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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09
1. 연습실 / 밤
8부 연결로....
신영 : (민재를 뿌리친다) 너랑 나랑 안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네. 이게 증거야! 넌 철없이 놀아도 되는 청춘이고
난 이제 시간을 아껴야 하는 청춘이야. 다신 나한테 장난치지 마!
신영, 열 받아 나간다.
민재 : ...........(새치 한 가닥 보며).....
2. 방송국 화장실 / 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보는 민재. 까만 머리...
민재 : .....
3. 보도국 사무실 / 낮
은회색 머리칼의 민재, 걸어 들어온다.
민재 : 안녕하세요, 하민재라고 합니다. 대학생 VJ 지원하러 왔는데요.
미조, 희동, 해진 모두 놀라서 민재 보고 있고
신영도 놀란 얼굴로 말문이 막혀 있다.
신영 : ..........!!
희동 : 민재씨.... 머리색깔이 그게 뭐예요.
해진 : (반한 듯) 왜 그랬어 민재씨... 나 지금 너무 떨려어.
미조 : 하민재는 나이 들어도 멋있게 늙겠다.
민재 : (머리카락 쓸어 넘기며 멋쩍게 웃는)
신영 : 하민재씨! 자격 미달입니다. 돌아가세요.
일동 : (신영에게 원망의 눈초리) 뭐! (왜!)
민재 : .............
신영 : TV에 직접 출연할 수도 있는데 그 몰골로 되겠어요?
뉴스 앤 피플의 격이 떨어져 보여서 안됩니다.
민재 : 그럼 출연 안하고 옆에서만 돕겠습니다. 이름이고 뭐고 안 나가도 좋습니다.
신영 :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뭐죠?
민재 : ............
신영 : 대답을 못하네. 면접 빵점!
민재 : 아시지 않나요.
신영 : ...........
민재 : 아시잖아요. 내가 그렇게까지라도 하고 싶어하는 이유.
신영 : ........
신영,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쿵쾅쿵쾅....
신영을 바라보는 민재의 흔들림 없는 눈빛.
신영도 민재에게 시선 멎은 채 심장이 쿵쾅 쿵쾅쿵쾅.... 남들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 내 뛴다.
신영 심장소리 계속 쿠궁쿠궁쿠궁... 귀가 멀 정도로 심장이 뛴다.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득하고 웅웅거리며 작게 들린다.
신영 : ....(멍하니)........
해진 : (아득) 그럼 상상모는 어떡하구. 음악감독 어시스턴트랑 민재씨가 맡은 코너도 있었잖아요.
민재 : (아득 웅웅) 방학 동안만 도와드리기로 한 거예요.
미조 : (아득) 유피디가 쉽게 안 놔줄텐데.
희동 : (아득) 머리염색은 왜 한 거예요.
신영 : (벌떡 일어선다) 나 잠깐 편집실 좀. (나간다)
민재 : .........
4. 방송국 일각(신영민재 고정장소) / 낮
사람 별로 안다니는 외진 곳.
신영, 생수병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신영 : (물 마시고) 크아.....
민재, 다가간다.
민재 : 뭐가 그렇게 무서워.
신영 : (톡 쏘는) 나한테 말 놓지 마! 존댓말 써요.
민재 : 사람들이 눈치 채겠다.....요. 왜 그렇게 티를 내.......요.
신영 : 도대체 넌 왜 나타난거니. 세상에 질서가 있다면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민재 : 다른 일엔 용감하면서 바보같이 왜 이래?
신영 : .........
민재 : 내가 서른일 때 마흔이 되고, 내가 마흔 일때 쉰 살이 되는 게 그렇게 무서워? (웃기다는 듯) 왜?
신영 : .....(기가 막힌 듯) 왜애?
민재 : 태어난 순서대로 죽는 것도 아니잖아. 나보다 먼저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는 게 뭐. 그게 뭐.
신영 : .........너는 신종 바이러스구나.
민재 : 태어나서 여자한테 처음 고백하는 건데 날 이렇게 좌절하게 만들꺼야?
신영 : 좌절하면서 크는 거야.
민재 : 세상도 변하고 사람들 생각도 변했어. 마음이 하자는 대로 용기를 내봐.
신영 : ...........
민재 : ..........
신영 : 용기와 상관없는 일이야.
민재 : 내가 싫어?
신영 : ....... 응.
민재 : 내가 남자로 안 보여.
신영 : ........ 응.
민재 : 난 당신이 여자로 보이는데.
신영 : .........
민재 : 신영씬 안 그래?
신영 : (기를 쓰고 말하는) 안 그래. 난 니가... 남자로 안 보여.
민재 : 거짓말인 거 다 보여.
신영 : 거짓말이어도 할 수 없어.
민재 : ......(가벼운 한숨)......
민재, 신영 헤어지는 연인의 마지막 순간처럼 서걱거린다.
어색한 침묵이 길게 느껴지고 두 사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다가.
민재 : (쿨하게) 알았어요.
신영 : ..........
민재 : 그동안 날 설레게 하고, 매일 보고 싶은 사람이 돼줘서 고마웠어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도 있었어.... 신영씨가 알게 해줘서 그것도 고마워.
신영 :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뻐근한데)
민재 : 머리 색깔이 돌아올 때까진 당신을 잊을게. 잘 지내요.
민재, 신영을 한번 보고 돌아선다.
민재의 돌아서는 뒷모습, 신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민재, 뒤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플래쉬 백 --
5부 군고구마 리어카 앞에서 목도리 감고 서 있던 모습, 스케이트장,
8부 연습실 민재 ‘보고 싶었어. 관심 있어서 내기 한 거구, 정말 좋아하게 됐어’
신영 : ............
멀어지는 민재 뒷모습에.
신영 : (결심한 듯) 열흘만 놀자!
민재 : ?! (뒤돌아본다)
신영 : 진짜 사귀는 사이처럼 딱 열흘만 놀아보자. 하민재를 만나는 건 시간 낭비긴 하지만
열흘정도 버리는 건 괜찮을 것 같아.
민재 : 장난해?
신영 : 싫음 말구.
민재 : 열 하루 째 되는 날부터 난 어떡하라구.
신영 : 그럼 3일.
민재 :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좋아, 열흘.
신영 : 이따 일곱 시 반에 명동역에서 만나.
민재 : 오늘부턴 싫어.
신영 : 왜.
민재 : 벌써 시간이 오후야. 딱 열흘밖에 없는데 오늘부터 카운팅 하기 아까워. 내일부터 해요.
신영 : 좋아.
민재 : 밤에 전화할게. 내일 봐요! (활짝 웃고 걸어간다)
신영 : .....(민재 뒷모습 보며 혼자 다짐) 딱 열흘이야. 괜찮아.
5. 신영네 거실 / 낮
다정, 입술이 마르고 퀭한 얼굴로 누워있다.
반석 아버지의 모습, 자꾸 떠오른다.
플래쉬 백 - 8부 한식집
아버지 : 가난한 집에서 이 악물고 성공한 여자들을 난 싫어합니다.
우리 반석이 정도면 굳이 밖에서 일하는 와이프도 필요없죠.
시어머니 자릴 공략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요. 집사람은 내 뜻을 무조건 따릅니다, 의견이 없어요.
다정 : 아윽! (생각하기 싫다는 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핸드폰 진동으로 드르륵 움직인다. V자 그리고 있는 반석의 얼굴이 뜬다.
다정, 빤히 보고 받질 않는다.
6. 한방 병원(야외) / 낮
핸드폰 들고 있는 반석. 걱정스런 표정으로....
반석 : 아직도 아픈가....
간호사, 밖에 부르는.
간호사 : 양나리님....
반석의 아버지, 20대 젊은 여자와 함께 들어온다.
반석, 놀라 일어선다.
반석 : 아버지....
아버지 : 예전에 얘기한 적 있지. 양회장 막내딸 나리양. 요즘 자꾸 체끼가 있대서 내가 에스코트 해왔다.
진찰하고 점심도 같이 먹자꾸나.
반석 : ..........(난처한)........
7. 한옥 마당 / 낮
아담한 한옥. 다정, 들어선다.
