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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지도에 아직도 일본해로 표기된 동해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
유엔의 공식 문서에도 왜 우리의 지명은 없나
외교 현장에서 바라본 미국과 일본관계
무조건 일본편을 들어주는 미,영국의 방해
<우리나라 문서와 지도에서만 독도,동해로 표기 되어 있을 뿐 국제기구의 문서나 지도에는 아직도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는 다께시마(竹島)로 표기되어 사용되고 있다. 외교현장에서 동해를 일본해와 병행 표기하자는 제의가 유엔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8년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에서이다. 그러나 피맺힌 한국의 외침은 그 회의에서도 일본의 전사적인 공세와 미국과 영국이 편파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주므로서 전체 회의에서 표결도 하지 못하고 현제까지 당시의 회의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글은 한국의 초대 기후변화대사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며 기후변화 관련 유엔 활동에 참여했던 정내권(사진) 전 기후변화대사가 유엔현장에서 몸으로 눈으로 논리로 미국,일본등 선진국들과 1당 백으로 분투하며 논쟁을 펼쳤던 현장의 소리 <기후 담판>에서 옮겨왔다. 전문성과 지속적인 외교현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국가관을 지닌 정신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한없이 부족한 외교력을 키우기 위해서 국민,정부,전문가들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득하기 위해 이글을 옮긴다.>
‘동해’ 지명은 아직도 일본해로 표기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UN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유엔 통계위원회에서 매 5년마다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회의로, 국제적으로 지명 표기를 통일해 나가는 중요한 자리다. 우리나라는 1993년 8월 개최된 제6차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부터 동해의 명칭을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변경하거나 최소한 일본해라는 명칭과 병기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우리 주장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 건이 공식 의제로 다루어지는 것조차 원천 봉쇄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1998년, 제7차 회의를 앞두고 일본은 이미 우리가 지난 회의에서 ‘동해’ 표기 문제를 제기했던 만큼 이 주제가 다시 논의될 것에 대비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뉴욕 유엔 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외교부 본부로부터 서울에서는 실무 담당 사무관 1명만을 출장시킬 것이니 실무협상 대표로 참석하여 동해 문제를 적극 제기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이미 1991년에 개최된 북서태평양해양보전회의에서 동해 명칭 문제로 일본과 정면 대립한 경험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199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북서태평양해양보존회의 문서에 일본해표기가 등장한 것이 중앙 일간지들에 자극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부가 매우 곤혹스러워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나는 1991년 10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동 회의의 준비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동해 문제를 분명히 제기하고 기록을 남겨놓아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유엔 본부에서 다시 나와 동해 문제의 끈질긴 인연이 이어진 셈이다. 나는 유엔을 무대로 삼아 북한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동해 표기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표결 대결을 주장하여 일본을 잔뜩 긴장시켰으며, 그로 인해 유엔 본부의 미국, 영국 대표들까지 비상 출동하게 만들었다.
일본에게는 악몽 같았고, 나에게는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일본에게 찬반 투표 대결 요구로 급습
1998년 1월 22일 제7차 지명표준화 회의 마지막 날 전체회의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발언하였다.
“의장, 본 대표단은 결의안 초안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서 합의하여 전체회의에 상정한 바 있는 ‘공해의 명칭에 관한 결의안’을 즉각 본회의 의제로 상정하고, 동 결의안의 채택 여부를 표결로 처리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일반적으로 UN 협상에서는 아주 불가피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모든 결의안 채택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표결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관례다. 그중에서도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는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별로 급할 것 없는 문제를 다루며, 때로는 따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기 때문에 다자 협상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는 표결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공해의 명칭에 관한 결의안에 대해 표결 처리를 요청하자 차분하게 진행되던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장에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한국 대표가 표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일본 대표는 표결만은 절대 안 된다고 결사 저지하려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우리나라에게는 북한이 우리편을 들어 줄 것을 인지했기에 승산이 있었다.)
