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봉우리 형태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닮아 봉오산이라고도 불리는 곳 산자락에 사천리(비끼내)마을이 냇가를 따라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모양새가 웅장하고 단정하여 뭇 나무들 가운데 임금이라 할 만큼 품위가 있는 참가시나무와 겨우 내내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인 동백과 후박 구실잣밤나무들이 가득히 들어선 산자락이 열두폭 치마처럼 둘러진 마을에는 나무들과 새들이 바람결을 현삼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다.
참가시나무는 흔히 백가시나무라 하며 몸안의 결석을 녹여주는 효과로 유명하며 참나무들은 이마을에서 수십년 전부터 표고버섯 재배로 활용되고 있으며 진도 최대 재배지다.
참가사나무는 가시나무 종류에서 그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이나 잎과 어린 줄기는 이웃 일본에서 담석, 신장결석, 요로결석 등 갖가지 결석에 특효라 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고 유럽과 중국에서는 참가시나무잎으로 결석치료약을 만들고 있다.
이 마을 표고재배자 박만석(64)씨는 표고고장으로 잘 알려진 장흥에서도 손꼽히는 전문재배자로 알려져 그의 표고제품이 도착해야만 경매입찰이 될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백가시나무는 가시가 없으며 운림산방 앞 푸른동산에서 특산품으로 비닐에 담아 팔고 있음)
이 참나무를 이용해 또 다른 건강상품 ‘참숯’을 만드는 숯가마를 재현해 사천리는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련한 추억 하나.
질화로 가득히 숯을 담아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도 짬짐없이 먹바위 산골 다락논을 둘러보고 오시던 할아버지.
나는 다섯살이 지날 무렵부터 늘 할아버지 방에서 잤다. 커다란 감자(진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하며 감자를 북감자라 한다) 두대통이 놓인 방, 눅눅한 담배연기속에서 나는 꿈을 꾸듯 자랐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 한쪽에 놓여진 성냥 풀무간에서 숯을 달구는 풀무질에 여념없었던 할아버지는 비석글씨를 파는 석수쟁이였다.
밤새 하얗게 눈이 내리고 언문소설책을 반복해 읽던, 주름살 가득한 흰 수염의 할아버지는 작은 부지깽이를 뒤적이며 어린 손주의 입맛을 돋워주곤 했다. 그 때 한 겨울밤의 모방에는 늘 소녀 볼떼기처럼 달아오른 숯이 있었던 것이다.
숯은 잡귀를 쫒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있어 집 문간에 금줄을 걸 때 숯덩이를 끼웠다. 숯이 지닌 효과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산화 방지 및 환원 작용이다.
숯은 사물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힘, 복원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느집이나 뒤안 햇빛 잘드는 장독대 간장독안엔 항상 숯과 고추가 둥둥 떠다녔다.
숯의 효능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월등히 높다.
전문가에 따르면 병이 나거나 아픈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전자의 이탈현상이 초래되어 전자가 부족해진 상태인데 전자가 낮은 부분에 숯은 무한정으로 전자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숯을 신체 주위에 두면 항상 전자가 공급되는 환원작용으로 몸이 상쾌해지고 개운해 지는 것이다.
숯 침대에서 자면 음이온이 환원되어 잠을 조금만 자도 개운해 진다고 한다. 숯은 산성화한 식품을 중화시켜 알칼리화하는 효능도 갖고 있다.
인체 내에 체액이나 혈액을 알칼리로 중화하여 신선하게 유지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숯의 성분 가운데 약 60%가 알칼리성 염류이다.
숯의 알칼리성을 이용해 산성 토양을 개량하거나 산성비 피해방지를 하는데 쓰이고 있다.
숯을 먹으면 산독을 중화, 해독하는 등 장내의 세균을 죽이고 유효균을 활성화 시킨다. 나도 몇 번 숯을 가루로 해 먹어본 적이 있다. 충분히 먹을 만 했다.
