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 2-4절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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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찬양 가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임하십니다. 하지만 은혜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삶은 다릅니다. 아는 자는 감사하고 모르는 자는 불평 내지는 감사를 못 합니다. 룻기 2장 2절은 룻의 이삭줍기가 시작됩니다. 이삭줍기는 당시 극빈자의 유일한 수입원입니다. 신명기 24:19-22절엔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개고가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런 율법 조항이 있더라도 그 밭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삭을 주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는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는 조건이 성립됩니다. 정말 빈손인 나오미와 룻은 누군가의 은혜를 받아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어떻게 이 가정을 인도하시는지 살펴보십시오. 3절에서는 룻이 우연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4절에서는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라고 합니다.
룻이 우연히 들어간 밭이 보아스의 밭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룻의 우연을 하나님의 필연이라 말씀합니다. 그 증거가 4절의 “마침”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웬 힌네”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그런데 보라”입니다. 이 의미를 알고 3절과 4절을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마침 보아스가 타지에 있다가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가 우연으로 알았던 일은 하나님 안에서는 필연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우연히 살아가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성도는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나고, 해야 될 일을 하고, 있어야 될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만날 사람, 해야 될 일, 있어야 할 곳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영적 민감성을 가지면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처음부터 영적인 민감성을 소유했었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결단했습니다. 결단 후 곧바로 실행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도 나오미는 룻이 이삭을 줍겠다고 할 때 “내 딸아 갈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후 보아스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것을 점점 확신하면서 깊은 행동을 독려합니다.
영적 민감성은 실행과 함께 갑니다. 오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여 보십시오. 민감하게 반응하십시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