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劇團 民藝劇場 制41回 公演台本(극단 민예극장 제41회 공연대본)
우 리 읍 네
(全3幕)(전3막)
소오튼 와일더/작
이 영 규/번안
허 규/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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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무대감독 의사선생
복 남 변 서 방
준호엄마 미선엄마
김 준 호 김 자 애
이 철 수 이 미 선
박 교 수 조 합 장
객석의 여인 객석의 남자
객석의 부인 성가대지휘자
정아엄마 안 순 경
수 남 이 축구선수1
축구선수2 축구선수3
남 주 강 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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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한국 충북지방에 있을버반 중한읍내에서 일어나는 얘기이다.
[막] 제 1 막
이 연극은 막도 없고 장치도 없다. 관객이 장내에 들어서서 볼수있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조
명을 받고
있는 텅 빈 무대 뿐이다. 이윽고 무대감독이 등장하여 왼 쪽조합장 집으로 사용될 곳의 모
퉁이에
낮으막한 벤취를 놓는다. (" 왼쪽"과 "오른쪽" 은 배우들이 객석을 향하였을 때의 방향) 객
석의 불이
꺼질 무렵 무대감독은 무대정돈을 끝내고 뒤늦게 들어오는 관객들을 기다리고 객석이 완전
히
어두워지자 그는 입을 연다.
[무대감독] 이 연극은 "우리 읍내"라고 합니다. 소오튼 와일더 원작 000번안000연출 입니다.
이
연극엔 000. 000. 000. 000. 000. 000. 그 밖에 여러 사람이 출연합니다. 읍내 이름은 증한읍
입니다.
경기도 강원도와 근접한 충청북도에 있는 작은 읍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북위 삼십 칠도 십
분 동경
백이십 칠도 칠십오분이되는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위치한 소도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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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막에서는 우리 읍내의 하루를 보여드리기로 하겠읍니다. 때는 1957년 오월칠일 동이트
기
직전입니다. (닭우는 소리) 저쪽 동녁 하늘엔 산을 등지고 햇살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샛별
이 지기
전엔 의례히 저렇게 영롱한 빛을 내죠. (잠시 샛별을 바라보다가 뒷쪽 무대로 간다) 그럼 우
리 읍내의
지리를 설명해 드리기로 하죠. 여기가 -(즉 뒷벽과 병행하여) 행길입니다. 행길 뒷쪽에 정거
장이 있죠.
충주로 가는 기차길이 저쪽으로 나있읍니다. 철뚝 넘어에는 삼성당아란 부락이 있는데 타향
에서오
사람들이많이 섞여 삽니다. (왼쪽을 향하여) 저쪽에 교회당이 있읍니다. 그 교회당에서 산마
루로
더올라가면 공동묘지가 있고 천주교회도 있는데 정거장근처에 있는 옛 토성이있는 동산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읍니다. 저쪽에 군청 건물이있고 우체국은 이쪽에 있죠. 그리고 경찰서는 큰 길건너
에 이
있읍니다. 저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하고 중심가 끝쯤에 소장이 서로 장터가 있읍니다. 우리
읍내엔
오년은 더 있어야 자가용차가 나타날 것 같군요. 읍내에서 제일 돈 많은 양조장집에서 사게
될 겁니다.
--- 저기 언덕위 커다란 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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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살고 있죠. 이 쪽에 정육점이있고요. 여전 잡화상입니다. 국민학교는 저어쪽에 있고 중
학교도
저쪽- 남녀공학을 하는 고등학교는 훨씬 저쪽이죠. 매일 아침 아홉시 십오분과 점심때, 그
리고 오후
세시가 되면 웬통 운동장에서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는 바른쪽 앞무대의 테이블과 의자 있는데로 가까이 간다.)
여긴 우리 읍내에서 제일 큰 병원 원장댁입니다. 여기가 뒷문입니다. (이때 무대 뒤에서
등나무넝쿨과 아아취 모양의 포도넝쿨 양쪽 푸로씨니엄 기둥 옆으로 하나씩 밀어 내놓는
다.)
장치가 꼭 있어야 되겠다고 새아하시는 분은 이걸 장치라고 생각하십시오. 여긴 원장님댁
뒤뜰입니다. 옥구구 완두콩이랑 꼬추 해당화 작약 백일홍이 한창이죠. (그는 무대를 건너간
다.) -
여기가 바로 농협 조합장 이근수씨 댁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그 부인이 가꾸는 뒷뜰이죠. 여
기도
원장댁 뒷뜰처럼 꽃도 피어있고 채소도 가득 났읍니다. (그는 후면 중앙 무대를 본다.) 바로
여기 ---
그 주인 동갑쯤되는 오동나무 한그루가 있읍니다. (그는 바른쪽 푸로씨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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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옆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잠시동안 객석을 본다.) 중한읍은 우리나라 어는 고장에서
난 볼수있는
그저 조촐한 읍내입니다. 제가 알기엔 아직 우리 읍내에선 이렇다할만한 인물이 하나도 나
오지
않은것같습니다. 자 아까 말씀드린대로 동이 틀 무렵입니다. 저기 철길옆 오두막집에만 불이
켜져있읍니다. 사변때 피난은 순이엄마가 조금 전에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
남이가
신문배달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 찍 일어났읍니다. 그리고 정거장에서는 우리의 역장님이 다
섯시
사십오분 원주가는 열차의 신호를 할 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기적 소리가 들린다. 무대 감독은 회중 시계를 꺼내보고 끄덕인다.) 농촌에서는 - 어디나 -
농번기가 되면 동트기 전부터 일을 시작합니다만 읍내사람들은 잠꾸러기가 많죠. 이렇게해
서 - 또
하루가 시작됐읍니다. 저기 의사선생이 행길로 걸어오고 있읍니다. 쌍둥이 난 집에서 돌아오
는 길이죠.
원장댁에서는 그의 부인이 조반준비를 하려고 부엌으로 나옵니다.
(통통하고 명랑한 삼십오륙세되는 깁스부인이 오른쪽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부엌에
서
밥짓는 동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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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선생은 지난 1975년에 세상을 떠났읍니다. 세로 세운 병원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것이
죠. 사실은
부인이 먼저 돌아갔죠 청주로 출가한 딸네 집에 갔다가 거기서 - 갑자기 - 세상을 떠나고
말았읍니다.
사위는 은행원 이었죠. 고인의 시체는 이 곳으로 옮겨서 저기 공동묘지에 산소를 썼지요. 나
중에
의사선생묘는 마나님옆에 나란히 묘를 썼고-- 우리 읍내에선 이런일 저런일 서로 알고 싶
어하죠.
그래서 누구네집 숫가락이 몇개인지도 다알정도랍니다. 저기 조합장댁에서도 조반 준비를
하려고
부엌으로 들어가고 있읍니다. - 여기 의사선생이 오십니다. 밤중 한시반에 깨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쌍둥이 받으러 갔었죠. 저기선 복남이가 신문을 돌리면서 옵니다. (의사선생은 왼쪽으로부터
행길로
걸어와서 자기집으로 가까이 가려고 돌아서려다가 발을 멈추고 - 가상의 검은 가방을 내려
놓고 모자를
벗는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수건으로 맥없니 얼굴을 닦는다. 마른데다 야무지고 민첩한 조합
장 부인이
왼쪽 부엌으로 들어오며 애프런을 찬다. 그녀는 스토오브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부치고 조반
준비를 하는
동작을 계속한다. 갑자기 열한살 먹은 복남의 아들이 행길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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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뛰어나와 가상의 신문을 이집 저집 문간에 던진다.)
