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유감
박승한 (시카코 주재기자)
시카고 일대의 날씨가 이상스리 고약하다. 시카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이 그런 모양이다. 유달리 철 아니게 비가 심하게 내리고 낮에는 후덥지근한데도 새벽에는쌀쌀하여 개도 안 걸린다고 하는 여름감기에 걸리기가 십상이다. 날씨도 안좋은데 그나마 불교세가 부진한 시카고 불교계로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에 그렇지않아도정체하여 답답한 공기가 더 흐려진 느낌이다.
최근에 시카고의 한 사찰에서 직분을 맡았다가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던 스님이 다시 와서 환계하고 시카고에서 결혼을 올렸다. 불교집안이야 출가나 환속을 막는 일이 없어 출가한 스님이 환속하려면 언제든지 환계하고 재가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조계종이외의 다른 종단에서는 스님의 결혼이 허용되고 있고 재가법사들이 열심히 뛰는 세상이다. 허나 사찰에서 직분까지 맡았던 스님이 공인의 위치를 망각하고 자기가 소속했던 사찰의 사부대중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지혜를 가르치는 불교집안사람의 자세가 아님은 자명할 뿐만 아니라 그 스님에게 직분을 준 주지스님이나 신도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미국땅의 한국 기독교계는 매년 전국적으로 수 백의 목사, 전도사, 및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는 양상인데, 우리 불교계는 스님이나 법사를 배출하지는 못할 망정 환속하는 광경만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만약에 카톨릭의 신부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예수와의 서약을 저버리고 옷을 벗었다면 자랑스럽게 느낄까. 만약 박사과정에 들어간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든지 종합시험에서 낙방하여 박사를 그만 둔다면 떳떳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닐까. 조금의 양심이 있다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세살 먹은 어린이도 부끄러워 할줄을 알 것이다.
한때 뜻을 가졌거나 어찌할 수 없는 인연에 의해 출가하여 절밥을 얼마라도 먹었다면 환속이 어떠한 명분에서도 내세울만한 일이 아니므로 조용히 자숙해야 할 일이거늘 어찌하여 결혼합네하고 세상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다닐까. 이렇게 하면 겨우 지탱하고 있는 미국의 동포불교계에 얼마나 큰 누가 되는지 모르는가 한심할 뿐이다. 우리 불자님들이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바로 볼 수 있어야겠다.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이 특히 불교계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저질러지는 것은 사부대중이 수행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전역의 한국 사찰에 있는 한국스님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거센 기독교의 물결을 헤쳐 나가기도 힘에 겨운데 언제 옷 벗을까나 생각하는 승려들 때문에 부담이 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안그래도 포교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좁은 동포사회에서 불교계의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동포들의 입에 오르락거려서야 정말로 힘든다. 그러나 만약에 결혼해서 재가법사로서 죽을 힘을 다해 불교포교에 앞장선다면야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저 불교 수행과 승려신분에 대한 회의로 말미암아 환속하는 것이라면 그저 조용히 살아야만 할 것이다.
회색법복이 어울리지 않는 스님은 자신에게 그 회색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에 부처님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스님과 재가신도들을 위해 그 옷을 재빨리 벗긴 벗되 제발 소문나지 않게 살아주기를 당부한다. 이래야 그 자신이 한때나마 몸 담았던 불교계에 폐를 안끼치고 나쁜 업을 짓지 않는 길 일 것이다.
199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