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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그 결말 민11;4-6절
'핵초보'라고 써 붙인 차를 보았습니다. '내 차 가까이에 오면 터질지 모르니 까이 오지 말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보니 무서웠습니다.
왕초보든 핵초보든 초보자는 운전이 얼마나 힘들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초보 운전자는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나 10년, 20년 동안 운전해 온 사람, 운전에 노련한 사람은 여유있게 휘파람을 불면서,이야기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처음 믿을 때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니 불안합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믿어도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평안하구나. 하나님을 알고 수님을 많이 알수록 큰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구나.'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와 같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아, 하나님을 많이 알고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아서 은 은혜, 많은 평화를 누리라."
세상의 지식도 중합니다. 일본어를 알면 일본에 가도 편안합니다.
독일어를 알면 독일에 가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면 화장실 찾아가기도 어렵습니다.
영어를 알면 미국에 가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면 미국에 가서 제대로 먹지도 합니다.
서울의 모 사장 부인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회의하러 가서 자기혼자 호텔에 있는데 배가 고프더랍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고 영어를 모르니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답니다. 그런데 전화기를 어떻게 만지다보니 신호가 갔는지 웨이터가
왔더랍니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영어를 못해서 "꼬끼요! 꼬끼요!"라고 했더니, 닭을 갖다 주어서 그것을 먹었답니다.
모르면 불편한 것이 많고, 알면 그것이 힘이 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지런히 배워야 됩니다.
세상의 지식은 아무리 공부해도 그것으로 용서함 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 얻지 못하고, 천국에 갈 수 없고,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큰 은혜와 평강을 누리면서 살다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 그들의 죄을 통한 문제를 상기하고자 합니다.
[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다룰 때 “ 왜? 부정적인 문제로 시간을 허비 하는냐? 왜? 좀더 긍정적인 주제를 말하면 어떻게 하는 이야기을 합니다.
즉 예수님의 선하심,,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선하심과 진실함을 생각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이 내용은 항상 사람이 필요한 것 보다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전하기 주장 하는것과 같습니다.
즉 치과 병원에 치료을 받으려 가는데 통증, 고통속에서., 그에게 부탁 합니다. 제발 “ 아픔지 않게 치료 하세요... 아프면 나는 정말 싫다. 그럼 치료 않받겠다는 것 이다.
그러나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고통과 불편함을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구히 치료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통증과 고통이 수반 되어도 치료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 먼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은 때로 우리의 치부와 연약함과 죄을 들어낸다 . 이것은 즐겁지 않은일 입니다.
“ 회개하라...독사의 자식들아 ,,, 임박한 진노을 피할수 있는냐 ?
만약 이와같은 상황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 온다면 그는 능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치 않고 거절 한다면,,,,
정말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민수기 에서는 죄의 본질을 세가지 관점에서 이야기 합니다.
*본질;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1. 죄는 정신착란으로 묘사 지독한 어리석움을 보여 준다.
[* 지각, 기억, 주의, 사고 따위의 지적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리는 증세]
성경은 죄는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준다고 가른 칩니다.
어떤 영향 입니까?
이사야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예레미야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짐승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하는 듯 한데 사람만이 짐승보다 낮은 수준에서 생각합니다.
짐승은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짐승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으로 돌아가기 바라고 있습니다.
감독의 채찍질에 맞고서도.
자녀들이 학살 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지긋지긋한 삶의 반복속 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찾아볼수 없는때
그런 삶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견디다 못한 “ 하나님께 부르찌지 않았습니까?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들은 한때 먹었던 생선, 수박, 부추, 파외에 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았던 일만 생각하지
진저리 났던일들은 기억속에 지워버림으로써 죄가 사람을 속입니다.
죄는 비 이성적이고ㅡ 이해할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첫 왕으로 사울왕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의 은혜을 잊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들을 영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정신착란]육적인 관계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않고,, 육적인 관계로 생각..
그러니까 자기는 왕이고 제사장들은 계급이 없는 사람이라고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사울과 그 자녀들을 한 자리에서 죽여 버리셨습니다. 그 시체가 벽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은 자기는 왕이고 나단 선지자는 아무런 계급이 없는 평민이지만 나단을 영적인 관계[하나님의 뜻] 로 보았습니다. 나단이 와서 말했습니다.
“다윗 왕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한 동네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부자는 소와 양이 많고, 가난한 사람은 어린 암양 새끼 하나뿐이었소. 가난한 사람은 그 암양 새끼를 안고 자고 같이 먹으며 자기 딸처럼 사랑하며 길렀는데 부잣집에 손님이 왔을 때 그 부자가 자기 소나 양을 잡지 않고 그 암양 새끼를 끌어다가 잡아서 대접했답니다.”
