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1904-1967)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으나 10세 쯤에 한의사를 개업하는 형을 따라 영동으로 이사를 갔고,(영동군 황간) 학교는 서울의 중앙고보를 다녔다.
그는 화가인 동시에 미술사학자이고, 미술평론가이었으며,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동경미술학교로 유학하여 이태준(소설가)을 만나므로, 평생 교우를 유지하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 둘은 일정 시대에 같이 문화 운동을 하였다.
1927년에는 당시의 조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핵심 멤버인 임화 등과 프로 미술 논쟁은 세인의 관심을 끌면서 하루 아침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그의 논조는 신비주의 미학 사상으로 무장하여 ‘조선 향토색’을 주장하였다.(이것으로 보아서 그는 공산주의자이기 보다는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귀국하여 尙古主義에 빠져서 조선의 선비 정신을 숭상하고, 미술도 다시 수묵화로 되돌아 왔다. 이런 와중에서 조선 미술사를 연구하여 1948년에 ‘조선미술대요’를 발간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서울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공산치하에 미대 학장이 되었고, 월북하였다. ‘근원수필’이 유명하다.
그는 향토적 정서에ㅓ 동양의 정신주의를 탐색하였다. (텐느의 방법론을 응용하였다. 예술은 역사, 지리, 문화 배경의 영향을 받는다)
김용준은 한국미의 특징을 ‘고담’ ‘청아’ ‘한아’ ‘장한’ 네 가지로 꼽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 하였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의 언급에 ‘유장하고, 한가롭고(장한) 비장하다.(즉 예술에는 정서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향토색‘을 주장하였다.(텐느의 영항인 듯)
향토색을 조선 고유의 맛이라고 하면서, 김종태의 그림에서 조선의 풍경, 한복을 입은 여인등을 조선의 정조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하였다.
그가 말한 고담, 청아, 한아, 장한은 조선의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실제로 사군자와 서예를 미의 정수로 꼽았다.
1948년에 발간한 ‘조선미술대요’에서는 구수하고, 시원하고, 어리석고, 아담하다,라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구수하다 --- 맛과 냄새가 비위에 맞아서 좋다.(이후의 학자들이 멋과 맛에 대한 고찰)
시원하다 --- 말과 짓이 맺고, 끊음이 뚜렷하다.
아담하다 --- 말쑥하고, 담담하다.
첫댓글 한국미의 탐구-김용준
그는 화가이고, 미술사학자이고 미술평론가, 수필가였다.1927년에는 당시의 조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핵심 멤버인 임화 등과 프로 미술 논쟁은 세인의 관심을 끌면서 하루 아침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그의 논조는 신비주의 미학 사상으로 무장하여 ‘조선 향토색’을 주장하였다.(이것으로 보면 그는 공산주의자이기 보다는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귀국하여 尙古主義에 빠져서 조선의 선비 정신을 숭상하고, 미술도 다시 수묵화로 되돌아 왔다. 이런 와중에서 조선 미술사를 연구하여 1948년에 ‘조선미술대요’를 발간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서울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공산치하에 미대 학장이 되었고, 월북하였다. ‘근원수필’이 유명하다.
향토색을 조선 고유의 맛이라고 하면서, 김종태의 그림에서 조선의 풍경, 한복을 입은 여인등을 조선의 정조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하였다.김용준은 한국미의 특징을 ‘고담’ ‘청아’ ‘한아’ ‘장한’ 네 가지로 꼽았다.
김용준이 말한 고담, 청아, 한아, 장한은 조선의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실제로 사군자와 서예를 미의 정수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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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