마당에선 개량한복을 입은 50대 남자, 화분의 난 이파리를 조용히 닦고 있다 다정을 돌아본다.
다정, 고요하게 인사한다. 구도자의 눈빛으로 간절히.
다정 : 여기가 청명선방인가요. 이곳에 오면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대서....
8. 한옥집 안채 / 낮
한과와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아있는 다정과 거사(개량한복 입은 50대 남자).
수련을 하듯 고요한 분위기.
거사, 온화한 미소로 이야기 한다.
거사 : 똑같은 온도와 똑같은 물로 차를 우려도, 어느 날을 달고 어느 날은 떫지요.
찻잎도 같고 물도 같은데 모든 건 마음의 작용입니다.
다정 : (짜증난다는 듯) 딴 생각하다 좀 더 우려낸 날은 차가 떫겠죠. 억지로 말 좀 지어내지 마세요.
거사 : 거슬렸다면 용서하십시오.
다정 : 시아버지 될 분께 인사를 드렸는데 제가 살아온 모든 날과 우리 부모님까지 모욕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사 : 그리로 시집 안가면 됩니다.
다정 : 문제는....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오랜 시간 기다려 만난 제 짝 같거든요.
거사 : 그럼 자신을 바꿔야지요. 남을 바꿀 순 없습니다.
다정 : 모욕을 참고 죽어지내란 말씀인가요?
거사 : 고통은 무릇 욕심에서 생깁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고, 내가 편하고 싶고,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데서 괴로움이 오는 것이죠.
다정 : (고개 끄덕끄덕.... 점차 안정 찾아가는)
거사 : 내가 뭔데 모든 사람한테 환영받고 사랑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를 놓고 그 아버지가 돼보세요. 노여움이 이해로 바뀌면 또 다른 해답이.....(우리 안에서.....)
이 때 한복 입은 동자, 버릇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동자 : 스승님, 문 앞에 누가 또 주차를 해놨는데요.
거사 : (화를 벌컥) 차를 뽀사뿔라! (달려 나간다)
다정 : !!!
다정, 황당하고 벙쪄서 앉아있는데
한복동자 방으로 들어와 앞에 놓인 한과를 입에 잔뜩 쑤셔 넣고 다정을 한번 보고 나간다.
다정, 조용히 앉아 남아있는 녹차를 마신다.
밖에선 시끄러운 소리.
‘아니 내가 몇 번을 말해. 만날 여기다 차를 세워놓음 어떡해 당신. 전화번호도 없고. 당장 차 빼요’
다정 : .........답은..... 내 안에 있다.
다정, 차를 원샷 한다.
9. 한방병원 복도(야외) / 낮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다정, 갑자기 놀라 멈춰서며 옆으로 숨는다.
고개를 살짝 내밀고 보면 가운 입은 반석과 아버지, 20대 여자 마주오고 있다.
다정 : ..........
세 사람, 얘기하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반석이 손짓하며 안내하는 분위기.
세 사람, 다른 섹션으로 사라진다.
다정 : ........내 답이랑 너무 달라.....
울상이 돼 서 있는 다정.
10. 도장 / 낮
돌아가는 환풍기로 햇빛이 들어오는 도장.
사부와 함께 수련중인 부기. 차고 날고 뛰고 이마에 땀이 솟는다.
이 위로 문자음.
신영과 다정의 소란스런 목소리.
(E) : 문자음 띵~
신영(E) : 뉴스 속보. 하민재의 진심을 파악함. 나는 잠깐 사랑에 빠져볼까 함. 자세한 소식은 저녁에.
부기우기, 정다정. 모여주기 바람!
(E) : 문자음 띵~
다정(E) : 이신영, 김부기씨. 우리 저녁에 고기 구워먹자. 나 오늘 힘을 좀 내야 돼.
고기 먹고 마늘먹고 힘내게 모여줘. 꽃등심 사갈게 모여!
땀 닦으며 핸드폰 확인하는 부기.
스승, 부기의 뒤에서 조용히 다가가 죽도로 (또는 나무 막대로) 부기의 어깨를 내리치는데
부기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팔로 막아 죽도가 부러진다.
스승, 잘라진 죽도를 들고 끄덕끄덕.
부기 : (스승 앞에 한 쪽 무릎 꿇고) 김부기, 오늘도 도시의 무협녀로 자만하지 않고...
두려움에 떠는 노처녀들을 구하겠습니다.
11. 신영네 거실 / 밤
고기 굽고 있는 세 사람.
신영 부기 나란히 앉아있고 다정은 두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있다.
다정은 대화에 안 끼고 쌈을 싸 입이 터지게 먹는 데 열중하고 있다.
부기 : 하민재 정말 대단하다. 그것 봐. 걔 눈빛이 사랑이었다니까.
신영 : 하민재랑 열흘 동안 사귀기로 했어. 열흘 동안 즐겁게 놀면서 다시 연애의 감을 찾을꺼야.
그러니까 그동안은 나한테 정신 차려라, 잘해 봐라, 집에 들어오지 마라..... 이딴 잔소리 하지 마.
부기 : 열흘 후엔 어쩔 껀데.
신영 :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지.
부기 : 윤상우한테로?
신영 : 그래야겠지....
부기 : 열흘하고 끊는 게 잘 될까.
신영 : 어쨌거나 열흘은 나한테 침묵해줘. 그 어떤 훈수도 잔소리도 사절.
부기 : 다정씬 할말 있다고 불러놓고 왜 먹기만 해요.
다정 : 에너지가 필요해요, 이 얘기를 할려면.
부기 : 그만큼 먹었으니 시작해 봐요.
다정 : ...........(결연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탁 놓고 고개를 숙인다)
신영.부기 : ........?
다정 : (고개 들고) 나 결혼 안하기로 했어. 나반석을 차버릴꺼야.
신영.부기 : ......(놀람과 의아) ?!
다정 : 그 사람 아버지 만나서 내가 무슨 소릴 들었는지 알어?
술잔을 탕, 탕, 탕 내려놓는 세 여자. 분하다.
다정 : (아직도 노여움 가득) 날 마치 무슨 불가촉천민 취급했어.
부기 : 숟가락 내던지고 손으로 먹지 그랬어요.
신영 : 그 얘길 왜 이제사 해. 너 며칠 동안 계산했지, 그래도 참고 이 남자를 잡을까.
다정 : 서른 넘은 게 죄야? 결혼 안한 여자들은 서른 넘음 다 죽어야 돼?
신영 : (자기 목을 조르며) 죽자 죽어! 으웩.
다정 : (가슴 터지는) 난 열심히 살았어, 노력했어, 인정받았어. 나름 훌륭해!
신영 : (목 조르며 구르는) 으웨엑!
다정 :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모욕을 당해야 돼? 결혼, 까짓꺼 안 하고 말지.
잔인하게 차버릴꺼야. 그 아버지가 무릎 꿇고 빌어도 내가 거들떠 보나봐라!
신영.부기 : (박수친다) 브라보!
다정 :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신영.부기 : .......(박수치던 손이 멈추는)...
부기 : 지금.... 뭐라고 하셨쎄여?
다정 : 나반석을 놓칠 순 없어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
부기 : 왜 이렇게 스스로 추해! 그 사람 아님 남자가 없어요?
다정 : (눈 내리깔며) 없어요.
신영 : 그러지말구 너 종교를 한번 가져볼래?
다정 : 부기씨는 날 한편 이해하죠? 당신은 그릇이 크잖아.
부기 : 그런 시아버지랑 가족으로 살 수 있겠어요?
다정 : 그러니까 도와달라는 거 아녜요. 그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할 아이디어를 주세요.
신영 : 나 같음 남자를 포기하겠다.
다정 : 우리 나이쯤 됐으면 악조건을 넘어서는 지혜를 배워야지.
신영 : 딴 남자 찾아, 그냥.
다정 : 나라고 그 생각 안 해 봤겠니? 그럼 또 얼만큼을 기다려야 되는데.
부기 : 내 판단에 지금 억지로 단념시키면 정다정 증세가 더 심해질 꺼야.
다정 : 그리구 또 어떤 폭탄을 안고 올지 알아.
