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58)
< 커피에 얽힌 일화 >
우리나라에서 하루 소비량이 300톤 이상, 연간 소비량이 250억잔 이상, 대형마트 매출순위에서 부동의 1위...등등
과연 무엇일까? 바로 커피이다.
예전에는 만나는 사람끼리 흔히 하는 말로 “식사 한번 합시다” “소주 한잔 합시다” 등으로 대화가 이어졌으나, 요즘은 “커피 한잔 합시다” 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와같이 커피가 우리 생활속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다 보니, 커피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커피공화국이라 부르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생겨나게 된것이다.
7세기경 에디오피아에서 칼디라는 목동에 의하여 최초로 발견된 이 커피가 그간 1,300년 이상 우리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커피에 얽힌 이런 저런 얘기가 있는바, 그 가운데 흥미있는 몇 가지 일화를 살펴 보고자 한다
1. 커피도 세례를 받았다
커피가 유럽에 유입된 초기에는 커피가 이슬람에서 건너왔다는 사실때문에 교회를 중심으로 중세 유럽사회에서는 커피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커피에 계속 빠져들었고 많은 커피애호가가 탄생되었다.
커피 마시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원칙론과 실제 상황이 금지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팽팽하게 대립되며 어정쩡한 상태로 한동안 유지되었다.
이후 1605년 일부 교회에서 교황에게 “커피는 이교도의 음료이고 사탄의 음료이므로 사람들이 마시는 것을 금지해 달라” 라는 청원을 올렸다.
당시 교황인 클레멘트 8세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 교황 본인이 커피를 직접 마셔보고, 그 독특하고 신비로운 맛에 매료되어, 커피가 종교에 해악이 없으며 오히려 권장해도 좋은 음료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특히, 이렇게 좋은 것을 이슬람인들만 마시는 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에 교황은 커피가 기독교인의 음료라고 선포한 뒤 커피에게 세례까지 주었던 것이며, 이러한 커피세례후 족쇄가 풀림으로써 커피가 단숨에 유럽을 정복하게 된것이다.
2. 고종은 커피때문에 죽을뻔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의 유래를 1895년 고종임금이 아관파천시에 러시아 공사관 안에서 처음으로 시음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그때는 커피라고 부르지 않고 서양에서 건너온 탕국이라 하여 양탕국으로 불렀다.
한편 그때 러시아어 통역관에 김홍륙이라는 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함경도 태생의 천민 출신으로 머리가 비상하고 어릴적부터 인접해 있는 러시아의 연해주에 들락거리다 보니 러시아어에 통달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러시아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이 김홍륙 한사람 밖에 없다 보니 문제가 생겨났다.
독점에는 부정이 싹트기 마련이다. 이 김홍륙이 이런 사정을 악용하여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눈치챈 고종이 이 친구를 날려 버리려고 하였다.
이에 김홍륙이 선수를 쳐서 고종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에 독약을 넣어 시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옆에 있던 순종이 이를 먹었는바, 죽지는 않았으나 이빨이 다 빠지고 평생 고생하였던 것이다.
물론 김홍륙은 대노한 고종에의해 처형되었다.
3. 커피를 마시는 것은 매국노이다.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은 빈약한 국가재정 상태를 감안하여 외화낭비를 막기위한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였다.
그 일환으로 커피와 양담배는 나라의 곳간을 비우게 하는 고약한 사치품으로 낙인을 찍었으며, 커피 대신에 인삼차와 생강차를 주로 마시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서울대 문리대생들을 동원한 관제 데모에서 캐치프레이즈가 “커피를 마시는 것은 국민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말이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얘기이다.
여하튼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작가인 탈레랑의 이야기가 참으로 의미있게 다가온다.
“커피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