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대제사장들의 무리에게 내어주었고, 대제사장들은 로마의 군인들을 통해 십자가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으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예수님을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16절). 브라이도리온(πραιτώριον, Praetorium)은 사령부, 관저(官邸), 관정(官廷)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빌라도 총독의 관저의 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곳에서 로마의 병사들은 예수님께 온갖 희롱을 퍼붓습니다(17절~20절). 빌라도 관저에서는 유대인들의 관습으로 인한 신성모독의 죄로 사형을 내리기 어려웠기에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정치적인 반역자처럼 몰아붙여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사형을 집행합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이러저러한 내막(內幕)은 제대로 알지 못했겠지만, 외형적인 죄목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었기에 예수님께 왕의 복장을 연상하게 하는 자색 못을 입히고, 왕관 대신 가시관을 씌워서 왕에게 경배하는 듯 흉내를 내다가 침을 뱉고 때리면서 희롱을 퍼부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는 예수님께 행하는 조롱은 한낱 재밋거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만주의 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이런 조롱과 침 뱉음의 모욕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조롱을 당하신 예수님은 골고다라는 곳까지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골고다(Γολγοθᾶ, Golgotha)는 히브리어 길갈타(גִּלְגַּלְתָּ, Gilgalta)라는 지명을 헬라어로 표기한 것으로 그 뜻을 해골이라고 번역하면서 헬라어로 해골이라는 단어인 크라니온(Κρανιον)으로 번역하였습니다(22절). 그리고 나중에 이 단어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칼바리아(Calvaria)라는 단어로 번역되면서 영어에서는 갈보리(Calvary)라고 쓰게 되었기에, 이젠 골고다 언덕이란 말과 함께 갈보리 언덕이란 말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원문이나, 한글 성경에는 갈보리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갈보리라는 단어는 골고다라는 지명의 라틴어 명칭을 통해서 나온 단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골고다에서 제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25절). 제삼시는 현재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입니다. 오전 6시에 사형이 선고되었고, 세 시간 정도 온갖 조롱과 희롱을 당하시고, 매 맞고 채찍질 당하시다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하시면서도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29절, 30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께서 구원자(메시아)라고 하면서 힘없이 죽임당하는 것을 조롱하며 희롱하고 욕했습니다(31절, 32절). 그리고 예수님은 두 강도와 함께 못 박히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오른쪽과 왼쪽에 강도 한 명씩 함께 십자가형을 통해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강도와 같이 범죄자의 취급을 받으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심지어 그 강도들조차 예수님을 욕하는 수모를 겪습니다(32절).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의 조롱과 희롱,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조롱과 희롱을 다 당하시면서 흉악한 범죄자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러한 수모와 모욕은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군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몰약(沒藥, Myrrh)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몰약은 마취의 성분을 가지고 있기에 사형수들의 통증을 조금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그 모든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당하시길 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34를 보면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었다고 했는데, 쓸개도 진통제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드시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겪어야 할 모든 고통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모든 고난과 조롱을 다 기꺼이 담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고,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달렸습니다(26절). 사실 이 죄패는 예수님의 죄명을 기록하려고 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실제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는 명패가 된 셈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로 희롱하면서(31절),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32절). 예수님은 정말 진정한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진실을 볼 수 없는, 영적으로 눈이 먼 자들이었습니다. 자기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눈이 가리어지면 진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조롱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을 기록하는 내용 중에 하나의 흥미로운 기록이 눈에 띕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사형수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사형 집행 장소까지 직접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밤새 심문을 받으시고, 매 맞고,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계속 짊어지고 가시기에 체력이 부족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꾸 쓰러지고 넘어지니까 로마 군인들이 지나가던 한 사람을 붙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짊어지고 가게 합니다. 21절은 그 사람의 이름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Σίμων, Simon)”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레네(Κυρήνη, Cyrene)는 북아프리카 북쪽 연안의 도시로 현재의 리비아에 속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시몬의 두 아들인 알렉산더(αλεξανδρου, Alexander)와 루포(ρουφου, Rufus)의 이름을 밝히면서 시몬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가 이 마가복음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한 복음서인 것을 감안(勘案)하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알렉산더와 루모, 구레네 시몬을 잘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13에 보면 이 루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루포의 어머니, 즉 시몬의 아내에 대해 바울은 “내 어머니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구레네 시몬은 이후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구레네 시몬의 아내와 아들까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십자가가 축복이 되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십자가는 죽임을 당하는 사형 도구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이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은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치욕과 죽음을 은혜와 생명으로 바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고난일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귀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
#큐티
#매일성경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마가복음15장16절부터32절
#예수님을향한조롱과비난
#십자가에못박히신예수그리스도
#우리의죄때문에십자가의고난을받으신예수님
#로마군인들에게조롱과희롱을받으시고맞으신예수님
#유대인의왕이라는죄패가붙은십자가
#구레네시몬
#알레산더와루포의아버지구레네사람시몬
#예수님의십자가를억지로짊어지게된구레네시몬
#예수님을향한대제사장들과서기관들의희롱과조롱
#십자가에달린두강도도예수님께욕을하다
https://cafe.naver.com/lighthousegoyang/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