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작가님의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을 읽고
수필가 정임표
먼저 본 카페에 김영희 부회장님과 여러 회원님이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을 올려 주고 계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자기 작품을 대중 앞에 드러낸다는 것은 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오는지라 “휘리릭”이나 “ㅋㅋ” 같은 토씨를 달아서 계면쩍은 감정을 희석 시키기도 하는데 작가로 공식 등단하신 분이라면 대중의 입방아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부터 과감하게 노출 시키는 용기와 뱃심을 가져야 글이 발전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처음 등단하면서 초대 회장님 작품도 서평을 내 자발적으로 써서 인터넷에 올린 바가 있습니다. 초대 회장님께 아부한 것이 아니고 독자인 내 느낌을 쓴 것이고 내가 느낀 그 느낌을 다중과 나누려고 독후감을 쓰는 것은 독자인 내 권리입니다. 초대 회장님 작품 독후감에 회장님 역시 초연하셨습니다. 우리 수필 문단의 거인으로 존경합니다. (굳이 제가 이 내용을 밝히는 것은 내 작품이 지면이나 카페에 올려지면 세인의 입방아에 초연하시고, 세인의 지적을 자기 수양의 공부로 삼으라고 조언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뱃심이 없다면 작가적 뱃심부터 먼저 길러야 합니다. 제가 에세이 21에 작품을 발표 했더니 그 다음 달에 평론가께서 제 글에 혹평을 하셨는데 저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평론가가 마음에 크게 부담을 지지고 있겠다 싶어서 전혀 부담을 가지시지 마라고 메일을 보냈더니, 자기도 혹평의 글을 남기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짐을 덜었다고 오히려 고마워 했습니다. 작가는 작가의 길이 있고 평론가는 평론가의 글이 있는데 작가가 평론에 휘둘리면 작가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초대 회장님으로부터 무언의 가르침을 전수 받았습니다. 등단하기 전에 수필 문학이 뭔지를 알고자 무수히 많은 실험작을 써서 선생님께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습니다. 내 글의 변화 과정을 보시면서 내 문학적 완성도를 지켜보신 것뿐입니다. <에세이 21> 발행인 이정림 선생께서 나와 초대 회장님 사이에 흐르던 내 그런 마음을 알고 계셨던지 나보고 추모사를 써 달라고 원고 청탁이 왔습니다. 흔쾌히 수락하고 쓴 글이 《무정 설법》입니다.
나는 김영희 부회장께서 올리신 작품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을 카페 일반 게시판 NO 1068 “막 등단한 후배 작가님들에게”에서 설명드린 '전통 엿 만들기 4단계의 틀'에 비추어 이 작품의 형상화 성공과 그로 인해 독자들이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 독자인 내 권리로 심층적으로 분석평가합니다.
1단계: 쌀과 엿기름의 만남 (소재의 수집과 발효)
일상의 사실들이 작가의 내면에서 '단술'로 끓어오르는 기초 단계입니다. 은퇴 후 '집돌이'로 무기력하게 침대와 유튜브에 파묻혀 살던 남편, 텃밭 경작의 실패, 그리고 친구의 뇌졸중 진단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이 글의 훌륭한 '쌀(소재)'입니다. 작가는 이 소재를 마치 창공을 유유히 나는 송골매가 호수 위에 떠 오르는 물고기를 신속하고 날카롭게 낚아채 가듯 글감으로 만듭니다. 일상의 삶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관찰력은 작가의 생명인지라 높이 평가합니다. 하늘을 유유히 날던 송골매가 물고기를 낚아챌 때는 그의 속 마음에 낚아채려는 목적이 늘 고기 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의 스승 도광의 시인은 호주머니에 작은 수첩과 볼펜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순간의 영감을 포착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퇴직한 남편의 무기력함과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포착하여 세상 모든 남자의 변화로 확장해 나갈 기초 설계를 가지고 남편의 내면에서 일어난 심경의 변화에다 "얇은 삶과 두꺼운 삶"이라는 성찰의 '엿기름'을 섞어 발효시킵니다. 이 과정은 자기이기를 포기하고 가족을 부양하는데 온 몸을 던진 모든 퇴직 세대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맛있는 '단술(초기 화학 반응)'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 향기가 독자들을 유혹 합니다.
