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형상화란 무엇인가?
수필가 정임표
사람들이 “형상화”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초심자에게는 이게 손에 잘 잡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어떻게 써야 형상화가 되는가?’ 형상화란 가장 쉬운 말로 소재가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재로 아무렇게나 주물럭주물럭 만들어도 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문학예술의 세계에서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무가치한 것을 형상화라 하지 않습니다.
형상화란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인데 이를 은유(메타포)로 설명하면 '쌀을 고아 조청을 만들고, 다시 그 조청으로 엿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같습니다.
수필의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전통 엿 만드는 전 과정에 대응시켜서 정리합니다. 참고로 성경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교에도 간화선이라는 말로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으니 상고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화(看話)란 '화두를 본다(간파한다)'는 뜻입니다. 화두를 지식으로 이해하거나 머리로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나 일할 때나 온갖 일상에서 오직 그 화두를 의식의 중심에 두고 뼈저리게 의심하고 몰두하여 그 담긴 참 뜻을 "탁"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1단계: 쌀과 엿기름의 만남 (소재의 수집과 발효)
전통 공정은 좋은 쌀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여기에 엿기름 가루를 섞어 따뜻한 온도에서 삭힙니다. 엿기름 속의 아밀라아제 효소가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는 마법 같은 발효의 단계입니다.
일상의 단순한 사건이나 객관적 사실(쌀)을 무미건조하게 늘어놓는 단계가 아닙니다. 작가의 내면이라는 '따뜻한 온도' 속에서 그 사실을 묵상하고, 작가 고유의 시선이라는 엿기름을 침전시킵니다. 건조한 사실 속에 삶의 단맛(의미)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첫 번째 화학 반응입니다. 이 반응이 완료되면 단술이 됩니다. 단술만 해도 맛있는 음료가 되고 여름철에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한 잔 마시면 갈증을 해소해주는 좋은 음료가 되니 형상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술은 상온에서 잘 쉬는지라 오래 보관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조청을 만듭니다.(지금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음)
2단계: 맑은 윗물 걸러내기 (정화와 2단계 형상화)
2단계가 정화입니다. 우선 단술의 맑은 윗물만 걸러냅니다. 삭혀진 밥 찌꺼기를 베주머니에 넣고 꼭 짜서, 찌꺼기는 버리고 뽀얗고 맑은 윗물(당액)만 솥에 담습니다. 불필요한 소재와 의식의 파편을 여과하는 과정입니다.
문학적 형상화로 설명하면 글에서 감정 배설과 교훈 주입을 걸러내라는 것입니다. 징징거리는 감정, 불필요한 사념, "그러므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훈계조의 찌꺼기들을 과감하게 걸러내는 과정입니다. 오직 문예적 향취를 낼 수 있는 순수한 이미지와 정서의 즙만 골라내는 작업입니다.
3단계: 무쇠 솥에서의 고행, 조청 만들기 (정제와 농축)
3단계가 정제와 농축 과정으로 무쇠 솥에서의 고행을 통해 조청 만들기에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맑은 윗물을 솥에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오랜 시간 끓입니다. 수분이 날아가고 걸쭉한 '조청'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저어주어야 합니다. 눈을 떼면 눌어붙어 쓴맛이 나기 때문에 낮은 불로 쉼 없이 저어주는 인내와 고통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문학적 형상화로 말하자면 문장의 벼리기입니다. 걸러낸 이미지와 사유를 언어로 직조해 나가면서 불필요한 단어와 문장은 삭제해 나가면서 엑기스만 남기는 고뇌의 응축 단계입니다. 수많은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문장을 다듬어 언어의 밀도를 높입니다. 펄펄 끓는 감정 속에서 작가가 이성이라는 주걱으로 글을 끊임없이 저어주며 농도를 맞추어야 합니다.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여기까지가 깊은 사상이 촉촉이 밴 수필의 '조청'의 단계입니다. 조청만 해도 맛이 좋고 오래 보관됩니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으면 숟가락도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이빨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4단계: 치대어 엿 완성하기 (극한의 에너지와 형상화의 완성)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4단계 작업을 해야 합니다. 조청을 더 졸이다가 적당한 온도에서 식히며 반죽을 치대어 공기층을 불어넣습니다. 치대기와 늘이기와 되감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입에 넣어도 들러붙지 않고 보관하기도 좋고 썩지도 않는 맛있는 엿이 됩니다.
조청이라는 감정적·사상적 액체가 비로소 독자의 온몸과 감각에 툭 부딪히는 '예술적 생명력'을 얻는 순간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말로 떠드는 대신(말로 설명하는 대신), 엿가락처럼 쫄깃하고 행간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구멍을 크게 내면서 독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이미지와 은유로 완성해 내어 독자의 뇌리에 깊게 각인시키는 불후의 예술적 완결이 가장 위대한 형상화 입니다. 엿은 이제 엿기름도 쌀도 조청도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부활입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고 외칠 수 있는 변화 입니다.
이 글에서 핵심 단어의 은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쌀과 엿기름 = 내가 겪은 삶의 일화와 사실들
• 건져낸 윗물 = 감정의 배설과 찌꺼기를 걷어낸 순수한 정서
• 졸여낸 조청 = 깊은 사상과 묵상이 담긴 문장들
• 치대어 만든 엿 = 문학적 형상화가 완료되어 예술적 생명력을 지닌 최종의 글
엿을 만드는 전 공정은 형상화 작업 전체에 대한 스토리의 은유이자 상징입니다. 단어와 스토리가 지닌 은유와 상징을 상고하고 또 상고하면서 죽으라고 작품을 퇴고해야 명품 한 편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휘리릭 읽고 버릴 가치 없는 작품을 대량 생산하지 말고 이미 써 놓은 작품을 다시 손질하여 퇴고하고 또 퇴고하여서 불후로 만드는 수고로운 작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수고로 태어난 작품은 고료도 없이 널름널름 남에게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 무더위를 피해 도연명과 함께 시원한 계곡에서 족탁을 즐기면서 귀거래사 이야기 나누었다”고 쓰는 것도, 도연명 시집 한 권 들고 가서 읽으며 자연 속에서 도연명의 문학세계를 음미하면서 무더위를 식혔다는 뜻의 은유입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재미를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재능은 하늘이 주신 귀한 재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