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넘나드는 갤러리카페 포스에서는 2006년 병술년(丙戌年)을 맞이하여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 보유자)의 고사 공연을 1월 6일에 가졌습니다. 고사공연을 기념하여 1월 6일부터 1월 13일까지 사진가 김수남의 <만신 김금화의 황해도 굿>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 나라굿으로 유명한 김금화 선생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큰 무당이다. 12세때 무병을 앓은 후 17세에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은 그녀는 기예까지 출중하여 황해도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무당이었다. 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장에서 일약 국제적 스타가 되었고 그 후 줄곧 나라굿을 주도해 왔다. 선생은 분에 넘치는 명예와 사랑에 보답하고자 사재(私財)를 털어 서해안 풍어제 전수관을 건립하고, 무의탁 노인들도 봉양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인의 `배따라기`에도 소개된바 있는 서해안 풍어제 (배연신굿• 대동굿)는 황해도 해주, 옹진, 연평도 지방에서 성행했던 풍어(豊魚)를 비는 굿이다. 지난 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는 무당 김금화 선생. 그녀는 강신무(降神巫)이면서도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진오기굿 등 모든 종류의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 큰 무당이라 불린다. 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에서 2남3녀중 2녀로 태어난 그녀는 12살 때부터 무병(巫病)을 앓기 시작하였다. 14세 때 시집을 갔으나 몸이 약한 탓에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여 친정 집으로 쫓겨났다. 17세 때 외할머니이며 만신(여자 무당)이었던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았다. 그 뒤 나라굿을 도맡아 하여 관(官)만신이라 불리는 권씨에게서 제대로 된 굿을 배웠고, 혼자 대동굿을 주재할 만큼 뛰어난 기능을 인정받은 그녀는 19세에 독립하였다. 82년 이후부터 국제적인 유명세를 가지게 된 김금화 선생은 그간 외국에서 수많은 나라굿을 해왔다.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 등이 대표적이다.
김수남 (Kim, Soo-Nam) 김수남(金秀男)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출판사진부 기자를 역임했다. 1970년대부터 잊혀져 가는 우리 기층 문화의 기록에 몰두해온 그는, 특히 한국 전역의 굿판을 기록하여 한국 무속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그는 일본 호카이도 히가시카와 마치에서 제정한 일본 최고의 국제 사진 상인 히가시카와(東川)상을 수상하였으며 독일 베를린 시 주최 Shamanism now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또한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특별 전시될 「한국의 책 100권」에 「한국의 굿」이 선정되어 촐판되었다. 1988년부터는 1년에 6개월씩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아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찍고 있다.
수상 1995 일본 히가시가와(東川) 사진상 해외작가상 수상
소장 예술의 전당, 연세대학교 박물관, 일본 히가시가와 문화 갤러리 등
사진집 2005 「굿, 영혼을 부르는 소리」(열화당) 「Gut, Kdrean Shamsnic Ritual」(열화당) 2004 「아름다움을 훔치다」(열림원) 1997 「김수남 아시아 문화탐험-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석필 1995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 스페이스) 1983-93「한국의 굿」(열화당, 전20권) 1993 「사진집 제주도」(일본 국서 간행회, 전3권) 1989-92「팔도 굿」,「민속놀이」,「조상 상례」,「전통 제례 「 안동」 하회 마을」(공저, 대원사) 1988 「한국 마음의 아름다움-민의 문화」(일본 오리진 쇼보), 「한국의 탈, 탈춤」(행림출판, 전2권), 「제주 바다와 잠수의 4계」(공저, 한길사) 1986 「풍물 굿」,「호미씻이」,「장승제」(평민사), 「홀로 가는 사람」(공저, 행림출판) 1985 「흐르는 섬」(공저, 행림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