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시 읽기> 석류/조운
조운 시인을 기억한다. 1900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1949년에 가족과 함께 월북하기 전까지 그는 고향에서 “항일민족자각운동”의 일환으로 각종 문화 운동을 주도했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런 지식인이었지만 독재 시절에는 그의 이름조차 거론하기 어려웠다. 월북 시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시조의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났다. 시조는 석 줄짜리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려 버린 것이다. 이 파격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시조도 현대인의 살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조운 시조는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초장은 석류의 겉모습이고 중장은 석류의 속인데 거기에 알알이 박힌 알갱이를 ‘뜻’으로 나타내고 있다. 붉다는 것은 대상이 뭐가 되었든 정열적인 속내를 나타내는 의미일 터이다. 종장에 ‘보소라’는 우리 입말의 시어가 인상적이다. 보소서 또는 보시옵소서로 읽히는, ‘보소라’를 같은 시행에 두 번이나 쓴 입말은 “빠개 젖힌/이 가슴‘에서 붉게 피어난다.
제 가슴을 빠개 젖혔다는 것은 그리움의 대상에 자신의 진실을 숨김없이 내보였다는 의미이다. 불게 타는 마음을 내보이는 간절함을 이 풍진 세상을 견디는 치열성 아닐까. 이 작품은, 설류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신맛이 고이는 현상과 반쯤 벌어진 몸이 붉은 알알을 물고 있는 선정성에 집중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쓰는 불과 44개의 글자를 가지고 석류라는 과실이 인간화되는 정서를 차원 높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조은 시인은 「고두부승산」에서 문인들 중 최초로 전봉준 장군의 안부를 물었고, 「선죽교」에서 포은 정몽주의 의열義烈을 기리면서도 민중의 피에 주목했다. 불행한 역사 속에서 흘린 민중의 피가 발목에 차오를 정도라고 노래했으니까. 역사는 몇몇의 엘리트 차지가 아님을 자각했던 조운 시인, “빠개 젖힌”이란 우리 입말이 명쾌하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