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ː2022년 05월 04일(수)
▶산행지ː 삼봉산(222.1m)
▶코스ː 궁기마을회관-김시식지-삼봉산-태인교차로(3.40km/01:10)
▶난이도ː B+
▶누구랑ː부산한마음산악회
▶시 간ː10:37∼11:47(휴식포함 01ː10분)
▶거 리ː약 3.40㎞
▶날 씨ː비 구름(운무)
☞김시식지(들머리)ː전남 광양시 태인동 819-4
☞태인동(날머리)ː전남 광양시 태인동 28-287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 지금 우리가 호칭하고 있는 김이란 용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의(海衣)란 명칭으로 기록하고 있다. 46개 고을에 토산품으로 나오는데 전남지방에서는 영광(靈光)·장흥(長興)·나주(羅州)·영암(靈岩)·진도(珍島)·강진(康津)·해남(海南)·순천(順天)·보성(寶城)·고흥(高興)·광양(光陽) 등 11개 고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이라는 현대어가 해태(海苔)라고 표현된 최초의 기록은 1817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나타난다. 해태는 감곽 또는 감태라고도 하는데 태(苔)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중 자태(紫苔)란 것이 있다고 했다. 자태는 속칭 해의(海衣)라고도 하고 또 사투리로 짐(朕)이라고 한다고 기록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朝鮮水産誌)』에는 광양(光陽)의 물산으로 쌀·면화·철기·소금·해태 등 다섯 가지를 들고 그 중 해태가 가장 중요한 물산이며 국내 수위라 기록하고 있어 광양은 해태생산으로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의 시식에 대하여서는 조약도(助藥島)의 김유몽(金有夢), 완도 고금면 용장리 정시원(鄭時元) 등이 처음 시작하였다는 설과 광양의 김여익(金汝瀷, 1606-1660)이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김여익은 영암군 학산면몽해(夢海)에서 태어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자 의병을 일으켜 종형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자 돌아온 뒤 고향을 떠나 장흥(長興)동백동(冬栢洞)을 거쳐 1640년 태인도(太仁島)로 들어가 살면서 김을 시식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1714년(숙종 40) 당시 광양현감이었던 허심(許鐔)이 지었다는 김여익의 묘표(墓表)에 기록되어 있다. 이 묘표는 남아 있지 않으나 김해 김씨 족보에 남아 있다.
후손들은 해태를 ‘김’이라 하는 것은 김여익이 태인도에서 김의 양식법을 창안하였는데 하동장(河東場)에서는 태인도의 김가(金家)가 기른 것이라 해서 “김”이라 했다고 한다.
오늘날 태인도에 남아 있는 재래식 양식법은 산죽이나 갈대 따위를 모래펄에 꽂는 일본홍(一本篊) 방식이고 완도의 재래식 양식법은 왕대를 가지고 발을 만든 뒤 좀 깊은 갯펄에 꽂은 염홍(簾篊) 방식이다.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치료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상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상처 입은
관계 우리의 신앙에 뚫린 구멍, 깊이 감춰진 두려움이라는
종양, 서서히 무너져 가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냉정한 마음 등이 우리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이다.
⇓석성산 삼봉산 오추사⇓
▶산행일ː2022년 05월 04일(수)
▶산행지ː 석성산(174.6m) 삼봉산(224.6m) 오추사(181m) 안산(121.7m)
▶코 스ː 아동마을-석성산-삼봉산-오추사-신덕마을-안산-신답마을(6.23km/2:22)
▶난이도ː B+
▶누구랑ː부산한마음산악회
▶시 간ː12:46∼15:08(휴식포함 02ː22분)
▶거 리ː약 6.23㎞
▶날 씨ː비 구름(운무)
☞아동마을(들머리)ː전남 광양시 진월면 신아리 산 20-3
☞신답마을(날머리)ː전남 광양시 진월면 신아리 138-3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신아리 해발 170m 고지에 자리잡고 있고, 지도상에는 봉임산성(鳳任山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성의 총 길이는 100m이고, 면적은 1,422m2, 너비는 520cm로 동서축으로 긴 타원형을 하고 있다. 축조 시기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시기에 쌓았다는 설이 있으나, 산성의 형식과 축조 기법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산 정상부의 일정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고 성벽의 안팎을 모두 돌로 축성한 내외협축식 산성이다. 다른 산성에 비해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내벽의 경우 남쪽 일부분이 허물어졌지만 9단의 석축이 확인된다. 회청색 경질토기편이 1점 수습되었지만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절차적 기억.♣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위 절차적 기억이다. 여기에 우리가
아주 일찍이 무의식적으로 배운 모든 행동 방식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으로 현재의 사건에 반응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첫댓글 수고했습니다.
행복한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