[소 년] 의사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의 사] 부지런 하구나.
[소 년] 선생님 누가 아픈가요?
[의 사] 아니다. 저쪽 철뚝넘어 부락에서 쌍둥이를 낳았단다.
[소 년] 신문 여기서 드릴까요?
[의 사] 그래 이리다오. 수요일 이후 뭐 중대한 일이라도 일어났니?
[소 년] 그럼요. 새로온 여선생님이 시집가신대요.
[의 사] 아 그래-그래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소 년] 그거야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니죠 - 하지만 선생일 다되려고 맘먹었으면 계속해서
교단에
서야 되지 않아요?
[의 사] 네 무릎은 어떠냐?
[소 년] 아무렇지도 않아요. 생각안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대로 비가 오려면 무
릎이
먼저 가르 쳐 주는군요.
[의 사] 오늘은 뭐라고 가르쳐 주데? 비가 오겠다든?
[소 년] 아뇨.
[의 사] 정말이냐?
[소 년]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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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 무릎도 실수할때가 있을게 아니냐?
[소 년] 아아뇨. (소년 사라진다. 의사 신문을 읽고 서있다.)
[무대감독] 저 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저애는 아주 머리가 좋았던 아이입니다. 꺼서
이곳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자기 반에서 첫째였죠. 그래서 서울대학 공과대학에 들어갈 장학금을
얻었읍니다.
공과대학에서도 첫째로 졸업했죠. 그때 신문에 굉장하게 났었으니까요.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려던
참이었는데 월남 전선에서 전사했읍니다.-십년공부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죠.
[변 씨] (왼쪽 무대 뒤에서) 이랴 이녀석아 어서가. 오늘은 왜 이모양이냐?
[무대감독] 변서방이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끌고 옵니다.
(변씨는 삼십세 가량이며 작업복을 입고 왼쪽 행길에서 온다. 그의 옆에는 보이지 않는 가
사의
조랑말과 마차가 있다.)
[변 씨] 의사 선생님, 밤새 안녕하셨어요?
[의 사] 잘잤나?
[변 씨] 누가 아픕니까?
[의 사] 저쪽 철뚝넘어 순이네집에서 쌍둥이를 낳았다네.
[변 씨] 쌍둥이라구요? 우리읍네도 해마다 식구가 느는군요.
[의 사] 비가 올것 같은가?
[변 씨] 아뇨. 안옵니다. 좋은 날씬대요.-데어 벗겨질걸요.
[의 사] (그는 말을 쓰다듬는다. 말은 후면 중앙에 머물러 있다.) 저말은 몇살 먹었나?
[변 씨] 열일곱살이 됩죠. 이랴 가자. (그는 의사댁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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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씨]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선생님께서 저기 오시는데요.
[의사부인] 그래요? 오늘은 일찍 나가네요.
[변 씨] 네. 저교회밑에 있는 황서방네가 이사를 간다고 해서 짐을 실어다주려구요.
(그는 후면 중앙의 깁스 의사 앞을 지나간다.)
의사선생님! 갑니다.
[의 사] 변서방 잘가게.
[의사부인] (이층에 대고 부른다.) 얘들아! 얘들아! 일어날 시간이다.
[변 씨] 가자 어서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의사부인] 준호야 자야 (의사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의사부인] 여보 잘 됐우?
[의 사] 응 그거 뭐 - 고양이가 새끼낳는것 같지.
[의사부인] 조반은 금방 될테니까 꿀물이나 드시지요 그리고 아침나절 둬시간 주무시구료.
[의 사] 글쎄 --- 국민학교 교장선생 부인이 열한시에 온댔는데. 증세야 뻔하지. 위병일거
야.
[의사부인] 그럼 세시간밖에 못주무시겠우. 여보 이러다간 큰일나요. 어디 가셔서 휴양을 좀
하시도록 해 드리고 싶군요. 그렇게 하면 몸에 좋으실텐데.
[조합장 부인] 미선아! 일어날 시간이다. 철수 너두 일곱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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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음식만드느라 바쁘다) 여보 준호한테 말씀 좀 하세요. 암만해도 걔가 요새
이상하다니까요. 손가락하나 까딱 하질않아요. 장작좀 뻐개달라고해도 막무가내거든요.
[의 사] (세수를 하고나서 수건으로 닦으며)
그놈이 시건방지게 굽디까?
[의사부인] 아뇨. 그냥잘 거라면서 말을 잘 안들어요 - 그저 축구밖에 몰라요. 준호야! 자애
야! 학교
늦는다!
[의 사] 음!
[의사부인] 준호야
[의 사] 준호야
[준호의목소리] 내, 아버지.
[의 사] (무대에서 나가며)
어머니가 이르는 소리 안들리니? 난 이층방에 가서 눈좀 붙여야 겠오!
[조합장 부인] 철수야 미선아! 학교 늦는다! 철수야 너 세수를 깨끗하게 해라. 그렇지 않으
면 엄마가
씻길테다.
[자애 목소리] 엄마. 난 무슨 옷을 입어요?
[의사부인] 떠들지 말아. 아버지께선 밤새 왕진갔다 오셔서 지금 주무신다. 파란 옷 빨아서
데려
놓았다. 어미가 어련하겠니.
[자 애] 엄마, 난 그 옷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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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제발, 조용해.
[자 애] 난 밤낮 배추벌레처럼 파란옷만 입구 가?
[의사부인] 자애야 엄마나 예뻐뵌다고 그러니,
[자 애] 엄마, 오빠가 비누를 던져요.
[의사부인] 좀 조용히 해라. 너희들 종아리좀 맞을래?
(공장의 기적소리 들린다. 두집 애들이 뛰어 들어와서 식탁옆에 자리잡는다. 오른쪽에 열여
섯 살쯤
된 준호와 열한살된 자애. 왼쪽에그들의 나이와 같은 미선과 철수 그들은 교과서를 끈으로
메서
들었다.)
[무대감독] 우리 읍내에도 공장이 하나 있읍니다. 방직공장이죠. 왜정시대에 세운건데 지금
은
김지산씨 소유입니다. 그길로 큰 부자가 됐읍니다.
[조합장 부인] 얘들아! 이게 무슨 꼴이냐. 일껏 아침을 맛있게 했는데 걸신이 들린것처럼 씹
지도
않고 넘기니? 그럼 살로 안간다. - 알았니? 철수야 밥 먹으면서 책을 보면 못써.
[철 수] 엄마. 오늘 시험본단 말이에요.
[조합장 부인] 밥먹을땐 책보지 말라고 했잖니? 엄마는 말이다. 너희들이 공부 잘하는 것보
다는
건강한걸 더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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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엄마 난 공부도 잘하고 앓지도 않을꺼야 정말에요. 우리반에서 제일 공부을 잘 하거
든요.
내 기억력이 좋다구요.
[조합장 부인] 밥이나 먹어.
[철 수] 난 달리기에서 일등했어.
[의사부인] 그 얘긴 아버지께서 일어나시면 말씀드려라. 내 나이에 일주일 오백환이면 충분
하지
뭐냐. 그 돈을 다 뭣에다 쓸까.
[준 호] 어머니도 참 - 살께 좀 많아요?
[의사부인] 아이스크림 사먹느라고 다 써버리지.
[준 호] 자애는 웬돈이 그렇게 많죠? 천원짜리가 많아요?
[자 애] (밥을 먹으며) 조금씩 저금했어.
[의사부인] 그야, 이따금 돈을 써보는건 좋지.
[자 애] 엄마,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게 뭔지 알어? 응? 돈이야.
