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관절
시시각각으로 날아드는 생활정보 중에서도 노인은 건강정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엔 '인생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란 막말도 들어 있다. 평소 다리를 소중하게 관리하여 백세시대를 무탈하게 맞이하길 바라는 뜻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의학의 발달로 인공관절도 10년을 지탱할 수 있으니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일도 아닐 것이다. 3년 전 고향에서 만난 사촌 누님도 인공관절 10년이 지나 두 번째 수술을 서둘고 있었다. 그때 이미 아흔에 들어선 누님은 혼자서 농사일을 직접 해나가고 있어서 남들보다 더 건강을 유지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1주 전 끝물단풍을 만나러 범어사 계곡을 찾은 적이 있다. 60년 세월 눈에 익은 풍광이라 범어사 자연은 늘 친숙하게 다가온다.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에다 절에서 어느 날부터 '문화체험 누리길'이란 팻말을 달았다. 산책과 건강증진을 위해 인근 주민들이 주로 오르내리는 길에다 웬 문화체험? 좀 생뚱맞지만 나그네가 따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계곡길은 2km를 약간 넘어 왕복으로 걷기에 딱 알맞은 거리다. 초입엔 108계단이 있다. 여든에 가까워 보이는 다리가 부실한 노인이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씨름하듯 힘겹게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다. 그는 몸집이 비대하여 더욱 힘들어 보였다.
계단 밑 평지에선 노인과 같은 연령대로 보이는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해 100미터 정도 길을 힘겹게 돌고 있었다. 두 노인 모두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물고 십자로 이면도로가 있다. 4개 아파트 단지가 만든 길로 여기에도 재활 노인들이 걷는다. 3000여 세대 주민들이 오토바이로 배달되는 음식과 생활용품을 자주 주문하는 바람에 행인과 배달 오토바이가 충돌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인다. 이제 며칠이면 울긋불긋 눈앞의 단풍도 끝나고 계절은 황량한 겨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세월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현직 때 마흔 무렵에 일찍 직장을 떠난 선배는 현재 여든 중반이다. 그는 떡방앗간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한때는 자살까지 결심하곤 그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더란다. 그러다가 건설장비를 대여하는 사업을 어렵게 시작하여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은 2세에게 사업을 물려주고도 매일 사무실에 출근한다. 서면 부전도서관 옆 사무실에서 만난 선배는 인공관절 수술한 것을 예사롭게 얘기하면서 언제 술 한잔 하자고 한다. 서면 주점골목에도 그는 몇 군데 단골집이 있었다. 이처럼 백세시대가 되면서 인공관절 시술자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관절염으로 손상된 관절 일부를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삽입하여 무릎 사용에 통증없이 걷기 위해 수술하게 된다. 보형물 재질은 플라스틱과 금속인데 몸에서 거부반응이 없어야 하고 적당한 하중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무거운 역기를 드는 선배는 그 운동만은 포기하고 가벼운 운동을 찾아야할 것이다. 누님이 인공관절을 10년마다 바꿔야 한다고 했을 때가 몇 년 전이었으니 지금은 의술발달로 그 기간이 더 늘어났을 것 같기도 하다. 수술은 2시간이면 끝나지만 수술 후 약해진 다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은 지속적으로 해야한다고 담당 의사는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