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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자료지 정치자료아님 ㅅㅂ...
만약 문제시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이동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저는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게시물을 만든 게 아니고 단순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이 자료를 만든 것입니다.
이 자료를 만들었다고 좌파니 우파니 뭐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이정희에 관한 자료도 만들테니 그 때 이새끼가 정치적 의도가 있었나 비교하면서 심판을 내리면 되겠습니다.
사진 협조에 항상 기꺼이 응해준 투명해파리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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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린시절
<이명박의 동지상고 졸업사진,가카는 역시 눈이 얇다>
이명박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유는 당연히 시발 일제강점기 때 가족들이 안전을 위하여 떠났으며 광복하자마자 귀국하여 포항으로 이사를 오심.
근데 가카는 원래 이름이 호적상으로는 이상정(상서롭게 다스리다)였는데 이명박(명료하게 바꾸다)으로 고쳤다고 함.
한자 뜻풀이가 다 뭔가 정치랑 관계된 것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인가? 여튼 이름은 본래 이름이 더 멋있는듯 ㅇㅋ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 때의 가카의 나이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3학년이었다.
소련새끼들의 비밀문서를 공개로 6.25전쟁은 머리가 붓처럼 생긴 김일성 새끼의 남침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현재 없다.남침 북침 헤깔리던데 남한을 침범하면 남침,북한을 침범하면 북침이기이라고 기억하면 쉽다.>
[물론 북침에 대한 가설도 몇 개 있다. 이승만이 전쟁해라 전쟁해라~하고 도발시켜서 전쟁을 하게 된 가설도 있으며,이승만이 북진통일론을 공공연하게 떠든 것도 사실이고,공공연하게 미국에게 군사를 요청 한 것도 팩트다.
또한 CIA 극비문서가 56년만인 2010년경에 공개 되었는데 북한은 소련의 꼬붕에 불과해서 전쟁이 불가하다는 극비문서가 전쟁 6일전에 발간하기도 하였는데,당연히 북한 독자적으로는 전쟁이 불가능하니까 소련하고 중국이랑 손잡고 공격을 하였으므로 극비문서 내용은 사실 별로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근데 스탈린은 미국이랑 싸워서 좋을 게 없어서 걍 시큰둥하게 있는데 무엇보다 머리가 붓처럼 생긴 김일성씹새끼가 스탈린한테 50여차례나 전쟁하자고 부추겨서 미국이랑 싸우기 싫었던 스탈린이 마침내 승인하게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여튼 남침과 북침은 개인적으로 70:30정도이고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간의 전쟁인 것 같기도 하다.아니면 말고 ㅅㅂ]
† 위에건 한국전쟁에 대한 얘기니까 안 읽어도 돼.
<노점의 역사는 아마 먼 옛날 한복 입을 때 부터일 것이다.
이명박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생 때도 노점을 하며 살림에 보탬을 하고 학교를 다녔다.>
터를 잡고 살고 있는데,부카니스탄 씹새끼들이 중국하고 소련하고 손을 한 데 맞잡고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개객끼)
한국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명박은 미군의 폭격으로 바로 앞에서 누나와 동생을 잃게 된다.
그 후 남은 형제 남매 5명과 엄마 아빠와 단칸방에서 살며 먹을게 부족해서 주로 술찌꺼기를 먹고 자라난다.
그래서 학교에서 술냄새난다고 놀림 당하던 서러운 시절이 있던 이명박.
가난해서 이미 초등학생 때 부터<이 땐 국민학굔가?> 성냥,밀가루,떡을 팔러 다니셨다.
<이명박의 모교인 동지고.이명박이 다닐 때는 동지상업고등하교였으나 이후에 84년 3월 동지 종합고등학교로,89년에 동지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햇다.>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은 커녕 고등학교 진학도 꿈도 못 꾸고 있는데,당시 포항중학교 3학년 담임이 전액 무료는 아니지만 등록금이 무료인 동지상고에 진학하라고 설득 해서 입학함.
원래는 다니다가 돈 낼 때 쯤 그만두려고 했는데 역시 가카는 헝그리 정신으로 공부를 열심히하셔서 3년내내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심.근데 역시 돈이 없어서 대학을 진학 못하고 있다가 고등학교 내내 공부 잘한 게 아까워서 1년동안 노동을 하며 돈을 벌로 그 돈으로 독학을 해서(일종의 재수인 셈)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하심.
