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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불자도반 결집불사 *부처님의 도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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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정 혜 스크랩 혜암선사의 선관법요
늘-벗 추천 0 조회 31 07.01.09 07: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선관법요 1

一拳打鐘遍萬界 한 주먹으로 종을 때리니 그 소리가 만계에 두루하여
疑是乾坤倒着恐 의심하건댄 하늘과 땅이 여기 거꾸러질까 두려웁구나.
鐵圍幽暗何處明 깊고 어두운 철위산 어느 곳에 밝았는가?
佛祖堂堂聲不聞 불조도 당당히 그 소리는 듣지 못하네.

 

성도재 법어(成道齊 法語)

법상(法床)에 올라 한참 계시다가 『세존께서 2천 5백 20년 전 납월(臘月) 8일, 즉 오늘 새벽에 밝은 별을 보시고 도(道)를 깨치셨다 하니, 그 별을 보실 때 실지로 어느 곳에서 별을 보셨는지, 그 별 보신 곳을 대중은 각기 한 마디씩 말해보라.』하셨다.
대중이 말이 없자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나는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水不離波],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 [波不離水] 곳에서 보았다고 말하리라.』하시고, 다음 게송(偈頌)을 외우셨다.

 

這靈星極玲瓏 한데 이 신령스런 별은 지극히 영롱한데
體河沙內外空 이라 그 체는 항하사 세계에 두루하였으니 안과 밖이 공하였느니라.
人人袋裏堂堂有 하여 사람 사람의 가죽 부대 속에 당당히 있으되
弄去弄來莫窮 이라 희롱해 가고 희롱해 옴에 희롱함이 다함이 없느니라.

或摩尼或靈星 하여 혹은 구슬이라, 혹은 신령스런 별이라 하여
名相雖多體不殊 라 명상은 많지마는 그 체는 다르지 않다.
刹刹塵塵明了了 하여 온 세계 티끌마다 요요히 밝아,
還如朗星滿江秋 라 마치 가을 강물에 가득한 밝은 별과 같아라.

飢也他渴也他 이니 배고픔도 저요 목마름도 저이니,
知渴知飢不較多 라 목 마르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晨朝喫粥齊時飯 하며 아침에는 죽을 먹고 낮에는 밥 먹으며,
困則打眠也不差 라 곤하면 잠자는 것, 어긋나지 않도다.

差也他正也他 이니 어긋남도 저요 바름도 저이거니,
不勞 口念彌陀 라 큰소리 내어 소리치지 아니하여도 미타를 여함이라.
若能着着無能着 하면 집착하고 또 집착해도 집착함이 없으면,
在世縱橫卽薩  이라 이 세상에서 자유롭나니 그는 곧 보살이네.

此心星難把捉 하고 이 마음의 별은 붙잡기 어렵고,
宛轉靈星難可得 이라 완연히 구르는 저 영성, 붙잡기 어렵구나.
無相無形現相形 하여 형상이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며
往返無 非可測 이라 가고 옴에 자취없어 헤아릴 수 없도다.

追不及忽自來 하고 쫓아가도 미치지 못했는데 갑자기 스스로 오고,
暫到西天瞬目廻 라 잠깐 사이 서천에 갔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돌아오나니.
放則虛空爲袍內 요 놓으면 저 허공도 그 옷 안에 있고,
收則微塵難析開 라 거두면 작은 티끌만큼도 쪼개기 어려워라.

不思議體堅剛 이니 사의할 수 없는 그 체는 견고하나니,
牟尼喚作自心王 이라 석가모니도 그것을 내 마음의 왕이라 했다.
運用無窮又無盡 한데 움직여 씀이 무궁하고 또 무진하건만,
時人妄作本自忘 일세 사람들은 망념되어 그 근본을 잊고 있네.

正令行孰當頭 오 바른 영이 행해질 때 누가 감히 당하랴.
斬盡佛魔不小留 라 부처·악마 다 베어 조금도 머무르지 못한다.
從玆 界無餘物 하고 이로부터 온 경계에 남는 것 하나 없고,
血滿江河急急流 라 피가 가득한 강물이 세차게 흐르도다.

眼不見耳不聞 하니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나니,
不見不聞眞見聞 이라 보지 않고 듣지 않음이 참 보고 들음이다.
個中一個明星在 하여 그 가운데 하나의 밝은 별 있고
吐去含來新又新 이라 토하고 삼켜오매 새롭고 또 새롭네.

或名心或名星 이나 혹은 마음이라 혹은 별이라 하나,
心性元來是綠影 이라 심성은 원래 이 반연의 그림자라.
若人於此卽無疑 하면 만일 누구나 이에 대해 의심 없으면,
自己靈星常   이리라 신령스런 자기 별은 언제나 빛나리라.

或爲道或爲禪 이나 혹은 도라 하고 혹은 선이라 하나,
禪道由來是强宣 이라 선과 도, 그것 원래 억지의 이름이네.
實如師姑女人做 하면 실로 신령히 시어미가 여인을 지어씀을 알면,
不勞擡步到那邊 이리 수고로이 걸어가지 않아도 저 언덕에 이르리.

也無佛也無魔 이니 부처도 없고 악마 또한 없나니,
魔佛無根眼裏花 라 악마라 부처라 그것은 뿌리 없는 눈 속의 꽃이네.
常常日用了無事 이거니 언제나 나날이 쓰되 마침내 일이 없거니,
喚作靈星也被訶 하리라 신령스런 별이라 해도 꾸지람 못 면하리.

也無死也無生 이나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으면서
常星毗盧頂上行 이라 별은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 위를 다니나니
收來放去隨時節 하고 거두어 오고 놓아감에 시절 따르고,
倒用橫拈骨格淸 이라 거꾸로 쓰고 가로 잡으매 골격이 청정하다.

也無頭也無尾 인데 머리도 없고 꼬리 또한 없는데,
坐起明星常不離 라 앉거나 일어나나 밝은 별이 항상 떠나지 않네.
盡力 他他不去 하고 힘을 다해 저를 쫓으나 저는 안 가고,
要尋知處不能知 라 있는 곳 찾으려 해도 알 길이 없네.

阿阿阿是何星 고 아하하하, 이 무슨 별인고?
一二三四五六七 이라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
非一何處一二三 고 하나도 아닌 어디에 무슨 일이삼인고?
數去飜來無有窮 이라 세어가고 뒤쳐 옴에 그 끝이 없네.

這明星衲衣最當然이라 이 밝은 별의 누더기는 가장 알맞아,
冬夏長衲任自便 이라 겨울·여름 늘 입어도 마음대로 편리하다.
祖祖縫來千萬結 인데 조사마다 기웠으매 맺음이 천만인데,
重重補處不後先 이라 겹겹의 보처에도 먼저와 뒤가 없네.

或爲席或爲衣 니 혹은 자리도 되고 혹은 옷도 되나니
隨節隨時用不違 라 시절따라 그 쓰임에 어긋남이 없구나.
從此上行知己足 이니 이로부터 상행 보살 만족함을 알았거니,
飮光遺跡在今時 라 음광의 남긴 자취 지금에 있다.

一椀茶七斤衫 을 한 잔의 차와 일곱 근의 적삼을
趙老從勞擧再三 이라 조로(조주 스님)는 부질없이 두세 번을 들었네.
縱有千般玄妙說 이라도 비록 천 가지의 현묘한 말 있다 한들,
爭似吾家自衲衫 이랴 어찌 우리 집의 흰 누더기만 하랴.

此衲衣甚多宜 니 이 누더기 옷 매우 편리하나니,
披去披來事事宜 라 가나 오나 입어보면 온갖 일에 알맞다.
醉眼看花誰敢着 고 취한 눈으로 꽃을 보듯 하면 누가 감히 입으랴.
深居道者自能持 라 깊숙히 사는 도인이라야 지닐 수 있느니라.

知此衲幾春秋 오 이 누더기 입은 지 얼마나 되었는고?
一半風飛一半留 라 반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만이 남았구나.
獨坐茅庵霜月夜 에 홀로 앉은 띠집 암자 서리찬 달밤에는
莫分內外混蒙頭 라 안팎 가리지 않고 온통 뒤집어 섞어 쓰네.

卽身貧道不窮 하여 몸은 비록 가난하나 도는 궁하지 않아
妙用千般也不窮 이라 갖가지의 묘한 작용 그 끝이 없다.
莫笑檻 痴 漢 하라 헌 누더기 입은 이 멍청이를 비웃지 말라.
曾參知識續眞風 이라 선지식에 나아가 배워 진풍을 이으리라.

一 衣一瘦  으로 해어진 옷 한 벌과 야윈 지팡이 하나.
天下橫行無不通 이라 천하 어디고 마음대로 다녀도 걸림 없나니.
歷 江湖何所得 하고 강호를 두루 돌아다니며 무엇을 얻었는가?
元來只是學貧窮 이랴 원래 배운 것이란 다만 빈궁 뿐인 것을.

不求利不求名 이니 이익도 명예도 다 구하지 않나니
百衲懷空豈有情 가 누더기의 빈 마음에 무슨 정이 있으랴.
一鉢生涯隨處足 하니 한 바루의 생애가 어디 가나 족하거니
只將一味過殘生 이라 다만 한 맛 가지고 남은 평생 지내리라.

生涯足更何求 오 이 생애가 족하거니 다시 무엇 구하랴.
可笑痴人分外求 라 우스워라, 미련한 이들, 분수 밖에 구하는 것.
不會福從前世作 하고 전생에 지은 복을 알지 못하고,
怨天怨地妄區區 라 하늘과 땅을 원망하며 부질없이 허덕이네.

不記月不記年 하고 달도 기억 못하고 해도 기억 못하며,
不誦經文不坐禪 이라 경문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네.
土面灰頭痴   가 얼굴에는 흙칠, 머리에는 재칠 어리석은 멍청이
唯將一衲席殘生 이라 오직 한 벌 누더기로 남은 생을 지내네.

雪滿空庭人不到 인데 눈이 가득한 빈 뜰에 오는 사람 없는데
時聞衆鳥啼   이라 온갖 새들 우는 소리 때로 듣는다.
枝枝梅花明星裏 에 가지가지 매화꽃 밝은 별 속에
臘月春風物外玄 이라 섣달 봄바람이 세상 밖에 아득하네

 

하시고 법상(法床)에서 내려오시다.

