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1월26일
허윤희 기자의 원도심 골목 여행-원도심 골목 여행 대전
대전역 근처 대흥·소제동 일대 경부선 개통 이후 근대도시 성장 전국 유일 1920년대 철도관사촌 근대 건축 충남도청사 등 볼거리 ▲카페와 문화예술 공간이 된 ‘관사 16호'. 허윤희 기자 ▲ 대나무숲이 울창한 소제동의 찻집. 허윤희 기자 ▲1962년에 건립된 대흥동 성당은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허윤희 기자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를 안내하는 선. 허윤희 기자 ▲옛 충남도청사 본관의 도지사 집무실로 사용됐던 공간. 허윤희 기자 ▲1932년에 건립된 충남도청사 본관. 현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허윤희 기자 ▲충남도청 관사로 사용됐던 건물. 허윤희 기자 ▲대전 동구 소제동(중앙동)의 대동천변 산책길. 허윤희 기자
대전은 순우리말로 ‘한밭’이다. 너른 들판을 뜻한다. 이름처럼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은 충남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라고 불리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 대전역 이 개통되면서 대전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1932년에는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들어서면서 지방행정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대전이 근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남겨진 100년의 유산들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 사이 원도 심 주변에 남아 있다. 원도심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중구의 대흥동, 은행선화동과 동구의 소제동(중앙동) 일대 를 말한다. ▲철도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의 낡은 담장을 벽화로 꾸몄다. 허윤희 기자 철도 역사 남은 소제동 여행의 시작점은 대전역이다. 대전역의 동쪽 광장으로 나오면 주차장 쪽에 있는 낡은 목조 건물이 보인다. 철도 문화유산인 옛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국가등록문화재 제168호)이다. 1956년 지어진 이 건물은 면적 397㎡(약 120평)에 6.7m 높이의 단층 창고이다. 기차를 수리하고 정비하기 위한 자재와 부품, 장비 등을 보관한 곳이다. 예전에는 보급창고 3호 근처에 보급창고 1호, 2호, 4호, 재무과 보급창고 등이 있었 지만 대전역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잇따라 철거됐다. 홀로 남은 보급창고 3호 너머로 철도공사와 철도시설 공단 본사가 있는 28층 쌍둥이 건물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보급창고를 뒤로하고 소제동(중앙동)으로 향한다. 대전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소제동은 1920년대에 ‘소제호’라는 호수를 매립해 조성한 철도관사촌이다. 188명의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는 대전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공간이다. 한때 철도 관사가 100여채 정도 있었지만 현재는 40여채 정도 남아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 ‘뉴트로’ 성지로 떠올 랐다.소제동에는 30개의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골목길을 걸으면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움푹 팬 계단, 이끼가 잔뜩 낀 담벼락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마주 하게 된다. 골목에는 철도 관사 건물을 고쳐 만든 힙한 카페나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소제동 카페거리라는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가재교 쪽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멘트 기둥에 ‘관사 16호’라고 쓰인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카페와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당 안쪽에는 관사로 쓰였을 당시에 있던 녹색의 대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서까래, 온돌방 등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뒤쪽에도 출입문이 있어 다른 골목으로 이어진다. 고혜봉 대전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대전이 ‘노잼(재미없음) 도시’라고 알려졌는데 대전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근대역사문화 유산들이 남아 있어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특히 원도심 소제동은 철도 관사라는 근대 건축물뿐 아니라 1960~1970년대 골목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라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