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
하(夏 , 기원전 2070년경 ~ 기원전 1600년경)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나라 이전 수백 년간 존재했다고 기록된 나라이다. 그 연대는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 기원전 2070년경에서 기원전 1600년까지로 추정한다. 하 당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자료는 없으며, 대체로 중국 사학계에서는 얼리터우 문화를 하왕조의 것으로 비정하고 하나라의 실존을 주장하나 중국 외부에서는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연구서로는 `中國 夏王朝에 대한 簡略한 理解(2004)` 등이 있다.
중국 전설상의 왕조이다. 오제(五帝)의 한 사람인 요임금의 말년, 홍수가 일어나 우임금(禹)이 치수 사업에 성공했다. 그 공으로 순임금(舜)이 죽은 후, 제후(諸侯)들이 받들어 왕위에 오르고 하 왕조를 열어 이후 17대에 이어졌다. 우는 제위를 민간의 현자에게 양도하려 했으나, 제후들이 우의 아들 계(啓)를 추대하여 이때부터 선양제(禪讓制)가 없어지고 상속제에 의한 왕조가 출현했다. 17대의 걸왕 때에는 정치가 포악해지고 민심을 잃어 상(商)나라의 탕왕(湯王)에 의해 멸망하였다. 하(夏)의 소재지를 산시(山西)·산둥·허난 등으로 추측하는 학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의 우의 전설은 홍수신화의 곤-우 신화에서 다루었다.
하의 14대 왕인 공갑은 성격이 음란하고 귀신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해 인심은 하왕조부터 멀어져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걸은 인덕이 부족해 무력으로 제후와 민중을 억압해 인심의 배반을 불렀다. 또 상나라의 탕을 불러내 투옥시켰다. 탕은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서, 제후들이 그의 밑에 모였으며 마침내 걸을 쫓아냈다. 걸은 명조로 도망쳤지만 객사했다. 이 걸에 관한 전설은 상나라의 주와 지나치게 비슷해서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상나라의 탕왕은 제위에 즉위하면서 하나라의 혈통을 받은 사람들을 하정(夏亭)에 봉했다. 주나라 때에는 기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반유목적·반농경적 사회였던 하나라는 그 특성에 따라 도읍지나 거주지를 이동하였으며, 이동할 때마다 젊은 남자가 수령의 지위로 거주의 이동을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