부기 : 그건 정다정 말이 옳아. 지금 나반석씨의 조건에 착한 시부모님까지 있다쳐....
그럼 그 남자한텐 도박빚이 있을꺼야.
완벽한 건 주어지지 않아. 치명적 결함 한 가지는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인생의 숙제 같아.
다정 : 그러니까! 도박보단 까칠한 시아버지가 낫잖아요.
신영 : 도박에선 딸 때도 있지만 시아버진 어쩌라구.
(E) : 핸드폰 벨
다정 : (허걱!) 반석씨다. 어떡하지, 나 지금 아픈 걸로 돼 있는데.
부기, 다정의 울리는 전화를 뺏어 받는다.
신영, 술 마시며 ‘크아 좋다’.
다정, 신영을 보며 ‘쉬!’ 검지손가락 입술에 갖다 대고.
부기 : 여보세요, 나 선생님? 저는 정다정 친구 김부기라고 하는데요.
정다정이 아파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말부터 실신모드예요.
다정 : (더더 하라는 손짓)
부기 : .... 오후엔 의사도 다녀갔는데... 별 차도가 없네요.
열도 심하고 가끔 헛소리도 해요... 아버님 아버님 이러면서.
12. 신영 집 앞 / 밤
순진한 나반석 얼굴에 수심이 가득. 안절부절.
반석 : 그럼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야죠. 저 지금 집 앞에 와 있습니다. 당장 올라가겠습니다.
13. 신영네 거실 / 밤
신영은 관심 없다는 듯 고기 먹고 있다. 맛있게.
부기 : (수화기 막으며 소곤) 집 앞이래요. 지금 올라오겠대.
다정 : (놀라 손 내젓는)
부기 : 지금은 좀 그렇고 깨어나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반석 : 아침까지라도 기다리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부기 : (전화 끊고) 아침까지 기다린대요.
다정 : (감동) 어머 어쩜! 이런 남자를 어떻게 버려. 빨리 이거 치우자 우리.
신영 : 야! 싸 보여. 시간 좀 끌어.
다정 : 밖에서 기다린다잖아.
신영 : 너 노선 잘 잡아. 좀 튕기고 비싸게도 굴어야지 그게 뭐냐 홀랑.
기다릴수록 좀 더 간절해지는 심리를 알아야지. 그 나이 되도록 그걸 몰라?
(E) : 핸드폰 벨
신영 : (전화 받는다. 스윗하게) 응, 민재씨.
14. 학교 연습실 / 밤
민재, 통화 중.
민재 : 집 주소 알려줘요. 12시에 내가 집 앞으로 갈게.
신영 : 12시에?
민재 : 12시부터 우리 애인이잖아. 당장 보고 싶어서.
15. 신영네 거실 / 밤
고까운 듯 신영을 째려보는 다정.
신영 : 12시는 너무 늦고 그럼 아홉시까지 와요. 세 시간은 오프닝 보너스.
주소는 문자로 찍어줄게. 찾기 쉬워. (샤방샤방) 이따봐!
다정 : 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나더러 싸보인다고 안 했어? 튕기라고 안 했어?
신영 : (문자 찍는) 밖에서 기다린대잖아 빨리 나가 봐.
다정 : 아파서 누워있는 설정인데 나가긴 어딜 나가.
신영 : 그럼 이리 부르게? (급한) 나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 돼. 9시에 하민재 온단 말야.
다정 : (정색하고 꾸짖는) 첫 데이트에 뭘 할껀데 샤워를 해.
궁색한 티내서 노처녀 망신시키면, 너 나한테 죽어.
신영 : (기막힌) 허! 너야 말로 망신이다, 너야말로. 생각하는 거 하고는....
부기 : 조용! 나반석은 집으로 부르는 게 나아. 지금 여긴 고기냄새도 나고 치우려면 시간 걸리니까
정다정씨 우리집으로 가요.
다정 : 아! 그 방법이 있었네.
부기 : 빨리 일어나요. 이따 아픈 연기 잘할 수 있죠?
다정 : 기대하세요.
부기 : 넌 오늘 밤부터 데이트 시작이야?
신영 : 응. 열흘 카운트다운.
부기 : 니들 서른네 살에 이러구 살 줄 알았니?
신영 : 알았으면 미친거지.
16. 신영 집 앞 / 밤
반석, 서서 왔다갔다 안절부절.
부기 다정 숨어서 지켜보는.
부기 : 추운 데 밖에서 왜 저래.
다정 : (감동으로) 저런 남자를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겠어요.
부기 : (놀라) 숨어! 이쪽 본다.
반석, 두 여자 있는 쪽으로 시선.
다정, 부기 숨는다.
다정 : (숨은 채) 부기씨 뭐 아이디어 없어요?
부기 : 전화 줘봐요.
다정 : (건네준다)
부기, 다정을 끌고 신영 집 쪽으로 들어가고.
반석, 주머니에서 벨 울리고 전화 받는다.
반석 : (반갑게) 다정씨!
16-1. 신영네 집 / 밤
문 열고 후다닥 들어오는 다정과 부기. 욕실에선 샤워 물소리 난다.
부기 : 정다정 곧 깨어날 꺼 같아요. 그런데 딸기가 먹고 싶은가 봐요.
딸기라고 자꾸 잠꼬대를 하는데.... (다정에게 눈 찡긋)
다정 : (섹시하게 잠꼬대) 딸기.....아..... 딸....기.....
부기 : 좀 사다주실 수 있나요?
반석 : 그럼요! 당장 사오겠습니다.
16-2. 신영 집 앞 / 밤
반석, 뛰어간다.
다정 부기도 얼른 부기네 집 쪽으로 후다닥.
17. 욕실 / 밤
샤워부스 안, 미끈한 종아리로 흐르는 물줄기.
신영, 샤워중이다. 설렌다.
신영 : (콧노래 부르며 씻는) 열흘 동안 뭘 하면 좋을까? 호호호.... 랄랄라...
18. 부기네 거실 / 밤
부기와 다정, 바쁘다.
헐렁한 흰 면 잠옷으로(중세 유럽풍 면 레이스 잠옷 같은) 갈아입는 다정.
부기는 소파에 담요를 깔고 베개를 놓고 체온계를 던지고 비상 약상자를 놓고....
아픈 사람이 있던 자리처럼 꾸미는 중.
다정 : 좀 더 파인 건 없어요?
부기 : 찢어요, 그럼! (앞섶을 북 찢는다)
다정 : (가슴 가리며) 헉!
부기 : 수척해 보여야 돼. (다정 머리를 헝클며) 머리도 헝클어요.
다정 : (산발된 채) 흡! 어떡해. 머리카락에서 고기냄새 나요.
부기, 페브리즈 같은 탈취제 스프레이 대용량 용기를 양 손에 들고 헝클어져 있는 다정머리에 뿌린다.
(용기 안엔 물론 물을 담아서^^;)
다정 : (콜록콜록) 아.... 독해.....
부기 : 금방 날아갈 꺼예요.
다정 : 아 눈 따거. 인공 눈물 혹시 있어요?
부기 : 약 상자에 있어요.
(E) : 초인종 소리.
흰 그릇에 수북한 딸기.
다정, 아픈 듯 이불쓰고 누워 눈 감고 있다.
반석 : .....(옆에 앉아 걱정스런 듯 다정을 보며) 오늘은 다정씨가 왜 여기 있나요..... 원래 사는 집은 이 옆집....
부기, 차를 내온다.
부기 : (둘러대는) 아.... 이유없이 시름시름 아프길래... 혹시 수맥이 흐르나 하고 옮겨봤어요. 차 좀 드세요.
반석 : 감사합니다.
부기 : .....아버님 만난 날 무슨 일 있었어요? 그날부터 계속 아파요.
안 좋은 소리 들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고....정다정이 또 속이 깊거든요.... (하면서 다정을 보면)
다정 : (이불 살짝 들춰 부기를 향해 엄지를 세워준다)
반석 : 오늘 아버지가 병원으로 친구 분 딸을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내가 잠깐 자리 비운 새 다정씨한테 서운한 소리 하셨겠구나.
다정씨가 맘에 안 든단 표시를 이렇게 하시는구나.
