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스티벌'을 다녀온것인가? : 안산 밸리와 펜타포트를 다녀와서 글라스톤배리를 생각하다.
1.
2015년 2월초,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1차 라인업을 발표한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글래스톤배리도 금요일 헤드라이너를 발표한다. Foo Fighters가 그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안산에도 오는데 글래스톤배리에도 오는구나. 그 후 4개월이 지나 글래스톤배리가 열리기 일주일 전에 Dave Grohl의 부상에 의해 Foo Fighters의 공연이 취소됐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안산공연도 취소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글들이 올라왔다. 여기서 질문하나, 안산 밸리에 Foo Figthers가 취소됐다면 취소되기 전보다 관객수는 얼마나 줄었을까?
2.
글래스톤배리는 Foo Fighters가 취소되고 얼마 되지 않아 서브헤드였던 Florence + The Machine이 금요일 헤드라이너에 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영국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들었다. 나의 첫 글래스톤배리가 이렇게 망하는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Coldplay가 온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다가 취소되고, 토요일은 논란의 Kanye West가 헤드라이너. 마지막은 Beatles, Rolling Stones와 함께 전설임에는 분명하지만 잘 알지도 그리 끌리지 않는 The Who였다.
하지만 이는 괜한 걱정에 불과했다. 그건 Florence + The Machine이 글래스톤배리에 헤드에 서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걸 공연으로 증명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고,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여 은혜를 내린 덕분도 아니었다. 글래스톤배리는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이다. 매해 열릴 때마다 최고를 자랑하는 글래스톤배리 라인업도 글래스톤배리가 주는 즐거움의 일부 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었다.
Kanye West가 토요일 헤드라이너라는 것이 밝혀지자 팬들의 반응은 거의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노는 Kanye West를 취소하길 바라는 인터넷 서명운동으로 표출됐다. 그러자 Emily Eavis는 가디언지에 글을 기고하기에 이른다. 그 기고문 중에 한 문장을 따오면 이렇다. ‘there are hundreds of things to see and do.’ 글래스톤배리에는 보고 들을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글래스톤배리에 가보면 가장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부지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피라미드 스테이지까지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린다.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 더 파크 스테이지까지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피라미드와 아더 스테이지까지는 10분 정도를 걸어가야한다. 그 엄청난 부지에 다양한 컨셉을 가진 무대들이 세워진다. 무대들만 세워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부스의 종류도 음식과 머천다이즈 판매로 끝나지 않는다. 그린피스가 주관하는 부스에서는 아침에 요가선생과 함께 요가도 하고, 힐링 필드에서는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관객에게 문을 여는 수요일부터 모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월요일까지 세워지는 마을이요 공동체(Community)다. 그래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5박6일간, 그 기간에만 생겼다가 사라질 신기루 같은 이 마을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온전히 글래스톤배리만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다가 오게 되는 것이다. 듣는 것, 보는 것, 먹는 것들이 펼친 수많은 갈래들이 페스티벌 기간 내내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쳐서, 그 사이에서 ‘유쾌하게 길을 잃다’가 보면 어느덧 집에 돌아가야 할 버스에 몸을 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운은 꽤 오래남는다.
물론 글래스톤배리가 주는 이러한 다양성과는 별개로, 누구나 알듯이 글래스톤배리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45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록의 전설들이 지나간 장소이자, 누구나 거기 있지 않음을 한탄해 마다하지 않는 특별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Coldplay의 Chris Martin은 2012년 라이브DVD 블루레이에서 밝히듯이 글래스톤배리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모두들 그 곳에 가기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티켓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좋은 아티스트가 온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뿐더러 과연 내년에는 어떤 특별한 순간이 나에게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티켓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3.
