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의 권유로 일개 호위 무사(비록 선생이라는 직업도 있지만)인 광영은 지금 신이문의 문주인 한명환(韓明煥)과 같이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식탁에는 성덕도 있었고 나영도 있었다.
광영은 깨작깨작 먹는 것 같지도 않게 젓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먹고 있었다.
자리가 거북한 것도 아니고 밥이 맛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욕이 없었던것도 아니다.
식욕은 물론 있었다.
과거형이었지만 말이다.
광영은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보며 현재는 식욕이 확 달아난 상태이다.
"아버지, 저 요리도 맛있네요"
"물론이지, 우리 주방장이 어디 보통이냐? 그렇지 이 오리도 먹어보거라"
정다운 가족 간의 대화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지만 광영은 성덕과 문주가 먹는 양에 가족간의 대화로 즐거운 분위기가 풍기는 것을 느끼는 것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맛있게 먹으면 주위 사람이 식욕이 올라가고 많이 먹으면 알게 모르게 경쟁 심리까지 생겨서 같이 먹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다르다.
먹어도 적당히 먹어야 식욕이 나지 이렇게 징그럽게 많이 먹는 것을 보면 아예 속이 느끼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지금까지 둘이 먹은 것을 다 합친 것이 곰 가족을 하루 동안 굶기고 먹이는 양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는 광영이다.
나영은 그나마 두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고 있지만 광영과 같이 깨작깨작 먹으면서도 이미 2-3인분은 먹은 것 같은 양이다.
'무사들은 수련을 많이 해서 먹는 것인줄만 알았는데 여기서 보니 그다지 많이 먹는것도 아니구나'
광영이 식당에서 밥먹을 때 무사들이 밥먹는 것을 몇 번이고 본적이 있었다.
그들 역시 밥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는데, 여기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양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전에 나를 구해내는데 한달 생활비가 들었다는데 여기서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에 최소한 3배는 넘겠군......'
"광영군?"
"아, 예?"
"왜 그러나? 혹시 입맛에 맞지 않는가?"
"아...아닙니다..."
"그래 그럼 이것좀 먹게나 그렇게 조금 조금씩 먹어서야, 어디 힘을 쓰겠는가?"
한명환이 그렇게 말하고는 광영에게 돼지다리고기로 만든 백자육(白煮肉)을 넘겨주었다.
원래 느끼하지 않지만 워낙 기름기가 많아서 가뜩이나 느끼함에 질겁했던 광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성덕아, 광영이는 왜 저러니?"
"글쎄요?"
광영이 보자마자 도망가는 것을 지켜본 성덕은 광영의 자리에 있는 백자육을 먹어보고는 잠시 후 백자육 역시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전부 사라져 버렸다.
어느덧 식사는 끝이나고 진한 향기가 나는 차향이 갈색으로 빛나는 식탁 위에 흘러 내렸다.
"그건 그렇고 성덕아"
"예, 아버지"
"이번 겨울이 오기전에 신성관에 가야하지 않겠니?"
"신성관에요?"
"그래, 뭐 우리가 그렇게 정파 사파를 따지고 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위의 안목도 있고 또 그곳에 졸업을 해야 진정한 무림인의 취급을 받으니 말이야"
"......별루 원하지는 않는데...."
"하지만 그럴시에는 너가 이 문파를 이어나갈 때 여러 불리함이 따른단다. 그리고 또 누가 아니? 좋은 짝을 만날련지? 그러고보니 너희 어머니도 그곳에서 만났구나....그때는 참 좋았었지"
명환은 옛날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향에 빠져들었다.
워낙 그의 부인이 몸이 약한지라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도 영약과 자신의 내공도 부어주며 견뎌왔었다.
그러다가 3명의 자식을 낳고 얼마후 세상을 떠났다.
언제나 그리워지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는 10여년이 지날동안 재혼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 안했다.
"아버지가 원하신다면...어쩔수 없지요"
성덕은 차를 후르륵 마시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명환을 바로자 그 역시 얼굴에 환한 빛이 돌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너와 가영이가 입관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영이 소식이 들어왔는데 벌써 초관을 통과했다더라 그러니 들어가면 너희 둘이 나영이의 후배가 되겠어"
명환은 밝게 웃었다. 그도 그럴것이 초관을 일년 안에 통과하는 것은 보통 일년에 한명 통과 할까 말까한 일다.
십인영걸 중 나영이를 포함한 5명이 신성관에 들어갔지만 일년에 통과 한 것은 3명 밖에 안된다.
십인영걸에 자신의 아이들 2명이 들어가고 나머지 한 아이는 강동현화(江東賢花)라 불리우니 자식농사는 그 누구보다 잘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말년에 접으든 그가 제일 자랑하는 것은 조상이 이룩해놓은 문파도 아니고 대륙대전에서 승리를 이끈것도 아니다. 바로 그의 3명의 자식들이다.
그 역시 신인(神人)의 피가 흐르는지라 그리 건장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한때는 오검백변(五劍百變)이라 불리우며 명성을 떨치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장담하기를 자신의 3명의 자식들이 모두 자신보다 유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
"응?"
"광영은 어떻게 하지요?"
"광영도 들어가야하지 않느냐?"
"하지만 광영이 너무 특이해서........"
"그렇기는 하구나......광영을 아는 사람이 현재 십인영걸과 우리 문파 사람들만이 알고 있고 또 그들도 그냥 별거 아닌 특이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보아하니 그는 서쪽에서 무언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괜히 공개적으로 나갔다가 큰일날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