다윗 왕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암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야 한다.”그때 나단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오. 당신 품에 많은 여인들을 주셨는데, 어찌하여 하나뿐인 우리아의 아내를 끌어다가 강간해서 당신이 취했소?”
그때 다윗은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왜입니까?
인간적인 관계로는 나단은 서민이고 다윗은 왕이지만,
영적인 관계로는 나단은 하나님의 사자이고 다윗 자신은 죄를 지은 자이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갓이라는 이름도 잘 모르는 선지가가 와서 다윗 왕에게 말했습니다.
“다윗 왕이여, 인구 조사를 한 것은 잘못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셔서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7년 흉년을 택하겠습니까? 3개월 전쟁을 택하겠습니까? 3일 전염병을 택하겠습니까?”
그때 다윗 왕이 인간 관계만 생각했다면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라.”고 했을 텐데,
영적인 관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가 심히 곤경에 빠졌어요. 사람의 손에는 빠지지 않기를 원하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오.”라고 말했습니다.
또 갓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 타작 마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시오.”라고 말할 때도 “예.”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갓은 아무런 계급도 없고 자기는 왕이지만 영적인 관계로 들어가니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자기는 그 앞에 있는 초라한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복종한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영적인 관계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비엔나의 한 유명한 박물관에 진귀한 작품이 있습니다. 루벤이 그린 걸작인데 암브로시우스 감독과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주후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데살로니가 시민 1500명을 학살했습니다. 그런 피 묻은 죄를 가지고 밀라노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니까 암브로시우스 목사님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황제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없습니다.”하고 막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누구나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교회는 실수한 사람을 용서하고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하는 곳이지만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자는 치리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장로님이나 안수 집사님이나 권사님이 의도적으로 큰 죄를 지으면 교회에서 치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이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목사님이 막으니 황제가 말했습니다.“아니, 목사님, 다윗 왕도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나갔잖아요?”“다윗 왕을 빙자하십니까? 그러면 다윗 왕의 회개를 본 받으십시오. 다윗 왕은 회개했습니다.”
그때 황제가 고꾸라져서 “내가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모습을 루벤이 그려서 세계적인 명화가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당시 세계 최고의 왕이요, 암브로시우스는 그저 한 교회의 목사님이지만, 영적인 관계로 볼 때는 목사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고 왕은 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영적인 관계에 들어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죄는 인간의 본성을 비뚤어지게 합니다.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죄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바을 거절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 있는 좋은 것들만 사모 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죄는 만나에 대한 그들의 태도입니다.
민11;5-6]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을 경멸,과 조소 합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베풀신 하나님의 기적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을 애굽의 오이와 양파가 하나님이 주신 기적의 빵보다 무한하게 뛰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언사의 표현을 보면 그들의 어리석움 뿐만 아니라 오만함도 나타납니다.
“ 이 만나” 하나님의 기적의 은총을 경멸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는 것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이 훨씬낫다고 생각 합니다.
민수기11장5절을 보면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받는 것을 보지 않게 하소서”하고 한탄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한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라고 말씀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했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지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공동체로 하여금 병들게 합니다. 지도자로 하여금 사기를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때 누가 불평을 했는가 하면 4절을 보면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다른 인종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이 내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통하게 하실 때 애굽인들과 타 인종들이 그 모습을 부럽게 보고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나왔습니다.
출애굽기12장38절을 보면 “수많은 잡족들이” 그랬는데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왜 불평을 했는가 하면 4절을 보면 “그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4-5)하고 원망합니다.
그랬더니 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도 울며 ...불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 이스라엘 민족들 즉 잡족들이 충동질 하고 불평을 주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서 울며불며 고기를 달라고 불평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백성의 온 족족들이 각기 자기의 장막 문에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소수의 잡족들이 불평을 시작하니까 그 불평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백성의 온 족속들이 자기 장막 문에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데모하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몇 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얼마 안가서 시위대가 시청 앞 광장을 메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모세가 보았습니다.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여기가 광야인 것도 모르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면서 울고 앉아있는 백성들이 무지하고 철없게 보였을 것입니다.
순간 모세가 힘을 잃습니다. 지칩니다. 사기를 잃습니다. 너무 힘겨운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한탄합니다.
11절을 보면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모세가 마침내 감정을 폭발합니다.
그래서 하소연을 한 것입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15). 그 말은 한마디로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도전을 받고 “내가 족하오니 죽여주소서!”하고 탄식합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항상 평온한 것이 아닙니다. 큰소리치면 안 됩니다. 조금 성공했다고 자만해도 안 됩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모세는 그 침체를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백성에게 응답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고기를 실컷 한달 동안 먹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모세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반가워서가 아니고 기대감에서도 아닙니다. 너무 하나님 말씀이 황당해서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말하기를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 즉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즉 족하리이까”하고 말합니다.