2. 고려대학교 시절
<지금도 병맛이 고려대 광고.내가 보기엔 하나 빼고 다 좋은게 아니라 고려대 경영 빼고 서울대에 다 딸리는듯.물론 최근들어 서울대 교육학과나 최하위보다 연고대 경영을 택하는 경우도 늘었지만.여하튼 이런생각 하는 거 보면 나는 뼛속까지 훌린가보다ㅅㅂ>
아침에 청소부를 하면서 대학교 학업을 이어가는 찰나에
역시 고려대 하면 운동권이 유명한데 가카께서도 역시 운동권 리더로 활동하였음.겸임으로 상과대학 학생회장도 하시구.
그런데,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 독재시기 였는데,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을 박정희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바람에 학생들이 데모 시위를 한창 해댔는데 이 시기에 불쌍하게도 가카가 총학생회장이 아니고 상과대학 회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 대신 직무대행으로 한일협정 시위를 반대하다가 잡히진 않았지만 수배가 되고 만다.
<안 읽어도 되긴 하는 한일협정조약. 일본새끼들과 몇가지 합의를 하기로 하고 맺은 조약인데,회담은 51년쯤에 1차회담이 시작되어 6차 회담까지 이어나가다가 마침내 65년에 조약을 맺음.근데 아직까지도 어정쩡한 계약으로 논란이 계속 되고 있음. 합의 내용은청구권, 경제협력,어업문제,문화재문제,교포문제 등이 있었는데 경제협력 부문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한 조약이라고 평했다.하지만 일본 수출상품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나중에 수정을 하게 되며,어업문제는 잘 모르겠는데 손해를 본 거 같고,문화재도 대체로 손해,교포문제도 좀 병맛으로 되었고,청구권 문제란 일본새끼들의 전쟁 한 거에 대한 한국에 대한 배상의 문제였는데,한국은 8억달러를 요구하고 일본새끼들은 7000만달라로 퉁치자고 하니 서로 환장하고 있는데,김종필 당시 특사와 일본 마사요시 외상과 비밀협약의 내용을 근거하에 3억달러+2억원을 경제협력 방식으로 20년 상환으로 제공하며 + 1억원을 민간상업차관으로 지급하기로 합의를 봄.여기에 대해 할 말 있으면 똑똑한 훌리새끼들이 대신 댓글 좀 덧 붙여 주삼.>
도망다니다가 계엄령이 선포되고 간신히 도피하는 와중에 놀랍게도 신문에 내 얼굴이 현상수배되자 자수를 하게 된다.
가카는 징역 3년형을 받고 6개월간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된다.
이미 기관지확장증을 받아서 군대에 입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면제로 나오게 되었지만, 전과자가 되어 취직을 못하고 있던 가카.
나름 나라를 위해 학생 운동을 했는데 취직을 못해 다시 먹고 살길이 걱정이 되자 가카는 용감하게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병신같은 나라가 먹고 살 길을 끊어 놓았다고 비판,항의 하는 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 무모하지만 용감한 젊은이에게 인상을 깊게 받은 대통령 비서진이 "젊은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려는 것을 막는 일이 발생하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좀 간지나는 말을 남기며 그를 현대건설에 취직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현대건설은 지금도 5대 토목기업이며,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기업이기도 하다.>
3.현대건설 재직 시절
25세 나이인 1965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여하튼 전과자인 자신을 구제해 준 기업과 국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졸라게 열심히 일하여서 2년만에 대리를 달았으며(원래 평사원에서 대리를 달려면 적어도 4년은 걸린다.)그 2년 후인 29살에 이사를 달게 되는 약진을 보인다.계속된 초고속 승진에 결국 입사한 지 12년만인 37살인 1977년에 현대건설의 사장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불과 30대중반에 사장이 된 이명박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며 심지어는 그의 성공 스토리가 KBS-2TV에서 드라마로 제작이 될 절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그가 현대건설 재직시절에 공사를 맡기로 한 여러 구조물들은 실로 엄청나고 무모한 것들이 많았는데 당시 세번째로 긴 말레이시아의 다리(피낭대교)건설,이라크의 화력발전소 등이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무모했던 공사수주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주했던 "주베일 항만공사"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주베일시의 위성사진.이 곳을 공업단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심10m의 바다를 자그마치 길이 8km,폭 2km의 면적을 메워야하는 세계적으로도 최대규모의 시공사업이었다.>
주베일항만공사를 위해서는 수심이 10m가 되는 바다를 가로세로 8km,2km의 길이로 메워야만 했는데,사우디는 이러한 엄청난 작업은 자신들이 직접 하는 것 보다는,타국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을 해서 입찰을 공모한다.