[의사부인] 아침이나 먹어라.
[애 들] 엄마, 첫종이 났어요 - 뛰어가야 되겠어.-고만 먹겠어요. - 빨리 가야지.
(애들은 일어나서 책가방 집어들고 뛰어 나간다. 그들은 전면 중앙에서 만나서 지꺼리며 행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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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다 왼쪽으로 돈다. 무대감독은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나간다.)
[조합장 부인] 빨리 걸으면 돼. 뛸건 없어. 철수 바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해라. 미선아 넌 자
세를
똑바로 가져.
[의사부인] 선생님한테 축하한다고 말씀드려라-잊어버려선 안된다.
[자 애] 걱정마세요.
[의사부인] 넌 정말 물찬 제비같구나. 어서 빨리 가거라.
[전 원] 다녀오겠읍니다.
(의사부인은 에프런에 병아리 모이를 담아가지고 훗트라이트 있는데로 나온다.)
[의사부인] 구구 구구 -. 넌 저리 비켜. 저리 가아. 구구 구구 -. 넌 또 왠일이냐? 또 싸웠구
나.
싸우는게 일야. 응, 이건 --- 넌 뉘집 병아리냐? 어디서 왔어?
(애프런을 흔든다.)
그렇게 겁낼건 없어. 잡어먹진 않을테니.
(부인은 창살문 옆의 벤취에 앉아서 껍질채 먹는 강낭콩의 갓줄기를 떼어낸다.)
철수엄마, 아침 자셨어요? 감기는 어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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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부인] 아직도 목이 근질근질해요. 오늘밤 성가대 연습엔 못나갈 것 같아요.
[의사부인] 가성 좀 내보셨우?
[조합장 부인] 그럼요. 헌데 소리가 나야말이죠. 음정이 불안정해요. 쉬는동안 콩이나 까야겠
군.
[의사부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소매를 겆어올리며 무대를 건너간다.) 거들 어 드릴까?
올핸 콩
풍년에요.
[조합장 부인] 장담을려면 대두 두말은 장만해야죠.
(잠시 사이. 병아리의 꾸꾸거리는 소리가 잠간 들린다.)
[의사부인] 저, 철수엄마, 꼭 할 얘기가 있어요. 아무에게라도 얘길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
슴이
터질 것 같군요.
[조합장 부인] 아니, 무슨 일인데!
[의사부인] 그 콩 좀 이리줘요. 거시키 서울에서온 장수 지난 금요일에 댁에 찾아갔읍디까?
[조합장 부인] 아아뇨.
[의사부인] 우리집엘 찾아왔는데. 처음엔 남편한태 진찰받으러온 환잔줄 알았죠. 그런데 슬
금슬금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장농을 팔라는 거에요! 비싸게 값을 놓겠다고.
[조합장 부인] 얼마를 주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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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20만환, 그 고물을 말에요. 너무 커서 주체를 할수없는 물건인데. 사촌댁에나 줘
버릴려고
하든참이었는데.
[조합장 부인] 그래, 그 값에 파시려우?
[의사부인] 글쎄요.
[조합장 부인] 글쎄라니-이십만환이 어디에요. 그 케케묵은 구식장을 ---
[의사부인] 올 여름에 여행을 갈수만 있다면 그 값에 팔겠어요. 난 그저 자주 여행이나 하면
서 살면
원이 없겠어요. 당치않은 쇨지요. 하지만 여러해 전부터 혼자 맘먹고 있었죠. 기회만 있다면
-외국
여행을 한번 해야겠다고
[조합장 부인] 바깥 어른께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사부인] 슬쩍 이렇게 떠봤죠.- 나한테 유산이라도 있다면 - 이런 식으로 말을 꺼닝다우-
당신하고
여행이나 했으면하고 말에요.
[조합장 부인] 옳지 --- 그랬더니 뭐라고 그러세요?
[의사부인] 그 양반을 잘 아시지 않우? 결혼한지 십칠년이되지만 그렇게 심각한 애기 들은
건 이번이
처음에요. 안된다는 거죠. 외국을 빈들거리고 돌아다니면 이 읍내가 싫어질지도 모른다는 거
에요.
이대로 살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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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에 한번씩 경주 불국사나 부여 서울 그런데나 돌아오면 그걸로 충분하대요.
[조합장 부인] 글쎄 우리집 양반은 의사 선생님이 우리나라역사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잘
아시느냐고 감탄 감탄 하신답니다. 집의 양반도 덴마크소리를 집어치우고 역사얘기로 바꿨
어요. 문제는
의사 선생님이 일류전문가시기 때문에 우리집 양반도 감화를 받은 모양이에요.
[의사부인] 그건 사실에요. 그이는 우리나라 고적이나 명승지를 거닐때가 제일 행복스러운것
가아요.
나도 같이 그런곳을 거닐은 일이있지만 담불이 있는 곳마다 발을 멈추고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보고
한다니까요. 마치 그 땅을 사들일 의사나 있는 것 같다니까요.
[조합장 부인] 그런데 아까 얘기지만 그 가구상이 정말 장농을 살 의향리라면 팔아요. 그럼
외국
구경은 문제없어요. 문제는 자주 남편하테 귀뜸을 해야 되지. - 나도 그런 방법으로 제주도
구경을
했다우.
[의사부인] 괜히 그런 소릴 꺼냈군요. 죽기 전에 온가족이 이 지구위의 여러곳을 함께 돌아
봤으면
좋겠어요. 그저 그런 생각이 드는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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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이것 저것 챙길게 조옴 많아요! 근데 여보, 철뚝 넘어 마을에선 문을 잠근대요.
[의 사] (불을 끄며)
모두들 대처 사람 흉내를 내는거지 그게 탈야. 무엇이 그렇게 훔쳐갈께 있다구. 피차에 다
알고 있는
걸.
(그들 사라진다. 자애가 사닥다리 위 준호옆으로 올라간다.)
[준 호] 비켜. 이 창앞엔 한사람 자리밖에 없어. 넌 언제나 일을 방해하니?
[자 애] 나 잠간만 볼께.
[준 호] 네 방 창으로 가서 보면 되지 않아?
[자 애] 거기선 달이 보이지 않는걸 --- 오빠,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 암만해도
달이
점점 가까이 와서 무시무시하게 폭발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준 호] 모르는 소리 작작해. 달이 가까이 온다면 밤새도록 자지도 않고 망원경으로 올려다
보고
있는 천문학자들이 먼저 보고 말할께 아니냐. 신문이란 신문에 다 나고 말야.
[자 애] 오빠, 달은 지구의 절반을 비취는 거야?
[준 호] 글쎄 아마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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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감독이 어슬렁 어슬렁 걷는다. 잠시 사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대감독] 아흡시 반입니다. 집집의 불이 거진 꺼졌읍니다. 아니 저기 안순경이 문단속이
잘됐나
해서 순찰을 나왔군요. 그리고 여기 조합장님이 이달치 신문을 인쇄에 걸고 돌아왔읍니다.
(안순경이 바른쪽 행길에서 온다. 조합장은 왼쪽에서.)
[조 합 장] 수고하시는군요. 안순경.
[순 경] 늦으셨읍니다. 조합장님.
[조 합 장] 달이 참 밝군요!
[순 경] 네엣.
[조 합 장] 별일 없어요?
[순 경] 음악 선생이 약간 주정을 하고 돌아다니죠. 지금 막 그 부인이 찾으러 나온걸 보고
난 다른
길을 찾었죠.- 저기 오는군요.
(왼쪽 행길에서 나온다.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휘청거린다.)