모세는 그 정황에서도 “왜 불가능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장정만 60만 명인데 노약자 여자 아이들까지 하면 300만 명 이상이 될 것인데 무슨 재주로 그들에게 싫도록 코에서 고기냄새가 날 때 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피곤하고 짜증나고 탈진한 것입니다. 탈진이라는 말은 영적 침체라는 말입니다.
그 순간 어제의 기적, 어제의 감격과 놀라움과 은혜는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출애굽의 기적이나 홍해를 건널 때 나타났던 기적들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오늘 아침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지금 불기둥과 구름기둥 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또 기적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순간 깜짝 놀라서 “왜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하고 항변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면 인간적이 이렇게 됩니다.
불평불만을 야기한 사람들의 징계입니다.
31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람으로 바다의 메추라기를 끌어오십니다. 메추라기는 철새입니다. 그 지역은 철새 이동지역입니다. 하나님은 동남풍을 이용해서 철새들을 몰아오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룻길 즉 32km 정도의 넓은 지역에 두 큐빗 높이 즉 1m 높이로 쌓였다고 했습니다. 32절을 보면 “백성들이 메추라기를 주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고 33절을 보면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을 때에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욕심을 낸 백성들을 거기에 장사지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 불만한 것을 모세에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으로 해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한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징계로 마무리 하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불평불만을 주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불평불만은 모세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섭게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아직 고기가 이사이에 있을 때에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1장의 문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요구한 것을 받았을지라도 영육간의 고통을 함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은 그 구절을 이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었으나 속이 뒤틀리는 아픔을 함께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것은 매우 사소한 것입니다. 얻은 것은 한 달 동안 실컷 고기를 먹은 것뿐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잃은 것은 대단히 큽니다. 영혼의 부요함을 잃어 버렸고, 육신의 생명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3. 죄는 배운망덕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을 보세요.
하나님은 모세을 통해 그들을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큼 홍해를 안전하게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거듭해서 하나님께 반항 합니다.
“ 이 만나” 라고 경멸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을 자기들에게 무가치한 것으로 말합니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들과 동일하게 그것을 조소하고 경멸합니다. 얼마나 끔찍한 배운망덕 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우리의 부족한 자원과 우리 자신의 부족함만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불평, 낙심, 원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의 삶의 자원이며 짧아지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손이 날마다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원망과 불평은 사라지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는 력 있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하나님의 손이 짧아지지 아니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사 내 삶에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6·25 직후에 울산에서 거부가 된 김씨 아주머니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동태 장사를 했는데, 장사하는 동안 마음에 한 가지 소원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죽기 전에 하나님께 큰 성전을 하나 지어서 봉헌하는 영광을 안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주머니가 동태를 팔러나가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동전꾸러미 하나를 가지고 와서 “이 동전은 내가 평생 모은동전이오. 그러니 이 동전하고 당신의 동태 한 상자하고 바꿉시다”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동전을 모았다는 말에 감동을 받은 김씨 아주머니는 결국 동태 한 상자와 그 동전들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 주머니를 열어보니 안에 골동품 같은 것이하나 있었습니다. 김씨 아주머니는 목사님께로 가서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아주머니와 함께 인사동에 가서 그 골동품의 감정을 받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만원 정도라고 했던 골동품의 가격이 흥정을 통해 무려 600만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는 600만원에 골동품을 팔아 그 중 400만원을 교회에 헌금하고200만원을 자신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갑자기 울산 앞 바다의 자갈밭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자기 복덕방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울산 앞 바다의자갈밭 5,000평이 매물로 나왔는데 한 평에 300원이니까 150만원에 살 생각이 없는지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땅을 보니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150만원에 바로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며칠 뒤에 이 아주머니의 집에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돈가방을 들고 찾아와서 그 땅을 일억에 팔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흥정이 오간 후에, 결국 김씨 아주머니는 그 땅을 29억에 팔았습니다. 그 곳이 로 지금 울산 현대 자동차 공장의 정문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게 된 이 아주머
니는 2억을 교회에 헌금하고 나머지 돈을 모두 투자해 큰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그 곳이 현대 아파트 단지가 되는 바람에 이 분은 돈을 셀 수도 없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결코 짧아지지가 않습니다. 동태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는 교회를 지을 수가 없었지만 꿈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짧아지지 않는 능력의 손을 펴서 그 일을 이루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위한 큰 비전을 품으시고 짧아지지 않는 주의 능력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