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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송(삼상2:1-10)-2024.1.21
본문은 한나의 기도송입니다. 기도 형식을 띤 찬양이라는 말입니다. 잉태하지 못한 한나는 온갖 구박과 설움을 다 받고 살았습니다. 아이를 잉태하지 못함은 여인에게 크나큰 상처요, 아픔이었지요. 그런데 그 구박과 설움을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그것도 엘가나라는 지아비를 같이 섬기고 있던 브닌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자기 남편의 또 다른 아내인 것이지요.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이 있는 여인입니다. 그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동시킨 것입니다. 같은 여자로서 브닌나의 구박은 한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절기가 되어 성소에 올라 갈 때는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모멸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인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세월을 보낸 것이지요.
그러나 한나는 인내하면서 참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통곡하며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아들을 주시면 평생 그를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한나는 그가 서원한대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야했습니다. 속된 말로 아이 키우는 재미도 느껴 볼 여가도 없이 말입니다. 아이의 재롱을 볼 여유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녀는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종으로 바친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로 바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도는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사 주신 아들을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린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남의 이야기라서 편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척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갓 젖을 뗀 아이와 이별을 해야 하거든요. 소년기도 아니요, 청년기도 아닌 유아기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때가 엄마 품을 가장 그리워할 나이가 아닙니까? 한나 입장에서 아들을 드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키운 후에 드리겠다고 변명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한나는 젖을 떼자마자 아들을 데리고 실로의 성전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이 한나의 믿음입니다. 이는 마치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두말하지 않고 순종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상케 합니다. 한나는 아들을 얻은 기쁨보다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아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자기가 얻은 기쁨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으로 승화시킨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믿음과 한나의 믿음의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얻은 기쁨에 사로잡혀 아들만 보고 사는 여인이 아니라,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의 기도송은 최고로 아름다운 기도요, 찬송입니다. 한나의 신앙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도송이지요. 사실 본문 1절 서두에 ‘한나가 기도하여...’라는 표현 때문에 기도라고 볼 수는 있지만 실상은 노래 형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은율을 갖춘 노래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유사한 노래들이 몇 곡이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구약에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출15:1-18),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삿5:1-31), 다윗의 노래(삼하22:1-51), 그리고 신약에는 마리아의 노래(눅1:46-55)가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나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것은 한나가 삶속에서 직접 경험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훨씬 더 공감이 되고 감동이 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나 노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든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들이 없는 고통으로 인하여 자기가 받았던 서러움과 구박을 소재로한 노래이지만 모든 초점은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습니다. 노래의 초점이 어렵게 얻은 아들이 아니라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지요.
1절은 한나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연상시켜주는 구절입니다. 이 노래의 시작이요, 결론인 것이지요. 그는 1절에서 세 가지를 고백합니다. ‘자기 마음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이요, 자기 뿔은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다는 것이며, 자기 입은 구원을 인하여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녀를 높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한나의 일생에 기쁨의 원천이시오, 즐거움의 근원이시며, 높아짐의 원동력이시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나 노래의 표면적인 분위기는 잉태하지 못한 여인의 설움을 들으시사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특징은 왕이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갈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교회를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믿는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보게 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사무엘의 출생을 기점으로 해서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실 왕 다윗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한나 노래를 통해서 사무엘하22장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를 관통하여 보는 문이 열려야 합니다. 사무엘하22장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그중에 사무엘하22장51절은 다윗 노래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차적으로 기름부음을 허락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름 부으심을 예언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윗 왕에게 베풀어주신 구원 역사가 다윗 왕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까지 미칠 것임을 시사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나는 당시 사사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기름 부으심을 보았습니다(10절).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나 노래는 구속사적인 노래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함께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불러 일으켜주는 노래인 셈이지요. 이 노래는 에베소서5장19절의 말씀을 뒷받침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그래서 성령의 영감 받은 노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나가 노래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2-3절)
한나는 먼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노래합니다(2-3절).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모든 피조물과는 차원이 다르신 분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단순한 주권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인간도 나름대로는 주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주권입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만 소유할 수 있는 주권이지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주권이요, 무엇과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주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주권이 절대주권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 속에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들어 있고, 유일하심이 들어 있으며, 신실하심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다”. 이 문장은 세 문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세 가지가 없다는 부정 어법으로 되어 있지요.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 주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먼저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다는 말씀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흠과 점과 티가 없으시다는 말이지요. 거룩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속성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공의와 사랑에 있어 치우침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흔들림이 없고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이지요. 무엇보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이른바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만 거룩하십니다. 거룩은 아무에게서나 배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세상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 단어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배울 수 있는 단어요, 하나님께로만 볼 수 있는 단어입니다. 세상에 하나님보다 거룩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시77:13). 세상 무엇이 하나님보다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성자가, 어떤 성인이, 혹은 어떤 신이 하나님보다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한 성품의 기초가 됩니다.