2단계: 맑은 윗물 걸러내기 (정화와 2단계 형상화)
감정의 찌꺼기를 걷어내고 정서의 즙만 골라내는 여과 과정입니다.
자칫 남편의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를 두고 "철없다" 타박하거나, 은퇴 남편을 둔 아내의 한탄과 징징거림(감정 배설)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었지만,(짐짓 작가가 관찰자가 아닌 척하며 징징거리는 표현을 담기도 하지만), 김영희 작가는 불필요한 원망이나 훈계조의 찌꺼기를 과감하게 여과하고, 남편이 '두꺼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과 그에 대한 아내의 애정 어린 시선(문예적 향취)을 잘 분리해 내면서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남겨 둡니다.
3단계: 무쇠솥에서의 고행, 조청 만들기 (정제와 농축)
문장의 벼리기와 사유의 응축 단계입니다. 이 작품의 미덕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에 있습니다. 텃밭의 실패, 친구의 병문안, 도서관 등록, 탁구와 서예 풀세트 장비 구매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지루하지 않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탁구에 재미를 붙여갈 즈음….", "악필인 남편이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같은 문장들은 작가가 이성이라는 주걱으로 글의 농도를 맞추며 미사여구를 걷어낸 정제된 흔적을 보여줍니다. 이걸 지루하게 열거하면 눌어붙은 조청이 되어 탄 맛이 베이게 됩니다.
4단계: 치대어 엿 완성하기 (극한의 에너지와 형상화의 완성)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이미지로 부활하는 예술적 완결의 단계입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결문입니다. 남편이 서예 책을 사고, 탁구화와 라켓을 '풀세트'로 구비하는 모습은 단순한 행동 묘사가 아니라, 추상적인 '두꺼운 삶'이라는 개념을 독자의 뇌리에 쫄깃한 은유로 각인시키는 훌륭한 치대기 작업입니다. "얇은 삶에서 두꺼운 삶으로 반경의 테두리를 겹겹이 넓히기 위해 공을 들인다", "명함에 한 줄 채워나갈 두꺼운 삶의 이력을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닌다"라는 결말은, 은퇴 이후 삶의 새로운 방황의 의미를 독자의 온몸과 감각에 툭 부딪히게 만드는 예술적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이 작품은 소재의 발견(1단계)부터 감정의 정제(2단계), 문장의 벼리기(3단계), 그리고 쫄깃한 은유적 결말(4단계)까지 전통 엿 만들기의 전 공정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 낸 수작(名作)으로 평가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단면(남편의 은퇴 후 변신)을 끈기와 인내의 퇴고를 통해 깊은 사상과 묵상이 담긴 '맛있는 엿'으로 완성해 낸, 형상화의 모범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괴테가 말한 “추구하는 한 영원히 방황하리라”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방황이 두려워서 꿈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이 긴 세월을 뇌졸증의 공포에 떨면서 움츠리고 살아야 합니까?” 작가가 독자인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모든 문학작품은 작가용이 아니고 독자용입니다. 인생 삼막 중 2막을 마친 수많은 초로의 청년들에게 시지포스가 들려주는 또 다른 전설로 음미하며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족이지만 이 작품이 문학적 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으로써 대중에게 주는 유익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은퇴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겪거나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삶의 전환점입니다. 작품 속 남편의 두꺼운 삶은 단순한 한 개인의 일화를 넘어, 정년퇴직을 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퇴직 후 필연적으로 밀려오는 상실감과 자기 존재 증명의 욕구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동병상련의 깊은 위안과 공감을 얻게되고, 자신이 해야 할 적당한 일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은 '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이라는 제목이 주는 참신한 은유를 통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집니다. 화려한 이력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삶의 반경을 넓혀가는 행위 자체가 삶을 두껍게 만든다는 진한 울림을 줍니다. 서툴고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남편의 도전(풀세트 장비 구매, 늦깎이 서예와 탁구 등)을 비웃음 대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나도 그렇지 하면서 우리 주변의 은퇴자들을 더 따뜻하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성적 여유를 얻게 됩니다.
(추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이 '얇은 삶과 두꺼운 삶'인 줄로 착각한다. 두꺼운 삶을 앞에 쓰면 어순이 불편하다. 작품 내용도 얇은 삶의 선언에서 부터 출발한다. 작가가 숨긴 의도가 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모든 삶이 다 귀하고 소중한데, 굳이 분별하려니 불편하다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