부기 : (반석 얘기 들으며 다정을 보면 다정, 인공눈물을 자기 눈에 떨구고 있다)
반석 : 아버지가 성격은 좀 팍팍한데 정말 따뜻한 분이세요.
다정씨가 얼마나 자상하고 사랑스런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아마 업고 다니실 겁니다.
전 걱정 안하는데....
다정 : (힘든 목소리로) 반석씨.....
반석, 고개 돌려 보면 다정 힘들게 일어나 앉으며 눈물 그렁한 눈으로 반석을 본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애처러운 설정이 티 나는데 반석만 모른다.
반석 : (간장이 녹는) 다정씨이!
다정 : .........우리 헤어져요!
반석 :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정씨. 난 다정씨 없인 살 수 없어요, 이제.
다정 : (비련의 폐병 환자처럼) 아버님이 원하는 여자와 행복하게 사세요. 이젠 나를 잊고..... 콜록 콜록....
반석 : 다정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나 죽는 거 보고 싶어서 이래요.
다정 : 서른 살 넘은 저에게 처음 사랑을 느끼게 해준 반석씨....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반석씨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콜록 콜록...
부기 : 이러다 또 실신하겠네.... 그동안 몇 번을 울다 쓰러졌는지 몰라요.
반석 : (다정을 와락 껴안으며) 다정씨 그러면 안돼요! 나를 믿어요 다정씨. 다정씨랑 헤어질 수 없어요.
다정 : ........(반석에게 안긴 채 부기에게 윙크)
부기 : (엄지 검지손가락으로 오케이 싸인)
19. 신영 집 앞 / 밤
신영, 설레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민재, 차를 대고 집 앞에 서 있다 미소로 신영을 맞는다.
신영 : .......(가슴속에 꽃이 활짝 피는^^)....
민재 : .........(봄날 같은 마음)....
신영 : ...(마주 보고 서서)..... 뭐할까.
민재 : 뭘 특별히 해야 되나? 그냥 보고만 있어도 신나는데.
신영 : 그럼 이렇게 서서 밤샐까.
민재 : 자기가 원하면 그것도 좋아.
신영 : 보통.... 사람들은 영화, 밥, 커피... 이런 순으로 시작하던데. 좀 진부한가.
민재 : 여행은 어딜 가는가 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하잖아.
남들 다 하는 영화, 밥, 커피라도 자기랑 하면 다를꺼야. 나한텐 하나도 진부하지 않아.
신영 : 어른 같이 말하네.
민재 : 오빠잖아. (조수석 문 열어주며) 타!
신영 : 허! 오빠?
민재 : 뽀뽀하기 전에 빨리 타. (신영을 밀어 넣고 문 닫는다. 터프하게)
20. 영화관 / 밤
3D 안경을 쓰고 영화 보는 신영 민재. 손을 휘젓기도 하고, 고개를 피하기도 하고...
신영, 안경 너머로 옆 자리 민재를 본다.
신영 : .....(미소)
신영, 다시 영화로 시선.
민재, 안경 너머로 신영을 본다. 영화에 빠져있는 신영.
민재 : .......(미소)
팔걸이에 놓여진 신영의 손.....
민재, 살며시 잡으려 하는데 신영, 영화에 취해 손을 휘젓는다.
민재 : .........(픽 웃는).....
민재, 신영의 손을 잡는다.
신영 : ..........(민재를 보면)
민재 : (손잡은 채 영화만 보고 있는)
두 사람, 손 꼭 잡은 채 영화 본다. 똑같이 고개를 이리 피하고 저리피하며 웃는다.
21. 부기의 거실 / 밤
다정, 반석, 부기 마주 앉아있다. 다정은 힘든 듯 멍한 표정으로.
부기 : 요즘 여자들은 그래요. 자존심을 크게 다치면서까지 누군가를 택하려 들지 않죠,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이 아파도.
다정 : 내가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반석씨를 싫어해서가 아니예요.
반석 : 자꾸 헤어지자는 말 하지 마세요. 전 지금 숨을 못 쉬겠어요 다정씨.
다정 : ......(눈물 난다는 듯 과장되게 손으로 얼굴 가리며 고개 숙이고)
부기 : 이런 건 남자가 소신 있게 나가면 다 풀리는 일이예요.
반석 :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정씨, 염려마세요. 알았죠?
다정 : (누으며) 아.... 힘들어....
반석 : 내일 병원에 잠깐 들러요 다정씨. 내가 약 한재 지어드릴게요.
다정 : (힘없이) 네.....
반석 : (일어서며)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부기 : 안녕히 가세요.
반석 : 다정씨.... 잘 자요.... (수줍게) 사.. 사랑합니다.
반석, 부끄러운 듯 얼른 현관으로.
부기, 반석에게 문을 열어주고 배웅한다.
반석, 나가고 문 닫힌다.
다정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
부기 : 완벽한 연기였어요.
다정 : 아름다운 밤이예요.
22. 식당 / 밤
작고 소박한 식당.
김치찌개 보글보글 끓이며 먹고 있는 두 사람.
민재 : (국자로 국물 더 떠주며) 이 집 맛있죠?
신영 : 대박이야.
민재 : 연습 끝나고 밥 먹는 집이예요. 주인 할머니도 좋으시고.
신영 : 자주 오자, 맛있다.
민재 : 열흘 동안 자주 오면 얼마나 자주 오겠어. 백년으로 늘려주면 모를까.
신영 : 그 얘긴 하지말구.
신영의 핸드폰 진동으로 울린다.
민재 : 이 시간에 누구야.
신영 : (주머니 뒤적거리며) 누구긴 누구야.... 사고뭉치 노처녀들이지.
민재 : 딴 남자면 받지 마.
신영 : 남자 아니....(보면 발신자에 ‘국제전화입니다 008210.....’라 뜬다)...라니까....
(일어서며) 전화 좀 받고 올게.
민재 : 여기서 받지 왜 나가.
신영 : 여자들끼리 할 얘기도 있는거지.
신영, 얼른 나오며 전화 받는.
신영 : 여보세요.
23. 파리 카페 / 낮
커피 잔 앞에 두고 통화중인 상우.
상우 : 신영아! 오빠다. 잘 있지?
신영(F) : 응, 너는? 파리에 있지?
상우 : 응, 나도 잘 있어. 밖인가 봐?
24. 식당 앞 / 밤
통화중인 신영.
신영 : 응, 일이 좀 있어서.... 상우야, 미안한데 내가 열흘 동안은 정신없이 바쁠 것 같거든.
그래서 그동안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
상우 : 응 그래, 편하게 일해.
신영 : 상우야.... 정말 미안하다.....
상우 : 미안하긴. 참, 나 집 구했다. 아주 깔끔하고 맘에 드는데야.
신영 : 잘됐네.
상우 : 나도 이사하고 집 정리할려면 바쁠 것 같아.
신영 : 그럼 나중에 보자. 안녕.
25. 파리 카페 / 낮
상우, 커피를 한번 휘젓다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다시 든다.
잠시 망설임..... 문자를 찍는다.
상우(E) : .......파리는 오늘 날씨가 화창합니다.... 도배는 잘돼 가는지 궁금....
상우, 핸드폰 내려놓는다. 스스로 다짐하듯 중얼거리는.
상우 :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정신 차리려는 듯 고개 흔들며) 으.... 왜 이래 진짜.
26. 거 리 / 밤
신영, 민재 걷고 있다.
민재, 신영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코트(또는 쟈켓)속에 넣는다.
신영 : ...........
민재 : 겨울이라 좋다. 이렇게 걸을 수도 있고.
신영 : 토요일은 놀이공원 갈까.
민재 : 유치하게 무슨 놀이 공원이야, 애들처럼.
신영 : 그럼 뭐하고 싶은데?
민재 : 딴 남자는 못하고 나만 해 줄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생각해봤어.
신영 : 그랬더니?
민재 : 기타 가르쳐줄까.
신영 : 꺄오!
민재 : 좋아할 줄 알았어.
두 사람, 코트에 손 넣은 채 걸어가고.
민재 : 손이 참 부드럽네.