또한 주밖에 다른 이가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천상천하에 하나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그렇고, 권세와 능력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천상천하에 독보적인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구원하심에 있어 주밖에는 다른 이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밖에 다른 이가 없다는 말씀은 사도행전4장12절의 말씀을 뒷받침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침이 없으십니다. 변덕이 없으시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민수기서23장19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께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같은 반석이 없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경험에서 나온 노래입니다.
이 세 가지는 오직 하나님만 갖고 계시는 유일한 성품에 대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성품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심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근거가 되는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욥36:4). 그분께는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지성을 강조하는 말인 것이지요. 시편139편1-4절을 보십시오. 그분께는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이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행동을 달아보신다는 말은 인간의 언행심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적인 특성과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한나는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3절). 의도적으로는 한나가 브닌나를 통해서 당했던 구박을 염두해 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지식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2)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4-8절)
한나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한나의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이심과 동시에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 역사에 개입하셔서 간섭하시고 경영하시는 분이시지요. 그분은 권능으로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용사의 활을 꺾기도 하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기도 하십니다(4절). 교만한 자는 꺾고 약한 자는 능력으로 일으키신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몸소 자기가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을 발하시면 유족하던 자들이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팝니다. 그동안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습니다(5절상). 또한 잉태하지 못한 여인들은 일곱을 낳을 것이고 많은 자녀를 둔 자들은 쇠약해질 것입니다(5절하). 모든 인생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한나가 믿는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요,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절부터 8절까지를 읽어보십시다. 세우기도 하시고 파멸하시기도 하십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내리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기도 하시고,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이시오,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렘33:2).
무엇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한나는 삶속에서 직접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삶의 현장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나의 노래는 잉태하지 못한 설움을 가슴에 안고 한맺힌 세월을 살아온 여인의 애환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운명을 역전시켜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 노래할 뿐인 것이지요.
한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뿔이 높아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셨고,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녀의 간구하는 소원을 들어주셨으며 그녀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주신 것입니다. 그녀의 뿔을 높여주셨다는 말이지요. 그녀가 낳은 아들 사무엘은 당대에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자연적으로 한나의 이름이 존귀함을 받은 것이지요. 한나의 뿔을 높여주신 거예요. 그런데 한나에게만 그런 하나님이십니까? 아닙니다. 한나의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그런 방식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결국 한나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우주적인 통치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만물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9-10절)
한나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악인들로 하여금 잠잠케 하실 것입니다(9절). 마치 흑암 중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힘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부서뜨리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우뢰를 내리사 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나의 하나님은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한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악한 세력에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한나는 자신의 힘으로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한나의 뿔을 높여주신 것입니다. 한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고통을 평강으로 바꾸어주신 것이지요. 마치 룻기서에 나오는 나오미의 괴로움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한나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시오, 심판자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공의와 공평으로 나라를 다스릴 왕을 세우실 것이라는 말입니다(10절). 그에게 힘을 주실 것이고, 기름을 부어 주실 것이며, 그의 뿔을 높여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굉장히 파격적인 선포입니다. 당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예언이었던 것이지요. 왜냐면 그들은 한번도 왕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아무도 왕을 꿈꿔 본 적도 없었을 때입니다. 당시는 사사시대였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한나의 입을 열어 왕정시대의 청사진을 공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입을 열어주신 것이지요.
당시 한나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내다볼만한 예언가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닙니다. 유력한 정치인도 아니요, 명망 있는 세도가도 아닙니다.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무명의 한 여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이름 없는 여인의 입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측할만한 예언이 나오다니요? 그것은 성령이 그녀의 입술을 주장하사 그런 고백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나의 입을 열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장차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지 청사진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지요. 장차 왕정시대가 열릴 것임을 보여주신 거예요.
그래서 사무엘서는 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책입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무엘의 등장과 함께 사울왕의 몰락과 다윗왕의 등장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는 이스라엘 왕으로서 영원한 모델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표로 보여주는 다윗왕조를 다루고 줍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서막을 한나가 노래를 통해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의 노래는 구속사를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사실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사사시대의 막이 내리고 왕정시대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가교역할을 한 것이지요.
한나는 이미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실 왕을 본 것입니다. 그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본 것이지요. 물론 역사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다윗 왕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지만, 이는 장차 우리 가운데 오실 메시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다윗왕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요, 망원경으로 보면, 메시아 그리스도의 나심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나라는 지극히 볼품없고 연약한 여인을 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고전1:27-28).
한나는 이스라엘 역사의 분기점에서 장차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나아갈 좌표를 제시해준 셈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나의 기도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한나의 노래를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하나님이신지 분명한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화답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과연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한나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신지요? 이제 우리 모두가 한나처럼 자기 신앙을 분명히 고백할 때입니다. 한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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