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26>
“저, 여기
있습니다.”
수필가 김 병호
9988234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죽자.”는 이 작자미상의 숫자로 된 신조어가 노령화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죽음복의 핵심은 9988일까? 234일까? 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것 인가?
아니면,
2~3일만 아프다가 죽자 인가?
새해
문안인사차, 이웃동네 어른께 전화를 드렸는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물어보았지만 별일 없다고만 하였다.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 아내와 함께
들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현관에서 넘어져 무릎과 허리를 다쳤다면서 누워
계셨다.
“병원에는 가 보셨어요?”하니 “내가 이러니 어떻게 가봐. 어제 오늘은 못 갔지.”하신다.
나는“병원에 가서 다친 데를 치료 받으셨느냐?”고 물어 본 것인데,
그 어른은 “다치고 나서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아내를 면회 가지 못했다”고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어르신은
금년에 여든 여섯이 되셨다. 나와는 12살 위, 띠 동갑이다.
한국전쟁시기에
서울대학을 나왔고, 젊어서는 국가산업훈장을 탈 정도로
섬유업계의 쟁쟁한 경영인이셨는데,
노년에
큰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둘째 아들은 외국기업 해외지사에 나가있고,
셋째 아들은 서울에서 사업하느라 바쁘다보니,
은퇴 후에는,
함께 살 자식이 마땅치 않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전원마을로 귀촌하였던 것이다. 그 때가 환갑 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르신
내외분은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기에
이웃사람들은 누구나, 노년에 과감히
귀촌하여 신혼처럼 제 2의 인생을 누리시는
두 분의 모습을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두
분의 행복은 3년 전 어느 겨울날 아침, 갑자기 쓰나미를 만났다.
평생의 착한
내조자요, 동반자이던 부인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어르신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간 우리 내외는 급히 119에 연락하여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엠블런스에
실릴 때 까지만 해도 허리와 골반의 통증을 호소하였을 뿐,
의식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 정도면
통상적인 낙상정도로 생각했는데, 환자는 병원에 도착한 이후,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고 뇌출혈도 뇌경색도 아니라는 검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1년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 후,
요양병원으로 옮겨서도, 또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지나간
3년 동안 어르신의 부인에 대한 간병은 지극하였고 감동의 순애보였다.
간병인을 따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8시
반이면 병원으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아내를 돌보다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에
어르신의 체중은 10킬로나 줄었다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그런 정성때문인지
작년 여름부터 환자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말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를 보시자 어르신은
“며칠 전부터 환자의 간수치가 정상에서 수십 배나 올라갔는데,
원인이
통증치료제 때문이라더군.
이젠 진통제를 쓰면 간이 견디지를 못하여 한두 달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 하고,
진통제를
끊으면 당장 통증을 견디지를 못하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의사가 의견을 묻더라.“ 면서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제는 간이
망가지는 걸 걱정하실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통증이나 없도록 진통제를 사용하게 하세요.
이제는 더
살려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시고 고통이나 적게 받다가 돌아가시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냉정한 나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어르신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지나온 평생을
남이 부러워하는 삶으로 살았다고 해도,
내일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를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니
어쩌랴? 하늘의 뜻으로 이 세상에 순례자로 파견된 우리는,
오늘하루
아프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다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 “아무개야, 너 어디에 있느냐?” 하고 찾으시면
“예, 저
여기 있습니다.“하고 순순히 따라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버타임즈
독자 여러분~ 을미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9988의 과신과 234의 과욕을 버리고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살아 육신에는 건강이, 마음에는 평화가, 영혼에는 자유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99까지는 아니더라도 234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어느듯 형제님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게 됩니다.
매달 이렇게 글을 쓰시기 쉽지 않을텐데
좋은 글을 올려 주심에 감사합니다.
또한 좋은 이웃이 되어 생활하시는 모습
너무 좋아 보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할께요.
베로니카님, 감사합니다.
제 글을 기다리는 애독자가 게시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되는지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실버타임즈>신문은 노인복지를 위하여
전국 노인복지 시설과 복지기관으로 배포되는 사회복지재단의 월간신문이며
<세상사는 이야기>는 3년째 쓰고 있는 저의 고정 칼럼 입니다.
그러니까요.
자랑스럽고 존경합니다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