칠현녀(七賢女)의 법문

부처님 당시의 칠현녀에 대한 법문을 수차 들어 생각하여 왔었다. 그러던 차 을묘년 8월 3일에 한 수좌가 경봉 스님의 문집을 가지고 와서 한번 보라고 하기에 펼쳐 보았더니, 마침 칠현녀의 법문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법문이 기이하여 살피기가 어려웠다. 그 내용 가운데 장로이(長蘆 ) 선사가 어떤 선사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말씀에는 묘한 이치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 정안(正眼)이 명백함을 깊이 느끼게 되어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부처님 당시, 칠현녀가 꽃 구경하러 시다림(屍多林)을 지나다가 그 중 한 여자가 숲 속에 송장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현녀에게 송장을 가리켜 말하되, 『이 시체는 여기 있는데 시체의 주인은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갔을까?』하였다.
그 중 한 현녀가 듣고,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하니, 모든 현녀가 자세히 관(觀)하고 그 자리에서 각기 도(道)를 깨달았다. 그 때 하늘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으로 보고 듣고 말하기를, 『성자(聖 )여, 내가 마땅히 몸이 다하도록 무엇이든지 그대들을 위하여 다 공급해 드리겠습니다.』하였다.
그러자 칠현녀들은 제석천왕에게, 『우리에게는 모든 물건과 칠보가 다 갖추어져 있으므로, 다시 더 구할 것이 없소.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만 세가지가 없으니,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오. 즉 첫째는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요, 둘째는 음지(陰地) 양지(陽地)가 없는 땅 한조각이며, 셋째는 메아리 없는 산골짜기입니다.』하였다.
『나는 무엇이든지 다 드릴 수 있으나, 그 세가지만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도 주실 수 없으면서 제왕께서는 어떻게 세상 사람을 구제 하시겠습니까?』
『그 세가지의 뜻은 나도 모르니 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부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제석천왕과 현녀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사실을 사뢰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교시가(제석천왕)여, 나의 온 제자인 저 아라한들도 그 뜻은 알지 못하고, 오직 대 보살만이 그 뜻을 아느니라.』하셨다.
장로이 선사는 이 말을 들어 상당(上堂) 법문 때에 말하기를, 『대중들이여, 자세히 들으라. 제석과 칠현녀가 한 번 물을 때에 곧 삼천리나 거꾸러져 물러갔도다. 첫째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를 청하면 나는 「시다림(屍多林)이라」말했을 것이요, 둘째 음양이 없는 땅 한조각을 청하면 나는 「봄이 오니 풀이 스스로 푸르도다」라고 말했을 것이고, 셋째 메아리 없는 골짜기를 청하면, 나는 「돌머리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였더라면 칠현녀들이 손을 들고 돌아와 항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제석천왕도 전신(轉身)의 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말해보라. 어째서 그렇겠는가? 칠현녀의 본 곳[見處]에 의하면 스스로 가시숲 속에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그 가시숲 속에서 나오려면 어떻게 말하여야 하겠는가?』하고, 한참 있다가
相喚相呼歸去來 서로서로 불러서 돌아오고 돌아가니
萬戶千門正春色 일만 집 일천 문이 다 바른 춘색이로다.
하시었다.

나는 여기서 내 나름대로 말해 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그것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 칠현녀는 시다림에서 송장을 보고 도를 깨쳤다 한다. 그러나 이 일단의 전후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건대, 즉 그 칠현녀가 모두 도를 깨쳤다는 것이 너무나 장하고 희유하였기 때문에, 제석천왕이 꽃을 흩으면서, 『무엇이든지 칠현녀가 청하면 내 몸이 다하도록 그것을 공급하겠습니다.』라고까지 말하고 그 성의를 표했는데, 어째서 이 때 그 현녀들은 오직 법담(法談)으로써 제석천왕을 시험하려 하였던가?
기왕에 시험하려 하였을진대, 먼저 천상에는 어떤 것이 보배인지 알아보고 그 보배 이름을 안 다음 그 보배를 주겠는가고 물어 보았다면, 제석천왕에게 순종하는 예의도 되고, 그가 보시하려는 진실한 뜻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제석천왕이 보배를 준다든지 안 준다든지 하는 말을 들어 본 뒤에, 위에 세 가지를 몰랐으면 칠현녀가 그 답을 일러 주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도 않고 그 제석천왕과 함께 영산회상의 부처님을 찾아 갔으니, 그들 칠현녀가 세가지를 말하였으나 자기네도 그 뜻을 확실히 몰라서 배우러 갔는지, 그 점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제석천왕은 오통력(五通力)을 구족(具足)하여 타심통(他心通)이 자유자재한데 왜 그 칠현녀들이 알고 모르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였는가? 이 도리는 성인이라도 서로 볼 수 없고, 전할 수도 없기 때문에 몰랐는지? 이 점도 또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제석천왕이 그 세가지의 뜻을 모르면 그 현녀들에게 물어보았어야 하였을 것인데, 그러지도 않고, 왜 멀리 계시는 부처님에게까지 갔는지, 그것도 또한 살펴보았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다 두루하셨는데, 어째서 다만 『교시가여!』하고 이름만 부르시고는 『내 제자인 대 아라한들도 그 뜻을 모르고, 오직 대 보살이라야 그 뜻을 아느니라.』고 하셨는가? 그런 큰 지혜를 가지신 부처님도 그 뜻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 간단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듯하지마는, 거기에 바로 가르쳐 주신 뜻이 잠재해 있는 것이니, 눈이 밝은 사람은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장로이 선사는 그 칠현녀가 형단(形段)이 없는 그 세가지 물건을 말한 것을 가시숲 속에 있다 하였고, 또 그 세가지를 형단이 있는 물건으로 가르쳤으니, 그러면 그들은 어떤 가시숲 속에 있었는가?
다음에는 그 세가지 물건에 대하여 내가 일러 보리라.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에 대하여 장로이 선사는 『그것은 시다림이다.』하였고, 경봉선사는 『사람의 몸에는 모발(毛髮)이 초목(草木)이니, 그것은 칠현녀의 모발이다.』하였으되 나는 『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이라. 봄이 오매 풀이 스스로 푸르다.』고 하겠다.
음양이 없는 땅 한 조각에 대하여는 장로이 선사는 『봄이 오매 풀이 스스로 푸르다.』하였고, 경봉 선사는 『사람의 머리는 하늘이요 발은 땅이니, 그것은 칠현녀의 발을 가리킨 것이며, 봄바람을 입지 않아도 빛이 스스로 곱다.』하였으되, 나는 『무음양시(無陰陽時)에 즉생지(卽生地)라, 즉 음양이 없을 때에 곧 땅이 났다.』고 말하겠다.
메아리 없는 산골짜기에 대하여 장로이 선사는 『돌머리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다.』고 하였고, 경봉 선사는 『사람의 몸에 이쓴 치아는 도산검수(刀山劍樹)처럼 벌려져 있어, 모든 식물이 입에만 들어가면 다 티끌이 되고 말기 때문에 치아가 곧 도산검수가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칠현녀의 입을 가리킨 것으로서 도산검수가 다 고르지 않다 하면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했는가?』하였으되, 나는 『무향산곡(無響山谷)에 유향불문(有響不聞)이라. 메아리가 없는 산골짜기에 메아리 있는 것을 듣지 못한다. 즉 어두운 사람은 어두움을 보고 밝은 사람을 밝음을 보는 것이다.』고 하겠다.
칠현녀의 본 곳에 의하면, 스스로 가시숲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하니, 이 가시숲이라는 말을 바로 살피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이 가시숲이란

相喚相呼歸去來 서로서로 부르며 돌아오고 돌아가니
萬戶千門正春色 일만 집 일천 문이 다 바른 춘색이로다.

인데 그러면, 무엇이 부르며 무엇이 돌아왔다는 말인가?
이 두가지를 일반 대중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것을 내게 묻는다면 나는 『첫째 「가시숲」이란 「동념즉괴(動念卽乖)라. 생각이 움직이기만 하면 곧 어긋난다.』할 것이요, 『둘째 「무엇이 부르며 돌아옴」이란 「문전일로투장안(門前一路透長安)」이니, 즉 문 앞의 한길이 장안으로 뚫렸다.』하리라.

염화미소

부처님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설법하실 때 백만억 대중이 모이었다.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자 오직 가섭(迦葉)만이 그것을 보고 미소(微笑)를 지었다. 가섭은 부처님의 수제자(首弟子)였다.
그런데 가섭은 무엇 때문에 미소를 지었던가? 우리는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누가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 뜻을 전부는 말할 수 없고, 3분의 1만은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가섭의 미소는 무슨 뜻인가?
그 웃음은 비웃음의 웃음이다. 비웃음의 뜻을 알면 세존께서 꽃을 드신 뜻도 알 수 있고, 가섭이 미소한 뜻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말해 보라. 가섭이 무슨 뜻으로 비웃는 웃음을 웃었던가?
만일 나에게 묻는다면 『같잖다는 생각으로 웃었느니라.』하리라.


