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토대가 얼나인 그리스도이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 17:3) 영
원한 생명은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인 얼(성령)이요 전체라 하나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보내신 예수'라고
옮겨져 있지만 '보내주시는 예수'라고 옮기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예
수가 얻은 영원한 생명은 그의 몸이 아니고 그의 얼이다. 그 예수의 얼
은 영원한 현재로 지금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예수의 얼
은 줄곧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어떤 뜻으로는 우리 삶의 토대가 얼나인
그리스도이다. 이렇게 말하면 범신론(汎神論)과 같이 들리나 그리스도
라기보다는 성령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더 나을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이 임할 수 있다고 본다. 성
령과 그리스도가 어느 쪽이 더 범신론적인가? 성령은 진리요 참나요
생명이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성령이 있어야 우리의 한 줄기 얼생명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빼고 성령이라고 하든지 그리스도라고 해
야 하는 까닭이 있다. 여기에 이 기도는 예수 자신이 하느님에게 올리
는 기도인데 예수 자신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는 이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고증을 하려고 일부러 말하는 것은 아닌데 이 기
도문(결별의 기도)을 읽는데 한 8분이 걸리는 긴 기도이다. 당시에 무
슨 녹음기가 있는 것도 속기술이 발달된 것도 아니니만치 이 많은 기
록을 다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복음기자의 주관이 들어간 것이라 생
각된다.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