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9일, 제 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된다. 영화는 허구의 구조물이지만 삶의 연장선상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스크린이라는 전자적 거울 속에서 우리는 현실 속의 우리를 더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가 성립되는 기본적 절차이고, 영화가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구축되는 또 하나의 삶이라면, 선거를 통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영화들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드맨 워킹]으로 199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부인 수잔 서랜든과 함께, 할리우드의 뛰어난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팀 로빈스의 감독 데뷔작 [밥 로버츠](1992년)는 매우 뛰어난 정치영화다. 1990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한 가수 출신 밥 로버츠의 선거과정을 통해 타락한 정치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을 바라보는 지적 성찰과 그것을 영화적 구조 안에서 표현해내는 미학정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치란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나 헤겔의 변증법처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는 다양한 의사소통의 통로를 차단하고 집권계층의 일방통행적인 사고만을 전달하며 우리들에게 획일적 사고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밥 로버츠는 컨트리 가수다. 웨스트민스트 군사학교와 예일대학을 졸업한 그는 시인이며 사업가이기도 하다. 영화는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에 밥 로버츠가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는 다선의원이며 정계의 거물이다. 여론조사는 밥 로버츠가 근소하게 현상원의원을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밥 로버츠에 대한 여론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그를 미국의 꿈을 실현시킨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앙한다. 35세의 젊은 밥 로버츠는 활력이 넘치는 강한 미국인으로서 지성과 유머를 갖추고 있고, 노래도 잘하며 뛰어난 예술가이고 천재로서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밥 로버츠에 대해 끊임없는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그가 파시스트의 비밀당원이라는 소문이 있으며 닉슨처럼 비정상적인 권력의 권모술수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거운동은 과열된다. 그 과정에서 밥 로버츠를 인터뷰하는 루카스 하트 기자에 의해 밥 로버츠와 관련된 의혹이 기사화된다. 무주택 건설자금을 개인 수송기 구입으로 전용했으며, 암흑가의 비정상적인 거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상대편 상원의원의 섹스 스캔들이 터진다. 그쪽에서는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며 함저잉라고 주장한다. 여론조사는 두 사람의 상원의원 후보가 1%의 근소한 지지율 격차를 보이며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밥 로버츠의 저격사건이 터진다. 밥 로버츠의 의혹기사를 취재했던 기자가 현장에서 저격범으로 체포된다. 선거는 밥 로버츠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저격범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지만 정의의 군대라는 극우단체에 의해 그 기자는 살해당한다.
팀 로빈스 감독은 진실이 과연 어느 쪽에 있는지 직접 주장하지 않는다. 짧은 몇 개의 컷트로 진실을 내비칠 뿐이다. 정치적 욕망과 암투가 다큐멘타리적 기법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감으로 전개되는 [밥 로버츠]는, 미 상원의원 선거를 소재로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비극적 세계인식을 펼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