계 25개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멕시코와 스페인은 스벤슨의 당나귀 보호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투우에 반대하는 동물보호운동가들에게 스벤슨의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당나귀 의료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질병 예방을 위해 유럽인 수의사를 직접 파견하기도 한다. 스벤슨은 평소 “아프리카 당나귀의 평균 수명은 9년으로, 영국의 30년에 비해 엄청나게 짧다.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나귀가 운송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이집트에도 당나귀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는 브랙컨(Bracken)이란 이름의 당나귀가 보호소에 들어왔다. 알코올 중독 당나귀였다. 항상 맥주잔에 혀를 깊숙이 집어넣고 술을 마시는 주정꾼이었다. 술이 없으면 난폭해졌지만, 브랙컨과 보낸 시간은 아주 재미있었다.”
당나귀 사랑에 빠져 42년간 보호운동에 나서는 동안 안팎에서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기아로 굶어죽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무슨 당나귀? 먼저 노인, 젊은이, 배고픈 어린이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 1호로 구입한 당나귀 ‘장난꾸러기 얼굴’ 이후 스벤슨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들어야만 했던 일관된 비난이다. “나는 당나귀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믿는다.” 스벤슨의 반응은 항상 간단했다.
영국 왕실 훈장 수여도
스벤슨의 이름에는 앞에 닥터(Dr), 뒤에 MBE란 말이 반드시 붙는다. 닥터는 ‘당나귀 사랑을 위해’(1999년)를 비롯해 12권의 책을 출간한 당나귀 전문가로서, MBE는 동물보호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영국의 자존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영제국의 명예회원(Member Of The British Empire)’을 의미하는 MBE는 영국 왕실이 주는 최고의 훈장 중 하나이다. 영국 왕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대부분의 영국 미디어는 한번 훈장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름 뒤에 반드시 훈장 명칭을 함께 기입한다. MBE는 개인의 영광인 동시에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영국의 유형 자산이다.
부음에 실린 스벤슨의 마지막 사진은 당나귀들에 둘러싸인 모습을 담고 있다. 스벤슨의 행복한 얼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나귀의 눈과 표정 속에서도 뭔가 따뜻함이 묻어난다. 장례식에 사용될 영정(影幀)으로 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놓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상상컨대 저세상에 도착한 그녀의 눈앞에는, 천국으로 향하는 당나귀 수레가 군 의장대처럼 길고도 길게 끝없이 도열해 있지 않을까?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실어나른 2000년 전의 볼품없는 당나귀가 머리를 숙인 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