전자파 차단과 뛰어난 복원력
짝귀와 이맷돌, 그리고 모대기숯 놀이
현대인들은 전기제품에 둘러싸여 생활하지만 전기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전기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숯이 전자파를 차단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고온에서 구운 백탄이 전자파를 흡수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혔고 그 메카니즘은 숯의 통전성에 있다고 한다.
백탄이 1000。C 이상이 되면 철판보다도 전자파흡수 차단력이 높으며 더욱이 1200。C이상에 구운 백탄은 흑연보다도 강한 전자파흡수 차단력이 있다고 알려졌다.
원적외선은 전자파의 일종으로 물질을 따뜻하게 하는 힘을 강하게 반사하여 인체의 모세혈관을 확장 시켜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게 하고 인체의 물질들을 순환하는 일을 돕는 유익한 광선이다.
이 광선은 지구상의 모든 물질에서 방사되나 특히 숯, 황토, 돌, 세라믹 등이 방사율이 높다.
숯이 방사하는 원적외선은 엄청나다. 오염으로 더러워진 도시생활공간을 숲속이나 폭포같이 음이온이 풍부한 공간으로 만드는데 탄소덩어리인 숯을 활용하면 적격일 것이다.
숯이 양이온을 흡작하고 음이온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온에서 구워진 숯은 수분을 거의 함유하고 있지 않다. 숯의 다공질 구조는 훌륭한 습도조절효과를 가져온다.
숯은 또 너무 건조하면 수분을 방출하여 습도조절을 적합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해준다. 그 외에도 역한 냄새제거 및 풍부한 미네랄의 함유, 질병을 치료하는 등 무한한 효능이 있다.
욕조에 넣고 목욕을 하면 신경통이 완화되며 요즘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아토피성 피부염에도 숯 목욕이 좋다.
또 숯가루를 탄 물로 관장을 하면 체내에 쌓인 숙변이 깨끗이 제거되고 변비는 물론이고 두통, 위장병 등의 각종 질환에 효과를 본다고 한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에겐 건강을 위한 필수 복음서나 다름없다. 그것도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숯이다.
덤으로 얻는 목초액, 그리고 주민화합
사천리는 이 숯을 이용해 관광상품으로 개발 주민소득을 올리고 체험현장으로 활용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1월 14일 동네 주민 20여명이 진도 의신면 사천리 당산나무(나도 그 앞에서 칠팔년을 살았다. 삼류영화 세트장같은 조립식 집에서 나는 그렇게 웅크려 살았다) 옆 하천부지에 자체 울력으로 돌과 흙을 날라 거대한 숯가마를 만들었다.
이미 청년(30대와 40대다)들은 어른 허벅지통만한 참나무를 베어 수직으로 가득 쌓아놓았다.
그 위에 돌과 흙을 이겨 보기만해도 정겨워지는 숯가마를 만들었다. 40년 전 당시까지 사천리에서 직접 숯을 구웠던 유복산(68), 이인춘(67)씨와 박경석(81. 내아버지)씨의 증언과 재현작업을 바탕으로 숯가마가 사천리에 들어선 것이다.
동네 청년들은 당산나무골 옆 빈터에 황토흙을 이기고 돌단을 쌓아 그 위에 다시 짚을 두른 뒤 돌을 얹고 흙을 덮었다.
눈발이 휘날려도 목장갑 축축한 손으로 흙을 이겨 바르고 다지는데 무슨 축제마당에 온 듯한 표정들이었다.
사나흘을 계속 번갈아 당번을 서며 나무를 구해 불을 지피느라 날밤을 세고 있어도 누구하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농한기철이라 주민들의 참여도가 더욱 높은 편이다. 밤이면 땔나무숯을 긁어내 그 위에 고구마를 구워먹는다.
사천리는 일제강점기때부터 많은 나무들을 이용, 숯을 굽거나 장작을 내다 팔았다.
