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 단상 18/명필 이삼만]물처럼 바람처럼, 行雲流水體
완산完山이, 아니 호남湖南이 낳은 자랑스러운 조선 후기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7)을 아시거나 들어보았을 터. 마침 전주KBS갤러리에서 기획특별전이 10월 29일까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남원의 막역한 친구와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이 친구는 최근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입상까지 한 재야서예가이다. 녹록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이다. 말로만 들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 눌인 조광진(1772-1840)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필三筆 중의 한 분이다.
학문과 출사出仕 그리고 저술, 이 세 가지가 늦었다하여 스스로 지은 이름 이삼만李三晩으로 잘 알려진 창암. 모처럼 위대한 서예가의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병중病中에도 하루 1천자 이상을 쓰면서 “벼루 세 개를 먹으로 갈아 구멍을 내고 말겠다”는 맹세를 지키며 노력한 그의 집념에 그저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 추사체秋史體는 대부분 알겠지만, 그의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를 명확히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가 창암보다 완산完山이란 호를 더 즐겨 썼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말하자면, 완산이 낳은 아들이어서 말년을 보낸 곳도 현재 상관 편백숲 근처라 한다. 묘소와 함께 꼭 가볼 생각이다.
완주 구이에 있는 이삼만의 묘비명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제주로 귀양가면서 창암을 만나 글씨를 보며 폄훼한 것을 후회, 해배 후 서울로 올라가며 일부러 전주를 들렀다던가. 이미 고인이 된 창암에게 당시 “관솔불냄새가 난다. 시골에서 먹고 살기는 하겠다”며 무시한 것을 사과하는 뜻으로 묘비명을 써주었다던가. 천재는 뒤늦게라도 천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음이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을 하면 과연 그런 경지에 오르는 것일까. 구름이 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말 그대로 행운유수行雲流水. 어떤 붓이든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그리하여 마침내 유수체를 이룩하고 만 노력파 서예가(추사도 그런 점에선 동일하다). 고교시절, 전주천변의 고풍스런 정자의 편액 ‘한벽루寒碧樓’가 이삼만의 글씨라며 그분의 이름을 처음 들은 지, 40년이 더 흘러서야 그분의 여러 서예작품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분의 많은 작품 중, 나는 <산광수색山光水色>이라는 네 글자에 경악驚愕을 했다. 아니, 온몸에 소름까지 돋았다. 세상에나, ‘빛 색色’자를 보아라. 한 마리 뱀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날아오르는 듯하지 않은가. 게다가 머리부분 시커먼 먹물 속의 ‘하얀 점點’을 보아라. 영락없이 뱀의 눈이 아니던가. 종이에 먹칠이나 하는 나로선 오직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놀라웠다. 공즉시색의 색이련가? 여색女色의 색이련가? 나는 색色를 ‘빛 색’이 아닌 ‘섹스 색’이라는 부르는 악습이 있다. 그 말은 여자=뱀이란 말도 되련가? 성희롱으로 고발될 지도 모르겠지만, 하이 유머High Humor로 받아주시면 좋겠다. 결국 이 말을 쓰고 싶어 이 하찮은 단상을 쓰는 까닭이다. 흐흐. 선지식善知識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고 했거늘, 나는 고작해야 힘도 못쓰는 주제에 색色자를 보고 섹스를 머리 속에서 궁리하는구나. 한심할진저.
*추기: 갤러리 관계자에게 창암에 대하여 몇 마디 말을 붙였다. 덕분에 2만5000원짜리 도록을 공짜로 얻는 행운이 따를 줄이야. "관람객이 별로 없어요. 관심있는 분들이 이런 책을 봤야지요"하면서 선물을 안긴다. 대박이다. 전주 팔달로에 있는 '미술관 솔' 4층에 최근 창암서예관이 문을 열러, 창암의 글씨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솔미술관 관장의 혜안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 전라고 동문들은 혹시 전주에 들르시면 관람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