국내 록 팬들에게 펜타포트와 안산 밸리 록페스티벌(그 전신인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도)에 간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해외에 나가서야 볼 수 있었던 아티스트들을 대한민국 땅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흐름에 정점을 찍은 일은 아마 Radiohead가 헤드라이너로 섰던 2012년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이었을 것이다. 국내의 거의 모든 록 팬들이 내한을 원하는 0순위의 밴드의 첫 내한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번년도에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였던 Foo Fighters도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글라스토가 첫 해외 록페는 아니었지만, 특히 이번에 선 글라스토 후 안산을 해보니 이번 안산의 단점이 확연히 보였다. 길기만한 입장에 비해 좁은 부지에 ‘달랑’ 무대 세 개 와 부스 몇 개 세워놓은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홍보부스가 반에 살짝 못 미치는 상황에서 부스들은 그저 공연 쉬는 타임에 에너지원을 공급받는 역할밖에 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 뿐. 과연 이것이 페스티벌일까? 야외에서 보는 내한공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특히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된 안전요원들의 강압적인 태도가 관객폭행이라는, 페스티벌에 있어서도 안 되는 일로 공론화가 됐었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페스티벌이 들어가는 것이 이름에 불과하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다.
이에 반해 펜타포트는 이번 안산 밸리가 제공하지 못한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제공했다. 일요일 하루밖에 가지 않았지만, 앞선 이틀을 관객들이 어떻게 보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몬스터, 카스, 지포와 같은 홍보부스가 있었지만 페스티벌과 자연스레 어울려있었다. 메인스테이지는 아니지만 지포 스테이지에서 펼쳐진 공연들은 동시간에 펼쳐진 메인스테이지 공연을 잊게 될 만큼 충분히 즐거웠다. 주차장 셔틀과 꽃가마 서비스 등 관객을 배려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펜타포트에게 부족한 것은 라인업뿐인 것처럼 보였다.
4.
펜타포트와 안산밸리를 가르게 된 것. 이번에 글라스토를 갔다 오면서 느낀 것. 페스티벌을 페스티벌답게 만드는 그 무엇. 두 가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해방감’을 느껴야한다는 것이다. 3일간 고생을 하며 텐트를 치고 땡볕이나 비를 맞으며 공연을 보는 이유. 그건 록페스티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이다. 나에게 펜타포트에는 있었고 안산 밸리에는 없었던 것을 꼽아보라면 깃발을 꼽고 싶다. 깃발이 없다고 페스티벌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개성과 생각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로서 깃발을 생각한다면, 깃발을 든다는 건 또 다른 해방감을 선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깃발 유무만 봐도 분위기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안산에서 발생한 관객구타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이유도 이 해방감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유쾌한 길 잃음’에 있다. 글라스토의 어마어마한 크기 부지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건 물리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그 위에 다양한 종류의 무대와 부스들이 세워질 때라야만 그 조건을 제대로 활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글라스토에서는 매순간 매순간마다 수많은 갈림길들이 생겨난다. 이 시간에는 이 공연을 봐야지 하면서도 신기한 부스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고, 지나가다가 들리는 뜻밖의 밴드의 곡이 너무 좋아서 정신을 놓고 듣게 되고, 이 밴드는 꼭 앞에서 봐야지 하면서도 뒤에서 맥주를 홀짝이다가 음악만 들리면 되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다시 맥주를 사서 나무 그늘 밑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 공연이 재미가 없으면 그냥 이게 더 재밌겠나 하면서 옮길 수 있는 다양한 무대도 있다. 그래서 글라스토에서는 모두가 ‘유목민’이 된다.
안산 밸리에는 훌륭한 밴드들의 무대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 공연을 배제하면 쉴 곳도 제대로 앉을 곳조차 없었다. 지산리조트에서 안산 대부도 바다향기 테마파크로 옮긴 이후에 지산 밸리 시절을 그리워하는 글들을 볼 수 있다. 빅 탑 스테이지 옆에는 계곡이 흐르고 앞뒤 쪽으로도 쉴 곳도 많았고, 옆으로 산이 있어서 더 쾌적했던 느낌의 부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그 부지를 잘 활용해서 다양한 뭔가를 더 제공했었다(고 기억된다). 안산으로 옮긴 뒤에는 공연만 남고 이런 점은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안산 밸리로서 첫 해였던 2013년에도 느꼈던 바였다.
이에 비해 펜타포트는 위에 썼다시피 지포 라이터 스테이지에서도 공연을 즐길 수 있었고, 아티스트 사인회와 더 많은 쉴 곳 등, 더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페스티벌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다양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객으로서는 페스티벌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5.
