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밥풀꽃...
이름만으로도 왠지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특이한 꽃 이름.
언제 그 꽃 이름을 처음 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 꽃 이름을 한번 듣고 난 후에는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면서, 꽃 이름의 유래에 대한 궁금함은 늘 있어왔다.
양평을 지나 홍천으로 달리다 보면 터널 하나를 지나게 되는데, 그 터널엔 '며느리고개 터널'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터널을 지날 때면 늘 며느리밥풀꽃의 유래에 대한 궁금증이 되살아나곤 했었다.
인터넷, 정보의 바다.
나의 오랜 궁금함은 꽃 이름을 입력하고 클릭 한번 하는 것으로 너무 싱겁게 해결되었다.
널리 알려진 유래는 이러하였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젊은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효성이 지극하였지만, 시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며느리가 늘 못마땅하였습니다.
시아버지의 제삿날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제상에는 쌀밥을 올려야겠기에, 며느리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쌀을 꺼내어 솥에 안쳤습니다. 밥이 거의 다 되어 가자, 익었나 보려고 며느리가 솥뚜껑을 열어 밥알 두 개를 막 입에 넣으려 할 때였습니다.
밖에서 솥뚜껑 열리는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달려온 시어머니가, "어른이 잡숫기도 전에 먼저 먹다니!" 불호령을 하며 몽둥이로 사정없이 며느리를 때렸습니다.
며느리는 그만 밥 알 두 개를 입에 문 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며느리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며느리밥풀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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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던 유래를 알긴 했지만, 차라리 모르고 살 걸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제 적 유래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어머니 위세가 등등하던 시절, 약자인 며느리를 더욱 기구하게 만들며 억지로 지어낸 슬픈 사연을 꽃에다 덮어씌운 유래 같아서 답답함과 찝찝함이 쉬 가셔지지 않았다.
그 답답함과 찝찝함은 며느리밥풀꽃 사진을 보니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새로운 유래를 만들고 싶어졌고, 몇 날 며칠 그 생각을 하는 재미로 행복하였다.
자, 제가 새로 만든 유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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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전라, 경상 3도 어름에 사는 박가 두 사람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놀부는 형이요 흥부는 아우였습니다.
흥부가 다리 다친 제비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박씨 선물 받아 부자 되기 두어해 전, 스물 다섯 자식들 중 그래도 맏이 하나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처지라도 억지 장가를 보냈습니다. 근처에 신세 다르지 않은 규수를 며느리로 맞았는데, 그 며느리 또한 워낙 가세 빈궁한 집에서 자란 터라 볼품은 없었지만 다행히 심성은 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백부님 댁에 시아버지인 흥부가 보리쌀 한 됫박이라도 얻어볼까 찾아갔다가 백모님이 휘두르는 주걱에 맞아 뺨에 밥알 몇 개 붙이고 온 그 참담한 시아버지 몰골을 본 그 며느리, 언젠가 내 이 집을 일으키고 말리라 굳은 결심을 뼈에 새기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적질 빼고는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무책임한 시부모 덕분에 시동생 시누이, 장가 시집 안 간 동생들이 도합 스물 하고도 네 명.
그 처지에 어떻게 내 식구를 더 늘리랴.
낮에는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밤이면 아비를 닮았는지 철없이 곁을 파고드는 신랑 물리치기에 잠 한번 편히 잔 날이 없었습니다.
며느리의 그 공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차츰 굶는 날은 줄고 한 끼라도 배 채우는 날이 늘어나자 흥부네 식구들 맏며느리를 칭송하며 따르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는데, 그 다리 다친 제비가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제비 제 깐에는 고마움에 그러하였겠지만, 흥부 집으로 보자면 그것이 재앙 아니고 무엇이랴.
박들을 켜고 세상 재물이란 재물이 집에 그득하니,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 어제의 곤궁함은 쉬 잊어버리고 식구들마다 제각각 부귀 누리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시집장가 못 간 시누이 시동생들 서둘러 한 재산씩 뚝 떼어내어 시집장가가더니 세월아 네월아 흥청망청 세상 살기 멈추지를 않고, 흥부와 흥부댁 그 인심 좋은 부부 제 본성 살려 이유 없이 남 퍼주기에 여념이 없고, 그동안 곁을 물린 탓인지 낭군 또한 오입질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 살면 안 됩니다...