동해 대신 공해로 우회적인 공격 결의안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는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더 많이 쓰이는 ‘동해’의 명칭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계기마다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하고 있었다. 유엔에서 사용하는 지도를 포함하여 많은 지도들이 ‘일본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1992년 8월 제6차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부터 ‘동해’ 표기, 적어도 ‘일본해/동해’ 두 개의 명칭이 병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해’라는 표현은 우리가 국권을 상실한 시기에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국제수로기구 IHO에 통보된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국권회복 차원의 문제에 해당했다. 국내에서는 외교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지리학 전문가 차원에서 1994년 11월 동해연구회가 설립되어 국제적인 관심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국제적인 공식 논의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는 것이 난관에 부딪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동해’ 표기 문제를 제기하는데 대해 일본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본해’ 표기에 대해 어떠한 문제 제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한국이 ‘동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의제 상정 자체를 봉쇄하거나, 토의를 거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결의안들이 아주 단순하고 동일한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국가가 다른 지명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우선 합의 도출을 위해 상호협의를 해야 하며, 합의 도출이 불가한 경우는 복수의 지명을 병기하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상식적인 내용이다. 우선 관계국 간에 상호 협의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복수의 명칭을 병기하라는 것. 이거야말로 우리가 주장하는 바와 일치하는 내용이 아닌가.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도 우선 상호 협의를 하자는 것이고 그래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기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동해’와 같은 공해公海에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결의안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공해에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결의안이 있다면 그 결의안을 근거로 상호 협의와 병기를 요청하면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공해의 지명 표준화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결의안이 없었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해에 관한 결의안이 없다면 우리가 그러한 결의안을 제안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산맥, 호수, 강 등에 대한 결의안처럼 ‘공해’에 대해서도 우선 상호 협의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기하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제안하고, 그것을 근거로 ‘동해’의 지명표기 문제 해결에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일본 대표가 눈을 부릅뜨고 회의장을 지키고 있는 한 ‘동해’라는 명칭을 직접 언급하면서 국제 표준지명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동해를 언급하지 않는 ‘공해’ 지명표준화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 결의안을 근거로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요구하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즉시 7차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 의장을 담당하고 있던 남아공 대표를 접촉하여 내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였다. 그 의장은 우리 동해연구회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어 동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있는 국제 지명표준화 분야 전문가였다.
그는 나의 얘기를 듣더니, ‘이제 드디어 비밀열쇠를 찾았군’ 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반응하였다. 그리고는 결의안 초안을 만들어 오면, 초안 검토위원회에 제출되도록 해주겠다고 선뜻 나섰다.
네덜란드가 대신 결의안을 제출해주다
내가 기존 결의안들을 참조하여 공해에 관한 결의안 초안을 만들어 가지고 가니, 의장은 공해(high sea)라는 표현을 “어느 국가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해양 형태(standardization of maritime features beyond any sovereignty)의 지명표준화라고 표현을 수정하여 주었다. 이 수정은 동해가 ‘공해’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음을 감안한 배려였다. 바다는 영해와 공해로 나누어지지만, 이외에도 200해리까지 연안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배타적 경제수역 EEZ’이라는 수역이 있다.
동해의 경우 연안국인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상호 중복되고 있어서 어느 나라의 배타적 권한도 미치지 않는 차원에서 공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따라서 ‘공해’라고 할 경우 동해가 공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었다. 동해의 지명표준화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해’라는 표현보다는 좀 길고 생소하지만 “어느 나라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해양”이라는 표현이 우리 입장에서는 보다 적절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동 초안을 ‘공해’ 명칭에 관한 결의안 초안이라고 하겠다.
미국과 영국의 맹목적인 일본지지
나는 개회하자마자 초안 배포를 누락한 사무국의 책임을 추궁하고 즉각 해당 초안을 배포할 것과 일본이 굳이 반대할 경우에는 해당 초안에 대해 표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해당 초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초안 자체의 배포와 표결에 반대하였다. 이렇게 본회의장에서 공방이 길게 이어지자 일본 대표부의 차석대사까지 현장으로 달려 나왔으며, 결국 당시 일본 대표부 대사가 우리 대사에게 이 건에 대한 표결을 중단하여 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전개되었다. 평소 나와도 잘 알고 지내며 친분이 있는 미국 대표부 공사가 급하게 열띤 공방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는 내게 직접 다가오더니,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워싱턴에서 지시를 받았는데 현재 논의되는 사안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일본을 지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미국은 표결을 하게 될 경우 무조건 일본을 지지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표결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까지 밝혔다.
미국 대표는 다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가 국무성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공사도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영국은 일본을 지지할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미국, 영국이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개인적으로 직접 얘기를 한 것은 나에게 그만 적당히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미국은 즉각 다른 회의장에 있던 직원으로 하여금 달려가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본을 지지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것도 말단 실무 직원이 아니고 공사 직급의 고위급 미국 대표가 일본을 지지하고 나서니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은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도 일본 입장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의 미국과 일본사례
순간 나는 1992년 6월의 리우 지구정상회의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 미국은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 가능한 소비패턴(Sustainable Consumption Pattern)”의 안건 채택에 반대했다.