매해 라인업이 발표 될 때마다 보게 되는 리플이 있다. ‘이 밴드가 록 페스티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종류의 리플이다. ‘록’ 페스티벌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제 록 ‘페스티벌’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싶다. 06년부터 시작된 펜타포트는 10주년을 맞았고, 해외 록 페스티벌에 다녀오고 눈이 높아지는 관객들이 생기고 있다. 06 록 페스티벌이 생긴 이래로 많은 밴드들이 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을 통해서 한국에 왔다갔다. 올해 펜타와 안산 밸리 라인업만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 밴드 못지않게 한국이 처음이 아닌 밴드들도 많다. 그 시간동안 관객들의 기대치와 눈도 높아졌다. 그러기에 라인업이 아닌 페스티벌을 더 페스티벌답게 만들어서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로도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할 때이다. 이번년도 펜타포트는 그 목표점에 한 걸음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06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록페의 잊지 못할 순간들은 관객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단결된 모습으로 아티스트와 서로 뜨거운 에너지를 주고 받는 관객들 말이다. 이 관객들을 더 이상 호갱으로 만들지 말아야한다. 껍데기뿐인 페스티벌을 만들어 놓고는 관객들을 기만한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Foo Figthers가 이번 년도에 취소됐다면 취소되기 전에 관객보다 어마나 줄었을까? 이번 년도만 생각하다면, 아마 많은 수가 줄었을 것이다. 일단 나부터도 취소하려고 했으니까. 당장 내년은 안 되겠지만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헤드라이너가 취소되더라도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한국의 록 페스티벌을 기대해 본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내용이네요 잘읽고 와닿는 내용이네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공감합니다b
이런양질의 리뷰를 읽다니ㅜㅜ 조아요 누르고싶네요
해방감과 유쾌한 길잃음
정말 좋은 표현이네요
진짜 다시 봐도 너무 좋은 글 입니다
어디 칼럼에다 올려도 될 정도로...
와... 정말 정말 정말 x 100 글 잘 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캡쳐해놓고 보관해 놓아도 될까요~?
너무 핵심을 잘 짚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아주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페스티벌 문화가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것같습니다.
공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이 좋은 글을 안산 밸리 측과 펜타포트 측에도 보내면 좋을 것 같네요~
저희 까페에서만 읽고 넘기기엔 너무 너무 아까운 글 같아요~
웹진 같은 곳에 올리고 싶을 정도로 아주 멋진 글이잖아요~!
멋있어요 !!!! 공감공감 꾸욱!
리플 모두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으니 오늘밤에 치킨이라도 먹어야겠네요 ㅋㅋㅋㅋㅋ
사진보정 본능
오 좋은 글입니다!!
필력이 ㅎㄷㄷ 하시네요. 문단으로 가셔도될듯
제가 글라스토와 후지락을 갔다와서 느낀 점은,
라인업이 주는 그 이상의, 아니 공연을 보는 것이 시간낭비라 여겨질 정도로
특별한 경험을 전달해 준다는 것이었어요.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
장차 국내 페스티벌도 그런 페스티벌이 되었으면 합니다.
과연 이것이 페스티벌일까? 야외에서 보는 내한공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전 한편으로 국내밴드는 투명인간인건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머지 99%는 다 좋은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페스티벌 문화가 언급된 김에.. 우리나라 밴드들 많이 사랑 받고 대우 받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국내 락페 라업에 달리는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락매니아사마들의 댓글들..
내한공연 위주로 타임테이블에 동그라미 쳐놓은 글들..
그리고 우리나라 밴드들 홀대하는 주관사들의 후일담들을 보면..
가끔씩은 문화를 사랑한다는 허세스런 말이 역겹기도 합니다.
여러방면으로 페스티벌 문화가 좋아지길 바래봅니다.
저 문장은 해외밴드와 관객이 만나는 장으로서의 록페의 역할을 강조하려다보니 나온거 같네요. 이번년도에 국내밴드 정말 역대급이었던 밴드들 많죠. 안산 이디오테잎과 전 보지 못했지만 서태지 공연도 있었고요. 펜타에서 메인에도 서고 지포 스테이지에도 섰던 넘버원 코리안도 생각나네요. 국내밴드의 홀대야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죠. 저도 시급하게 고쳐져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해외 락페는 꼭한번 가봐야겠어요
글라스토는 가야한다는거네요 ㅜ ㅋㅋ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해방감' 공감하네요
천재적인 글이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