이 공사에 드는 비용은 9억 3000만 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3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공사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세계에서도 최대규모의 공사(콘크리트 소요량만 5톤트럭 20만대분의 양이 필요했다.)였는데 이를 현대건설이 일단 일을 따 놓았다.
그런데,주베일항의 바다를 콘크리트로 메우려면 당연히 사우디 현지에서 콘크리트를 제작해서 바로 메워버리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현지에서 만들고 메우고 치우면 훨씬 일이 간소화 되고 운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현대건설의 회장이 정주영회장이 "국내에서 직접 콘크리트를 만들어서 옮기면 침체된 한국경제가 활성화 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며 국내에서 직접 콘크리트를 제작해서 배로 옮기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물론 취지는 좋았지만,배로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물을 옮기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의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걸프만을 거쳐 1만2천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바지선으로 운반해야 했는데,암초나 태풍의 위험으로 침몰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전문가,교수들이 거세게 반대를 했으며,다른국가들도 조소를 띄며 비웃었다.
운반도 운반이거니와,단 한개의 구조물이라도 침몰하는 날에는 무조건 손해를 보는 계약 형식이었으며,다시 옮기고 그러면서 딜레이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제대로 된 공기에 일을 못 마치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하기 때문이엇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의 반대에 무릎쓰고 정주영회장은 결국 한국에서 콘크리트를 제작해서 배로 보내기로 하고 계획대로 일을 밀어붙인다.
<주베일만으로 이동하는 철골구조물.이 구조물의 높이는 375m나 된다.>
결과는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10층빌딩에 달하는 위의 철골 구조물 89개를 열아홉차례에 나누어서 성공적으로 이동시켰는데 단 한척도 침몰하지 않았으며,오히려 예상보다 빠른 공기에 항만공사를 끝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수주에 참여했다 빠졌던 다른나라들이 경악을 하였으며,이 일로 인하여 현대건설에 막대한 이익을 실현해주는 동시에 우리나라 토목회사들의 신뢰도가 급상승 하여 향후 쿠웨이트 슈아이바항 확장공사,두바이발전소 공사,중동일대 대형공사를 맡을 수 있는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후에 이명박은 1988년에 마침내 평사원출신의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으며,1992년에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퍼온거라 확실하진 않은데, 오른쪽이 민주자유당의 이명박.>
4.정계 입문 시절
92년에 민자당 후보로 이명박은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정주영회장과 그 일가랑 이전까지는 같은 기업인으로 친했지만,서로 다른 당으로(정주영회장은 통일국민당을 독자적으로 창당한다)입문하면서 사이가 나빠진다.물론 향후에 정몽준 의원이 이명박이 있는 한나라당에 입당하게 되면서 사실상 현대가와의 화해가 됬다고 평하는 편이 되지만.
95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지만 패하며 그 후에 노무현을 물리치고 15대 국회의원이 된다.근데 선거비용을 7억원을 신고해야하는데 이를 누락하고 7천만원만 신고한 사실을 김유찬이 폭로하자 이명박과 그의 친구들은 김유찬을 국외로 도피시키고 난리 부르스를 떤다.이러한 선거비용 신고 누락 행위로 이명박은 재판을 받다가 걍 자진 사퇴를 하여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만다.
이명박이 사퇴하자 그 자리를 노무현이 보권선거로 쏙 들어가게 된다.