신영 :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
민재 : 나 질투심 많아. 다음부턴 그런 말 하지 마.
신영 : 봐서.
민재 : 나같은 남자가 어딨니. 자길 위해서 머리색깔 바꾸는 남자 지금까지 있었어, 없었어?
신영 : 당연히 없었지. 내가 이 딴 색깔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전까지 나한텐 새치가 없었거든.
민재 : 다음엔 새치머리 내가 염색해 줄게.
신영 : 영감탱이처럼 왜 그래.
민재 : (귓가에 소근) 널 좋아한단 소리야.
27. 벽지 가게 (또는 인테리어샵) / 낮
벽지 샘플을 펼쳐보는 상미. 화사하고 고운 빛깔을 이것저것 펼쳐 놓고 고르는 중.
상미, 활기 있어 보인다. (상우 만난 후부턴 활기있고 밝아진 상미)
상미 : (고르며 주인에게 이것저것 묻는) 이것도 실크벽지예요? 다른 샘플도 보여주세요.
(다른 벽지 손으로 쓸어보며) 정말 황토랑 숯 성분 들어간 거 맞아요? 그럼 몸에 좋은 건 이 벽진가?
좀 세련되고 깔끔한 거 찾고 있는데.
문자음.
상미, 백에서 핸드폰 꺼내본다.
민재(E) :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사랑해요 엄마.
상미 : .......
상미, 백에 핸드폰 넣는다. 벽지를 다시 보는데 또 문자음.
상미, 다시 꺼내 보면.
상우(E) : 파리는 날씨가 화창합니다... 바쁘심 도배는 천천히 해주셔도 됩니다. 돌아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미, 갑자기 귀에 샹송이 들리는 듯 하고..... 마음이 밝아진다.
봄꽃이 날리듯 환하게 웃는다.
28. 민재 원룸 / 낮
활기에 넘쳐 인부들에 지시하는 상미.
인부들 마실 쥬스와 간식도 한켠에 잔뜩 쌓여있다.
상미 : 터지지 않게 잘해 주셔야 돼요. 거기 스위치 있는 부분도 깔끔하게 신경 써 주세요.
인부1 : 비싼 벽지 고르셨네.
상미 : 네, 제일 좋은 벽지로 골랐어요.
29. 파리 카페 / 낮
반가운 문자음.
상우, 핸드폰을 본다. 도배지 바른 벽이 보인다.
상미(E) : 도배중입니다. 색깔 괜찮죠?
상우, 미소.
상우, 계속 멀티메일로 온 사진을 본다.
시간이 지나 화면이 꺼지면 다시 켜고 미소.... 사진 보며 중얼거리는.
상우 : 색깔 너무 맘에 들어요. 도배한 벽이 미치도록 보고 싶은 건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아... 나 이럼 안돼.
화면이 꺼지면 다시 켜고.
30. 민재네 원룸 / 낮
유니폼에 플라이트 백 든 상우, 들어온다.
깔끔하게 새로 도배된 집.
상우, 미소로 둘러보는데 벽 한 쪽에 형광빛 포스트 잇 3개 나란히 붙어있다.
하나 떼서 읽는 상우.
상미(E) : 파리 비행은 즐거우셨나요. 벽지 색깔 맘에 드셨음 좋겠어요.
상우 : 맘에 들어 죽겠습니다.
상우, 다른 걸 떼서 보면 식당 이름과 전화번호 적혀있다.
상미(E) : 이 근처 제일 맛있는 식당이예요. 식사 못하셨음 하세요.
상우 : ....... 감동입니다.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상우, 벽에 붙은 다른 포스트잇을 떼서 읽어본다.
상미(E) : 이 집에서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상우 : ......어떤 좋은 일이요?
상우, 미소.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상우 : 안녕하세요 저 윤상웁니다....
31. 카페 / 낮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우, 창가 자리에 예쁜 비닐백(또는 종이쇼핑백) 놓고 앉아있다.
상미, 걸어오다 창가에 앉아있는 상우를 본다. 긴장과 떨림...
상우, 상미와 눈이 마주치자 일어선다.
창밖에 서 있는 상미를 향해 웃어 보이는 상우.
상미, 미소 지으며 카페로 들어간다.
두 사람 서서 인사.
상미 : 잘 다녀오셨어요?
상우 : 도배 한 거 봤어요. 감사합니다.
상미 : 맘에 드셨다니 저도 기분 좋은데요.
찻잔 놓여있고 앉아있는 두 사람.
상미, 각설탕을 두 개 잔에 넣는다.
상우, 그 모습을 보다가 선물이 든 비닐백을 내민다.
상우 : 포장은 못했습니다.
상미 : 아니예요, 뭐 이런 걸....
상우 : 그래도 제 성의입니다. 받아주세요.
상미 : .......감사해요.
상우 : 성당 안에 낙서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한달전쯤 성당 대청소를 했다는데 아무래도 그 때 지워진 것 같아요.
상미 : (웃으며) 네....
상우 : 맘에 드셨음 좋겠어요.
상미 : 열어봐도 될까요.
상우 : 그럼요!
상미, 비닐 백에서 예쁜 빛깔의 에스프레소 잔 세트와 파스텔 톤의 예쁜 숄을 꺼낸다.
맘에 쏙 드는.
상미 : ........너무 예쁘네요...
상우 : 예뻐봤자 벽지 색깔만 하겠습니까.
상미 : (웃으며) 원래 그렇게 재밌으세요?
상우 : 저더러 재밌다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요. 제가 재밌어요?
상미 : 네, 엄청 재밌어요.
상우 : 감사합니다.... 선물은 맘에 안 드시면 다음 번 비행 때 바꿔다 드릴게요.
주인한테 다짐을 받고 왔거든요.
상미 : 불어를 잘하시나봐요.
상우 : 한마디도 못하죠. 또 주인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냥 다 바디랭귀지로 했어요.
상미 : (웃으며) 농담도 꼭 진담처럼 하세요.
상우 : 농담 아닌데... 진짜예요. 해볼까요?
상미 : 네!
상우 : 음.... 이걸 고른 다음에....이렇게 들고.... 헬로 무슈! 음... 이거 내 친구가 (인상 쓰며) 노,노,노.... 이러면
다른 걸로 (두 손으로 바꾸는 모션) 바꿔요. 응? 이걸 저걸로 바꿔 바꿔.
상미 : (큭큭큭 웃고 있는)
상우 : 거짓말 같죠? 정말 이랬다니까요.
상미 : 바꿀 일 없어요. 너무 맘에 들어요.
상우 : 다행입니다.
상미 : 잘 쓸게요. 파리에서 온 선물.
상우 : 나중에 빠리 가실 때 꼭 제가 모셔다 드리고 싶네요.
상미 : .......왜요?
상우 : 누군가를 가고 싶어하는 곳에 데려다 준다는 건 행복하고 벅찬 일이잖아요.
상미 : .....네... 그렇게 할게요. 데려다 주세요.
상우 : 저도 영광입니다.
상미, 쇼올을 걸쳐본다.
상미 : 이뻐요?
상우 : 너무 이뻐요.
상미 : (미소)
상우 : (미소)
32. 진찰실(야외) / 낮
침 꽂고 누워있는 다정.
반석 : 제가 약 한재 해드릴게요. 열심히 드세요. 아셨죠?
다정 : ........네.
반석 : 어제도 못 잤어요? 수척해 보여요.
다정 : 아뇨 반석씨 다녀간 뒤론 푹 잤어요.
반석 : 약은 내일 오후쯤 나올 꺼예요. 내가 직접 갖다드릴게요.
다정 : (아픈 듯) 나 이쪽이 좀... 땡겨요. 아....
반석 : (가까이 다가와) 어디요, 어디?
다정 : (반석 볼에 뽀뽀 쪽) 여기요.
반석 : .......(좋아서 헤벌쭉) !!
33. 한방병원 일각 / 낮
다정, 반석의 안내를 받아 진찰실에서 나오는데
반석의 아버지와 20대 여자 웃으며 들어오다 두 사람과 마주친다.
아버지 : .....(다정보며 불쾌한) 아니... 여긴 또 어쩐 일로...
