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이 추우세요? LG전자 연구원이 에어컨 만들다 개발한 뜻밖의 제품
신소재 적용한 욕실 온풍배기팬, 1년도 안돼 1만개 판매 돌파·290억원 투자 유치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백재현 에이올코리아 대표 /더비비드
창업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던 일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다. 백재현 에이올코리아 대표는 LG전자에서 공조기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창업에 성공해 욕실 온풍배기팬을 개발했다. 작년 6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90억원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백재현 대표를 만나 제조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을 들었다.
◇쾌적하고 따뜻한 화장실 만드는 온풍배기팬
화장실 천장에 퓨어벤이 설치된 모습 /에이올코리아
에이올 코리아는 다공성 신소재 MOF(Metal organic framework, 금속유기구조체) 양산에 성공했다. 알갱이들의 틈 안에 수분이나 기체를 가둬 습기나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다. 주원료는 철이고,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백재현 대표는 제습과 탈취에 탁월한 소재와 LG전자 연구원 시절 익혔던 공조기 기술을 결합해 욕실 온풍배기팬을 개발했다.
화장실 천장에 설치하는 제품이다. 화장실 내 공기를 밖으로 배출하면서 신선한 공기로 순환시키는 환기를 하면서 제습, 살균, 탈취 기능을 한다. 화장실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온풍기 역할도 한다. 따뜻한 바람을 통해 화장실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쾌적한 바람으로 샤워 후 몸과 머리를 말리는 바디 드라이 기능도 있다. 홈쇼핑 등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xPz7En)에서 한정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잘 나가는 LG 연구원의 이유 있는 퇴사
퇴사 후 캠퍼스 타운에서 창업한 백재현 대표 /백재현 대표 제공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석사 졸업 직후 2012년 LG전자에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에어컨, 공기청정기, 전기차의 공조기(실내 온도나 습도 등을 조절하는 기구)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일을 했다. 2016년 8월 창업을 결심하고 사표를 냈다.
-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가 뭔가요.
“에어컨을 집중적으로 다뤘어요. 에어컨은 대표적인 에너지 고소비 제품이란 한계가 있는데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익성이 불확실한 연구를 무모하게 할 수 없는 분위기였거든요.”
고려대학교 캠퍼스 타운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입상한 백재현 대표 /백재현 대표 제공
- 바로 회사를 차린 건가요.
“네. 고려대 박사과정을 병행하고 있었는데요. 후배 1명과 함께 학교 캠퍼스 타운 공학 지하 실험실에서 창업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흡착 성능이 뛰어난 신소재’부터 찾아 나섰습니다. 습기를 달라 붙게 하는 신소재죠.”
- 어떻게 답을 찾았나요.
“제습, 항균, 탈취 분야의 신소재 관련 논문을 아무리 찾아도 획기적인 물질이 없더라고요. 궁하면 통한다고. 예전 캄보디아로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한국화학연구원의 임종선 박사님을 같은 여행객으로 만난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받은 명함이 기억나, 2017년 말,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어요. 마침 연구 중인 흡착제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부족한 자금 조달 위해 발품, 정제 기술 개발에 성공
에이올 코리아 홍성호 박사와 백재현 대표(왼쪽) /더비비드
바로 대전에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으로 가서 다공성(내부와 표면에 틈이 많은 고체) 신소재 물질이전계약(신소재의 제조ㆍ사용ㆍ판매하는 것을 독점적으로 허락받는 계약)을 맺었다.
소재 활용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욕실 온풍배기팬이다.
- ‘퓨어벤’ 제품 구상 계기가 궁금합니다.
“화장실은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습해서 곰팡이가 생기기 쉽고, 겨울은 춥죠. 아이 키우는 집은 화장실에 온풍기를 두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위험하고 좁습니다. 천장에 다는 화장실 관리제품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군요.”
퓨어벤 제품(왼쪽)과 출장 기사가 제품을 설치하는 모습 /에이올코리아
LG전자 재직 시절 공조기 기술을 꿰고 있어 기술 응용이 어렵지 않았다. “건물용 배기 장비를 소형화 시키는 작업부터 들어갔습니다. 최대한 소형화해서 고효율 모터와 UV LED, 다공성 신소재를 응용한 광촉매 세라믹을 넣었고요. 온풍 기능까지 넣었는데도 일반 배기팬 크기의 제품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퓨어벤’이라 이름 붙여 지난 2월 출시했다. 신소재를 적용한 팬과 UV(자외선) 필터를 통해 환기와 살균 탈취를 동시에 하고, 습기를 빠르게 배출해 제습 기능도 낸다. 온풍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고, 쾌적한 바람으로 샤워 후 몸을 말리는 기능도 한다. 리모컨으로 작동한다.
출시 이후 SK건설, 호반건설 등 신축 아파트 옵션 납품에 성공하면서 계약 수량 1만대를 돌파했다. TV 홈쇼핑에서 준비 수량 1500대 완판에 성공하기도 했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xPz7En)에서 한정공동구매행사를 하고 있다. 설치 기사가 방문해 화장실 천장에 직접 설치한다. 기존 배기팬을 그대로 둔 채 따로 달아도 되고, 기존 배기팬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설치해도 된다. 보통은 천장 중앙에 다는 것을 선호한다.
◇식료품 보관 기간 최대치로 끌어올린 식품 용기 개발
에이올 코리아 연구실에서 백재현 대표 /더비비드
-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MOF를 적용한 식품 용기 사업에 뛰어 들었어요. 재사용이 가능하고 항균 효과까지 있는 식품용기에요.”
-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요.
“다양한 친환경 소비재를 생산할 계획이에요. 지구가 건강해지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희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소속 박사님들이 다양한 연구를 하고 계세요.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MOF에 가둔 수분을 환원해 물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성공하면 물 부족 국가에 오아시스를 만들어 줄 수 있겠죠.”
에이올 코리아는 다공성 신소재 MOF의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더비비드
- 제조 분야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스타트업으로 제조업을 시작하는 건 유독 진입장벽이 높아요. 취지가 좋고 독점 기술이 있다 해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죠. 저는 사업 초기 산업안전보건법 검토하느라 밤 지새운 날이 많았어요. 시청에 직접 찾아가 몇날 며칠 설득해 공장 인허가도 받았고요.
그래도 자신 있는 기술이 있다면 겁먹지 말고 도전하면 좋겠습니다. 요즘엔 제조 스타트업 대상 투자도 늘고 있어요. 저희도 영업 이익의 일부를 후배 창업가 양성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키우며 국가 경쟁력을 다지는데 손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