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장 강해 더난 영광(이가봇)을 찾자 사무엘상 4장 1-22절 참조/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적이있던 두번- 예례미아선지자가 눈물을 흘리고 외쳣지만 586년 유대나라가 바벨론에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또 로마에의해서 예수님을 거역거절하고 서기 70년 로마에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오늘 말씀의 중심 단어가 '이가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3만 4천명이 죽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깁니다. 제사장 가족인 엘리와 그 아들 흡니와 비누하스 죽습니다. 그리고 이 비보를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유산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고 하며 죽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한국교회에서 많이 떠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정과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을 까?. 시대가 변하고 전체에 홍수가 나면 한 우물만 맑은 물을 지키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롭게 전환을 시작한 이스라엘
1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습니다. 엘리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했습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시대가 시작되선지자가 일어나자 여호와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구원의 희망이 생기고 힘이 넘쳤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일으나 불레셋을 물리치고자 먼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3절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패전의 원인을 분석하는것을 볼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과 싸우려고 에벤에셀에 진을 쳤습니다. 불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사천명이 죽은 이스라엘
2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스라엘은 불레셋과 싸워서 불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사천 명의 군사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사무엘이 가르치는 말씀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싸우러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만군의 하나님을 믿고 싸움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왜 불레셋 군사에게 패배하였을까요? 그들은 말씀의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진노하고 계셨습니다. 제사장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영적으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원로 사사인 엘리는 아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았으면 이런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거국적인 회개 운동을 벌여야했습니다. 믿음을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영성을 회복해야햇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그 후에 싸움을 싸워야합니다. ((가나안 정복시에 아간은 하나님의 물건을 훔쳤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전쟁하다가 패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공부하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 실패를 합니다. 학과공부에 실패하고 직장에서 실패하고 양을 치는데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뜻이 앞서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지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원을 이루고자하는 믿음충만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거룩성 충만 하나님의 영광충만이 우선이라는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부터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하지 못하여 패배하였습니다.
원인을 잘못 분석한 이스라엘
3절.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패배를 주신 것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패배를 주셨으면 왜 하나님이 패배를 주셨는지 여쭈어보아야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아이성 전투에서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여 36명이 죽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울며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이 패배한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야할 금과 은과 외투를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도적질한 아간을 아골 골짜기로 데려다가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가난안 정복 전쟁을 하여 연전연승합니다. )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사무엘에게라도 물어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여쭈어보았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알게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회개하고 내면이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4000명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도 그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더 많은 희생을 맛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계속적으로 문제가 계속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죄가 없을지라도 연단을 위하여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때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참고 견디어야합니다. 인격의 변화에 초점을 마련해야합니다. 실패를 통하여 죄를 애통하며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실패는 크게 환영할 만한 것은 아지지만 실패가 우리에게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적용))-우리나라는 육이오 전쟁으로 200만 이상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하여 우리는 겸손하여졌고 영적으로 가난해졌습니다. 육이오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환난은 IMF 경제 환난입니다. 대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 파산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 경제를 투명하게 했고 신용도가 높아지게 하셨고 진실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육이오와 IMF의 환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더욱 큰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픔을 통해서 영적인 교훈을 배우면 우리는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나름대로 분석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잘못 분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앞에 진실로 나아오기를 바랬는데 무엇을 가져가기로한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통하여 영적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더 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언약궤를 주술적으로 사용한 이스라엘
4,5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이스라엘은 장로들의 결정대로 언약궤를 가져왔습니다.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습니다. 언약궤 위에는 두 팔 모양으로 새겨 놓은 그룹이라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앉으셔서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를 지휘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언약궤를 가져올 때 제사장 흡니와 비누하스도 함께 왔습니다. 언약궤가 진영에 돌아올 때 이스라엘은 큰 소리로 승리의 환호성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언약궤가 신기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만 들어오면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하나의 부적이나 마술단지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다 이방종교우상종교를 본을 받은것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앞세웠을 때 그들은 물이 넘쳐흐르는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아갔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이를 통해 언약궤가 능력의 원천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언약궤를 앞세웠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입니다. 인본주의를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적용))-요즘도 실패의 때에 내면의 변화에 힘쓰기보다 외적인 변화만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안 나와서 실패했으니 교회만 나오면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큐라 영화에 보면 십자가만 앞세우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다 말씀만 써서 붙여 놓으면 집에서 마귀가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 후에 성경책을 차에 놓고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운이 계속되자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 복이 올 줄로 생각합니다. 헌금만 많이 하면 돈을 벌 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이런 믿음은 절대로 함께하시지않습니다. 우상적이고 혼합적이고 자기 욕장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하여 죄를 회개하고 내면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러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환난이 없이는 변화할 수 없는 우리의 내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희생이 따르는 환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희생한 만큼 내면이 변화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전쟁에 실패한 이스라엘