눈물로 고하고 몸 던져 외쳐도 누구 하나 귀담아듣질 않아 낙심천만한 터에, 그간의 고생이 뼛속에 스몄는지 결국 그 심성 착한 며느리가 몸져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는데, 죽으면서 한 유언이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지 말고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그저 자그마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지요.
마지막 유언이니 식구들은 재산 있겠다 화려하게 꾸며주고 싶은 마음을 접고 유언대로 그렇게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부자 삼대 못 간다 하였지만, 자식이 도합 스물다섯이니 흥부의 부는 삼대는 고사하고 이대조차 넘기지 못하게 되었는데, 각자 가진 재산들 탕진하고 본가로 모여드니 부와 세월의 무상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야 그 며느리가 했던 간곡한 호소들이 기억 난 흥부네 가족들, 며느리의 무덤을 찾게 되었는데......
그 며느리의 무덤가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하게 생긴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보라 빛 꽃잎 속에 밥알 두 개씩.
서로 말하지 않아도 흥부네 식구들은 맏며느리가 죽어서까지 꽃으로 말하고자 한 그 뜻을 알 수 있었지요.
"뺨에 붙은 밥풀의 아픔을 잊지 말라."
그 후로 흥부네 가족들은 다시 합심하여 일을 하였고, 식구 수가 많아서 그런지 금세 다시 집안을 일으켰습니다. 전과 다른 것은 모두 알뜰히 그 재산을 지키고 가꾸며 낭비하는 일이 없어 흥부네 부는 그 후로도 오래 지속되었답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 꽃 이름을 '며느리밥풀꽃'이라 부르며, 한 집안을 바르게 일으킨 며느리의 효성을 칭송하고, 어려웠던 날을 기억하며 근면하고 성실하게 사는 교훈으로 삼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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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새 유래가 마음에 드시는지요?
첫댓글
근사한 며느리밥풀꽃의
전설입니다.
이글을 보니 아름문학에서
보여준
아름문학에서 콩꽃님께서 해주신 격려와 응원 덕분에 제가 수필방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음자리 여기는 수리산 자락인데요.
댓글에 뺑덕어미 전이라는
글이 좋았다 는 말이
사라졌네요.^^
지하철에서 댓글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콩꽃 잘려나간 부분까지 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오 우~!
고정틀에 박힌 전설의 유래보다
마음자리님의 자작품이 완전 매력 반전입니다
우리가
흑백에서 칼라로 바뀔무럽의 그 격동시기에
칼라풀의 그 신비함에 몰입 되듯이요
저는
옛날 독한 시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옛날 우리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납니다
늘~찡 박혀서
옛날 독한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빨래하는 날엔 밥을 주지만
김장 하는날엔 밥을 안준다고 하더군요
궂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친구도 여자친구보다 남자친구가 오백배나 더 좋습니다 ㅎ
부모정도 엄마정보다 아버지정이
더더더더.....찐 하구요
내 몸 체온처럼......따뜻한....
제 어릴 적에 라디오 프로에 '전설따라 삼천리' 라고 있었는데 밤 늦게 했기 때문에 졸리면서도 애써 듣고 자곤했어요. 그때 들은 기억들이 새 전설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 의 며느리밥풀. 유래가 더 재미있군요. ㅎ. 글짓는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조건이 안 맞았겠지요. 선행이나 선업도 다 인연 조건들이 맞아야 일어나니까요.
전쟁없는 시대의 이순신장군 같은 경우일 겁니다. ㅎ
동화를 즐겨 쓰시는 마음 님 인줄 알았지만
그럴싸한 흥부네 며느리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창작 동화 영역에도 진출하시어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수고 많았습니다.
글 쓰면서 동화 쓸 때가 제일 재미있는 거 보면 동화가 체질에 맞나 봅니다. ㅎㅎ 그래서 저는 스스로 어린이 상대 뻥쟁이라 생각한답니다.
역쉬 천상이야기꾼 맘자리 님 넘넘 기발하고
잼 있어요.👍
글을 쓰고나면 왠지 잘 살고있다는 느낌이
들곤하시죠. 저도 예전에 그랬거든요.
근데말예요. 지금은 열정이 식어서요.
댓글조차 잘 안달어요.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맘자리님 이야기 팬인거 아시는거죠.
나무랑님의 산행기 읽으면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열정이 식었다니요?
제 긴 글 마다않고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열의와 열정 다 많으신 분이십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