[조 합 장] 음악 선생 늦었군 그래 --- 모두들 자느라고 읍내도 조용해졌네 ---
(지휘자 그에게 와서 잠시동안 말이 없다가 약간 몸을 흔들거리며 그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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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네 그려 --- 모두들 자느라고 고요하다니까 --- 우리도 그만 자는게 좋겠네. 바래다
줄까?
(지휘자는 아무말 없이 여전히 비틀거리며 바깥쪽으로 사라진다.) 조심해 가게나.
[순 경] 저러다가 어떻게 될까요? 어쩐구 이것 저것 골치 아픈 일도 많이 겪었건만 --- 저
이거
봐요 --- 우리집 놈이 혹시 담배피우는걸 보거든 한마디 해줘요. 그놈이 당신 생각을 끔찍
이
한다니까요.
[순 경] 자제는 담배 안피울텐데요. 기껏해야 일년에 두서너개 밖에 안피울겁니다.
[조 합 장] 흠 --- 그럴까요 --- 그럼 편히 쉬세요.
[순 경] 안녕히 주무십쇼.
(퇴장)
[조 합 장] 거 이층에 누구야? 당신요?
[미 선] 아네요, 저에요.
[조 합 장] 왜 안자니?
[미 선] 왠지 모르겠어요. 아직 잠이 안오는걸요. 달빛이 너무 너무 밝아요! 그런데다 자애
네 집
후박나무꽃 향기가 코를 찌르는 걸요. 맡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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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합 장] 음 --- 그래. 너 무슨 걱정이 있니?
[미 선] 걱정이라뇨! 아뇨.
[조 합 장] 그럼 좋을때로 하렴. 하지만 어머니 눈에 띌라 잘 자아.
[미 선] 안녕히 주무세요. (조합장 휘파람을 불며 집안으로 들어가서 사라진다.)
[자 애] 영미가 앓고 있을때 목사님께서 받은 편지 얘길 오빠한테 안했지. 목사님이 영미한
테
편지를 했는데 말야, 봉투의 주소가 걸작야. 듣기나 해. 하나님. 우주, 태양계, 지구, 동반구,
아세아
대륙, 대한민국 충청북도 중한군 중한읍 토성리 양계장 장영미.
[준 호] 야, 그거 걸작이구나.
[자 애] 그리고 우체부가 고대로 배달했거든.
[준 호] 최고 걸작 편지구나.
[무대감독] 여러분, 이걸로 일막은 끝났읍니다. 담배 피우실 분은 나가서 피우셔도 좋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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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감독이 오른 쪽으로부터 활발하게 들어온다. 그는 두부인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한다.
부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한다.)
[무대감독] 감사합니다 아주머님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준호엄마와 미선엄마 일거리를 모아가지고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사라진다.)
이제 몇시간은 그대로 넘어가기로 하겠읍니다. 하지만 우선 이 읍내에 대해서 좀더 알아야
될 것이
있읍니다. 말하자면 과학적인 설명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실은 국립대학 교수님께 우리
읍내의
과거 역사를 몇개 항목으로 나누어 대충 말씀해줍시사고 청했읍니다. 박교수님 오셨읍니까?
(지방학자인 박교수는 넓은 사아뗑 리봉이 달린 코안경을 쓰고 한손에는 원고를 든체 오른
쪽에서
들어온다.) 국립대학 방세영교수를 소개하겠읍니다. 선생님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요-시간의
제약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박 교 수] 중한 음이라 --- 가만히 있자 --- 중한군은 태백산맥의 빙하기 화강암위에 자
리잡고
있읍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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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점을 우리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데본기 현무암의 암층이 가로질렀읍니다만 중세기 이판
의 흔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암의 노출이 눈에 띱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최근의 것입니다. 이역
이나
삼역년 됐겠지요. 대단히 흥미있는 화석이 발견되었읍니다 --- 전무 후무한 화석이라고나
할까요 ---
읍내에서 이킬로미터 떨어진 농원 목장에서 나왔죠. 아무때고 우리 대학 박물관에 오시면
보실 수
있읍니다. 그야 물론 보실수있는 시간이라야죠. 기상학상의 위치에 관한 주해를 읽어드릴까
요?
강우량같은 것 말입니다.
[무대감독] 선생님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고장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서 몇 말씀
해주시죠.
[박 교 수] 네 --- 인류학적 자료를 말씀하지면 초기엔 몽고라안의 혈통인데 --- 선비족
또는 동이족
이라고도 불렸죠. 동북아시아 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했고 에의 바르고 슬기로운 민족이라
할수
있읍니다. 한족과 몽고족의 칩입을 자주 받았으며 이곳은 삼국시대때 고구려의 영토가 되기
도 했던
곳입니다. 옛 도성의 흔적이 아직남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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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감독] 그리고 선생님 인구는요?
[박 교 수] 읍내만 본다면 이천 육백사십명입니다.
[무대감독] 선생님 잠간만.
(그는 교수의 귀에 속삭인다.)
[박 교 수] 아 그래요?-그럼 바로 이 순간의 읍내 인구는 이천육백사십이명이군요. -사망률
과
출생률은 늘 그만 하고요.-맥퍼슨의 계산에 의하면 육점 이삼이가 됩니다.
[무대감독]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배운게 많습니다.
[박 교 수] 원 천만의 말씀을.
[무대감독] 이쪽으로 가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 퇴장)
이번엔 정치 사회면의 보곱니다. 조합장님 - 여기보세요, 조합장님. (미선엄마 자기집 뒷문
에
나타난다.)
[조합장 부인] 금방 올거예요 --- 사과를 깍다가 손을 비었어요.
[무대감독] 네, 알겠읍니다.
[조합장 부인] 여보, 모두들 기다리고 계세요. (퇴장)
[무대감독] 조합장님은 농협 중한읍 조합장 이시며 월간신문인 중한 새소식의사가 장겸
주간이십니다. 우리 읍내 신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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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저고리를 까어 입으며 자기 집에서 나온다. 손가락 하나를 손수건으로 맸다.)
[조 합 장] 이건 말씀드릴 필요도 없읍니다만 우리 읍은 행정위원회에서 해나가고 있읍니다.
충청북도 중한군 중한읍입니다. 스물한살이면 투표권이 있읍니다. 우리읍의 평근 생활수준은
우리나라에서 중하류에 해당합니다. 산업은 농업상업이고 교육열이 높고요. 문맹자는 10퍼센
트 종교는
불교 유교 기독교순 이되겠읍니다.
[무대감독] 뭐데 논평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조 합 장] 글쎄요. 아주 평범한 읍내죠. 다른 데보다 별로 나은것도 없읍니다. 보수적이고
활기가
없는 편이죠. 하지만 젊은 애들은 제고장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
는 애들의
칠십퍼센트가서 대학을 다녀도 졸업 후엔 돌아옵니다.
[무대감독] 그럼 여러분 가운데서 이 읍내에서 조합장님에게 질문하실 분은 안계십니까?
[객석의 여인] 중한읍에서는 술들을 많이 마시나요? 글쎄요. 많이 마신다고는 할수 없을 겁
니다.
장날이라던가 명절 관혼상제가 있을때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요. 알콜중독자
라고
볼수없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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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술이란 가정생활에서 유쾌한 것이 못됩니다만 사회생활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것이지
요.-
사실입니다.
[객석의 남자] 그래 읍내에선 사회적 불의라든지 산업면의 불평등 같은걸 말하는 사람은 없
소?