지금도 진도읍내 철마광장 사거리는 흔히 ‘나뭇거리’라고 부른다.
사천리를 비롯한 나무꾼들이 이른 아침 지게에다 장작을 가득 지고와 더운 숨을 가라앉히며 나무를 사갈 손님들을 기다리던 곳이다. 여자들은 '갈쿠나무'라 해서 솔잎과 도토리나무잎사귀등을 갈쿠로 긁어모아 커다란 뭇을 만들어 이고 와 팔기도 했다. 남자 나뭇꾼은 지게작대기 장단에 맞춘 노래가 생겨나고 여인들은 갈쿠질할 때 부르는 산타령 노래가 있다.
음식점이나 여관 부잣집에서는 특별히 숯을 찾아 이용을 하고 진도 밖으로도 숯을 ‘잰피’에 담아 팔았다.
어린시절 형들을 따라 수용소(의신면 진설리)에 엿을 사먹으로 갈 때 리어카에다 장작을 싣고 가 바꿔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 밤길을, 다리도 없는 냇가를 건너 왕무덤재 성황당 바위에 돌을 던져 얹히며 두려움을 쫒아 달콤한 엿을 먹으러가던 동네 아이들과 육이오때 황해도 평안도 등에서 피난와 전답 한평 없이 임시 수용소에서 엿을 팔아 연명하던 진설리 사람들. 이들에겐 엿을 고을 수 있는 장작이 필수적이었다. 사천리사람에겐 흔한게 나무지만 이들에겐 귀한 물건이었다.
첨찰산 자락 여기저기에는 지금도 숯가마터가 남아있다. 온전하게 남은 숯가마는 두개가 있다. 마치 봉분처럼 만들어져 있고 남향으로 불을 넣던 아궁이가 있다.
한 곳엔 박쥐가 떼로 모여 산다.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구워 꺼낼 때까지 한 보름정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동안 산을 오가면서 주막에 들려 미리 외상으로 먹은 술값 제하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았다는데 너도나도 큰 목돈을 금방 쥘 것처럼 다투어 숯굽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사천리는 가파른 계곡을 따라 차고 센물로 인해 땅이 비옥한 편이 못되고 전답이 별로 없었다. 겨울철에는 가마니짜기나 약초캐기에 힘센 장정들은 숯가마로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60년대가 되면서 연탄과 석유에 밀려나고 엄격한 산림보호 시책에 따라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이제 산림이 제법 무성해지고 건강 특효성이 알려지면서 다시 참춧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사천리는 또 KBS(1) 백년가약팀과 올 봄 백년의 가약을 맺고 ‘테마마을’ 지정을 받아 진도의 민속과 세시풍속등을 재현하고 전승해 나간다.
정월 대보름날엔 당제를 모시고 마을회관 앞에서 연날리기와 오곡나물 삼겹살에 동동주 나눠먹기, 걸궁치기, 달집태우기 등을 한다. 또 더위팔기도 한다.
사천리는 1200여년 전 두시내가 함께 흐르는 곳이라 하여 “쌍계사”가 도선국사에 의해 들어서고 19세기 중반부터 5대째 남종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운림산방”에 의해 너무 이름난 마을이 되어버렸다.
구한말 무정 정만조(서예가 소전 손재형의 스승)가 유배와 서당을 열었던 ‘관란제’가 다시 복원되고 옛 조상들이 일상에서 쓰던 물건들(옹기 농기구 등)을 모은 마을박물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황토와 천일염, 참숯들은 웰빙시대에 특별히 주목받는 것들이다.
농촌이 강한 회귀성을 가지려면 더욱 더 오래된 것으로 구성되어져야 한다.
근대화와 민주화의 지난한 여정을 헤쳐오면서 늘 비껴나있던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지는 가운데 ‘건강하세요’란 덕담을 타고 사천리 참숯가마에 활활 희망의 불이 타오르길 기대한다.(박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