물론 이 누락행위는 재판에서 몇년 끌다가 끝내 유죄판결을 받아 이명박은 결국 15대 재선의원 때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어릴 적에 가난에 시달려서 돈아끼는 마음이 강했는지 모르겟지만 여튼 선거비용을 적게 내려다가 의원직을 상실당해 슬픈 이명박>
5.서울시장 시절
의원직을 99년 4월에 상실을 당했는데 2000년도에 광복절 특사로 복권하면서 2002년에 서울시장으로 당선이 되면서 다시한번 이명박은 인생의 전환점을 얻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서울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게 한 계기이도 하였는데 청계천 복원사업의 득과 실은 조사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득
1.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의 휴식공간을 제공했다는 평
2.도심의 흉물이었던 청계고가를 없애버림.
3.당연히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아 가로수길,산책로,맑은물로 관광명소가 된 점.
4.인근 생태계 및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
5.복원으로 인한 인근 건물의 열섬현상이 차단되어서 한여름에 3~4도 가량 기온이 낮아져 더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1.흉물이었던 청계고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현대건설 재직시절에 건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상류를 사용하지 않고 상수도물을 사용한 것은 결국에 애시당초 친환경적인 목표로 건설하려는 취지에서 멀어져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원형 하천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한계.물론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 논란은 줄어들고 있지만 본래 취지에 벗어난 한계점을 갖고 있다.
3.2번과 비슷한데,주변의 환경을 고려를 안하고 실행시켜서 문화재나 환경파괴를 하였다는 지적이 있다.
4.건설지점은 원래 노점상이었는데 건설을 하면서 동대문 운동장으로 노점상을 사실상 강제로 이동 시켰다.
5.연간 유지비가 70억원 정도 드는데 이는 애초 책정한 금액보다 많은 액수이다.부실공사의 문제점도 있다.
<서울에 오면 꼭 가봐야하는 곳 중 한 곳이 된 청계천.서울의 이미지 향상에 일조하였으나,본래 취지인 친환경적인 건설에서 벗어났으며,이명박 재임기간에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서 급하게 진행되어 부실공사의 의혹도 제기 되는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명박은 또한 서울시 대중교통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였다.
-버스의 번호를 지역에 따라서 구분하였다.
-버스색깔 버스의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가스버스,휘발류 버스 등등)
-요금은 거리에 비례해서 바뀌게 변경했다.(이전에는 환승횟수)
-준공영제를 도입하여 매번 적자가 발생하는 버스의 요금을 지원하였다.
-중앙버스차로제도를 도입하였다.이는 버스만 다니게 하는 노선(고속도로는 중앙,일반도로는 가변쪽)을 구축하여 버스의 속도를 효과적으로 높였다.또한 버스 이용객도 증가하였다.
물론 단점으로는 서울시장취임 2주년을 기념하여 급하게 도입하여 초반에 혼선을 빚었으며,준공영제로 인해 매년 수천억의 예산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명박은 취임 2주년에 서울버스와 도로의 개편으로 혼잡한 서울 대중교통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외에 2004년에 숭례문을 일반인에게 전격 개방하기로 하고 2006년에 홍예문까지 개방하여 공약을 지켰다.
6.이명박과 BBK는 무엇인가?
BBK 주가조작사건은 존나 복잡한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일단 설립부터 말하면 BBK란 김경준이 세운 투자자문회사인데,동료였던 오영종(미국이름 BOB),이보라(역시 미국이름이 B이니셜인듯),김경준(K)의 이니셜을 따서 설립했다.
2.근데 자본금이 5천만원에 불과한 이 회사를 다른 회사에서 투자할 리가 없는 찰나에,E 캐피털이라는 회사에서 BBK회사의 지분 99%인 30억원어치의 주식 60만주를 사들인다.E 캐피털 회사는 김경준의 동료인 홍종국이 재직하던 회사이다.
3.30억은 금감원에서 자문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규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충족되자 BBK는 드디어 업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4.1년후인 2000년에 BBK와 별개로 이명박과 김경준은 LKE 뱅크를 설립한다.(50:50으로 설립함)
5.이명박은 또 E뱅크 증권중개를 신청하고 이 회사에 김경준을 사장으로 영입한다.
6.이명박은 또 EBK 증권중개사를 설립한다.이명박과 김경준은 이 회사의 공동대표로 활동한다.
자,BBK,E 캐피털,LKE 뱅크,E뱅크 증권중개사,EBK 증권중개사 등 5개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어쨋든간에 이명박과 김경준이 이 회사 5개에 서로 얽히고 섥힌 것 하나는 알 수 있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는데,
1.2001년 4월에 EBK가 망하게 된다.이는 별로 중요하진 않다.