6-9절.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가져왔을 때 블레셋 진영의 반응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궤가 진영에 들어와서 기뻐 외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궤가 오자 하나님의신이 이스라엘의 진영에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을 이루시고 가나안 정복을 이루신 위대한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라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단강을 멈추게 하시고 태양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오신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대장부가 되어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삼만명이 죽은 이스라엘
10,11절.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궤를 앞세웠지만 블레셋에게 큰 패배를 당하였습니다. 지난 전투에서는 4천명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이스라엘 보병 3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흡니와 비누하스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경고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경고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소홀히 여기고 내면의 변화에 힘쓰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복하여 계속적으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판을 피하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겸손하게 회개해야합니다. 회개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떠는 엘리
12-15절.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날 베나민 사람이 이스라엘 진영에서 달려 나왔습니다. 그는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머리에 티끌을 무릎썼습니다. 이스라엘은 극도의 슬픔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30Km를 달려서 성전이 있는 실로에 이르렀습니다. 마라톤에서 승전보를 위해서 달렸지만 이 사람은 패배의 소식을 알리고자 달렸습니다. 엘리는 길 옆의 자기 의자에 앉아서 전쟁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엘리제사장이 꿰로 말미암아 떨고있었다는 것은 사사말기의 시대가 이제 저물어 낙조가되고 그 해가 떨어질 것이라는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베냐민 사람이 이스라엘의 패배를 알리며 들어오자 온 성읍에 슬퍼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는 그 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 아우성이냐고 물었습니다.
비보에 목이 부러져 죽은 엘리
16,17절.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베냐민 사람이 엘리에게 가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배하여 삼만명이 죽었음을 알렸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요 제사장인 흡니와 비누하스가 죽음을 당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도 빼앗겼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엘리는 98세였습니다. 그는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비만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긴 사실을 알고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사랑한 자의 최후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치 않은 자의 말로입니다. 우리는 이를 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회개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가문과 민족의 운명이 이가봇이 되다
19-22절.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비느하스의 아내는 만삭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가 빼앗긴 것과 시아버지와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죽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해산(조산)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내가 낳은 아이도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내아들 이가봇'이라고 부르고 죽었습니다. 이 여인도 시아버님과 자기 아들도 망할 징조를 알고 있었고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가봇’(d/bk;Aya)이란 이름이 히브리어로 ‘영광이 없다’ 혹은 ‘영광이 떠나다’(No Glory)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슬픈 몰락입니까? 그녀는 희망을 일으키는 여인이되어야 했습니다. 희망이 사라지고 영광이의 빛이 없어진다는것만큼 슬픈일이없습니다. 제사장의 가족은 몰살당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기고 이스라엘도 블레셋에게 참패를 당하고 굴욕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많은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많은 기적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고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광이 욕이되는 한계점이 왔을 때는 심판을 하십니다. 결론 징계를 통하여 배울 점 (떠난 영광을 찾자)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비참한 일들이 미리 예언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삼상2:31~36) 그 중에 삼상2:34을 보면 두 아들이 한 날이 죽을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였고 또 사무엘을 통하여 미리 경고하여 주셨습니다. 삼상2:30 보면 더욱 분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삼상2:6~7,10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 ” 인생만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거역하면 산산조각 나듯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소망으로 연단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승리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복받고 잘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왕같은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들을 통하여 세계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다루십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으면 그들을 세계에 흩으십니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실패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패배와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다. 질병에 시달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더 크게 쓰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나라가 영광의 빛이 솟아오르고있습니까? 아니면 영광이 떠나고있습니까? ---여러분의 가문은 영광이 솟아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 여기에서 이미 운동장이 기울여진 것은 참으로 바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거국적인 회개기도만이 살길입니다. 다음 다음 7장을 보십시요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물을 길어 여호와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다니엘과 느혜미야가 나라를 회복시키는 기도를할 때(단9:7)주여! 공의는 주께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마땅하오니 우리가 죄를 범하였사옵고 패역하고 청종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로 볼 때 우리는 말씀의 경고에 대해서 말씀앞에서 순종하는 자세 아멘하는 겸손 회개하는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예))- 노회찬 정의당의 원내대표가 드루킹선거조작에 뇌물을 받은 죄가 탄로나서 ....자살함으로 자신은 용소를구하고 그 당을 살려달라는 유서를... 지금 지지율이... 12%가 올라서
결론적으로 징계를 통하여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힘써야 합니다. 징계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면의 변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죄를 회개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둘째는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는 낮추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어 우리를 높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송은근목사 설교창 원문보기 글쓴이: 에이레네
첫댓글 흑암의 시대처럼 분별력도 기도도 하나님 영광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대한민국 상황과 어쩜 이리 비슷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