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1)
열왕기 하권 19장 30절에 '유다 집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라고 나오는데, 남부 유다가 앗시리아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번영된 미래가 있으리라는 보장을 하느님이 하신다.
이러한 남부 유다의 회복을 대구법을 사용하여 19장 31절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남은 자'는 '생존자'와, '예루살렘'은 '시온산'과 각각 대구를 이루고
있다. 열왕기 하권 18장 13-16절과 관련된 앗시리아의 비문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남부 유다 1차 침입시 약 20만명을 포로로 잡아 갔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2차
원정에서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포로로 잡혀갔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남은 자'와 '생존자'는 이러한 난리를 피해 예루살렘성 안과
시온산으로 피한 자를 지칭한다. 이들이 예루살렘과 시온산에서 나온다는 것은
앗시리아가 물러갈 것을 감안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 그들이 더 이상 은신할 필요가
때문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게 된 상황을 나타내 준다.
한편 '남은 자'에 해당하는 '셰예리트'(sheerith ; a remant)는 30절에서
'남은 자'로 번역된 '한니쉬아라'(hanishiara)와 마찬가지로, 그 어근은
'남다'란 뜻의 '샤아르'(shaar)이다.
이것은 모두 일차적으로 북부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남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신학적 의미에서 '남은 자'는
어둡고 망가진 세상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여 그를 떠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남은 자'에 대한 결정적인 신학적 계시가 나오는 성경 말씀은 로마서 9장 27-29절이다.
여기서 바오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다 하여도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남은 자' 사상은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서, 이것은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베풀기로 정하신 은혜에 기초하여,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구원의 진정한 수혜자들을 의미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일차적으로 앗시리아가 물러감으로 인하여 남부 유다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상황을 예언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와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신약의 백성들까지 염두에 둔 예언이라 할 수 있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문은 '남은 자'와 '생존자'가 난리를 피해 숨어 있다가, 앗시리아가 퇴각하자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구원 사건이 전적으로 '주님의 열정'에 근거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주님의 열정'에 해당하는 '키느아트 예흐와'(qinath yehah)란 표현이 이사야
예언서 9장 6절과 37장 32절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선택하여 세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미한다.
여기서 '열정'으로 번역된 '키느아트'의 원형 '키느아'(qinah ; zeal)는 본래 '시기'나
'질투'를 의미하는데(잠언6,34 ; 에제8,3 ; 즈카1,14),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셔서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강한 시기심 내지는 질투심을 갖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주님의 열정'은 당신 백성들을 향하신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역설적
표현이다.
그리고 '주님의 열정' 앞에 붙은 '만군의'로 번역된 '체바오트'(tsebaoth)는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하느님의 약속에 더하여 이러한
표현을 덧붙이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택하신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Almighty)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