수덕사(修德寺) 수계법문(受戒法門)

수덕사에서 기유년 동안거(冬安居)의 결제(結制)를 기(期)하여 비구니 수계산림(受戒山林)을 열고, 혜암(慧菴)스님·춘성(春城)스님을 모시게 되었다. 이 법회에서 비구니의 선문답(禪問答)이 있었다.
처음에 혜암 스님, 또 그 다음에 춘성 스님의 계법문이 있었다. 춘성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혜암 스님은 자기 처소로 돌아가신 후 시자에게
『나는 귀가 어두워 다른 스님의 법문을 못 들었다. 네가 다시 말해보라.』하셨다.
시자가 말하기를
『춘성 스님이 법상에 오른 후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삼십년 전에 만공(滿空) 스님의 법어(法語) 한 가지입니다.」하고, 이어 「만공 스님이 그 방장실(方丈室)에 쳐 놓은 십우도(十牛圖) 병풍의 견적(見跡)을 가리키면서 <소가 없는데 왜 그 발자국이 앞에 있는가?>하고 물었으나, 그 때에는 아무도 거기 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대중 스님네는 이 법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한번 일러 보시오.」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비구는 나와 춘성 스님께 절을 하고는 돌아가 앉았고, 한 비구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춘성 스님께 반배(半拜)하고, 『음매, 음매.』하면서 송아지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 때 월산(月山) 스님은 「시자야, 저에게 꼴을 한 줌 갖다 주어라.」하셨으며, 혜공(惠公) 스님은 「와, 와!」하고 소리치셨습니다!』하였다.
이 말을 들은 혜암 스님은
『그 때 만일 이 혜암 같으면, 「음매, 음매!」할 때에는 더 큰 소리로 「음매, 음매!」 하였을 것이요, 풀 한 줌 갖다 주라 할 때에는 풀 뜯어먹는 시늉을 내었을 것이며, 「와, 와!」할 때에는 잠깐 말을 그쳤을 것이요, 또 참으로 알고 절했다면 나도 웃으면서 절했을 것이다.』하시고, 이어
『구름 밖에 벗어난 토끼가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고, 해 다 진 저문 날에 굶주린 매가 토끼 잡아 먹을 줄 알지 못하며 속절없이 혼자 울기만 하는구나.』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고인(古人)의 말에 문처분명 답처친(問處分明答處親)이라. 「묻는 곳이 분명하여야 답하는 곳에 친합한다」한 것이다.』하셨다.

결제법어(結制法語)

법상(法床)에 올라가 한참 계시다가
『결제(結制)라 해서 대중이 모였다가 해제(解制)라 하여 대중이 흩어진다. 봄이 오고 가을이 가는 이런 때가 새로운 것인가? 묵은 것인가?』하시며, 주장자(柱杖子)로 법상을 치시고는
『결제라 해서 대중이 모이는 것인가? 해제라 해서 대중이 흩어지는 것인가? 이것이 가는 것인가? 이것이 오는 것인가? 이것이 새로운 것인가? 이것이 묵은 것인가? 이것이 변하는 것인가? 이것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시었다.
주장자로 다시 한번 치시고는
『이것은 맺는다 해도 안되는 것이요, 이것은 푼다 해도 안되는 것이며, 이것은 모인다 해도 안되는 것이요, 이것은 흩어진다 해도 안되는 것이며, 이것은 간다 해도 안되는 것이요, 이것은 온다 해도 안되는 것이며, 이것은 새롭다 해도 안되는 것이요, 이것은 묵었다 해도 안되는 것이며, 이것은 변한다 해도 안되는 것이요, 이것은 변하지 않는다 해도 안되는 것이니, 이것이 모두 안되는 것이라면, 결국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하시고, 잠시 계시다가 대중이 아무 말이 없으므로,
『만약에 이 한 마디를 바로 일러 오는 학인(學人)이 있다면, 또한 자광(慈光)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바다 밑에서 연기(煙氣)가 일어난 도리(道理)를 일러 올 수 있을 것이다.』하신 다음, 아래의 게송(偈頌)을 읊으셨다.

身心把正元無動 몸과 마음을 바로 잡아서 원래 동함이 없이
默坐茅庵絶往來 묵묵히 띠집에 앉아서 오고가는 왕래를 끊으니
寂寂寥寥無一事 적적하고 고요하고 고요해 한 가지 일도 없나니
但看心佛自歸依 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해 돌아가라.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신 후 하좌(下座)하시다.


수덕사(修德寺) 종불사(鍾佛事) 회향(廻向)

법상(法床)에 올라가 말씀하시기를
『이번 각 도시나 지방의 면면 촌촌에서 수덕사의 종불사가 있다는 말이 어디고 두루 다 퍼졌다 하니, 그렇다면 「종성리천득(鐘聲裏薦得)이면 고성리전도(鼓聲裏顚倒)라. 종 소리에 천득하면 북 소리에 거꾸러진다.」한 이것은 종 소리에 대한 공안(公案)이다. 대중은 각기 한 마디씩 일러 보라.』
하신 후 대중이 아무 말이 없으므로, 잠시 후 또 말씀하시되
『전국적으로 둘도 없는 이 종불사가 대중으로조차 일어난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종 소리에 천득하면 북 소리에 거꾸러지는가? 여기서 시회 대중은 밝게 살펴보아야 하느니라. 이 자리에서 만일 바로 이르면 이 동참 제자와 시회 대중이 부처님에게 대한 시혜(施惠)를 보답하는 것이 되겠지마는, 그렇지 못하면 아무 공덕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기 한 마디씩 말해보라.』하셨다.
그러나 대중이 말이 없자 스님은 이어
『만일 내게 그 뜻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리라.』하시고, 주먹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며
『주먹을 이렇게 펴는 것이 옳으면, 손을 이렇게 쥐는 것이 그르지 않노라.』하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一拳打鐘遍萬界 한 주먹으로 종을 때리니 그 소리가 만계에 두루하여
疑是乾坤倒着恐 의심하건댄 하늘과 땅이 여기 거꾸러질까 두려웁구나.
鐵圍幽暗何處明 깊고 어두운 철위산 어느 곳에 밝았는가?
佛祖堂堂聲不聞 불조도 당당히 그 소리는 듣지 못하네.
기해년 10월 20일


해제법어(解制法語)

팔정사(八正寺)의 해제 때에 혜암 조실 스님이 법상에 올라 송하시되

今人不見古時星 지금 사람이 옛 별을 보지 못하나
今星曾經照古人 지금 별은 일찍이 일찍이 옛 사람을 비추어 왔네.
古人今人若流水 옛 사람 지금 사람 이 흐르는 물과 같거늘
共看明星皆如此 함께 밝은 별 살피는 일 모두 이와 같도다.

하시고, 법문하시기를
『공부할 때에 화두(話頭)에 대한 생각이 무르녹을수록 심심해서 아무 재미가 없어진다. 그럴 때는 바로 잘 진보되어 점점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니,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의심으로 반성해 보아야 하며, 그 돌이켜 의심하는 생각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한다.
화두를 짓는 생각이 깨끗하면 문득 고요한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고요해진 뒤에라야 정(定)이 되는 것이며, 정에는 정정(正定)과 사정(邪定)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의 힘이 생긴 뒤에는 깨끗한 신심(信心)으로 몸과 마음이 밝아져, 어디서나 살피는 힘이 정하는 것이다.
대저 움직이는 가운데 한 조각을 이루더라도 마땅히 잘 용심(用心)할지니, 공부를 시작하고 마칠 때 고요하고(靜) 조촐한(淨) 두 글자를 여의지 말지니, 고요한 것이 지극하면 문득 깨달은 것이요, 조촐함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할 것이다.
의심을 가지는 기운이 엄숙하고 풍기(風氣)가 맑아서, 움직이고 고요한 경계가 가을 하늘 빛깔이 서로 맑고 맑을 때에 제 1의 정절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러할 때에 잘 나아가면 맑은 가을에 들 물과 같고, 옛 사당의 향로와 같게 될 것이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여 마음의 길이 행하지 못할 때에는 또한 이 허환(虛幻)한 몸이 인간 세계에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화두에 대한 생각이 솜 늘어 놓은 것과 같을 뿐이요, 결코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온갖 티끌은 모두 쉬고, 광명이 통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때에 깨쳤다는 생각을 내면, 곧 순일하고 묘함이 끊어질 것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경지에서 허물이 없는 이는 동정(動靜)이 하나 같고, 성성하고 적적한 속에서 화두(話頭)가 분명히 앞에 나타나, 움직이고 고요한 경계가 한결같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물 속에 비친 달 광명(光明)이 물결치는 대로 활발발(活潑潑) 흔들리나 그 달빛은 물결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것과 같아서, 번뇌 망상(煩惱妄想)이 일어날 때에도 이와같이 의심으로 빨리만 반성하면 그 번뇌 망상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와같이 정진(精進)하여 의단(疑團)이 파(破)하면 정안(正眼)이 바로 열릴지니, 홀연히 대쪽 맞듯, 맷돌 맞듯 하고, 또 닭이 알을 품음에 더운 기운을 내려 보낼 때, 그 더운 기운이 찰나 간이라도 끊어지면 그 알은 병아리가 되지 못하고 곯아 버리고 마나, 그 더운 기운이 다 되어 어미닭이 입부리로 쪼아 버리매 그 속에서 병아리가 소릴 치고 나오는 것과 같고, 또한 왕대 마디가 「꽝!」하고 튀듯이 되나니, 이 때를 당하여 나의 본래 면목(面目)을 깨달아 마치리라.
이와같이 한 연 후에 명안(明眼) 선지식(禪知識)을 찾아가서, 백번이나 천번이나 단련하여 큰 법기(法器)를 이루기를 요구할지언정 조금이라도 얻어 가졌다는 자족심(自足心)을 내지 말지로다.
깨친 뒤에라도 선지식(禪知識)을 찾지 아니하면 후사(後事)를 마치지 못하리니, 그 해(害)가 하나만이 아니라 무궁무진하리라.』하시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九旬禁足今朝盡 90일의 금족이 오늘에 끝나나니,
四月安居驀沒迹 4월의 안거 문득 자취도 없도다.
露柱燈籠南北去 노주와 등롱은 남북으로 떠나지만
依前石虎鬪高峰 석호는 예와 같이 높은 봉우리와 싸운다.

육씨대덕화(陸氏大德華) 영가(靈駕) 사십구재(四十九齋)

법상(法床)에 올라 주장자를 치시고 한참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병인생(丙寅生) 육씨 대덕화 영가, 병인생 육씨 대덕화 영가, 육씨 대덕화 영가.
生時一陳淸風起 하고 날 때는 한가닥 맑은 바람 일어난 것 같고
滅去淨潭月影沈 하여 멸해 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긴 것 같아
生滅去來無障碍 로다 나고 멸하고 가고 오는 데에 걸림이 없도다.』 하시고, 향을 사룬 뒤에 예배하고는

『一片香烟隨手起 하니 한조각 향 연기가 손끝에서 일어나니
個中消息幾人知 오 이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고?