지구환경 파괴의 원인에 대해 선진국은 개도국들의 ‘지속가능 하지 않은 생산패턴(Unsustainable Production Pattern)’이 문제라고 개도국의 책임을 추궁한 반면,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의 과도한 낭비적 소비가 지구환경 파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립하였다. 회의 막바지에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이라는 주제로 ‘생산’과 ‘소비’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지속가능하게 추구해야 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American lifestyle is not up for negotiations)”라는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선언에 따라 결사반대를 고집했다. 그때 미국의 주장에 유일하게 끝까지 찬성, 동조한 것은 오로지 일본 한 국가뿐이었다. 해당 사안이 백악관 승인 사항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버티던 미국 대표는 회의 마지막 순간 미국에게 집중된 압력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미국, 아직도 반대냐, 아니면 찬성이냐?”라는 의장의 최후통첩성 추궁에 그간의 반대를 철회하고 합의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회의장의 모든 시선이 일시에 일본 대표에게 쏠렸다.
사실 선진국 중 1인당 자원의 소비가 가장 적은 일본은 지속가능 소비패턴 문제에 대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별다른 자신의 논리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입장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장이 일본 대표를 쳐다보면서 “일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일본 대표는 대답을 못하고 당황한 채 뒤를 돌아다보면서 경황이 없었다.
문제는 미국이 이 건에 대해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바꾸면서 미처 일본에게 자신들의 입장 변경에 대해 통보하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일본 대표가 답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은 미국 입장에 따라 맹목적 반대를 해왔다는 것을 만천하에 그대로 보여주었다. 의장의 거듭된 추궁에 당황한 일본 대표는 너무나도 겸연쩍게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발언해버렸다.
“미국이 찬성이라면, 일본도 찬성”이라고.
순간 긴장감이 넘치던 회의장에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다들 일본의 이러한 어이없는 답변에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주권국가 대표로서 참으로 민망한 장면이었다.
공해 결의안 의도를 간파한 일본 외교의 순발력
일본에 대한 무조건 지지를 표명하는 미국 대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 이것이 그때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일본이 받은 수모에 대한 미국의 보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가나 아크라 기후 협상장에서 일본 대표가 한국, 싱가포르, 멕시코 등을 향해 미국 입장을 대변하여 선진국의 의무를 수락하라고 도발했던 장면도 오버랩 되었다. 이후로도 미국, 일본, 영국 대표를 상대할 때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다. (2008년 8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유엔 기후변화 협상장에서 일본 대표가 사전 논의도 없이 한국,멕시코,싱가포르를 거론하면서 ‘선진국의 감축의무를 부담하라’는 진주만 공습과 같은 공개적 발언에 대해 즉각적으로 정내권박사는‘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에 걸맞는 목표치를 우선적으로 일본이 발표하라’고 반격하자 환경단체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일본이 미국의 편에서 선공격한 사례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표결이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의도적으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물러설 때 물러서더라도 최대한 밀어붙여두겠다는 심산이었다. 일본, 미국, 영국, 한국, 북한까지 열띤 공방에 참여하자 지명표준화 회의장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었다.
아마도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 사상 이렇게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유엔 대표부로서도 이렇게 불의의 일격에 당황하고 미국, 영국 등 우방국들에게 체면 불구하고 허겁지겁 절박한 긴급 지지 요청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일본 외교부 본부의 충격은 상당했을 것 같다.
뉴욕 시간으로 늦은 밤에 사무국을 접촉하여 인쇄에 들어간 초안을 빼내야 하니 일본 대표부로서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사무국 담당국장에 연락하여 그러한 조치를 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일 수는 없다.