2.이번엔 좀 중요한데,금감원은 BBK인가를 취소하게 되는데 이유는,인력도 부족했거니 김경준이 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회사자금 유용은 김경준이 BBK에 설립자금 30억을 LKE에 빼서 넣어버린 일을 말하는 것이다.
3.김경준은 이 시기에 자신의 BBK 회사가(사실 옵셔널 벤처스회사 이야기인데 어짜피 BBK가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합병 했으므로 BBK나 다름없다.하지만 이해를 돕기 쉽게 하기 위해서 BBK라고 표현했다.)대단한 가치가 있는 회사이며 외국인 투자자가 몰린다고 아부리를 털어서 개미투자들이나 기업을 꾀어서 주가를 조작하고 차액을 횡령 한다.
4.김경준은 꼼수가 들통나자 2001년 12월 위조여권을 이용하여 해외로 튀어버린다.
5.검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김경준은 "이명박이 실소유주다 씹새들아"라며 명박이에게 덤탱이를 씌우려고 한다.
6.김경준과 얽히고 섥혔지만 BBK랑 관계가 없어 어이가 없던 명박이는 "만약 이게 사실이면 내가 사퇴하겠다"고 맞불을 놓으며 검찰수사에 협조한다.
7.김경준이 제시한 종이나 문서가 위조가 된 것으로 판명되어서 이명박은 무혐의로 풀려난다.
8.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난 이후에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이 더 붉어져서 대통합민주당과 민주신당등은 "대통령 후보 주가조작 사실을 철저히 규명,조사 해야한다"고 주장하여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이 시행된다.
9.2008년에 특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한 모든 의혹에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를 처분하였다.하지만 이명박에 대한 조사가 설렁탕집에서 하는 등 부실조사의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10.한편 김경준의 누나는 주가조작과 문서조작의 혐의로 존나게 쪼이고 있는상황에서 법원에 이의를 신청했는데,"동생 김경준의 불법행위를 덮어주면 수사에 협조하겠다"라는 병신같은 말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 되었다.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김의 발언은 처벌은 받되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이는 일명"플리바게닝(유죄인정 형량협상)"
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11.정계에서 이명박을 BBK로 존나 깔 동안 한겨례신문 역시 이명박을 존나 의혹을 제기했는데,이에 이명박 측이 명예홰손 혐의로 고소를 하자,3년 후인 2010년에 한겨례신문은 BBK 혐의 보도에 대한 허위 사실을 사과하는 사과문을 기재하였다.
12.후에 노무현 측근에 의해서 노무현은 이명박과 BBK가 관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13.여하튼 BBK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주가조작 혐의로(일명 주작) 송환되는 김경준 전 BBK 대표.>
7.이명박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의 한 일.
사실은 이 게시물을 작성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거다.
수험기간동안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이명박이 뭘 했으며 뭘 잘못했는지가 궁금해서 이것을 쓴건데 여러가지를 조사 해 보았다.
<1>이명박 정부의 기본 방향
-이명박 정부의 슬로건은 747 성장이었는데 이는 7%성장,4만불의 소득,세계 7대 선진국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목표엿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햇볕정책에 반대노선을 펼쳤다.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일은 잊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하였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슬러건에는 중소기업 육성도 포함되어 있엇다.
크게 이 4가지로 정책을 추진 해 나간 명박이는 다음과 같은 성과와 손해를 거두었는데 다음과 같다
<2>득
-이명박은 외교정책에 의한 이득을 중요시 했었는데(+녹생성장 미래 지향적 에너지 발전의 슬로건) 아랍에미리트에 직접 방문을 해서 UAE 200억달러 규모의 원전 수주를 성공한다.