영부인 육씨 영가께서는 인간에 나와 40여 년을 인간 세계에 유희하시다가 지금에 이르러 사대(四大)는 비록 각각 흩어졌으나, 영가의 일점 영명(一點靈明)은 신령스럽게 홀로 비추어 밝게 드러났도다. 성인(聖人)에 있어서도 더하지 않고, 범부(凡夫)에 있어서도 덜하지 아니하나니, 그것은 해탈하여 아무 데에도 의지하는 데가 없도다. 활발발지(活潑潑地)하여 막히고 걸리는 바가 없으며, 비록 형상이 없고 처소가 없더라도, 능히 시방 세계  꿰뚫고 모든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 노닐 수 있을 것이다.
머리 머리에 해와 달과 같이 밝고, 물건 물건마다 나타나되 취하려 해도 얻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항상 있음이로다.
헤아릴 수 없는 광겁(曠劫)으로부터, 날 대에도 나는 데에 따르지 아니하고, 죽을 때에도 죽는 데에 따르지 않으며, 저 세계 이 세계로 돌아가고 돌아오되 자취 또한 없도다.
그러나 눈에 있어서는 보고, 귀에 있어서 듣나니, 육근(六根)에 서로 나타나 요요하고 분명하도다. 그렇다면 시방 세계가 안팎이 없을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조촐하고 묘한 불국토 세계(佛國土世界)이며, 이것은 짝이 없는 불국토 세계이며, 이것은 무량한 불국토 세계이며, 이것은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 세계이며, 이것은 생각할 수 없는 불국토 세계이며, 이것은 말할 수 없는 불국토 세계이다. 이러한 불국토 세계가 이미 갖추어져 있을진대, 지금 영부인 육씨 영가께서는 어느 불국토 세계에 계시나이까?
위로는 모든 부처님 근원에 함하였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의 마음 땅에 합했나니, 그러므로 이르되
「곳곳이 참되고 곳곳이 참되며, 티끌티끌이 본래 면목이며, 진실을 말할 때에 소리는 앞에 나타나지 않으나, 본체는 당당하여 오직 눈 앞에 있다.」하는 것이니, 영가는 아는가?
행장(行狀)은 꿈과 같고 뜬 구름 같아, 전혀 살아날 수는 없고, 육친(六親)은 모두 끊어졌도다. 그러나 일척(一隻)의 청백안(淸白안眼)을 얻어, 웃으면서 남북으로 왕래하는 사람을 본다.』
하고,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내려오시다.

도각찰간(倒却刹竿)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 존자의 주창으로 왕사성(王舍城) 밖에 있는 가비라국에서 오백 성승(聖僧)이 모여 경전을 결집(結集)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란(阿難) 존자는 그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예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섭 존자에게
『부처님께서 사형에게 전법(傳法)하실 때에, 금란가사(錦 袈裟)이외에 따로 무엇을 전한 것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아란아!』
『예.』
『저 문 밖에 있는 찰간(刹竿)대를 꺽어 버려라.』하였다. 그러나 아란 존자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사흘 동안 간절히 의심한 끝에 크게 깨치고, 그제서야 그 결집에 참석하여, 부처님 말씀으 들은대로 다 외우니,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그러므로 대중이 그것을 증명하여 경전 결집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병술년에 나 혜암이 대성암(大聖庵)에 갔더니, 만성(滿性) 비구니가 내게 와서 묻기를
『도각문전찰간착(倒却門前刹竿着)의 의지(意旨)가 어떠합니까?』하였다.
그 때 마침 나는 전강(田岡) 스님이 누구의 물음에 대한 답에 대하여 즉 「두 번 범하지 않겠노라.」고 한 말이 생각나기에 얼른
『두 번 범하지 않겠노라.』하였다. 그러자 만성 비구니는
『그렇다면 전자에 제가 스님께 졌던 빚을 이 한 마디로 다 갚았습니다.』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답을 잘못했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시
「전에는 만성 비구니가 내게 와서 묻고 공부를 했는데, 이제 와서는 내가 그 물음에 답을 잘못하다니…….」하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 뒤로 나는 그 말을 생각하고 용맹 정진을 계속한 끝에 비로소 찰간대의 의지를 밝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 때에 내가 만성 비구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 의심을 그냥 끌고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고 그 의심을 끌고 왔기 때문에 오늘에 그 경우를 깨닫게 된 것이다.
만일 나에게 찰간에 대한 의지를 묻는다면, 나는
『안불견 이불문(眼不見耳不聞)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하리라.
찰간대를 꺽어버린 소식은 결국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더라도 그 근본 자체는 감히 이를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육조선사(六祖禪師)

서울 상도동 반야선사라는 절에서 세계 각국 승려들이 계(戒)살림을 한다고 한국 대표로 나를 청하러 왔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보고 계를 설(說)하라고 하기에 나는 율문(律文)을 보지 아니하므로 육조(六祖) 스님의 단경(壇經)을 보고 육조 스님의 법문을 설하였다.
육조 혜능(慧能)이 의발(衣鉢)을 지니고 삼경(三更)에 더나오는데 오조(五祖)가 친히 구강역(九江驛)에까지 배웅을 나왔다가 배에 오르자 오조가 또 손수 노를 저으려 하였다. 그래서 혜능이 오조에게
『스님, 제가 노를 젓겠습니다. 스님은 앉아 계십시요.』하였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네 주리라.』
『아니올시다. 제가 모를 때에는 스님께서 저를 건네 주셨지마는, 이제는 제가 알았으니,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하나이다. 건넨다는 말은 하나이오나, 쓰이는 경우가 다른가 하나이다.』
『그렇다. 앞으로는 불법(佛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떨치리라.』
하였으니, 이 쓰이는 경우란 어떤 것인가? 이 쓰이는 경우 한 마디에 단경(壇經)의 대의(大義)가 다 들어 있으니, 대중은 잘 살펴야 한다.
만일 나에게 쓰는 경우를 묻는다면, (그 쓰는 경우를 파설은 절대 못하나) 그 쓰이는 경우와 똑같은 비유로써

水不離波요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波不離水로다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다.

라고 하겠다. 그 이르는 법은 털끝만큼도 틈이 없이 이르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삼십방(三十棒)

중국의 육조(六祖) 스님 법제자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마조(馬祖) 도일(道一)선사께서 하루는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이르시기를
『이 안에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린다.』고 하시니, 한 수좌가 그 원상 안에 들어가 앉았다.
마조 선사께서 방망이로 그 수좌를 후려치시니, 그가 마조 스님에 대해 답하되
『스님이 나를 때리지 못했습니다!』하였다.
마조 선사는 아무 말없이 자기 방장(方丈)으로 돌아가시었다. 그런데 이 때 마조 선사가 무엇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었는가? 그 쉰 뜻을 알아야 하며, 여기에 대하여 한 마디 말을 해보라.
만일 내게 마조 스님의 쉰 뜻을 묻는다면 나는
『마조 선사가 자기 방망이를 참으로 아꼈다[馬祖棒眞惜].』고 말하리라.
왜냐하면 마조의 방망이를 맞은 수좌가 『스님은 저를 때리지 못했습니다.』하였을 때 마조가 잠자코 자기 처소로 돌아갔기에망정이지, 만일 그 방망이로 그 수좌를 다시 때렸더라면 그 방망이도 부수어졌을 것이고, 마조 자신도 거꾸러지는 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수좌의 무서운 독한 방망이는 그 독(毒)을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독한 방망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마조의 방망이를 맞고 원상 안에 앉아 있는 수좌가 『스님이 저를 때리지 못했습니다.』라고 한 그 말 속에 무서운 독한 방망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조가 아무 말없이 자기 처소로 돌아간 것이다.
一枝毒棒毒難除 한가지 독한 방망이는 그 독한 기운을 제하기 어렵나니
佛祖相逢當怖走 불조도 이를 만나면 두려워 달아나리.
畢竟此意如何會 필경에 이 뜻은 무슨 뜻인가?
不風流處也風流 풍류를 하지 않는 곳에서 또한 풍류를 한다.

근래에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삼십방(三十棒), 삼십방…….』하고 말은 잘하나, 실은 이 삼십방이란 말의 처리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종지(宗旨)를 바로 이르더라도 삼십방을 맞을 것이요, 또 바로 이르지 못하더라도 삼십방을 맞을 것이니, 삼십방이라는 그 방망이까지도 깨끗이 처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그 방망이까지도 처리하겠는가?
그 법을 모르고 다만 입으로만 방망이를 말하는 것은 원숭이가 모양만 흉내내는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그것은 눈먼 방망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 방망이까지 처리하는 법을 일러보라.
만일 그 법을 내게 묻는다면
『저 앞산에서 벼락을 때렸다.』고 하리라.

성색이자(聲色二字)

어떤 학인이 조실 스님께 여쭈었다.
『성색 이자(聲色二字)를 여하(如何)히 투득(透得)하여야 합니까? 즉 소리와 형상, 이 두 글자를 어떻게 깨달아 얻어야 합니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저승문처(這僧問處)를 친답착(親踏着)하라. 즉 네가 묻는 곳을 몸소 밟아 이르러 보아라.』하시고

黃鶴樓前吹玉笛 황학루 앞에서 옥피리를 부나니
江城五月落梅花 강성 땅 오월에 매화가 떨어진다.
라는 게송을 하시었다.

이 도리는 어렵다 쉽다 하는 두 명사를 다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도 아니거니와 또한 쉬운 것도 아니다. 참으로 눈이 밝은 학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옥피리는 무슨 옥피리이며, 매화는 무슨 매화인가? 옥피리와 매화를 가릴 줄 아는 학인이라면 한번 일러보라.
참으로 이것을 가릴 줄 아는 학인이라면

實謂盲龜遇木 실로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나무를 만남과 같음이며
纖芥投針 바늘을 던져 개자를 꿰는 것이라.
其爲慶幸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니
曷勝道哉 어찌 도를 이기는 자가 아닐까 보냐.

한 고인(古人)의 말씀을 알 것이다.

