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14
https://www.youtube.com/watch?v=_yX2-Tqz17A
강성현 교수 논문 The U.S. Army Photography and the “Seen Side” and “Blind Side”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흥미롭게도 이 영상은 다른 2개의 영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중국군이 성 밖 노천에서 시체를 확인하는 장면을 캡처한 전후 6초 영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들은 <그림 16>과 동일한 위치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군이 시신을 살피고 양말을 벗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요새 밖 구덩이를 묘사하고 있다. 나치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 시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벌거벗은 시체가 무더기로 나타납니다. Baldwin은 Tengchung Fortress 내부에서 발견된 여성 시체에 대한 비디오 영상 전후에 이 장면을 요새 외부에서 캡처했습니다.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습니까? 볼드윈이 두 지역에서 사망 원인을 동일시하기를 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입니까?18)
이미지에 포착된 정확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시신은 한국군 위안부로 판명됐지만, 시신은 중미 연합군의 공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연합군이 위안부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목소리는 일본군이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려 했다는 주장이다(박 2013, 101-102). 그러나 일본군이 '최종병'으로 싸웠던 지역을 조사한 결과 일본군이 위안부 대량 학살을 자행한 사례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비극은 중미 연합군 공식 기록(즉, G-2 및 G-3 일일일지), 중국 국민당 신문 Sǎodàng bào(Eradication, 掃蕩報) 및 Zhōngyāngrìbào 中央日報, 19 목격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이트에서. 1944년 9월 14일 18시 55분에 중국 제54군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등충성이 함락되기 전] 13일 밤, 일본군은 시내에서 조선인 소녀 30명을 사살했다."20
전쟁의 잔혹함이 이 이미지들을 통해 시각화된다. 그림 14는 군사 검열에 걸려 "워싱턴에 네거티브 배송됨"이라는 스탬프가 찍혀 대중의 접근 가능성에서 제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림 15와 16은 "기밀"로 찍혀 1945년 10월에 미국 홍보국의 전쟁부에 배포되었습니다. 이러한 처리 방식의 차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은 연합군이 민간인 여성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고려 했습니까? 캡션에 반영된 것처럼 최소한 육군 사진작가의 지식은 그림 14를 중미 책임의 증거로 지정했으며 그림 15와 16은 적의 잔학성을 분명히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후자의 이미지는 연합군의 전범재판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선전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 NARA는 이 영화에 첨부된 설명 카드를 제공합니다. 전체 설명은 "중국군이 죽은 일본인의 양말을 벗긴다. 열린 구덩이에서 죽은 민간인, 여성 및 어린이. 중국군이 일본군을 약탈했다.” 성 밖 노천의 시신은 일본군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설명에 "죽은 민간인, 여성 및 어린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 설명 카드는 이 장면을 촬영한 볼드윈이 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중에 이 영화를 NARA에 양도한 육군 사진 센터(뉴욕)의 기록 보관소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즉, 실제 장면에 없었던 기록관이 나중에 영화에서 본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 카드를 작성했습니다. 이 설명은 요새 내부 사이트의 7초 영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기록관이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내용은 Chung(2018, 72–74) 참조.
수정주의자들 특징: 문서의 내용의 전후맥락을 전혀 안보고 이미 검토끝난걸보고 대단한것을 찾은것인양 설침
문서의 내용을 어떻게 검증해야하는지에 대한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기껏 문서를 찾아놓고는 제대로 해석못해서 엉터리주장을 떠들고 유튜브에서 자기들끼리 돌려보면서 학계가 왜곡한 진실을 찾은것인양 설치는데
광주폭동론을 비롯한 역사왜곡담론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예시네요
문제는 그 찾은 문서라는게 알고보면 너무 세부적이라 언론보도에서 굳이 언급이 안되었을뿐
논문에서는 다룬지 2년이나 되었는데 책이나 논문 한줄 안읽고 사료만 바로 파서 뇌피셜로 역사를 구성하고 앉았으니 참 한심할 노릇이고요
ps 펜앤드마이크 유튜브가 나무위키에 걸려있어서 패려고 자료를 찾아봤는데 엉뚱하게도 박유하가 또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