[조 합 장] 그야 다들 있죠 - 불평하는 사람, 누군 어떻게 돼서 부자라느니, 누군 누구때문
에
가난하다느니 이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죠. 그렇다면 모두들 합심해서 방법을
강구하면
될게 아니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물러간다.)
[조 합 장] 그건 전 모르겠읍니다 --- 우린 저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하고 모색하고 있
죠.
부지런하고 지각있는 사람은 정상으로 올라가고 게으르고 싸움 좋아하는 사람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버비니까오. 하지만 그런걸 터득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자립해 나갈수 있는 사람을 막론하고 전력을 다해서 서로 도웁고 협조하고 있읍
니다 - 다른
질문 없으십니까?
[부 인] 저 조합장님. 웹선생님. 중한음엔 문화라고 할까요. 말하자면 고유의 예술 같은것이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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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합 장] 글쎄올시다 별로 없는데요.-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의미의 것은 없읍니다.
하기야
여학생들 가운데는 고등학교 졸업식때 풍금을 치는 애들이 있긴 합니다만 만족한게 못되죠.
네.
문화랄께 별로 없읍니다. 그렇지만 이 고장에도 여러가지 즐거운 일이 많이 있읍니다. 아침
이 되면
산넘어 해가 떠오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 뿐인가요. 각종 새들을 보면 여러가지 신
기한
현상이 있읍니다. 춘하추동 산천이 아름답고 사사람들 모두 인정이 있고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 알맞게
변하는 기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시집 장가가고 또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이를 먹어
손주를
보고 이런것이 모두 문화요 예술이 아니겠읍니까?
[부 인] 하긴 그렇기도 하죠. 고맙습니다.
[무대감독] 감사합니다. 조합장님.
(조합장 물러간다.)
그럼 읍내얘기로 돌아가죠. 이른 오훗니다. 읍내 육천사십이명이 너나 할것 없이 점심을 먹
고
설거지도 끝났읍니다. 저고리를 벗어버리고 다시 나와서 집 옆으로 이리낫으로 풀을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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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읍내에 이른 오후의 안온한 고요가 깃들입니다. 학교에서 웅성거리고 지꺼려대는 소리
가
들러옵니다. 행길에 두서너대 마차가 있을 뿐 - 조랑말과 소는 말뚝에 매인채 낮잠이 들었
읍니다. 그
광경을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죠. 의사 선생님은 진찰실에서 환자들을 뚝둑 두드리며 진찰을
하고입을
벌려 보라고 하고 있읍니다. 조합장은 저기서 꼴밭의 풀을 뽑아주고 있읍니다. 아, 실례했읍
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늦었군요. 벌써 학교가 파해서 애들이 돌아오고 있읍니다.
(여학생들의 드높은 말소리가 왼쪽 무대뒤에서 들린다. 미선이 책 몇권을 들고 행길로 나온
다.
자신이 굉장히 우아한 귀부인이나 되는 것처럼 몸짓과 손짓을 하며 말한다.)
[미 선] 안돼. 명자야. 집에 가서 어머니 일 거들어 드려야 된다니까. 약속했거든.
[조 합 장] 수수하게 걸어라. 오늘을 귀부인이나 된듯 싶으냐?
[미 선] 내참, 아빠는. 똑바로 걸으라고 하실때는 언제고 흉보실땐 언제에요. 아빠 말 안들테
야.
(아버지에게 벼락키쓰를 한다.)
[조 합 장] 어랍쇼, 생전 처음 귀부인한테서 키쓰를 받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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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사라진다. 미선은 자기집 대문 옆에서 몸을 굽히고 꽃을 꺾는다. 준호 이쪽 저쪽으
로 몸을
흔들며 행길로 온다. 공을 까맣게 솟도록 차고 다시 받으려고 기다기고 있다. 여섯 발자욱
뒷걸음쳐서
받아야만 할때도 있다. 그러다가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늙은 부인에게 부딪친다.)
[준 호] 미안합니다. 할머니.
[무대감독] (대신으로 ) 얘 넓은 운동장에서 놀면 돼지않니. 행길에서 공차기하는게 아냐.
[준 호] 잘못했어요. 할머니 - 얘 미선아.
[미 선] 응 -.
[준 호] 아까 교실에서 연설 잘하드라.
[미 선] 뭘 --- 사실은 백제문화에 대해서 연설을 할 작정이었거든. 그랫는데 그 직전에 선
생님이
신라문화에 대해서 애기하라고 그러시지 않어? 두 문제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공부했거든.
[준 호] 저녁이면 이층 네방에서 숙제하는 네 머리가 우리 이층에서 보이드라.
[미 선] 그래? 정말 뵈든?
[준 호] 어쩌면 그렇게 공부꾸러기냐. 그렇게 꼼짝 안하고 오래동안 앉아 있다니 넌 참 용하
다.
공부하는게 좋은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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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아무때 하면 안하니?
[준 호] 그야 그렇지.
[미 선] 난 조금도 싫증이 안나. 시간이 머무 빨리가.
[준 호] 미선아 좋은수가 있다. 너희집 창에서 우리 창으로 전화줄을 대면 어떨까? 그럼, 이
따금
대수문제 모르는게 있을때 귀뜸만 좀 해주면 좋잖니? 답을 해달라는 게 아냐, --- 그냥 귀
뜸만 ---
[미 선] 그래, 귀뜸 정도는 괜찮어.-그럼 - 저 - 맥히거든 휘파람을 불어. 그럼 내가 귀뜸해
줄께.
[준 호] 넌 날적부터 천재였던 모양이지?
[미 선] 처음부터 천치가 어디 있어.
[준 호] 그렇지. 근대 난말야, 농부가 되고싶거든. 오촌 아저씨 말씀이 나만 좋다면 언제고
아저씨댁 농장에서 일할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성적이 좋으면 나중에 농장을 주시겠대.
[미 선] 집이랑 다 주신단 말이지?
[미선엄마] 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창살문 옆의 벤취에 앉는다.)
[준 호] 응. 미선아 --- 난 축구하러 가야겠다. 그 얘기 고맙다.- 안녕하세요, 미선 어머니.
[조합장 부인] 응, 준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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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호] 미선아 난 간다.
[미 선] 잘 가아.
[조합장 부인] 미선아, 이리와서 콩이나 까거라. 준호 얘기를 제법하는 모양이다. 꽤 자랐어.
몇살이나 됐니?
[미 선] 몰라요.
[조합장 부인] 가만있자, 열여섯살은 됐을걸.
[미 선]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연설했는데 잘했어.
[조합장 부인] 저녁먹을때 아버지 앞에서 해봐라. 무슨 연설을 했니?
[미 선] 신라문화에 대해서요. 술술 맥히지 않고 했어요. 일생동안 연설을 해야지 - 엄마
근사하겠지?
[부 인] 더 근사하도록 해야지.
[미 선] 엄마, 내가 묻는거 대답해 줄테야. 진심으로?
[부 인] 진심으로?
[미 선] 진심으로 - 대답하지?
[부 인] 그야 물론이지.
[미 선] 엄마, 나 잘 생겼어?
[부 인] 그야 이름 말이냐. 우리 애들은 다 잘생겼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
고
다니겠니?
[미 선] 아이, 그런 뜻이 아녜요. 내말은 말야 - 예쁘냔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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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인] 그렇다니까 그래. 네 얼굴이야말로 돌아오는 반달같지. 그런얘긴 왜 자꾸 묻니?
[미 선] 엄만 뭣이고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뭘.
[부 인] 지금 제대로 얘기하고 있지 않니?
[미 선] 엄마, 엄마도 예전에 예뻤우?