수미산화(須彌山話)

혜암 선사(惠菴禪師)께서 달마회 법회에서 중국의 운문 선사(雲門禪師)의 유명한 법문을 들어 대중에게 이르시되
『어떤 중이 운문 선사에게 묻되
「학인(學人)이 한 생각[一念]도 일으키지 아니하였는데[不起]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운문 선사께서 이르시되 「수미산(須彌山)이니라!」고 하시었다.』하시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아니하였으면 허물, 즉 죄(罪)가 없을 것인데 운문 선사께서는 왜 수미산(須彌山)처럼 허물, 즉 죄가 크다고 하시었는가? 어찌하여 수미산이라 하시었는가? 시회 대중(是會大衆)은 일구(一句)를 장래(將來)하라.』하시니, 때에 한 거사(居士)가 사(師) 앞에 나가 일배(一拜)하고
『동념 즉괴(動念卽乖)라.』하니, 사(師)께서
『선재 선재(善哉善哉)!』라 하시고 하좌(下座)하시었다.

곡불장직(曲不藏直)
―이 ∼것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 곡불장직(曲不藏直), 즉 꼬부라진 것은 곧은 것을 감추지 아니하였다 함은 나옹 조사(懶翁祖師)의 법문이다. 이 근본 도리를 내가 대중의 면전(面前)에 드러내 보이리라. 「곧은 것이 꼬부라진 것 가운데 있는 것을 눈으로 본다.」그러면 어떤 것이 꼬부라진 것 가운데 있는 곧은 것인가? 바로 보고 말하기는 깊은 뜻과 같이 참 어려운 것이다. 각자가 누구나 다 혹 본뜻을 나타내 말할 수는 있지만, 다시 물으면 그것은 깊은 뜻과 같이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이다.
이 도리를 나타내 말하는 이는, 누구나 눈으로 모든 경계를 볼 때에 산(山)은 산이요, 물(水)은 물로 보고, 각각 스스로 완연(宛然)한 근본(根本) 경계(境界)를 체득하여 나타내 보일 것이다.

상신실명(喪身失命)

혜암 선사(惠菴禪師)께서 충청남도 광덕사(廣德寺)에 주석(住錫)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남루한 행장(行狀)을 한 객승(客僧)이 저녁 때가 늦었는데 조실(祖室) 방에 들어와 선사께 예배하고 사뢰기를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하니, 선사께서
『무슨 말인지 일러 보라.』하시었다. 그 객승이
『법(法)에 대한 말씀입니다.』하므로 선사께서
『그러면 내일 아침에 물으라.』하시었다.
다음날 아침에 그 객승이 선사의 조실 방으로 와서 예배를 올리고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므로, 사(師)께서
『어제 이야기를 계속하여 보아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 사(師) 앞에 나와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바싹 다가 앉으며 정면으로 마주 쳐다보니 이 때에 사(師)께서도 또한 그 객승의 안면을 한참 마주 보시고 계시는지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박하고 엄숙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 객승이
『스님이 저를 보십니까?』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사께서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산소탄(南山燒炭)이라.』고 답하시니, 그 객승은 재차
『제가 스님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었습니까?』하니, 사께서 답하시기를
『지나갔느니라.』라고 하시매, 그 객승이
『저 같으면 스님과 같이 그렇게 이르지 아니하겠습니다.』하니, 사께서
『그러면 어떻게 이를 터이냐?』하셨다. 객승이 이르되
『<아무것아!>하고 부르겠습니다.』하므로, 사께서 이르시기를
『그러면 <지나갔다>는 것과 <아무것아!>하고 부르는 것과 같으냐? 다르냐?』하시니, 그 객승이 답하기를
『…….』(이 답은 공안의 파설이 되므로 여기에 기록 아니함.)
라고 분명히 활구(活句)를 일렀으므로, 선사께서는 이 객승의 견처(見處)를 더욱 점검하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고인(古人)의 공안(公案)을 계속하여 문답하시게 되었다. 사(師)께서
『옛적에 어떤 학인(學人)이 조사(祖師)에게 와서 인사(人事)를 올리니,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디서 왔느냐?」하시기에 그 학인이 답하기를 「검산(劍山)에서 왔습니다.」하니, 조사께서 「검산(劍山)에서 왔으면 칼[劍]은 가져 왔느냐?」하시므로 그 학인이 아무 말없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말씀하시고, 그 객승에게 물으시되
『위 고인의 공안에서 조사(祖師)가 물으신 데 대하여 학인이 아무 말없이 다만 손가락을 땅을 가리킨 도리(道理)를 일러 보아라.』하시니, 객승은
『그것은 상하(上下)를 다 가리킨 말입니다.』하였다. 혜암 선사께서
『그렇지가 아니하다.』하시니 그 객승은
『어찌하여 그렇지 않습니까?』하였다. 선사께서는 객승에게 대하여
『그대는 돌아가면 이 공안(公案)을 잘 의심(疑心)을 지어 투득(透得)하여 보도록 노력하라. 그대는 공부(工夫)에 힘이 있어 곧 이 공안을 투득할 수 있을 것이다.』하시고, 선사와 그 객승과의 문답이 끝났다. 이러한 일이 있은 얼마 후 그 객승은 분명히 위 공안에 대한 답을 서신(書信)으로 바로 일러온 사실이 있었다. 혜암 선사께서는 위 공안에 대하여
『이 객승이 바로 이른 답(答)은 이 공안을 파설(破說)한 답이니 그것을 여기에 그대로 말하여 둘 수가 없다.』하시고, 제방(諸方) 납자(納子)를 위하여
『내가 격외(格外)로 한 마디 하여 두겠노라.』하시고, 위 공안에 대한 답을
『상신실명(喪身失命)이라. 즉 몸 상하고 목숨 잃었느니라.』라고 하시었다.

 

선관법요 2

天氣溫溫新春日 하늘 기운이 따뜻한 새로운 봄날에
新芽初自聳離眞 새싹이 처음 돋아 오르매 스스로 진을 여의고
傍人若問何奇特 무엇이 기특하냐 누가 물으면
南山燒炭北山紅 남산에 숯을 구우니 북산이 붉었도다 하리.

전수의발(傳受衣鉢)

대한 불교 달마회 법회에서 혜암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중국 동산 양개 선사(洞山良价禪師)의 법문을 들어 아래와 같은 법어(法語)를 하시었다. 즉 어느 중[僧]이 동산 선사에게 와서 문(問)하되
『오조(五祖) 홍인 선사(弘忍禪師)의 법(法)을 이어받아 육조(六祖)가 될 사람은 당시 오직 신수 대사(神秀大師)라고 누구나 추측하였고, 그는 오조 문하(門下)에서 가장 오랜 수학(修學)을 했을 뿐 아니라, 학력이 출중(出衆)하여 대중(大衆)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분으로서 그는

時時勤拂拭 하여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勿使惹塵埃 니라 진애가 묻지 아니하도록 하라.

라는 게송을 바치고도 어찌하여 달마(達磨) 스님으로부터 역대 조사(歷代祖師)가 이어받아 온 의발(衣鉢)을 오조(五祖)로부터 받지 못하였습니까?』라고 하니, 동산 선사께서는 말씀하시되
『육조 혜능 대사(慧能大師)께서

本來無一物 인데 본래로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 냐 어디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 보냐.

라 하고, 오조(五祖)로부터 의발을 전수(傳受)하였으나, 나[洞山禪師]는

直道本來無一物 이라 직도는 본래 무일물이라고 이르더라도
也未合得也衣鉢 이니라 또한 아직 합당히 의발을 얻었다고 못하리라.』고 하시고
『차도(且道)하라. 즉 또한 일러라. 어떤 사람이 합득(合得) 즉 맞음을 얻을 것인고?』
하시니 중(僧)이 구십육 전어(九十六轉語)를 하였으나, 모두 서로 계합치를 못하였다.
그러나 말후(末後)에 이르러
『설사 장래(設使將來)라도 타역불요(他亦不要)니라. 즉 설사 일어 가져오더라도 또한 부당합니다.』하니, 동산사(洞山師)께서 수긍을 하시었다 하시고, 혜암(惠菴)선사 께서는 대중(大衆)을 향(向)하여
『이 법문에 대하여 내가 대중에게 묻겠는데 동산(洞山) 선사는 「직도(直道)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하시었으나, 나[惠菴]는 「직통(直通)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하여도 의발(衣鉢)을 받지 못한다 하겠노라.』하시고
『시회 대중(是會大衆)이여, 자세히 관(觀)하라. 「직통(直通)은 어떻게 하여야 의발을 받겠는가?』하시니, 대중이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스님은
『나보고 누가 이 도리(道理)를 묻는다면 이와 같이 이르리라.』하시며
『여하보림(如何保任)이니이꼬? 즉 어떻게 보림을 하오리까? 라고 하겠다.』하시고, 곧 이어서 아래와 같은 송(頌)을 하시었다.

到頭般若鉢은 머리에 이은 반야발이는
任運落前境이니 임의로 운전하여 앞 경계에 떨어졌으니
北山一發花가 북산에 한 꽃이 발하니
忽地前山紅이니라 문득 한 땅 앞산이 붉었도다.

