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1700년(숙종 26) 동계(東溪)가 편찬한 〈범어사창건사적 梵魚寺創建事蹟〉에는 신라 흥덕왕(826~835 재위) 때 의상이 화엄신중기도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자 왕이 매우 기뻐해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702년에 죽은 의상이 흥덕왕 재위기간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범어사의 창건 연대는 의상이 당에서 귀국한 670년 이후 생존기간의 어느 때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서 의상이 창건하고 그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다는 범어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현감(玄鑑) 등이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어 중창한 이래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범어사는 산의 지형을 이용해 제일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을 세우고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중심으로 당우를 건립해 전체적으로 3단을 이루는 산지가람 배치로 되어 있다.

범어사 당간지주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5호
어산교와 일주문 사이의 오른쪽 숲 속에 있다. 절의 법회나 행사를 알리는 일종의 현수막을 달기 위해 높이 세운 두 개의 기둥이다. 이 사이에 행사의 제목을 맨 깃대, 곧 당간(幢竿)을 세워 멀리서도 보이도록 하였다. 지금은 당간은 없고, 두 개의 지주(支柱)만 남아있는데, 양쪽 모두 가로 50㎝, 세로 87㎝, 높이 450㎝이고, 지주의 간격은 79㎝이다. 기단부(基壇部)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자리는 원래 조성했던 곳이 아니라 언제인가 옮겨온 것으로 짐작된다.

범어사 조계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조계문은 곧 일주문 역할도 하는데, 1614년(광해군 6) 묘전 스님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처음 지었고, 그 뒤 1718년(숙종 44)에 명흡(明洽) 스님이 주관하고 대준(大俊)·우화(祐和)·처운(處雲) 스님 등이 편수가 되어 기둥을 석주(石柱)로 고쳤다. 이 조계문은 다시 1781년(정조 5)에 백암(白巖) 스님이 중건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기둥 사이의 세 개의 문에는 중앙에 '조계문(曹溪門)', 오른쪽에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그리고 왼쪽에 '금정산 범어사(金井山梵魚寺)'라는 현판을 걸었다. 조선 시대 중기 다포식 가구의 전형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범어사 칠증석탑

화재로 소실된 천왕문터

범어사 불이문

범어사 대웅전
보물 제434호
범어사 가람의 중심으로 조선시대 중기 불교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절의 창건과 함께 대웅전이 들어섰을 것이나,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 대웅전은 1614년의 창건과 1713년의 대대적 중건을 거치면서 조선시대 중기 이전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이래의 간결하고 힘찬 다포식 건축의 양식적 특성과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크기는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양식이다. 대규모의 건물에는 보통 팔작지붕을 올려 시각적으로 건물의 중량감을 감소시키지만, 예외적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의 불단에는 여러 가지 꽃무늬와 비천상(飛天像)들을 화려하게 조각 장식하였다. 그 위의 닫집은 아자(亞字)형 평면에 다포식 지붕을 올렸는데, 운룡(雲龍)과 극락조·비천상 등을 조각하였다. 이 불단에 석가여래좌상을 주존불로 봉안하였고, 그 뒤에 후불탱, 왼쪽벽에 삼장탱, 오른쪽 벽에 신중탱을 두었다. 석가여래좌상의 좌우에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범어사 석등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높이 262㎝로 심검당 앞에 있다. 복련을 조각한 원형의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竿柱石)을 올리고 앙련을 새긴 상대석과 화사석·옥개석, 그리고 보주를 차례로 얹었다. 그러나 이 석등은 후대에 많은 보수를 하여 화사석과 그 위의 옥개석만이 원래의 유물이고 나머지 하대석·간주·상대석은 모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화사석은 팔각으로 네 면에 화창(火窓)을 두었고, 그 주위에 음각의 틀과 못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창문을 달았던 흔적이다. 옥개석 역시 팔각으로 처마 끝에서 살짝 반전하였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범어사 괘불지주

범어사 삼층석탑
보물 제250호.
범어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400cm. 2중기단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하 기단의 면석에 탱주(撑柱) 대신 큰 안상(眼象)을 1좌(座)씩 조각하여 특이하다. 하층기단의 두툼한 갑석(甲石) 아래에는 부연(附椽)을, 위에는 2단 각형(角形)의 탑신 굄을 새겼다. 상층기단의 면석은 비교적 큰 편으로 4매의 판석으로 구성했으며 2매의 판석으로 구성한 갑석 아래에는 부연을, 위에는 1단의 탑신 굄을 새겨넣었다. 탑신은 모두 옥신과 옥개를 별석으로 만들었는데 1층 옥신석이 특별히 큰 편이며 옥개석은 각층 모두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하대 석탑양식을 보여준다.

범어사 종루

범어사 미륵전

미륵전내

범어사 비로전

범어사 비로전내 비로나자불좌상

범어사 관음전

범어사 관음전내 관세음보살상

범어사 지장전

범어사 팔상전

범어사 팔상전내

범어사 독성전

범어사 독성전내 독성탱

범어사 나한전

범어사 나한전내

범어사 나한전내 나한상

범어사 나한전내 나한들

범어사 산령각

범어사 산령각내 산신탱

범어사 전경

범어사 약사전

범어사 약사전내
범어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구서ic – 울산방향 7번국도 – 부산 종합터미널 - 범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