-2011년 3월에 UAE와 석유,가스 분야 협력 개발 양해각서를 통해 아부다디 유전 개발 참여권을 획득한다.아부다디는 석유 매장량 1000억배럴에 해당하는 세계 6위의 핵심 유전지역으로써 우리는 이 양해각서 채결로인해 최소 12억배럴(약 132조원)의 석유 매장량을 확보했다
-2009년 9월 제3차 G20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이 만장일치로 11월 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으며,OECD에서 개초된 DAC 24번째 회원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었다.DAC는 세계 원조의 90%이상을 제공하는 선진국의 모임을 의미하는데 한국은 '원조를 받던 국가가 이제는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됬다'는 평을 받아 여러나라에게 성공사례로 꼽히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후진타오 주석과 이명박의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한-중관계를 긴밀히 하였다는 평을 한다.중국은 한국은 사이가 별로 안 좋았기 때문이다.
-2010년 무역수지는 417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이것은 2년연속 4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낸 사상 최대치로 기록되었다.
-2010년 경제성장률도 7%에는 못 미쳤지만 6.1%를 기록하였다.
-기업의 실적이 증가하였는데,157개사의 순이익이 2분기 19조원,3분기 22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GDP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4.5%에서 0.2%로 전환시켰는데,이는 OECD국가 중에 가장 빠른 회복세였다.
-2011년 1월 4일에 종합주가지수가 2085를 기록하여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2009년 1월 8일에 "비상경제대책회의"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각 부처에 다뤄야 할 안건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경제위기에 상당히 공헌을 하였다.
-2009년 9월 17일 ,소액서민금융제단의 "미소금융사업"을 설치해 서민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을 실시하엿다.
-모바일 인터넷 강국을 목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까지 총 1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하여 모바일 컨텐츠를 활성화 시키고 있다.
-저탄소 녹색정책의 일환으로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산림의 탄소흡수 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있으며,산림분야 뉴딜사업을 통해 2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있다.이들의 일환의 노력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박람회 개최,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실천등이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저탄소 녹생성장정책은 대내외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독일 녹색당 대표는 대한민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장마,태풍의 우려가 줄었으며,홍수의 수위가 낙동강 구미보 상류지역에서 수심이 최고 1.7M 낮아진 것으로 조사되었다.또한 국토해양부에서 조사한 수질조사결과 4대강 핵심부의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으로 쉽게말하면 오염수치 조사)가 지난해에 비해 2.8배 개선되었다.
낙동강 둔치의 온갖 쓰레기가 뒤덮인 대 면적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되었으며,낙동강변 조선시대 제방과 문화재 발굴도 수확이었다.
<3>실
이건 조사해본 결과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 중 주요한 사항만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취임직후 전략적으로 과학기술부를 폐지시켰는데 애초 과학기술 577공약과 안 맞고 부작용이 따라서 2010년에 사실상 과학기술부를 부활시켰다.
-보수적인 북한에 대한 정책으로 인한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으며,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 해킹사건과 2011년 월 15일 정전사태에 대해서 "북한이 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나라당 지도부들의 주장으로 "북한소행설"로 논란을 일으켰다.그 외에 농협해킹,리니지 해킹 사건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다.
-애초에 일본과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잘 지낼 요량으로 있었지만,국사교과서논란과 독도문제로 한일관계는 더 악화되었다.(물론 교과서 독도관련해서 일본 개객끼)
-2010년동안 정부에 제출한 법안이 346건이나 되지만 야당과 사이가 안 좋아 불일치가 자주 일어나 처리된 법안은 25건에 불가하였다.
-행정구역 통합 및 개편의 목적으로 '5+2 광역 경제권 전략'은 본래 목적과 달리 행정구역만 개편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정책결정 투명도,공무원 의사 결정 편파성,예산의 증가부문 모두 타격을 입었다.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바꾸었다가 다시 여성가족부로 회기하는 등 혼선을 빚엇다.
-불법비리가 증가 하였다.공무원 행동강량 위반건수가 764명에서 1436명으로 대폭 증가하였으며,뇌물수수와 공금횡령으로 파면당한 공무원의 숫자가 2960명에 달하였다.고위층과 대통령의 부동산투기등에 불구하고 일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불신감이 증가했다.
-2010년 정부의 채무가 400조원을 돌파하였고,이는 OECD국가들에 비하면 안정적인 수준이나,증가하는 폭을 막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에서 논란이 되었다.
-2009년 실업자수가 사상 처음으로 90만명을 돌파하엿다.특히 청년 실업자수가 8%를 기록하는 등 실업난이 극심하였다.