인생(人生)의 진면목(眞面目)

불생 불멸(不生不滅)이 참 묘법(妙法)인데, 우리는 무한한 세상을 살아 오면서 얼마나 많은 형상을 바꾸었던가? 천상(天上)세계·인간(人間)세계·귀신(鬼神)세계 등의 갖가지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몸을 받을 때마다 껍데기를 바꾸어 썼다.
선업(善業)을 지어서는 천상이나 인간에 났고, 악업(惡業)을 지어서는 귀신이나 축생의 몸을 받아 영겁(永劫)으로 무수한 고통을 당했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일체 중생이 자기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을 망각(忘却)한 데 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이 미(迷)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밝은 마음이 왜 미(迷)했는가? 번뇌와 망상, 그리고 욕심에 덮여 청정(淸淨)한 마음이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비유로 말하면, 청천(靑天)의 밝은 달이 나타나지 못함과 같나니, 그 검은 구름은 번뇌 망상에 비유한 것이요, 밝은 달은 마음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잘 수양하여 저 서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을 벗겨 버리는 것과 같이, 마음의 구름을 벗겨 버리고, 밝고 맑은 본래의 고향 달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눈으로 모양을 본다. 그러나 송장은 눈이 있어도 물건을 보지 못한다. 눈이 아닌 한 물건이 있어 무엇이든지 보지마는, 무엇이 보는지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한 모양도 볼 수가 없다.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검은 구름을 벗겨 버리고 밝은 달이 나타난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미움과 친함이 없어진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생사를 면한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고해(苦海)를 벗어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나고 죽을 때 항상 육체만을 보고, 나고 죽는다 하지만 나고 죽음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망념(妄念)된 생각으로 난다 죽는다 하는가? 난다 죽는다, 간다 온다,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것은 하나의 명상(名相)뿐이요, 실체(實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없는 동시에, 개인 개인의 그 신령스럽게 비치는 불성(佛性)은 시방 세계를 통하여 두루(頭頭)에 항상 밝고, 물물(物物)에 항상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때에 그렇게 나타나는가? 혹은 눈에 보이는 색도 있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있을 때, 그 때에 바로 그것은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눈에 색이 보이고 귀에 소리가 들릴 때에 밝게 나타난다고 하지마는, 눈에 보이는 색도 없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없을 때에는 그것은 어디에 나타나는가? 그 때 그것은 잠자코 있다가 때를 당해 인연이 오면, 오늘 이와 같이 이 「법어집(法語集)」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나타나는 자체는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의 설법도 미칠 수 없고, 천하 선지식의 전법(傳法)으로도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타나는 자체에는 인연도 끊어졌고 대(對)도 또한 끊어진 것이니, 이것은 시방 세계(十方世界)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참 면목(面目)이며, 천하 선지식의 참 면목이며, 오늘 이 대중의 참 면목이다.
그 뿐 아니라 일체 중생이 고금을 통해 그것을 수용(受用)해 오지마는,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개개인이 본래 갖추고 있는 참 면목인 것이다.

身是正法藏 몸은 바로 이 바른 법을 감추었고
心爲無碍燈 마음은 걸림 없는 등불이니
照露諸法空 모든 법의 공함을 다 비추나니
一切皆明見 일체를 모두 환히 보네.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同一點)

부처님께서 가비라국 정반왕(淨飯王) 왕가(王家)에 태어나실 때, 대지(大地)에 광명(光明)을 놓아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땅에서는 금련화가 솟아나 그의 두 발을 받드니, 그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칠보(七步)를 걸으시고, 두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시며, 사자후(獅子喉)하시기를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무능존아자(無能尊我者)라.』하셨다.
이것은 「하늘과 땅 또 사방에 나보다 높은 자가 없다」는 뜻이다. 또 「태자 서응경(太子瑞應經)에도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곧 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제일 높다.』하셨다.
이 말씀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온갖 견해(見解)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석가 세존의 이 말씀의 근본 뜻은 바로 알기 어렵다. 석가 세존의 「오직 <나>만이 홀로 높다」하신 이 말씀은 석가 자신 곧 육신(肉身)이 홀로 높다는 뜻이 아니다. 일체 중생, 심지어 저 곤충까지도 천상 천하에 가장 높은 <나>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세존께서 세상에 나시면서 그 진리를 교시(敎示)하시기 위하여 세존 자신이 홀로 높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지 아니한다.
기독교 성경에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곧 영생(永生)을 얻으리라.』하였다. 그런데 이 말에 <나>라고 한 말씀은 예수 자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가진 참 <나>를 가리킨 말인 것이다.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천국(天國)에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를 다 버리고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였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 자신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나>를 따르라는 말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물으면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이라 하니,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본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석가 세존의 「천상 천하에 나만이 홀로 높다」는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요, 예수님의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신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니, 여기에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상법(事相法)으로 말하더라도 밖으로 쓴 즉 나타나고, 안으로 거둔 즉 감추는지라, 밖으로 공경하는 것을 들어서 안으로는 참된 성품을 밝히고, 나의 성품과 밖의 형상이 서로 응함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불상(佛像)을 위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로 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도리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우상은 배척해야 된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식 밖의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십자가는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성경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부처님도 예수처럼 믿을 것이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님 말씀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가정에서도, 부모는 불교도요 자녀는 기독교도라 해서 그 의견이 서로 같지 않음을 흔히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도 불교를 믿는 부모에게 효도를 달리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불교를 믿는 부모들도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믿는 진리(기독교와 불교)가 겉으로는 다르지마는, 그것은 마치  은 파도를 여의지 아니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와같이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임을 알아야 하며, 그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남의 옳지 못한 말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비유를 들어 보이리라.
가령 달 밝은 밤에 접시·사발·동이·항아리 등 무수한 그릇에 물을 떠놓고 보면, 그 그릇마다 달은 다 비추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니, 기독교니, 천주교니 하는 것 등은 곧 접시달·사발달·항아리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즉 그 그릇은 각기 다르나 그 달은 같은 달인 것이다. 보라. 청천에 떠 있는 달은 우주에 오직 한 몸만 비추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면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깨끗한 정신으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에서 철학이 어떠니, 심리학이 어떠니, 인생관이 어떠니 하고 떠들며 말하낟. 그러나 그것은 다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다. 참으로 위에 것을 달관(達觀)하여 인생이란 것을 철저히 타파(打破)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다 자기가 과거에 어디에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만 번 계교(計較)하고 사량(思量)하여 이르더라도, 그것은 다 뜨거운 불 위의 한 점[一點] 눈[雪]이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글이야 한 자도 모르더라도 내가 전생에 어디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 그 온 곳을 알아야 한다. 그 온 곳을 진실로 밝게 알면, 따라서 내생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참된 인생관이 성립되는 것이고,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金仙耶蘇本面目 부처님과 예수님의 본래 면복이
人前各自强惺惺 각각 사람 앞에 스스로 똑똑하게 밝았으니
一坑未免但埋却 다만 한 구덩이에서 면하지 못하고 묻히면
不知身在眼子靑 몸 가운데에 푸른 눈알이 있음을 알지 못하리라.


과해농주(過海弄舟)

만공(滿空) 선사와 혜암 스님, 그리고 진성(眞性) 사미 3인이 어느날 배를 타고 안면도 간월암(看月庵)으로 향하는 해상(海上)에서 만공 선사께서 묻기를
『진성아! 배가 가느냐, 물이 가느냐?』하시었다.
그 때에 진성이 아무 말이 없자 혜암 스님이
『배도 가지 않고, 물도 가지 않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만공 선사께서
『그러면 무엇이 가느냐?』하자 혜암 스님은 만공 선사에게 수건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에 만공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네 살림살이가 언제 그렇게 되었나?』하셨다. 여기에 혜암 스님이 답하기를
『이렇게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라고 하시었다.

불상흡유(佛像吸乳)

어느날 만공 선사를 모시고 수덕사 큰 방에 이르니 우연히 선사께서 불상을 쳐다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젖이 저렇게 크시니 수좌들이 굶지는 않겠구나!』고 하시니 그 때에 내가 묻기를
『무슨 복(福)으로 그 젖을 먹을 수 있겠나이까?』하니, 만공 선사께서 돌아보시며
『자네는 웬 복(福)을 그렇게 지웠는가?』하시거늘 내가
『복을 짓지 않고 그 젖을 먹을 수가 있사오리까?』하였다. 이에 만공 선사께서 이르시되
『저 사람이 부처님을 건드리기만 하고 젖을 먹지는 못하는군!』이라 하시었다.
그 때 만공 선사의 물음에 대하여 아무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으나, 지금 생각하건대 부처님의 젖을 빠는 형용이라도 지어서 보여 드렸어야 옳았을 것이다.

성적(惺寂)이 역망념(亦妄念)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서의 일이다. 조실 한암(漢岩) 선사께 내가 묻기를
『성성 적적(惺惺寂寂)할 때에 망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였다. 그 때에 한암 선사께서
『성성 적적일진대 망념이 있을 리가 있나?』
이 때에 「성성 적적이 곧 망념인 것을!」하는 생각으로, 내가 재배(再拜)하고 물러 나왔다.
여기서 눈 밝은 학인(學人)들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심야밀화(深夜密話)

전강(田岡) 스님과 용화사(龍華寺)에서 어느날 밤 내가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전강 스님이 느닷없이 나를 심하게 꼬집어서
『아야!』하고 잠이 깨었다. 나를 꼬집은 전강 스님이 아픔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가섭 미소에 대하여 일러라.』하고 소리를 쳤다. 내가
『……[ ]…….』(파설할 수 없어 기록 안함.) 라고 한 마디를 이르니, 전강 스님은
『내가 이런 말은 비로소 처음 듣겠소.』하였다.

무자십종병(無字十種病)

망월사(望月寺)에서 용성(龍城) 선사가 조실(祖室)로 계실 때, 대중이 조실 스님에게 사뢰기를
『지금 제방에 월분과도(越分過度)하는 학인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에 대해 무슨 문제를 하나 내주시면 제방(諸方)에 돌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용성 선사가
『「무자 십종병(無者十種病)을 여의[離]고, 도장 일구래(道將一句來)하라」란 글귀를 각 선원(禪院)에 돌려 일러 가져 오너라.』하시므로 이 법문을 제방에 돌렸다.
당시 이 법문에 대하여
① 만공 선사의 회답은
『승(僧)이 문(問) 조주(趙州)하되 「구자(狗者)도 환유 불성야무(還有佛性也無)니까?」조주 운(云) 「무(無)」』
용성 선사 평왈(評曰)
『무공철추(無孔鐵 )라 즉 구멍없는 쇠방망이로다.』하였다.
혜암 주(註)하되
『쇠방망이란 것은 구멍이 있어야 자루에 맞춰 쓰는 것인데 구멍 없는 쇠방망이는 쓸 데가 없는 것이다.』라 하였다.
② 혜암 선사는 위 용성 스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선락 여하(先落如何)오? 십종병(十種病)에 먼저 떨어진 것을 어떻게 하리까?』하였다.
③ 또 보월(寶月) 스님 답왈(答曰)
『나개 무자(那箇無字)는 기종병호(幾種病乎)아?』
④ 용성 선사 자답왈(自答曰)
『포화(匏花)가 철리출(穿 出)하여 와재 마전상(臥在麻田上)이라.』
혜암 평(評)
『한경와병인(閑境臥病人)이라. 즉 한가한 경계에 병들어 누운 사람이라.』
⑤ 혜월(慧月) 스님 답왈(答曰) 맹성(猛聲) 일할운(一喝云)하고
『아차일할(我此一喝)이 시야비야(是也非也)?』하였다.
용성 선사 평왈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
혜암, 용성 선사의 평(評)에 대한 평(評)
『불시불시(不是不是)라. 혜월 스님의 답은 최사현정( 邪顯正)이라.』
⑥ 성월(性月) 스님 답왈(答曰)
『망월영두운(望月嶺頭雲)이요, 금정산하적(金井山下賊)이라.』
용성 선사 평왈
『도적이 미신(微身)이라. 즉 도적이 조금 드러났느니라.』하였다.