나도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ESCAP의 환경국장을 해봐서 알지만, 일반적으로 사무국의 국장 정도 되면 이만큼의 무리한 요청에 쉽게 응할 이유가 없다. 이미 회의의 정식 절차에 따라 인쇄에 들어간 초안을 왜 자신이 개입하여 문제 소지를 만들겠는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 대표인 내가 펄펄 뛸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당 초안을 인쇄 중간에 빼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사무차장이 일본인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이 지독히도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정작 내가 놀란 것은 도쿄의 일본 외교부가 수많은 초안들 중에 해당 초안을 콕 집어내어 그 의미를 간파하고 외교력을 총동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로 기민하게 대처하였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해 명칭 논의 기록조차 삭제 시도한 일본
미국, 일본 및 이에 동조하는 몇몇 선진국들이 해당 초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대면서 초안 표결에 반대하고 나섰다. 초안에 대해 전문가 회의 등에서 좀 더 논의 검토하고 차기 회의에서 처리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표결을 지지하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표결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이러한 토의 내용이 회의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차기 회의에서 동 초안이 충분히 논의되고 채택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나의 발언을 지지하는 나라는 북한 밖에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후 이 건에 대한 후속 논의가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초안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반대에 막혀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열띤 공방 속에서 단 한번도 ‘동해’라는 명칭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해’라는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은 채 ‘공해’라는 허깨비만 난무한 한바탕 소동이었지만, 동해 지명표기 논의에 있어 가장 급박했던 분수령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해 명칭 초안을 둘러싼 공방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회의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결의안 초안의 인쇄까지 중간에 빼낸 사무국이 영 미덥지 않았다. 본회의에서의 열띤 공방에 대해 회의 보고서에 정확히 반영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함께 일하는 담당 서기관으로 하여금 사무국의 녹취 담당 부서를 접촉하여 본회의 토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확보토록 하였다.
내부 참고용이지 외부에는 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을 빈 테이프를 사다주면서까지 가까스로 구해서 잘 보관하였다가 후임에게 인계하였다.
1년 후인 1999년 2월, 나는 국내로 돌아와 외교부의 환경 심의관으로 귀임하였다. 그때까지 회의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회의 보고서가 1년씩이나 나오지 않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고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후임에게 녹취 테이프를 인계하면서 지금까지 회의 보고서가 나오지 않는 것이 미심쩍으니, 회의 보고서가 나오면 즉시 이 테이프의 내용과 비교하여 내가 요청한 대로 차기 회의에서 동 건을 논의하고 채택하기로 하였다는 점이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할 것을 당부하였다.
나중에 들으니 아니나 다를까, 사무국이 배포한 보고서에는 본회의에서의 공해 초안에 대한 논의 내용 자체가 완전히 누락되었다고 한다. 녹취 테이프를 근거로 보고서의 수정을 강력히 요청한 후에야 겨우 공해 초안 논의의 전말이 어느 정도 보고서에 반영되었다. 만일 그때 내가 힘들게 녹취 테이프를 구해놓지 않았으면 ‘공해’ 초안을 만들며 고군분투 하였던 모든 노력이 아무런 기록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
일본 입장을 대변하는 유엔 법률국장
이후에도 나는 동해 표기 문제로 유엔 사무국의 법률국장과도 설전을 벌였다. 당시 우리 입장은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주요 지도 제작사들을 접촉하여 동해 표기를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엔 대표부 차원에서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유엔에서 사용하는 유엔 지도에 ‘일본해’ 명칭이 쓰인 것이었다.
우리가 민간 지도 제작사들에게 동해 표기를 요청할 때는 우리 주장의 역사적 타당성, 과거의 동해 표기 사례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유엔 지도에 동해 표기를 요청할 때는 이런 식으로 이해를 구하는 방식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법률국장을 만난 우리 담당 공사는 일단 동해 문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대해 법률국장은 유엔 사무국의 입장에서는 지명 표기 문제가 정치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사무국은 중립을 견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미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사무국의 입장을 양해해달라고 우리를 타이르듯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유엔 지도는 유엔 회원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엔 회원국 자격으로 당당히 유엔 지도가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여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유엔 회원국의 기여금으로 월급을 받고 유엔 회원국의 입장을 존중하여야 할 유엔 사무국의 법률국장이 회원국 대표에게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반박하였다.
“동해 표기 문제는 이미 회원국 간에 이견이 있는 만큼 사무국이 어느 한편의 견해만을 유엔 지도에 반영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중립적인 것이 아니며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정치적 행동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해를 고수한다는 설명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더구나 유엔의 지명표준화 결의안들은 이견이 있는 경우 병기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유엔 사무국은 회원국의 입장을 경청하고 회원국의 입장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회원국이 사무국의 입장을 양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엔의 정식 회원국인 한국의 대표로서 당신이 요청한 사무국의 입장을 양해해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법률국장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엔 지도의 작성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주기 바란다.” 이러한 나의 강경한 발언을 들은 법률국장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나에게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아쉽게도 나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엔의 지도에 우리의 입장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대사 정내권의 저서‘기후담판’중에서-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경영학 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