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의 하나님(1)
우리는 욥기 내내 인과율의 홍보를 볼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말미암는 응보의 원리, 세 친구가 와서 욥에게 계속 그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일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합리하시지 않다.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다. 공연히 너에게 재앙을 주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 부지불식간에라도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욥기 1장의 시작에서 무엇을 전제로 깔았습니까? 욥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잘못도, 죄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죠? 자녀들과 잔치를 베푼 후에 번제를 드려서 혹시라도 지었을지 모를 죄를 위해서 욥이 그 제사를 다 지냅니다. 욥이 흠 없이 했다.
그게 전제 조건입니다. 이 벌을 받을 이유가 욥에게는 없다고 전제해 놓고 지금 들어가는 것입니다. 욥에게 무언가 흠이 있었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모든 공격에 대해서 욥이 끝까지 버팁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욥에게 잘못이 없다면 왜 재난이 일어나느냐, 하나님이 왜 이 재난을 막지 않으시느냐?. 이는 불의하시고 불합리하시지 않으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자 마지막 장면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세계를 보이십니다. 욥기 강해 첫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이는 인간의 대단한 지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인간은 마치 거기에 중요한 손님같이 초대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구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를 봅시다. 욥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중요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 장관, 이 아름다움, 이 경이로움이 원인에 의해서 생겨난 보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란 그런 것이다. 하마가 나한테 뭘 잘해서 내가 하마한테 이 힘을 주었겠느냐? 이 아름다운 별과 달이 나에게 무엇을 해줘서 그 보상으로 이 아름다운 자리를 차지했다는 말이냐?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의 하나님인 이상 너희가 한 것에 대한 보상 정도가 아니라, 생각도 안 했고 그럴 능력과 이유도 없는 것으로 너희에게 주기 위하여, 내가 단지 나의 기쁨과 나의 의로움과 성실함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하는 복들이 이 창조 세계에 얼마든지 그 증거가 넘쳐나느니라." 이게 욥기의 답입니다. 이 답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갈 때는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시편 103편에 가면, 다윗의 시가 나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이런 표현이 왜 나오는지 알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사탄과의 사이에서 욥을 증인으로 삼아 무슨 내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기꺼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권으로 순종을 약속하며 찬송과 항복을 바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것이 시편에 넘쳐납니다. 시편에는 열일곱 살에 지은 시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 노년에 지은 것입니다. 그보다 나이가 젊어서 현실의 급박함에 떠밀려 지은 시들만 비명이요 고함입니다. 찬송은 그것을 다 지나서 한 인생의 마무리에서 돌아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항복입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입니다.
3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 103:3-4). 관(冠)이란 언제나 최상의 보상 아닙니까? 관을 쓴다는 것은 최상의 보상인데, 무슨 관입니까? 인자와 긍휼로 말미암는 관입니다. 우리가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 박영선, 《욥기 설교》, p.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