[부 인] 물론 예뻤지. 양조장집딸 빼놓고는 내가 읍내에서 제일 예뻤단다.
[미 선] 하지만 엄마, 그 있지 않우, 엄마? 정말예뻐요? --- 남을 ---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느냐
말예요?
[부 인] 얘, 고단하다. 그얘긴 그만 둬. 그만큼 예쁘면 문제없다.- 자, 그만두고 쟁반 가지고
오너라.
[미 선] 엄마, 내얘긴 들어주지도 않어.
[무대감독] 고맙습니다. 됐읍니다, 됐어요. 그 정도로 해주실까요.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미선
이도
고맙다. (그녀들 물러간다.)
이 읍내에 대해 서 알아볼 것이 몇가지 또 있읍니다.
(그는 무대 중앙으로 온다. 다음 말을 하는동안 조명이 차츰 어두어지고 그에게만 스폿트를
비친다.)
마침 좋은 기회가 돼서 말씀드리겠읍니다만 이 읍내에 은행 지점을 짓기 시작했읍니다.-경
주까지
가서 돌을 거져왔죠. 헌데 건축자측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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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정초식할때 뭘 넣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읍니다 --- 한 천년후에 파내도록하자는
거죠 --- 물론
그들은 일간신문과 중한 새소식을 넣었죠 --- 좋은 착안이었죠. 몇몇 과학도들이 인쇄물을
아교로
칠하는 방법을 발견해 냈죠 - 규산염 아교에요 - 그렇게하면 천년이나 이천년을 썩지않고
갈수
있답니다. 우린 성경도 넣고 --- 대한민국 헌법 - 김소월 시집도 넣을 생각입니다. 어떻습
니까?
여러분은 어떰께 생각하십니까? 옛날 바빌론에는 이백만명이나 살고 있었읍니다만 바빌론에
대한 우리
지긱이라고는 왕들의 이름과 밀 매매계약서 나부랭이었죠 --- 그리고 노예매매계약서 뿐입
니다. 하지만
저녁이면 저 바빌론의 가족들은 저녁 상머리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고 아버지는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연기를 굴뚝위로 꾸역꾸역 올라갔죠 -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읍니까. 그
리고
흴합이나 로오마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실생활을 우리가 안다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당시의
재미있는
시와 무대상연을 위해서는 쓴 연극대본을 통해서 관찰할수 있읍니다. 그런 이유로 저도 이
연극대본
한권을 주춧돌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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넣어서 천년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대한 몇가지 대단치 않은 시실을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
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베루사이유 조약이나 린드버어그의 빠리비행보다 소중한 것이죠. 아시겠죠?
그러니까
결국 - 천년후의 사람들도 - 우리가 이십세게 중엽 동북아시아 지방에 있을때나 마찬가지
겠죠.- 과거나
현재나 사람의 사는 모습은 매일반 입니다, 자라서 결혼생활을 허며 살다가 죽고 -
(오케스트라석에 일부분 보이지 않게 숨어있던 성가대가 "형제의 연락"을 부른다. 싸이먼.스
팀슨
일어서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 동안에 뒤에서 사닥다리 두 개를 무대위에 밀어 내놓는
다. 하나는
깁스집 또 하나는 웹집의 이층 역활을 하는 셈이다. 죠오지와 에밀리가 각각 사다리에 올라
간다.
그리고 는 숙제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깁스의사가 부엌으로 들어와서 책을 읽고 앉아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저녁이 됐읍니다. 들어 보십시요. 교회에서 성가대가 합창 연습을 하
고
있읍니다. 애들은 집에서숙제를 하고 있죠. 오늘 하루도 피곤한 시계처럼 태입이 풀렸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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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휘 자] 이거봐요., 이거봐. 음악이란 즐거움을 줘야 될게 아녜요?- 부드럽게, 좀더 부드
럽게.
소리만 크게 낸다고 훌륭한 음악이 되는게 아녜요. 자자 다시.
[준 호] 휘잇 미선아!
[미 선] 준호니?
[준 호] 미선아!
[미 선] 이쩌면 달이 저렇게 밝니? 공부가 안돼!
[준 호] 미선아 세째 문제 풀었니?
[미 선] 어떤거?
[준 호] 셋째 문제 말아.
[미 선] 그야 풀었지.- 제일 쉬운 문젠데.
[준 호] 난 모르겠다. 귀뜸 좀 해다우.
[미 선] 한가지만 말해주지. 야아드만 알면 돼.
[준 호] 뭐? 야아드라구? 무슨 소리냐?
[미 선] 정방형 야아드말야.
[준 호] 아! --- 정방형 야아드.
[미 선] 그렇다니까, 그래도 몰라?
[준 호] 알어.
[미 선] "벽지"의 정방형 야아드.
[준 호] 벽종이 - 응 알았다. 고맙다, 미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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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괜찮어. 어쩌면 달이 저렇게 밝으니? 찬양대도 연습을 하고 있고 - 숨을 죽이고 있
으면
저멀리서 가는 기차소리도 잘 들려. 들리지?
[준 호] 응 - 참 신기하다!
[미 선] 공부해야겠다.
[준 호] 잘자라, 미선아 고맙다.
[미 선] 준호, 잘 자아.
[지 휘 자] 아 참 - 화요일 오후에 김창수 집사님댁 결혼식이 있는데 몇분이나 오셔서 노래
해 주실수
있죠?- 손들어 보세요. 좋습니다. 지난달 이주사댁 결혼식때 부르던 걸 하도록 하죠.- 자 다
음은
"믿으려하는자와 문답함"을 합시다. 이건 문답이니까 가사를 잘 불러요. 시작하겠어요.
[의 사] 얘, 준호야, 잠간 내려온.
[준 호] 네. (사닥다리를 내려온다.)
[의 사] 편히 앉아라. 잠간동안이면 돼. 너 몇살이지?
[준 호] 저요? 열여섯살요. 얼마 안있으면 열일곱살되죠.
[의 사] 졸업후엔 뭘하련?
[준 호] 아버진 아시면서 그러세요. 백석리 아저씨 농장에 가서 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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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 그럼 일찍 일어나서 소젖짜고 가축을 먹이고 한단 말이지 --- 왼종일 괭이질도 하
고 건초도
만들수있단 말이냐?
[준 호] 그럼요. 아버진 ---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의 사] 준호야, 오늘 진찰실에서 이상한 소릴 들었거든. - 뭔지 알겠니? 너희 어머니가 뻐
개는
소리야. 생각해 보람. - 어머닌 일찍 일어나서 왼종일 밥지으랴 빨래하랴 다리미질하랴 -
그뿐이냐,
뒷마당에 가서 장작까지 뻐개지 않니. 널보고 해달라고 말도 하기가 귀찮아진 모양이드라.
아예
단념하고 자기 손으로 하기로 작정했는가 봐. 그런데 넌 어머니가 지어준 밥을 먹고 어머니
가 꼼꼼히
만든 옷을 입고 뛰어나가서는 축구나 하구 - 월급주고 부리는 식모가 다를게 뭐있니? 너희
어머니를
식구들 모두가 무척 좋아한다는거 이외는 식모하고 다를게 하나도 없다. 네가 그런 심정이
나 알았으면
하는 거다. 엥다, 손수건. 그리고 말이다, 네 용돈을 일주일에 천환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그
야 물론
어머니 대신 장작을 패라고 해서 더주는건 아니다. 장작을 네가 뻐갠 다면 그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냥 해드리는 거지. 허지만 너도 자꾸 커가니까 - 돈쓸일도 많을개다.
[페이지] 037-1
[준 호] 아버지 감사합니다.