다정 : ....(놀랐지만 공손히 인사) 안녕하세요 아버님.
반석 :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제가 병원으로 불렀습니다.
아버지 : 나이가 있으니까 몸이 안 좋죠....
다정 : ...........
아버지 : 제가 그날 부탁의 말씀을 드렸을텐데.... 막무가내로 나오시는군요.
반석 : 아버지.
아버지 : 댁이 어딘지... 댁 근처엔 한의원이 없습니까?
다정 : .... 죄송합니다. (공손히 인사하고 뛰어간다)
반석 : 다정씨!
다정 : (못 들은 척 뛰어가고)
34. 병원 일각 외진 곳 / 낮
아버지와 마주 서있는 반석.
반석 : 전 지금껏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실망했습니다.
아버지 : 나이많고 드센 여자 싫다는 게 널 실망시킨거냐.
반석 : 나이도 안 많고 드세지도 않아요. 제가 좋다는 여자한테 왜 말 함부로 하십니까.
아버지 : 이래서 아들은 키워봤자 헛거야.
반석 : 아버지, 다정씨랑 한번만 더 만나보시죠. 그럼 얼마나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인지 아실 거예요.
아버지 : 너야말로 양회장 딸이랑 한번 교제해 봐.
반석 : 자꾸 이러심 손자 먼저 만들어서 안겨 드릴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휙 돌아서 간다)
아버지 : 저 녀석이!
35. 레스토랑 / 낮
쥬스 쭉 마시고 숨 돌리는 다정. 흥분해 있다.
다정 :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나 포기할꺼야. 결혼 안해요.
부기 : .......(무심한 표정으로)
다정 : 방금 병원 갔다가 반석씨 아버지랑 그 분이 미는 여자 마주쳤어요.
부기 : 다정씨보다 어리고 이쁘던가요?
다정 : 인물은 나보다 딸려요. (분해서 말문이 막히는) 아후, 나 못 참아! 평생 혼자 살고 말지.
부기 : 다정씨... 지금 얘기 못들은 걸로 할테니까 마음 바뀌면 언제라도 말 해요 부끄러워 하지 말구.
다정 : (발끈) 안 한다니까요. 내가 괜히 미움 받으며 살 이유가 뭐있어요.
남의 아버지를 괜히 미워하면서 살 이유가 뭐있냐구요.
부기 : 나반석을 차면.... 지옥같은 기다림이 다시 시작될텐데?
다정 : (살짝 망설임 1초)... 그래두 안 해.
부기 : 다음번 남자는 더 큰 폭탄을 안고 올지도 모르는데.
다정 : .......(망설임 2초, 살짝 더듬으며 대답)... 아 안 해!
36. 거리 버스정류장 / 낮
다정, 식식거리며 걸어온다. 버스 정류장에 멈춰선다.
커다란 전광판이 있고 음성안내도 함께 나오는 정류장.
다정 : ......다 지워버릴꺼야.
다정, 반석의 전화번호를 삭제한다. 반석의 문자도 모두 골라내 삭제하는데
버스정류장에 켜진 전광판에선 올 버스 안내가 뜬다.
303번 1분 후 도착, 2028번 전 정류소 출발.....
안내(E) : 삼백..삼...번 버스가 전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이천 이 십팔 번... 버스가... 전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다정 문자를 삭제하다 고개를 들어 안내판을 바라본다.
다정 : ....나한테도 저렇게 알려줬음 좋겠다.... 다음에 누가 올지.... 그 사람은 언제 올지....
안내(E) : 다음에 올 남자는.... 진상...입니다. 돈 많은 처가를... 원.. 합니다.
다정 : ...........
37. 거리 / 낮
달리는 버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저 멀리 전광판에 근사한 남자 모습이 뜬다.
멋진 수트를 입고 머리를 매만져 넘기는 남자.
안내(E) : 그 다음에 올 남자는.... 마마...보이...입니다. 엄마는 빌딩이 세 채 입니다...
다정 : 따지고 보면 나반석만한 남자도 없는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전광판에 뜨는 또 하나의 남자.
인상 좋은 미남, 다정을 향해 웃어 보이며 손으로 키스를 날린다.
안내(E) : 그 다음에 올 남자는 완벽...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가진 남자... 천년.... 후에 옵니다.
다정 : (최근 통화 버튼을 누른다) 반석씨!
반석(F) : 다정씨! 지금 어디예요. 말해요 내가 갈게요.
다정 : 나 괜찮아요. 우리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꺼예요.
보고 싶어요. I love you so much. 안녕! (전화 끊는다)
38. 변두리 동네 / 낮
몸빼 바지에 털조끼입고 동네 아낙처럼 차린 신영과 작가 신미조.
신영, 카메라 앞에서 스탠드업 멘트.
미조, 반사판 들고 신영 비춰주고.
신영 : 저희는 얼마 전 명창 이갓난 선생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신영과 미조, 효찬 걸어간다. 손에는 귤과 막걸리 든 봉지.
신영(E) : 중요무형문화재 선정에서 제외된 후로 대중의 관심에서 안타깝게도 사라져 버렸죠.
저희 취재진의 전화에 자신은 이갓난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확인 결과 사실이었습니다....
39. 판자집 / 낮
신영, 미조 옹색한 집안으로 들어가며.
신영 : 할머님 계세요?
노파(E) : 구청에서 오셨수?
신영 : 아뇨, 새로 이사 온 집인데요... 떡을 좀 갖고 왔습니다.
미조 : 막걸리랑 화투도요.
40. 노파 방 / 낮
옹색한 방.
떡과 귤 한바구니를 놓고 신영 미조 노파 앉아서 고스톱 치고 있다.
신영 : 젊으셨을 때 미인이셨을 거 같아요.
노파 : ......다 부질없지.....
미조 : 목소리가 고우신데... 노래도 잘하셨죠?
노파 : ......노래는 좀 했지....
신영 : 조금만 불러주실 수 있으세요?
노파 : .......듣고 싶어?
신영 : 네!
노파 : 못 할 꺼 없지... (흠... 목청 가다듬는데)
이때 방문이 살짝 열리고 밖에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효찬.
노파 : (카메라 감지, 놀라서) 저거 뭐야.
신영 : (무릎 꿇고 고쳐앉아) 선생님.... 사실 저흰 UBN에서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릴 필요가 있단 상각에......
노파 : (소리를 버럭) 나가!
노파, 화투담요를 뒤집고 귤을 집어던진다.
신영과 미조, 귤 맞으며 방문 쪽으로 피하는데
노파 방안에 있던 양은 요강을 집어든다. 신영을 향해 내던지는데서 스톱,
놀라 소리치는 신영 얼굴에서 스톱.
신영(E) : 으아악!
41. 보도국 일각 / 낮
커피 놓고 둘러앉은 신영, 작가 신미조, AD 천희동, 효찬, 해진.
좀 떨어진 테이블엔 명석, 혼자 앉아 대본 체크하며 커피마시고 있다.
신영 : 예술가로서 무대 위에서 좋았을 때 모습만 기억에 남기고 싶으시대.
해진 : 내 그럴 줄 알았어. 자존심 때문에 숨은 분인데.... 이선생은 좀 더 공들여서 섭외하는 걸로 해.
희동 : 요강 맞은 건 괜찮으세요?
신영 : 투견 취재 때 개에 물린 것 보단 요강 맞는 게 깔끔해.
해진 : 청년실업을 테마로 잡아서 가면 어때?
신영 : 그거 좋다. 요즘 과외 알선해 주고 수수료 갈취하는 데가 엄청 많아서 대학생들이 많이 당한대.
희동 : 그 아이디어 하민재가 준거 아녜요?
신영 : 맞아.
미조 : 그런데 왜 우리 VJ로 안 뽑는건데?
해진 : 그러면서 아이디어는 왜 혼자 몰래 받는건데?
희동 : 둘이 뭔가 있는 것 같아.
신영 : 상상모에서 안놔주잖아.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 봐. 일하고 싶은 04학번으로 타이틀 갈까?
취업 힘들어서 휴학하고, 대학원가고, 성형수술하고...
미조 : 애쓰는 온갖 청년들 얘길 다 모아보면 되겠지?