끽다(喫茶)

박대륜(朴大輪) 스님과 차를 마실 때의 일이었다.
대륜 스님
『차맛이 어떠시오?』
혜암 스님
『앞산에서 숯 굽는 맛이라.』

교자(敎者)와 선자(禪者)의 문답(問答)

[ 교 ] 『정혜(淨慧) 등(等)을 배워 불성(佛性)을 밝게 본다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 선 ] 『우리 집에는 안과 바깥종이 없느니라[我家無奴婢].』
[ 교 ] 『보살이 중생들의 고통을 보시고 자비심을 일으키시는 것은 어째서 그러한가?』
[ 선 ] 『자(慈)란 부처를 이룰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며, 비(悲)란 중생을 제도할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다.』
[ 교 ] 『그렇다면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法)이 중생을 제도(濟度)할 수 없는 것인가?』
[ 선 ]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가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요, 그렇다고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가 없다고 말하면 그것도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진실한 부처는 입이 없으니 설법할 수 없고, 참으로 듣는 것은 귀가 없거늘 그 누가 듣겠는가?』
[ 교 ] 『그렇다면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쓸 데 없는 것인가?』
[ 선 ] 『일대장교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참으로 밝은 사람이면 바로 달을 볼 것이요, 우둔한 자는 그 손가락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면 그 던진 손을 물지마는, 개는 그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과 같느니라.』
[ 교 ] 『믿어서 알고 실행해 증득(證得)하는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등각(等覺), 묘각(妙覺)은 비추어 고요하며, 번뇌(煩惱)를 굴려 보리(菩提)가 되고 생사(生死)를 굴려 열반(涅槃)이 되지 않겠는가?』
[선] 『등각과 묘각은 막대기를 걸머진 귀신(鬼神)이요, 보리와 열반은 당나귀를 붙들어 맨 말뚝이며, 명구(名句)를 인정(認定)하는 것은 똥덩이를 입에 문 것이요, 부처[佛陀]와 조사(祖師)가 되려는 것은 지옥(地獄)에 들어가는 업(業)이다.』
[ 교 ] 『부처라, 조사라 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인가?』
[ 선 ] 『부처란 환화(幻化)의 몸[身]이요, 조사란 늙은 비구(比丘)니라.』
[ 교 ] 『어찌 일체 보살과 부처님께서 보시고 증득하신 곳이 없겠는가?』
[ 선 ] 『자기의 눈[眼]을 어떻게 보[見]며,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증득(證得)하겠는가? 교(敎)에서도 「머리[頭]가 본래 그대로 있는데 스스로 얻었다[得] 잃었다[失] 하는 생각을 내며, 마음이 본래 평등한데 스스로 범부(凡夫)다, 성현(聖賢)이다 하는 소견(所見)을 일으킨다.」하였으니, 어찌 이 발광한 것이 아니겠는가?』
[ 교 ] 『필경에 그 이치가 어떠한고?』
[ 선 ] 『자기 본분상(本分上)에는 본래 이름이라는 것이 없지마는, 방편으로 불러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할 말이 있으나, 다음으로 미루어 밝은 날에 하리라.』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선가구감」(禪家龜鑑: 「선가귀감」으로 일반에 통용되나 佛家 특히 禪宗에서는 재래식 운음에 따라 「구감」으로 표기함.-編者)에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에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
이 화두에 대하여 청허(淸虛) 스님은
『이것은 「용궁장경(龍宮藏經)에도 없는 격외선(格外禪)이다.』하시고,

魚行水濁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鳥飛毛落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

하시었다.
내가 양산(粱山) 통도사(通度寺)에 있을 때다. 여기에 대해서 한 생각이 나기에 저녁 공양을 마치고 통도 내원사(內院寺)에 건너가 조실방(祖室房)에 들어가서 조실 혜월(慧月)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조실 스님이
『어떻게 건너왔느냐?』하시기에, 나는
『여쭈어 볼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하였다.
『무슨 말인지 말해 보아라.』
나는 말하였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話頭)에 대해 청허(淸虛) 스님은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맞습니까?』
조실 스님은
『그것은 꼭 맞는 말이지!』하시었다.
『어째서 맞습니까?』
『그야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지는 것은 본분(本分)의 도리(道理)가 아닌가?』
『스님, 그러면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고 나는 그것을 일었다. 내 읽는 소리가 떨어지기 전에 스님은 깜짝 놀라면서
『아차, 내가 잘못 살폈구나. 「뜰 앞의 잣나무」 화두에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는 것이 맞지 않는구나. 그래, 혜암 수좌 말이 맞다.』
하셨다. 얼마 뒤에 나는 또 정혜사(定慧寺)로 만공 조실 스님을 찾아 뵙고 여쭈었다.
『뜰 앞의 잣나무 화두에 대해 청허 스님은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하셨으니, 이 말이 맞습니까?』
라고 하니, 만공 선사께서는
『청허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그것이 정말인가?』하였다.
『「선가구감」에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가구감」에 그렇게 말했어도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어디 그 책을 가져와 보아라.』
마침 그 때 누더기를 입은 한 수좌가 걸망에서 「선가구감」을 꺼내어 만공 선사께 드렸다. 스님은 그것을 펴 보시고
『보아라. 이 글의 내용을 그 겉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의 안 까닭을 살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상 두 분의 말씀이 다 꼭같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한두 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만족할 것이 아니로구나.」생각하고, 나는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 뵈옵고 여쭈어 보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서울 대각사(大覺寺)에 계시는 용성 선사를 찾아가 뵈옵고, 위에서와 같이 여쭈어 보았다. 용성 선사께서도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지. 청허 스님의 말씀은 허물 구(句)를 말씀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공부(工夫)란 샅샅이 살펴 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것도 위의 두 분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청허 스님이 어찌하여 정전백수자화에 대하여
『어행수탁이요, 조비모락이라.』고 말씀하시었는지 한 마디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공부란 참으로 여러 선지식(禪知識) 스님을 찾아 탁마(琢磨)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청허 스님이 「선가구감」에서 분면히
「이것은 격외선인지라,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고 하시었는데, 우리는 청허 스님의 이런 허물 구(句)에서 안 까닭을 분명히 찾아야 한다. 자꾸 독송(讀頌)하여 살피면 「선가구감」의 대의가 이 한 허물 구에 있음을 각자가 가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배(禮拜)

예배라는 것은 법답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체(理體)는 안으로 밝고, 사상(事相)은 밖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이체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요, 사상은 드러나고 감춤이 있는 것이니, 이런 뜻을 알아야 법을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저 예(禮)를 차린다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요, 절한다는 것은 아만(我慢)을 조복(調伏)받는 것이니, 나의 참된 성품(性品)을 공경(恭敬)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예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경을 행하기 때문에 아만이 끊어진지라 감히 그를 훼상(毁傷)하지 못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키기 떄문에 방탕하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악한 뜻을 길이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있으면, 비록 형상을 다투어 공경하지 아니하여도 언제나 예배하는 것이 되느니라. 착한 생각이라는 것은 마음이 순진하고 솔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을 착[善]한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상법(事相法)이란 그것을 밖으로 쓰면 나타나는 것이요, 안으로 버리면 감추는 것이라, 밖으로 공경함을 들어 안으로 진정 밝히는 것은, 성품과 외상(外相)이 서로 응(應)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만일 다시 외상(外相)으로 쫓아 예배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안으로는 곧 탐(貪)·진(嗔)·치(痴)를 일으켜 항상 악념(惡念)을 행하고, 밖으로는 부질없이 외양(外樣)만을 나타내어 거짓 예경(禮敬)을 지을 것이니, 어찌 진실한 예배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성현(聖賢)을 속이는 것이라. 반드시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면서 악도(惡道)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탁발화(托鉢話)

덕숭산(德崇山) 수덕사(修德寺)에서 하루는 혜공(惠公) 스님이 탁발화(托鉢話) 공안(公案)을 내게 물었다. 나는 말하되
『나는 그런 것을 말할 생각도 아예 못 낸다.』고 하였더니, 혜공 스님은
『그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습니까? 암두(巖頭) 스님의 연극으로만 보십시오.』하였다.
나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행이 없는 부처가 없고, 소림문하(小林門下)에 거짓말을 한 조사(祖師)가 없다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니, 그 뜻[意]을 따라 나도 한번 해 보리라.」하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삼동(三冬) 결제 동안에 남 모르게 정진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탁발화의 골자(骨子)가 부러져 나왔다.
그 뒤에 선학원(禪學院)에서 향곡(香谷)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때 향곡 스님이 이 탁발화 법문을 말씀하기에 나는 그 스님에게
『어떤 것이 암두의 말후구(末後句)인가?』하고 물었다. 향곡 스님은
『덕산(德山)이 옳은가? 암두(巖頭)가 옳은가?』하고 되물었다. 내가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누가 덕산·암두의 옳고 그른 것을 물었는가?』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 탁발화에 대해서는 그 말후구(末後句)를 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말후구에 대하여 묻는다면
『안불견(眼不見)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이불문(耳不聞)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대답하리라.

교의(敎意) 선의(禪意)

어떤 학인이 조실 스님에게
『교(敎)의 뜻과 선(禪)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하고 묻자 조실 스님은

鷄寒上樹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鴨寒下水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

라 하셨다.
교의 뜻과 선의 뜻을 물었는데 어째서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고 하였는가? 교자(敎者)와 선자(禪者)는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만일 나에게 물으면
『유수성불견(流水聲不見)이라, 즉 물은 흘러도 소리는 보지 못한다.』라고 하리라.

농어십측(弄語十則)

혜암(惠菴) 스님이 대흥사(大興寺) 주지 청하(淸霞) 화상에게 황정(黃精)을 보냈더니, 청하 스님이 물어 왔다.
『내년 봄에 새 싹이 틀 때 오셔서 그것을 키워 주십시오.』
혜암 스님이 답하였다.