[의 사] 가만히 있자. 내일이 제 봉급날이로구나. - 흠, 네 동생도 올려달라고 할걸. 헌데 어
머니는
어떻게 되가냐? 전엔 성가대 연습이 이렇게 늦진 않았는데.
[준 호] 인제 여덟시 반인데요 뭘.
[의 사] 너희 어머닌 뭣하러 그 시시한 성가대엔 자꾸 나가는지 모르겠다. 늙은 까마귀 소리
밖에
못내면서 --- 이렇게 늦게 밤거리를 빈들거리고 다니다니 --- 너 잘시간 되지 않았니?
[준 호] 네. (사닥다리 위의 자기 자리로 올라간다. 왼쪽 무대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작별인
사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준호 엄마, 정아 엄마, 미선 엄마, 행길로 온다. 무대 모퉁이에 이르
자 발을
멈춘다.)
[정 아 네] 잘 자요, 히야네. 숙이네도, 편히 쉬세요.
[조합장 부인] 우리집 양반한테 말하겠어요. 꼭 도합 신문에 내줄것야.
[정 아 네] 이를 어쩌면 좋지? 너무 늦었으니
[의사부인] 조심해가요 정아 엄마. 성가대 연습 훌륭하지 애었우? 미선 엄마, 저 달 좀 봐요,
올핸
감자는 잘먹게 생겼우.
[페이지] 037-2
(그들 잠시동안 말없이 달을 올려다본다.)
[정 아 네] 사실 그 얘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제 우리끼리니까 말이
지만 -
그런 망칙스런 일은 우리읍에선 처음이지 뭐유.
[의사부인] 뭐말유?
[정 아 네] 성가대 지휘자말예요.
[의사부인] 그만해둬요.
[정 아 네] 하지만, 적어도 교회의 오르간을 치는 사람이 하루가 멀다하고 술독에 빠져 살아
서야
되겠우? 왜 그런 사람을 쓰느냐 말에요? 오늘저녁에도 취했거든요.
[의사부인] 그쯤해둬요. 그분이 그런줄은 모두들 잘 알지않우? 장노님도 다 아세요. 알면서
그
사람을 그대로 쓰시는걸 우리들은 그저 모르는체 하는게 좋아요.
[정 아 네] 모르는 체 한다고요! 하지만 점점 더 심해가지않아요?
[부 인] 그렇진 않아요. 차츰 나아가고 있다우. 난 정아엄마보다 성가대에 많이 가는편인데
이즈음엔
그다지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 정말 이런 달밤엔 잠자리에 들기가 싫구료.
-
[페이지] 037-3
빨리 가봐야겠네. 애들이 자지않고 기다릴거야. 잘 자요, 정아 엄마. (그들은 작별 인사를 나
눈다.
미선 엄마는 앞무대로 급히 와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의사부인] 정아 엄마, 어둔데 괜찮겠우?
[정 아 네] 대낮같이 밝은데요. 그이가 창께서 상르 찡그리고 있는데 보이는것 같군요. 남자
들이란
우리가 뭐 바람이 나간것 처럼 야단들이라니까요.
(그들 작별인사를 한다. 준호 엄마 자기집에 다다르자 창살문을 통하여 부엌으로 들어간다.)
[의사부인] 참 재미있었어요.
[의 사] 왜 이렇게 늦게 다뉴?
[의사부인] 늘 이렇지, 오늘 이라고 더 늦은게 아녜요.
[의 사] 여편네 들이란 할수 없단 말야. 길 모퉁이에서 잡담이나 하구.
[의사부인] 여보, 너무 까다롭게 그러지 말어요. 달빛이 저렇게 밝은데 나가서 후박나무 냄
새난
맡읍시다.
(그들은 서로 팔을 끼고 훗트라잇트 앞을 거닌다.)
얼마나 좋우? 내가 나간 뒤에 뭘 하셨우?
[의 사] 그저 늘 하던식으로 책읽었지. 그래 오늘밤엔 무슨 잡담들을 했요?
[페이지] 037-4
[의사부인] 그런데 여보 - 얘기거리가 하나 있다우.
[의 사] 흠! 성가대 지휘자가 또 취한 모양이로군?
[의사부인] 그렇게 지독한건 오늘 처음 봤어요. 저러다가 어떻게 될까요? 장노님도 언제까지
나
용서하시지는 않을걸요.
[의 사] 그 사람은 이 읍내에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오. 세상엔 이런 조그만 읍내 생활
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거요. 그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건지 난들 알겠오만 우린들 어떡하겠
오?
내버려두는 수 밖에. 자, 들어갑시다.
[의사부인] 뭘 벌써 들어간다고 그러유 --- 근데 여보, 난 당신이 걱정이 돼요.
[의 사] 무슨 걱정이오?
[의사부인] 암만해도 내가 당신을 쉬시도록 해드려야겠우. 나한테 유산만 있다면.
[의 사] 아니 여보, 또 그 얘기로구려. 지각없는 소리야
[의사부인] 당신은 정말 외고집이로구려.
[의 사] (집안으로 들 어가며) 어서 들어와요, 늦었오. 괜히 감기들어요. 아까 준호란 놈을
좀
나무랬오. 며칠동안은 녀석이 장작을 뻐갤테지. 어서 이층으로 올라가요.
[페이지] 037
[막] 제 2 막
두 집 부엌의 식탁과 의자는 그대로 무대에 놓여 있다. 사닥다리의 조그만 벤취는 치웠다.
무대감독은 자기 자리에 나와서 관객이 제 자리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
[무대감독] 삼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읍니다. 그렇죠. 해가 천번도 더 떴다간 졌죠.한여름 한겨
울이
지나갈 때마다 저 산도 조금씩 뭉겨지고 비가 올때면 산흙을 씻어내리곤 했읍니다. 삼년전
엔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애들이 제법 똑똑한 말을 하게 됐읍니다. 그리고 하늘이라도 날을것만 같이
젊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전같이 계단을 뛰어 올라갈 수 없음을 알았죠. 숨이 차서 가슴이 뛰게 됐
거든요. 구백
아흔아홉날하고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인들 안일어나겠읍니까. 대자연도 별별 변화를 겪었죠.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을 했읍니다. 사실에요. 간도 약간 깎여 나간 셈이죠. 수백
만 갈론의
물이 물방앗간 잎을 흘러가고 여기 저기 새 가정을 꾸민 집이 생겼읍니다. 세상에 결혼안하
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 안 그래요? 거의 누구나 결혼해서 살다가 무덤으로 들어가게 마련이죠.
[페이지] 038
제 일막은 일상생활이라고 할까요. 제 이막은 사랑과 결혼입니다. 이 다음에 또 한막이 있읍
니다. 그게
무슨 얘기지는 짐작하시겠죠. 그쯤 해두고요. 삼년 후, 1960년입니다. 칠월 십사일, 당시에는
서둘러서
결혼을 했죠. 그 딱딱한 학교생활에서 해방도니 듯 갑자기 결혼해도 좋은 것 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죠.
이른 아침입니다만 밤새 비가 왔읍니다. 준호 어머니가 가꾼 정원과 여기 미선어머니가 가
꾼 정원은
흠벅 젖었읍니다. 콩밭에 버텨 놓은 나무가지와 완두콩 넝쿨도 흠뻑 젖었읍니다. 저기 챙길
엔 이제
종일 병풍이 가로 날리는 것 같이 비가 가로쳤읍니다. 음 --- 지금이라도 또 올것 같군요.
들어보세요.
다섯시 사십오분 열찹니다.
