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온천 그리고 한하운의 금강산 온천(아침을 여는 창)
바야흐로 온천의 계절이다. 온천이라면 단연 백두산 온천을 첫손으로 꼽는다.
중국과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1992년 늦여름에 백두산을 찾았다.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장백폭포를 뒤로하고 산기슭에서 부터 하얀 수증기를 내품으면서 온천수가 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이 물이 계곡의 바윗돌들에 부딪쳐 하얀 물살이 되어 흐르기 때문에 백하(白河)라 부른다.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곳엔 적갈색 침전물이 물줄기를 따라 길게 깔려 있었고 한두 명의 노파가 최고 82도까지 오르는 노천(露天)수에 달걀을 삶아 팔고 있었다.
백두산 온천은 산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붕은 슬레이트로 덮여 있고, 그 안은 시멘트 블록 벽으로 만든, 미꾸라지 양식장 같은 원시적인 시설이었지만 피부병에 특효라는 유황성분 때문인지 온천탕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내가 2008년에 교우들과 어울려 금강산에 간 날이 하필이면 연평도가 불바다가 되는 날이었다. 하산 길에 잘 지어 놓은 그곳 온천장에 들렸다.
수온이 37-44℃인 이 온천은 '라돈천'으로 신경통, 심장병, 고혈압, 관절염, 피부병 등에 효력이 있다고 해서 신라 때부터 왕족과 관리들이 사용한 온천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곳이 저 유명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나병치료를 위해 몸을 담갔다는 온정리 온천장이다.
사람의 운명을 어찌 알랴. 한하운이 이리농림학교 5학년 졸업반이던 1936년 봄, 경성제대 부속병원(지금의 서울대 병원)은 그에게 나병환자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 당시로서는 부러울 것이 없는 그에게 나병이라는 선고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만큼이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후에 당시의 심경을 자작시(詩) 무지개에서 ‘만사는 무지개가 사라지듯이 아름다운 공허였다.’고 읊었다.
그는 휴학계를 내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신계사 근처의 여관에 방을 하나 얻고 날마다 온정리에 다니며 온천욕을 했다.
18세 미소년이었던 하운에게는 R이라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하운이 한마디 말도 없이 잠적하자 여름방학 때 수소문 끝에 알아낸 금강산 신계사로 찾아갔다.
며칠 후 하운은 집선봉 기슭 우거진 숲가를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자신이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나병환자가 되었으니, 잊어달라고 고백을 했다.
R은 비감에 젖은 하운의 말을 눈물로 들으면서 꽃가지의 잎사귀를 물에 띄우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를 그렇게 생각하다니 너무 야속하시네요.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로 언약한 이상 하운 씨가 불운에 처했다고 버리고 가는 그런 값싼 여자가 아닙니다.” 라고 흐느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하운은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성계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병의 재발로 급히 귀국하여 다시 금강산온천에 들어가 몇 달 정양한 뒤 이번에는 중국에 가 북경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북경대학에 입학을 하여 비로소 시(詩)에 눈을 떴으나 하운의 중국생활은 학업과 투병이 아니라 술과 문학의 날이었다.
그는 다시 피폐해진 심신으로 고국에 돌아왔고 1944년 함경남도 도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지만 그간에 심한 나병을 앓으면서 초인적인 투병을 하고 있었다. 1945년 병이 악화되어 퇴직을 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된 바 있고, 1948년 하운은 공산치하를 피하여 단독 월남하였다.
연인 R은 하운의 남동생이 조직한 김일성 암살 비밀결사의 일원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음으로 6‧25발발 이전에 처형되었을 것이라고 하운은 말했다.‘
그는 월남하여 문둥병환자로서의 유랑생활을 하면서 ‘보리피리’를 썼고 1949년 신천지‘ 4월호에 시 ’전라도 가는 길-소록도로 가는 길’ 외 12편이 발표되었다.
‘황토길’ 은 전남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걸어가는 기구한 운명의 여정을 읊은 것이다.
나병에 걸려 걸식과 멸시 속에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당시에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고 세상을 뒤 흔드는 반향을 보였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린때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癏)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리리.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일러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 쩔름거리며 가는 길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출처/i남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