天氣溫溫新春日 하늘 기운이 따뜻한 새로운 봄날에
新芽初自聳離眞 새싹이 처음 돋아 오르매 스스로 진을 여의고
傍人若問何奇特 무엇이 기특하냐 누가 물으면
南山燒炭北山紅 남산에 숯을 구우니 북산이 붉었도다 하리.

[문] 『새 싹은 어디서 키웁니까?』
[답] 『남산에서 키우느니라.』
[문] 『쓸 데가 없습니까?』
[답] 『참으로 쓸 곳이 없을 데는 없다는 말도 못하느니라.』하시고 송(頌)하시기를

無用則用 쓸 것 없다는 것이 곧 쓰는 것인데
如何無用處 어떤 게 쓸 것이 없는 곳인가?
若眞無用處 만일 참으로 쓸 곳이 없다면
無言則無 없다는 말도 곧 없는 것이다.
畢竟如何 필경에 어떠한고?
日出扶桑國 해가 부상국에 뜨니
江南海嶽照 강남의 바다 묏부리에 빛이 비춘다.

하셨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어떤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걸어가는데 그 뒤에 그를 잡아 삼키려고 사나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었다. 생사가 박두한 그는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井]이 있고 등(藤)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등나무 넝쿨 하나를 붙들고 우물 속을 내려가 보았다. 거기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고, 또 우물 중간 사면에는 네 마리  이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가운데 매달려 있었는데, 그 위에서는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 그 등나무 넝쿨을 새기고 있었다. 만일 쥐가 새겨 그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면 그는 그 밑의 독룡에게 잡혀 먹힐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그는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 보았다. 그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뚝뚝 떨어져 그 입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그 꿀을 빨아 먹으면서, 그가 처해 있는 절박한 경계도 모두 잊어 버리고 단맛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용성(龍城) 선사가 도봉산(道峰山) 망월사(望月寺)의 조실로 계실 때에 전국 선지식 스님들에게 물었다.
『그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받아 먹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겠느냐?』

① 고봉(古峰) 선사는
『아야, 아야!』하고
② 전강(田岡) 선사는
『달다, 달다!』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아프고 단 데에 빠져 들어갔다면, 어찌 아프고 달다 하는 생각이 일어날 여지가 있겠는가? 달다고 할 그 때에 벌써 그 독룡의 입 속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입으로는 꿀을 빨면서 손가락으로 독룡의 아가리를 가리킨다.』고 하리라. 그리고
『상신실명(喪身失命)이라. 즉 몸도 잃고 목숨도 잃는다.』고 하겠다.

관음석불(觀音石佛)

만공(滿空) 선사가 어느 날 관음석불(觀音石佛)앞에서 문득 보월(寶月) 스님에게
『이 석불님 상호가 어떠하신가?』하고 물으시니, 보월 스님이 대답하되
『참! 거룩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만공 선사는 말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살피건대 보월 스님의 참 거룩하단 말씀은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보월 스님이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리려고 하다가 자신이 먼저 넘어진 것을 알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보월 스님이
『참 거룩하십니다.』할 때에 만공 조실 스님께서는 그냥 방장으로 돌아가실 것이 아니라. 마땅히
『내가 보월 볼 면목이 없네.』라고 하시고, 다시 보월에게
『자네가 「참 거룩하십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으니, 어느 곳에서 불상(佛像) 거룩하신 것을 보았는가?』라고 반드시 한 말씀 물어 보았어야 했었는데 그 말씀이 없으셨다.
아무 말씀없이 방장으로 그냥 돌아가신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고, 이(理)로 말한다 하더라도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려 버렸으니, 보월 스님께서 체면이 부족한 처사를 하시었고, 또 사(事)로 따져 말한다 하더라고, 경(經)에 이르시기를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고 했는데, 불상(佛像)이 「거룩하십니다」라는 생각을 일으키시었으니, 이것은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에게 또한 불효자가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만공 조실 스님께서 나에게
『이 불상이 어떠한가?』라고 물으신다면, 보월 스님과 같이 그렇게 답변을 아니하고
『노원제처(老猿啼處)에 벽층층(壁層層)이라. 즉 늙은 원숭이 우는 곳에 벽이 층층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것이다.

고목한암(枯木寒巖)

옛날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施主)노파 한 분이 십년 동안 그 스님을 정성껏 돌보면서 그의 딸을 시켜 조석(朝夕)으로 시봉하게 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그 딸에게 일렀다.
『오늘은 네가 공양상을 물린 뒤에 그 스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네 얼굴을 그의 얼굴에 대어 비비면서 「이런 때의 스님의 뜻이 어떠합니까?」하고 여쭈어 보아라.』하였다.
그 날 그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 암주 스님은

枯木依寒巖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니
三冬無暖氣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

하였다.
이 뜻은 「네가 3년 동안 내 앞에서 나를 시봉했지마는, 나는 네게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딸은 스님의 말을 그대로 그 어머니에게 전하였다. 노파는 딸의 말을 듣고는 그 스님의 공부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저런 속한(俗漢)이를 부질없이 3년 동안이나 돌보아 왔었구나. 참으로 분하다.』하고는, 그 스님을 쫓아내고 토굴에 불을 질렀다.
납자들아, 어째서 그 노파는 그 암주 스님을 속한이라 했는가? 그렇게 청렴하고 결백하게 지내온 그 암주가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났는가?
그 처녀가 스님을 안고 물었을 때, 어떻게 답을 했으면 쫓겨나지도 않고 토굴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겠는가?
전강 스님이 항상 이 법문을 잘 말씀한다 하기에 나는 법거량을 해 보려고 찾아가 위 공안(公案)에 대하여
『스님께 한 마디를 들으려고 내가 찾아왔소. 한 마디 일러 보시오. 그러면 나도 그냥 듣지 않고 한 마디 이르겠소.』하였다.
전강 스님은
『스님은 귀가 먹어 내가 소리를 질러야 말을 하니, 숨이 차서 나는 못하겠소.』하였다. 나는
『그렇다면 그 말은 어떻게 하였소? 이래서야 탁마를 어찌할 수 있겠소?』하고 대들었더니,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만일 이것을 내게 묻는다면 나는
『미란도침옥부도(迷瀾倒侵玉浮屠)라. 즉 흐린 물결이 거꾸로 옥(玉) 부도를 침노한다.』하리라.
그 노파가 화현(化現)이라 하더라도 암자까지 태워 버리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말로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한 것은 좀 지나치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인들이 무어라 말씀했는지 궁금하여, 동래 선암사(東萊仙岩寺)에 가서 석암(錫菴) 스님에게서 염송(拈頌)을 얻어 보았더니, 거기도 그 노파의 허물이 적혀 있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以前) 소식(消息)

혜월(慧月) 스님 회상(會上)시 사(師)께서
『삼세심(三世心) 불가득(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 何心)인고?』라는「주금강(註金剛)의 법문을 제방에 돌리신 일이 있었다.
그 후 혜월 스님을 시봉하였던 부산 선암사 정 운암(鄭雲岩) 스님이 위 공안(公案)에 대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수덕사 능인 선원(能仁禪院)에 주석하시던 만공(滿空) 선사에게 물어 오기를
『「삼세심(三世心) 불가득(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 何心)인고?」라는 법문을 아무리 참구(參究)하였어도 그 향상(向上)을 보지 못하였사오니, 만공 스님께서는 소승을 위하여 친절히 그 선지(禪旨)를 일러 주십시오.』라고 서신을 보내 왔었다.
만공 선사는 이에 대하여 답하시기를
『위음왕불 이전(威音王佛以前)에 이미 다하여 마쳤느니라.』라고 하셨다.
그 때에 보월 선사가 만공 선사의 답하신 그 서신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큰 스님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을 하고, 그 서신을 태우고[燒] 나서
『누구의 눈을 멀게 하시려고 이런 답을 하십니까?』라고 말씀을 드리니, 만공 선사는 그 자리에서 금선대(金仙臺)로 가시어 칠일을 면벽(面壁)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시게 되었다. 그동안에 보월 스님은 만공 선사를 대신하여 정 운암 스님ㅇ게
『배호서(背湖西)하고 향영남(向嶺南)은 심중(心中)에 부절여의(不絶餘疑)이더니 여금(如今)에도 부절여의로구나. 견후(見後)에 소각(燒却)하고 갱절여의(更絶餘疑)하라.』라고 쓴 답서를 송부하시었다. 칠일 정진을 마친 만공 선사는 보월 스님을 부르시고 말씀하시기를
『보월이, 내가 자네한테 십년 양식을 받았네.』라 하시며, 두 스님 사이에 밀계(密契)가 있었다. 이윽고 보월 스님이 대신한 답서에 대하여 만공 선사는
『참으로 밝은 답이로구나.』라 하시고, 위 문답은 그 후로 끝이 났었다.
위 법문에 대하여 한 마디 하겠는데, 보월 스님이
『누구의 눈을 멀게 하려 하십니까?』라고 하였을 때에, 어지하여 만공 스님으로서
『그것은 내 허물이거니와 그렇다면 자네는 무어라 하겠는가?』라고 받드시 한 말씀 물어 보시어야 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큰 선지식(禪知識)이신 스님이 그것을 묻지 아니하시었는지 지금 만공 스님이 생존해 계시면 한번 여쭈어 보고 싶은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보월 스님이
『누구의 눈을 멀게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한 법담(法談)이 참으로 올바로 한 말씀이라면, 당시 혜월 스님의 위 점마하심(點 何心)의 물으신 법문에 대하여
『나는 어느 마음에다 점을 치겠습니다.』라고 한 말씀하시고 난 후에, 만공 스님의 서신을 태웠어야 하는데 그런 말씀없이 무조건
『누구의 눈을 멀게 하시려고 하십니까?』라고만 하시었으니, 보월 스님의 이 말씀이 참으로 바로 하신 말씀인지 후일 눈 밝은 사람이 있어 그 허물을 말할까 염려가 되는 것이다.
만일 혜월 선사께서 나에게 그것을 물으신다면 나는
『안산(案山)에서 이미 점을 쳐 마쳤노라.』라고 답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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