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8. 주일 큐티
고린도전서 1:1 ~ 9
하나님은 미쁘시다
관찰 :
1) 문안
- 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 바울은 자신이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로 인식을 하고 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서 전권을 받은 특사라는 뜻을 가지는 표현이다. 원래 ‘사도’의 직분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임명하여 직접 보내신 열 두 명만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초대 교회에서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행 9:15) 자신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διά θέληματος θεόυ,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는 직역하면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란 뜻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 소스데네”(Σωσθένης ἀδελφός, 소스데네스 호 아델포스)는 정관사를 ‘호’(ὁ)를 통해서 소스데네가 형제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전서를 집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소스데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소스데네를 통해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소스데네는 고린도 교회의 유대인 회당의 회당장이었으며, 유대인들이 총독 갈리오에게 바울을 송사했을 때 바울 대신에 그들에게 매를 맞은 사람이었다(행 18:12 ~ 17). 그러나 소스데네라는 이름이 당시에 흔했기 때문에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고린도”(Κόρινθοω, 코린도우)는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에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로부터 80년 후인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후 고린도는 급속히 재건되어 아우구스토 황제에 이르러 아가야(Achaia)의 수도가 되고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에 이 도시는 상업의 도시로 번창했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암담하고 무질서하였다. 그 도시인들은 다신교를 숭배했고(행 17:16-22) 그들의 생활은 음란했다. 따라서 '고린도화 하다'라는 말은 '아프로디트(Aphrodite) 여신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행한다'는 의미가 될 정도였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정의한다. 즉,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로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에 대해서 “은혜”와 “평강”을 꼽고 있으며, 그것을 언제든지 기도하며 구하고 있다. 참된 “은혜”와 “평강”은 오직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주어진다.
2) 사도 바울의 감사
- 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사도 바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에라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신학의 시작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ἔν Χριστώ Ἰησοῦ, 엔 크리스토 이에수)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감사의 이유도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 5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감사의 이유를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언변”(λόγος, 로고스)은 말로 변증된 것이지만 ‘전파된 진리’ 즉 복음의 진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복음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파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족하게 전파된 것으로 인해서 감사를 드린다.
- 6절.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은 이 글을 쓰기 최소한 약 3년 여 전에 고린도에 머물면서 증거했던 복음을 말한다. 5절의 “풍족”과 6절의 “견고”는 댓구를 이루며 고린도 교회에 말씀이 어떻게 전파되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 7절 ~ 9절.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사도 바울이 감사하는 또 하나의 제목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재림 신앙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믿음이 세워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임하였음을 인하여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재림의 날까지 성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온전하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린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 우리 역시 그가 표현한 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성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거룩한 무리인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무리로서 바르게 세워져야 할 것이다.
2)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넘쳐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만 그 은혜, 그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바르게 증거된 것이 감사의 제목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소망하는 재림 신앙이 있는 것이 감사의 제목이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의 크고 풍성한 의미를 사도 바울은 증거하고자 애쓰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사도 바울의 말하는 의미들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적용 :
1)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소명, 성도로서 부르신,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다. 선교사로서, 목사로서, 리더로서,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2) 내가 진정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ἔν Χριστώ Ἰησοῦ, 엔 크리스토 이에수) 살고 있는 지를 점검하자.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참된 은혜와 평강이 없는 각박한 삶을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3) 주님의 복음의 진리가 바르게 증거되고 있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목이다. 나의 삶이 그렇게 감사의 제목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주님이 신실하시다는 것,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4) 이번 주에 이동제한이 풀리고 공사가 재개되기를 간구드린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한다. 어떻게 될지라도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은 미쁘심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