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4) - 제임스 정착촌 이전에
제임스 타운 정착촌을 건설한 사람은 28세의 선장 존 스미스 였다. 그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었다. 제임스 타운 건설은 영국 식민지 건설 사업이었다. 제임스 타운이 그만큼이라도 정착한 것은 존 스미스 선장의 역할이 크다.k
정착민이 굶어 죽을 형편에 처하자 그는 인디언 추장을 찾아갔다. 추장은 스미스를 죽이려 했으나 12세 딸 포카혼다스가 몸으로 막으면서 살았다. 이 딸이 정착촌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해서, 정착촌이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버지니아 후손들은 자기들이 포카혼다스의 후손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버지니아 정착촌에는 신부가 없어서, 담배 120파운드를 내면 신부를 살 수 있었다. 영국에서 90명을 보내서 모두 팔았다고 하니
스미스 선장의 이전에 영국의 월터 폴리 경이 식민지 개척을 위해 배를 보냈다. 1585년에 108명의 영국인이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왔다. 이때는 엘리자베스 1세 때였다. 금광을 찾고 정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화이트 선장이 영국에 물품을 가지러 갔다가 3년 만에 돌아오니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인디언을 따라 갔다는 주장도 있고, 플로리다 주에 와 있던 스페인 병사에게 몰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왜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이때는 영국과 스페인이 패권 다툼을 하였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주민은 메이 플라워 호가 처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