신영 : 그렇지.
명석, 다가와 참견하는.
명석 : 열심이다?
신영 : 열심이죠.
명석 : 잘 해라. 좋은 시간 받았는데... 그 시간대 다른데선 별거 없으니까 잘하면 날로 먹겠다.
재채기만 한번 해도 20프로 나오겠네.
신영 : 저희 회의중 이거든요.
명석 : 수고하세요.
42. 부국장실 / 낮
마주 보고 앉아있는 부국장, 명석.
부국장, 좋아 보이는 골프 장갑 두 켤레를 만져보고 있다.
부국장 : 야... 이걸 어디서 구했냐.
명석 : 호주에 사는 친구한테 부탁했죠. 그거 끼고 나가심 공 잘맞을 겁니다.
부국장 : 고맙다. 날 풀리면 한번 공치러 가자.
명석 : 좋죠! (가다가 문득 생각난 척 돌아보는) 제가 이신영이를 좀 도와줘야겠던데요.
부국장 : 무슨 소리야?
명석 : 새 프로 맡아서 좀 어리버리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 팀을 좀 관리해주면 어떨까 싶은데...
아님 제 껄 다른 사람주고 이신영이껄 제가 맡거나.
부국장 : 이신영이 가만있겠어?
명석 : 회사의 공익이 우선 아닙니까. 제가 맡으면 좀 더 낫겠죠.
부국장 : 음....... 생각해 보자구..... (장갑 만지며) 야, 이거 부드럽다야.
43. 학교 연습실 / 낮
기타로 멜로디를 쳐보는 민재.
후배 : 멜로디 좋은데? 새로 쓰는 곡이예요?
민재 : 응.......
후배 : 형 요새 연애하지? 예전이랑 달라.
민재 : 어떻게 다른데?
후배 : 요새 쓴 가사를 보면 이젠 좀 뭘 아는 것 같아. 끈적끈적해.
민재 : 옛날엔?
후배 : 그땐 그냥 아는 척만 했구. 지금은 뭔가 있는 것 같아.
민재 : (웃으며) 그래?
기타를 치는 민재의 손.......... 신영의 손으로 바뀌며 연습실, 밤.
민재에게 기타 배우는 신영.
민재 앞에 다른(후배의?) 기타 들고 앉아있는 신영.
민재 : 일단 코드만 몇 개 알아도 잘 치는 것처럼 보이거든. 따라해 봐. 이게 C코드.
(코드 진행은 민재 편한 데로 알아서 가르쳐 주세요!)
민재가 치면 신영도 엉성하게 따라치고.
민재 : 왼손에 힘 살짝 빼고, 대신 정확히만 눌러.
신영 : (엉성하게 한번 치면)
민재, 기타 놓고 신영의 등 뒤로 와 코드 잡는 왼손을 제대로 잡아준다.
민재 : 오케이.... 해봐.
신영, 오른 손으로 줄을 튕긴다.
민재 : 잘 하네. 이것만 기억해서 해 봐.
민재, 다시 옆으로 가 기타를 맨다.
민재 : 지금 그 코드 그대로 가는거다.... 준비됐지?
신영 : 응.
민재 : 원투쓰리 포.
신영, 기타를 치고 민재는 그 위에 멜로디를 얹어서....
음악, 매력적인 기타선율로 넘어가면서.....
서로 시선을 주고 받으며 기타 치는 두 사람. 손가락이 틀려서 웃기도 하고.
민재,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하고 음이 틀려서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신영, 민재를 보며 미소 짓는다.
44. 보도국 일각 / 밤
신영,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쓰고 있다.
배가 불룩한 민재, 다가온다.
민재, 점퍼 안에서 호떡과 붕어빵을 한아름 꺼내 놓는다.
45. 방송국 일각 (둘만의) / 밤
MP3 같이 듣고 있는 신영과 민재.
46. 아이스크림 가게 / 밤
아이스크림 먹는 신영, 민재. 핸드폰으로 동영상 보고 있다.
신영, 머리에 밴드 매고 헤비메탈 락커처럼 고개 흔들며 엉터리로 소음만 내며 기타치는 모습.
둘이 보며 깔깔 웃는.
47. 신영 집 앞 / 밤
마주보고 서 있는 민재.
신영 : 늦었어, 얼른 가봐.
민재 : 들어가. 자기 방에 불 켜지는 것 보고 갈게.
신영 : 먼저 가는 걸 봐야 내가 편하게 들어가지.
민재 : 들어가라니까.
신영 :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가기.
신영민재 : 가위 바위 보!
신영, 가위. 민재 주먹.
신영 : 먼저 가 빨리.
민재 : 삼세판.
신영민재 :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계속 비기며 계속 되는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순서로 똑같이.
48. 반석네 거실 / 밤
반석, 열심히 청소기 돌리고 있다.
민재, 들어온다.
반석 : 넌 머리 좀 어떻게 할 수 없냐.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래 죽겠다.
민재 : 이 시간에 웬 청소야? 여자친구 와?
반석 : 짜식 눈치 하나는 빨라. 너 내일 찜질방에서 자야겠다.
민재 : 너무 진도 빠른 거 아냐?
반석 :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넌 어떻게 돼가?
민재 :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어.
49. 신영 방 / 밤
잠옷입고 앉아있는 신영. 탁상용 캘린더를 본다.
신영 : ......3일 남았다, 이제. (탁상 캘린더 잡으며) 제발 천천히 가줘.....
F.O.
50. 민재 원룸 / 낮
상우의 짐들, 정리 정돈돼 있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노출측정기가 한쪽에 놓여있다.
상우, 흠잡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보며 들쑤시고 있다. 스위치 올렸다 내렸다.....
상우 : 보일러도 쌩쌩하고 조명도 나간 게 없고... 블라인드도 깨끗하고....
뭐 이래..... 뭐 좀 하자가 있어야 될 꺼 아냐.....
불도 왜 이렇게 잘 들어와... 안되는데....아.... (하다가 딱!) 아!
상우, 통화중. 밝은 얼굴.
상우 : 안녕하세요. 윤상웁니다.... 저기.... 주차카드를 반납해주셔야 새로 발급이 된다고 해서요....
51. 대형 마트 / 낮
상우가 선물한 쇼올을 두르고 있는 상미. 밝은 얼굴로 통화 중.
상미 : 어머! 죄송해요. 지금 근처 마트에 있으니까 제가 금방 갖다 드릴게요.
상우 : (반가운) 마트에 계신다구요?
반가운 얼굴로 마주 서 있는 상우.
상미, 플라스틱 주차카드를 준다.
상미 : 지난 번에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주차는 어떻게 하셨어요?
상우 : 관리실에 말씀드렸더니 임시 스티커를 주셨어요.
상미 : 죄송해요. 괜히 여기까지 오시게 했네요.
상우 : 아뇨! 저도 필요한 게 많아서 마침 장을 보려던 참이었어요.
카트 밀고 가는 두 사람. (상우가 카트 밀고 상미는 옆에서 걷는)
식빵과 콘프레이크... 카트에 들어있다.
상미 : 이삿짐 정리는 다 하셨어요?
상우 : 이삿짐이랄 것도 몇 개 없어요.
상우, 칫솔 세트를 골라 던지는데
상미, 상우가 고른 걸 다시 집어 내고 다른 세트를 골라 놓는다.
상미 : 칫솔은 이게 훨씬 좋아요. 모도 부드럽고, 가격도 저렴하고.
상우 : 다른 것도 좀 추천해 주세요.
상미 : 뭐가 필요하신지 알아야...
상우 : 생필품 세트 일체요.
상미, 생수병 여러 개 골라넣으며.
상미 : 물은 이게 좋구요....
욕실 슬리퍼도 하나 넣는다.
상미 : 욕실 슬리퍼 사 놓는걸 깜빡했었어요. 이건 제가 사드릴게요.
상우 : 괜찮습니다.
상미 : 싸게 하나 생색낼려고 했는데.
상우 : 하하하... 그럼 두 개 사겠습니다. (하나 더 골라 넣고 카트민다)
상미 : (웃으며 따라가는)
수건과 침대커버도 고르는 두 사람.