-국가 경쟁력을 위한 공기업 매각을 통해 선진화를 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려는 의도가 있는데 이는 일방적인 임금삭감,정원 축소,비정규직의 피해 우려를 모으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 의료보험 도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의료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하는데,이는 의료비 상승의 부작용이 있어서 사실상 통과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기업도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하는 금산분리 억제정책을 추진하는데,규제를 풀면 금융서비스의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평이다.
-수도권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투기 과열지구를 헤제 등을 추진하는데 이는 지방권 죽이기라는 반발을 빗고 있다.
-수도권 그린벨트를 헤제하여 서민용 저렴한 집을 제공하는 '보금자리 주택'을 추진하는데,이는 지방에 대한 배려부족,거주주민의 불편함 호소 등과 함께 전셋값이 날로 치솟고 있어서 사실상 정부가 손을 놓은 상태이다.
-부자감세 논란인데 이건 상식선에서 당연히 논란이 일어나겠지?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권은 또한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여 영어 하나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를 가졌는데,이는 사교육을 부추기고 과연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훌리들이 환장할만한 정책으로 수능 등급제 폐지가 있겠다.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종교 차별논란을 일으키며 불교계가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를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언론탄압의 여러가지 의혹이 있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며 IT산업에 부정적인 견해를 취임 초기부터 드러냈다.그 결과IT경쟁력이 3위에서 16위로 추락하였다.
등등 너무 많은데 지쳐서 이정도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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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 요약
인간 이명박은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였으나
정치계의 이명박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이미지를 오히려 후퇴시켰고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조성하였다.
근데 내가 보기엔 정치는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해서 걍 누가 해도 욕먹는다.
P.S
누가 이글 읽고 나쁘지 않으면 타 카페에 스크랩좀 해 주셈.쭉빵이건 알싸건 이종이건 도탁이든 좋으니까..ㅠㅠ
회원가입이 안 되어 있어서 나는 스크랩을 못함 ㅅㅂ
첫댓글 전현직 정치인 언급만으로도. .
이동시킬까?근데 이동이 안되네 ㅅㅂ 살려줘 이틀동안 자료모으고 쓴 거 지울수도 없고 집에 워드프로세서가 없어서 사진도 이동안되고 ㅅㅄㅂ
앙망해봐 운영진에게 ㄱㄱ
ㅇㅇㅇㅇㅇ
가카가 운동권출신이라니 ㄷㄷㄷㄷ
삭제된 댓글 입니다.
4대강은 왜 욕함?
4대강은 왜 욕함..ㅋㅋㅋㅋㅋㅋ 궁금하다 이젠
도대체 4대강이 뭐 얼마나 잘못된거냐 걍 이명박까고 싶은애들은 4대강 운운하는데 뭐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근거좀 가져와줄래?
운영자님 만약 이 게시글이 문제가 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옮겨주세요게시글이 옮겨지지 않더라고요.그리고 저는 훌리건 천국을 홍보하려는 기반으로 여러가지 양질의 게시물을 만들고 있으며 계속 이어나갈 것이며 타 카페에 퍼갈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제가 워드프로세서가 안 깔려있어서 글씨 크기와 사진이 복사가 안되서 다시 올리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요청하는 것입니다.공지사항을 왼지 어긴 거 같지만 선처 해 주시면 앞으로 훌천을 위하여 열심히 활동을 하겠습니다.또한 이 글은 좌니 우니 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게 아니라 한 인물의 일생에 관한 내용이므로 선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크랩 기능 모르냐
근데 너가 만든거임? 수고했음 잘봄요
남자라면 한번쯤......꿈꿔볼만한인생
가카쨔응
훌리들은 신화는 없다 꼭 보시길
오 잘볼게 ㅋㅋㅋ 계속 만들어줘
짤방까지 만들었네 ㅋㅋ해파리n이라니....해파리n은 내꺼니까 너는 해파리nn으로해 임마 ㅋㅋ
굳 노무현편 좀 만들어줘라. 신공공관리론의 대가 이명박 짜응
아니 씨발 일을 얼마나잘하면 평사원이 12년만에 사장이될까 진짜 대단하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신화는 없다에도 나옴ㅋ
와~ 위인전 한 권 읽은듯함 ㄷㄷㄷ 내용 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