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구속사 강해
야곱의 집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언제나 어디서나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밧단아람에 이르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는 약속은 하나님이 늘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야곱이 하나님의 실존을 항상 감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길을 경영함에 있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만큼 긴밀하다는 점에서 늘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야곱이 어느 상황에 처하든 비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이 추구할 인생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 야곱의 혼인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어렵지 않게 외삼촌 라반의 근거지와 가까운 우물에 이르렀다. 목축업자들에게 있어서 우물은 생명과 같이 소중한 곳이었다. 목자들은 무엇보다도 우물을 소중히 여기고 항상 우물을 중심으로 목축 활동을 하기 때문에 야곱은 그곳의 목자들을 통해 외삼촌 라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를 이끌고 양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우물로 온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라헬이 양떼를 이끌고 온 것을 확인한 야곱은 우물을 덮어두었던 돌을 옮겨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자신이 라반의 생질이며 리브가의 아들임을 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라반은 야곱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야곱은 그 동안의 내력을 자세하게 라반에게 알려주고 라반의 집에 거할 수 있었다.
라반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처음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로 리브가를 구하기 위해 엘리에셀을 보낼 때에는 당시 보기 드문 보물을 함께 보내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라반으로서는 이삭의 아들 야곱이 혈혈단신으로 출현하자 의아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라반은 야곱의 이야기를 상세히 듣고 나서 그 자초지종을 알게 된 후 야곱을 자기 가까운 곳에 두고자 하였다. 야곱이 이삭의 기업을 이을 후계자라는 사실을 야곱으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는 라반은 야곱을 특별히 대우하였을 것이다. 특히 야곱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밧단아람에 왔기 때문에 자기의 딸이 야곱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야곱을 중하게 대접했다.
라반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로 리브가를 지목하여 데려간 사건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창 24:50-60).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유력한 집안의 며느리가 된 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를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지고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역할을 야곱이 이어나가게 되었고, 야곱은 그 사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한 배필을 구하기 위해 밧단아람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라반으로서는 누구보다도 자기의 딸이 야곱의 아내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야곱은 이미 라반의 두 딸들 중에 동생인 라헬을 연모하고 있었던 터라 지체하지 않고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창 29:18)고 대답하자 라반은 이미 마음 속으로 기대하였던 것처럼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창 29:19) 하며 흔쾌히 허락하였다. 이미 라반은 야곱의 사람됨과 야곱이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사람으로서 믿을 만한 인물임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딸을 야곱에게 시집보내는 일에 대해서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야곱은 열심히 일하며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라반에게 약속한 7년을 봉사하였다.
7년의 시한이 차자 야곱은 라반과의 약속에 따라 라헬을 아내로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야곱의 요구는 정당했기 때문에 라반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라반은 그곳 사람들을 모아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당시 혼인의 규례에 따라 밤에 신부를 야곱에게 데려가 합방을 하게 하였다. 당시 혼인 규례는 신부의 순결을 상징하기 위해 면사포를 쓰고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야곱은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야곱은 자기가 혼인한 여자가 라헬이 아닌 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반은 야곱이 레아보다는 라헬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얻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라반의 일을 돌보지 않고 라헬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떠나버릴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라반은 어떻게든지 야곱을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라반이 이처럼 야곱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욕심을 부린 것은 야곱이 지난 7년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라반은 야곱이 7년 간 일해준 덕분에 상당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창 30:29-30 참고). 이에 라반은 야곱을 더 붙잡아 둘 계책을 생각하던 중 먼저 레아를 야곱과 혼인시키기로 한 것이다. 라반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창 29:26-27)고 야곱을 달래며 라헬을 위해 7년 간 더 봉사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야곱은 이미 마음으로 라헬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반의 제의를 물리칠 수 없었다.
2. 사명을 인식하고 있는 야곱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라반의 조건에 따라 7년 간 더 봉사하기로 하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다. 결국 야곱은 두 아내를 얻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야곱의 결정에 대하여 야곱의 판단이 옳고 그른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야곱이 7년 간 열심히 일할 줄은 알았어도 장차 그가 건설해야 할 새로운 나라의 성격에 대하여 라반이나 그 딸들에게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곱은 새 나라를 건설할 사명을 함께 수행하여야 할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밧단아람에 왔었다. 그렇다면 정작 야곱이 할 일은 그 나라의 성격과 특성이 어떤 것인가를 라반과 그의 식구들에게 먼저 밝혔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 사명을 함께 수행할 사람으로서의 아내를 구하여야 했다. 야곱은 미처 자신이 행하여야 할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려야 했고 그 일 조차 라반에게 속아 또다시 7년을 더 일해야 했다.
여기에서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얻기 위해 한 시도와는 상당히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건설하고자 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먼저 병백히 말하였으며 그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 곳에 온 것에 대하여 밝히고 리브가의 의사를 확인한 후 즉시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에게로 갔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의 미모에 빠져 라헬과 혼인하기 위해 라반의 집에서 무료 봉사하는 일을 선택했다. 물론 여기에는 라반의 간교한 술책이 숨어 있었지만 야곱은 먼저 라헬과 레아 중에서 과연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따져 보아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야곱이 일의 순서를 바꾼 것에서 라반의 속임수가 통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존재 성격에 대하여 분명히 나타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라헬에게 마음을 빼앗긴 야곱과 자신의 경제적 이권을 최대한 얻고자 한 라반의 생각이 공동으로 합작하여 기이한 현상을 창출해 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혼인은 철저한 일부일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곱의 판단과 라반의 생각이 그와 같이 움직인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당시 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하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을 지닌 야곱에 대하여 경쟁적으로 흠모하고 있던 레아와 라헬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가세하게 되어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각과 욕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의 나라를 세워 나가셨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약속대로(창 28:15) 야곱과 언제나 함께 하였고 그가 어디를 가든 지켜주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고 밝힌 의지처럼 하나님은 야곱이 어떤 처지에 있든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신 일을 완벽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었다. 이 일에 대하여 야곱은 늘 하나님에 대한 긴장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라헬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잠시 라반의 속임수에 말려들었다 할지라도 야곱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야곱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긴박한 삶의 긴장(Angst)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신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자기 인생의 본분을 수행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