“1+1 대잔치” 써있는 광고문구.
상미 : 운좋게 행사기간이네요.
상우 : 상미씨랑 같이 오니까 행운이 따르는데요. (총 쏘듯 가리키며) 럭키 상미!
상미 : .........!
상우 : ...(소심)....아....이름 부르는 게 실롄가요? 집 주인님이라고 부르긴 좀 이상하잖아요.
상미 : ....그런 칭찬 처음 들어봐요. 전 늘 제가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거든요.
상우 : 무슨 말씀이세요. (자길 가리키며) 상우, (상미를 가리키며) 상미!
원래 이름에 상자 들어간 사람들이 운이 좋아요.
상미 : (큰 소리로 웃는다)
상우 : 모르셨죠? 하하하...
상우, 웃으며 카트를 끌고 앞으로 간다.
저만치 가다 물건집으며 ‘이건....’ 말 시킬려고 옆을 보면 상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미, 아직 도 그 자리에 서서 웃음을 주체 할 수 없다는 듯 웃고 있다.
상우, 카트를 후진해 뒷걸음질 쳐간다.
상미 : (웃으며 카트쪽으로)
계산대 앞으로 오는 두 사람. 물건 꺼내 올려놓는데
캐쉬어 두 사람을 보고.
캐쉬어 : 사모님이 너무 미인이세요.
상우 : .....
상미 : .....
상우 :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지갑에서 카드 꺼낸다) 하하하.... 일시불로 하겠습니다.
쇼팽 백에 물건 담는 두 사람, 싫지 않은 묘한 분위기.
상우 : 장 보는 거 도와주셨는데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52. 카페 / 낮
마주 앉아 있는 상우, 상미.
커피 두 잔을 놓고 간다.
상우, 각설탕을 두 개 집어 상미 잔에 넣어준다.
상미 : ..........
상우 : 두 개 맞죠?
상미 : 어떻게 아세요.
상우 : 지난 번에 그렇게 드시길래....
상미 : ...죄송해요. 저는 몇 개 넣으시는지 못 봤어요.
상우 : 당연히 못 보셨죠. 저는 설탕 없이 마시니까요.
상미 : (웃고) 저도 여기 자주 오는데 어쩜 장보다 마주치겠는데요.
상우 : 댁이 여기서 가까우세요?
상미 : 네, 한 정거장 거리예요.
상우 : 지금 제가 들어간 집이요... 깔끔하고 혼자 살기 딱 좋은데
왜 여길 세 놓고 다른 데로 가셨어요? 그것도 바로 근처로.
상미 : 제가 이사간 게 아니라..... 아들이 있던 집을 뺀 거예요.
상우 : .......!!
상미 : 결혼을 일찍해서 대학생 아들이 있거든요.
상우 : ......결혼 안하신 줄 알았는데....
상미 : 제 나이 아시잖아요.
상우 : 그래두 저보다 어려보이고.... 또 뭔가 남달라 보이셔서...
상미 : 감사해요. 그런 칭찬 해주는 사람도 윤상우씨 밖에 없네요.
상우 : ........설마요.
상미 : 정말이예요. 상우씨 밖에 없어요.
상우 : ............
53. 마트 앞 / 낮
헤어지는 두 사람.
상우 :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상미 : 아뇨, 걸어갈게요. 불편한 거 있음 또 전화주세요.
상우 : ........네.
상미 : 커피 잘 마셨어요.
상미, 상우를 향해 웃어 보이고 간다.
상우 : ..........
상미가 멀어질 때까지 계속 보고 서 있다.
54. 민재 원룸 / 낮
장 본 쇼핑백 그대로 놓여있고 상우,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상미(E) : 제가 이사간 게 아니라..... 아들이 있던 집을 뺀 거예요.
상우 : (생각하기 싫다는 듯 엎드려 눕고)
상미(E) : 결혼을 일찍 해서 대학생 아들이 있거든요.
상우, 뒤척거리다 벌떡 일어나 앉는다. 전화를 들어 버튼 하나를 꾹 누른다.
신영을 만나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다른 데로 돌리고 싶은.
상우 : 저녁에 뭐해? 만나자 보고 싶다.
55. 보도국 일각 / 낮
신영, 통화하며 제보철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신영 : 내가 말했잖아 상우야. 열흘 동안은 정신없다구.
상우 : 열흘 지나지 않았어?
신영 : 뭐가 지나 아직 3일 남았어.
상우 : (간절) 집 앞으로 갈게 늦게라도 잠깐 얼굴 보자. 나 오늘 니가 너무 그립다. 얘기할 친구가 필요해.
신영 : 미안, 나 지금 일하는 중야.
상우 : 집 근처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새벽이라도 전화줘.
신영 : 내가 전화 할게. (끊는)
후배1, 다가오며.
후배1 : 선배 소문 들었어?
신영 : ?
56. 학교 연습실 / 낮
울상으로 앉아있는 신영.
민재 :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하지 말아요.
신영 : 태클이 그칠 날이 없어. 어떻게 준비한 건데 꼴도 보기 싫은 최선배가 팀장으로 온다는 거야.
그 여우가 대진표 보고 침 흘리는 거야.
민재 : 그 시간에 MBS에서 쎈 걸 준비한다는 소문을 그 분 귀에 들어가게 하면 어때? 사실인 척.
신영 : 차라리 그랬음 좋겠다. 적군이랑 붙는 게 더 낫지. 같은 진영 안의 독버섯보단.
민재 : 기 죽지 마. 자기 내 여자친구잖아.
신영 : .....(소심하게 주먹쥐며) 예스 아이 캔.
민재 :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마.
신영 : !! 왜?
민재 : 밤새 혼자 고민할 거 같아서. 오늘 우리 같이 자자.
신영 : (몸을 사리듯 두 손 모으며) !!!
57. 찜질방 / 밤
책 보며 나란히 엎드려 있는 두 사람.
신영, 민재가 읽는 책 표지를 들춰본다. 어려운 철학책.
신영 : 우와.... 이렇게 어려운 책을..... 재밌어?
민재 : 재미없어. 자기한테 근사해 보일려고 가져온거야. 아... 눈 아프다.
(책을 베고 눕는다. 한쪽 팔 내밀며) 팔베개 할래?
신영 : (팔베고 눕는다)
민재 : 우와... 생각보다 무겁고 아프다.
신영 : (벌떡 일어나 한 대 때리고)
목침베고 나란히 누워서 귤 먹는 두 사람.
신영 : 서른 넷이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아?
민재 : 별로.
신영 : 서른 네 살에 뭘하고 있을 것 같아?
민재 : 글쎄.....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신영 : 멋지네.
민재 : 마흔 네 살이 된 자기랑 같이 있고 싶어.
신영 : .........
신영, 민재 쪽으로 돌아눕는다.
민재도 신영을 보고.
신영 : 나 지금껏 한번도 그런 생각한 적 없는데....
내가 지금 스물 넷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으로....
민재, 신영을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
신영 : ..........
민재 : (신영을 안는다) 우리 이러구 자자.
두 사람, 안고 눈 감는다.
58. 찜질방 일각 / 밤
락카 번호표를 발목에 감은 상우의 발, 불가마에서 나온다.
손에 핸드폰 꼭 쥐고 있는 상우. 신영의 연락을 기다리는 듯 한번 쳐다 본다.
상우, 더운 듯 땀 닦으며 걸어간다.
어디쯤 누을까 두리번거리며 가는 상우. 가다가 놀라 멈춰선다.
깜짝 놀라 굳은 상우의 표정.
상우의 시선이 닿는 곳.
신영과 은발의 남자가 옆으로 누워 서로 다정히 껴안고 자고 있다. 옆엔 책과 MP3 귤껍질들 놓여있고.
상우, 믿을 수 없다는 듯 다가가 본다.
신영이다. 은발의 남자로 고개를 돌린다. 민재다.
상우 : !!! (놀람 충격)
상우, 너무 놀라 신영을 보고 꼼짝도 못하고 굳어 있는데
신영 뒤척하다 눈을 뜬다. 앞에 서 있는 상우와 두 눈 마주치는 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