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끝난 드라마 중에 많은 인기를 끈 작품이 『왔다! 장보리』라는 것이 있었지요?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중간 중간 몇 번 보았습니다만, 거기에 보면 등장인물 중에 ‘토스트할매’라는 분이 있습니다. 장보리를 키워준 엄마이고, 악녀 연민정의 생모입니다.
장보리와 연민정이 대립할 때, '토스트 할매'는 자기 친딸이 잘못을 범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 악을 감사주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연민정이 악행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도리(dharma)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혈연의 정으로 인해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도리보다는 인정에 끄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정을 따르기 보다 도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토스트 할매'를 주의깊게 본 것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드리타라쉬트라 라는 인물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마하바라타』에서도, 선과 악이 대립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드리타라쉬트라는 아들이 100명이고, 그 맏아들이 두료다나(Duryodhana)라는 인물입니다. 악인입니다. 이에 반하여, 이 100명의 형제들과 대립하는 것은 판두의 아들 5형제입니다.
이들은 다 사촌형제입니다. 판두라는 인물은 드리타라쉬트라의 아우이지만, 먼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찍 죽었습니다. 형인 드리타라쉬트라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자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왕위를 잇지 못했습니다. 아우인 판두가 죽고 나자, 비로소 왕위를 잇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굴곡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들이 앙앙불락하는 것도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평화롭게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면서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었지만, 드리타라쉬트라의 아들 두료다나는 끝내 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사기도박을 해서 판두 아들들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 판두의 5형제들을 추방하고, 마침내는 4촌간에 전쟁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비고비마다 아버지로서 드리타라쉬트라는 아들의 잘못을 견제하면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했어야 마땅한데 그러지 못합니다. 성격적인 결함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에 대한 집착과 정에 끄달려서 마침내 비극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1173〜1262)스님의 경우에도 그와 유사한 딜레마를 겪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들 젠란(善鸞)과 마침내 의절하게 되는 대사건을 겪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아버지로서는 적지 않은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건은 유배 이후 동일본 지역에서 20년을 포교하다가 교토로 돌아간 신란스님을 대신하여, 동일본 지역의 신도를 젠란이 지도하면서 생깁니다. 그런데 그의 가르침의 내용이 신란스님의 가르침과는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혼돈을 느낀 제자들은 신란스님에게 보고를 하고 고뇌를 호소하였습니다.(구라타 하쿠죠의 희곡 『스님과 그 제자』에서는 젠란이 여자들 있는 술집에 자주 출입을 한다고 해서 의절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아들에 대한 정으로 인해서, 신란스님이 그것을 제지하지 못하였다면 제자들은 더 크게 잘못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신란스님은 뭔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절입니다. 부자간의 인연을 끊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이길 수 없고 정에 끄달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스스로 지켜야 할 ‘다르마’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르마’를 지키려면 인정을 팔아야 하고, 인정을 팔지 못한다면 ‘다르마’는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란스님은, 다르마/법에 충실하고자 했고 법을 앞세웠던 분입니다. 법을 인정에 팔았던 분은 아닙니다. 법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인정을 배척하는 것을 출가정신이라고 본다면, 신란스님은 비록 그 스스로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 하였지만 실은 출가정신을 가장 올곧게 지킨 분들 중의 하나라 해서 좋을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연고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어요. 가장 이상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융통성이 없다거나 매정하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게 그만큼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막상 저런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면 고민될 것 같아요. 청탁받지 않아도 쓰시는 문인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고맙습니다. 고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반 걸음 나아간 것입니다. 고민하는 삶, 그게 철학하는 삶일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