(미선엄마와 준호엄마가 각기 부엌으로 들어와서 일막에서 처럼 아침 준비를 시작한다.)
준호네와 미선내는 오늘도 다른 때와 같은 날인 것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여기
오신
부인들께는 특별히 지적할 필요가 없읍니다만 여러분이 보시는 이 두분인도 하루에 세번 음
식을 만들죠
- 한분은 삼십년 또 한분은 사십년 - 그런데도 여름방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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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읍니다. 두분 다 남매를 키우고 빨래를 하고 집안 소재도 하고 - 그러면서도 한번도 신경
쇠약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어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살기 위하여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
위하여 살라
--- " 이른바 순환논법이죠.
[변 서 방] (왼쪽 무대 뒤에서) 어서 가자 이랴! 몽돌아 -
[무대감독] 변서방이 마차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 저기 수남이가 그전 자기형 복남이가 돌리
던
신문을 돌리고 있읍니다. (수남이가 가사의 신문을 이집 저집 문앞에 던지며 들어온다. 변서
방이
몽돌이를 끌고 행길로 온다.)
[수 남] 변씨 할아버지 일찍 나오셨군요.
[변 서 방] 잘잤니 - 뭐 내가 알아둬야 될거라도 났니?
[수 남] 별거 없어요. 우리 읍내에서 일류 축구선수를 잃게 됐다는 소식이 났어요.-김준호형
말예요.
그만한 선수는 이태껏 없었거든요.
[변 씨] 사실이지
[수 남] 해딩슛도 잘하거든요.
[변 씨] 아무렴, 근사한 선수지 -워 - 좀 기다려 몽돌아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도 못한단
말이냐?
[수 남]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축구를 그만둘 수 있을까요.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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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씨] 글쎄. 난 그런 재주도 없으니까 그만두고 자시고 할께 있니.
(안순경이 들어온다. 그들 아침 인사를 주고 받는다)
일찍 나오셨구만 -
[안 순 경] 홍수가 나지 않나 해서 나왔지요. 밤새 강물이 많이 불었거든요.
[변 씨] 의원댁 자제가 결혼을 한다는군요. 수남이가 알려줬어요.
[안 순 경] 그렇다오. 날씨가 어떻겠어요? 변씨 아저씨?
[변 씨] 괜찮아요. 갤것 같은데요.
(안순경과 수남 다시 가기 시작한다. 변서방은 먼저 의사댁에 앞을 지난다. 부인은 문 옆에
서 그를
맞는다)
[의사부인] 수고허시우. 비가 또 올것 같아요?
[변 씨] 안녕하십니까. 그만큼 쏟아졌으니까 갤겁니다.
[의사부인]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변 씨] 이번 혼인은 천생연분입죠. 제 처도 그렇게 말합니다. 재미있게 사실거에요.
[의사부인] 고마워요. 부인보고 식장에꼭 오라고 그러세요.
[변 씨] 네 갈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가도록 하죠.
(조합장 집으로 건너간다.)
[페이지] 041
안녕하십니까?
[부 인] 어서 와요. 또 비가 올 것 같어요?
[변 씨] 지금 막 의사선생댁 아주머니께도 말씀드렸읍니다만 갤겁니다. 제 처가 축하의 말씀
드려달라고요. 정말 천생연분입죠.
[부 인] 고마워요. 내외분이 식장으로 꼭 오셔야 돼요.
[변 씨] 암 가봐야죠. 가고말고요. 자, 가자, 베씨
(변서방 퇴장. 의사 샤쓰바람으로 내려와서 조반식탁앞에 앉는다.)
[의 사] 여보 드디오 올날이 왔구료. 병아리 하나 없어지게 됐어.
[부 인] 뭣이 재미난다고 그런 소릴 허슈. 난 울고만 싶은데
[의 사] 새신랑은 면도하고 있오 - 수염이라야 많지도 않은걸 휘파람을 분다. 노래를 한다,
장가
가는게 무척 좋은 모양야 - 이따금 거울에다 대고 "네에""네에" 하고 서약하는 연습을 하는
데 그대로
잘 해갈지 도무지 듬직하질 않어.
[부 인] 여보, 그애가 어떻게 살아나갈지 모르겠우. 지금까진 내가 옷을 챙겨 주고 춥지 않
게
보살펴줬지만 - 걔들은 너무 어려서 원. 미선이는 그런걸 모를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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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앤 그대로 내버려두면 일주일도 못가서 독감에 걸릴걸요.
[의 사] 여보, 우리 혼인하던날 아침 생각이 나는구려.
[부 인] 그 얘긴 그만둬요.
[의 사] 난 이 읍내에서 제일 겁쟁이었어. 꼭 실수를_할 것만 같았단말야. 당시이 들어설 때
보니까
정말 예쁩디다. 그전에 당신을 한번도 본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거던. 초
면인
여자하고 결혼을 하다니.
[부 인] 난 어땠는지 아우?- 결혼식이라는건 정말 맹랑한거요. 생각하면 희곡같거든요 - 사
실예요.
(그는 남편 앞에 대접을 놓는다.)
자, 만들었으니 자시우.
[의 사] 이게 뭐야?
[부 인] 만들기 힘든것도 아닌데다 맘이 들떠서 뭣이고 해야지 가만이 있을 수가 없군요.
수장과에요.
[의 사] 어제밤 잠이 옵디까?
[부 인] 시계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어요.
[의 사] 그래애! 그녀석 새가정 꾸미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지는 구려 - 자식이 곱
상스럽게
생기기나 했지 뭘 알아야지 - 이 세상에 아들이라는 것처럼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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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게 하는건 없오. 부자지간의 관계라는건 아주 거북하고 고약하고 -
[부 인] 모녀관계는 거저 먹긴줄 아슈? 얼마나 어렵다구.
[의 사] 그것들이 살아가려면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우리가 참견할건 없지. 사람마
다
자기가 당하는 난관은 자기가 뚫고 나가게 마련이니까.
[부 인] (자기도 수정과를 마시며 명상에 잠겨) 그렇죠 --- 사람은 둘씩 둘씩 살아가게 마
련이죠.
혼자 산다는건 어색하거든요. (잠시 사이. 의사 웃기 시작한다.)
[의 사] 내가 당신하고 결혼했을 때 내가 겁을 먹은게 뭔지 아우?
[부 인] 어서 말해보시우.
[의 사] 이삼주일 얘기하고 나면 얘기거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오. (두사람 웃는다.)
결국 할말이 없어져서 벙어리처럼 밥을 먹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야 - 정말야. - 그런데 우
리들이
이십년동안이나 얘기를 해 왔는데도 얘기 주머니가 비어본때라고는 없었거든.
[부 인] 말은 날씨건 궂은 날씨건 특별한건 없다고 해도 언제고 얘기거리야 있죠.
(그는 계단 밑으로 간다.) 자애는 일어났우?
[의 사] 아니. 남의 일이라면 쫓아다니면서 참견하는 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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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은 휴업인 모양요. 제 방구석에 들어앉았어.- 우는 모양입디다.
[부 인] 맙소사 - 그런짓 못하게 해야돼요 - 자애야, 자애야! 내려와서 아침 먹어라. (준호
가 아주
활발하게 계단을 덜거덕거리고 내려온다.)
[준 호] 안녕히 주무셨어요. 다섯시간 밖에 자유롭게 있을 시간이 없어요.
(목을 베는 시늉을 하고 킥킥킥 소리를 크게 내고는 창살문으로 나간다.)
[부 인] 도련님, 어딜 가니?
[준 호] 저 건너 처가집에요.
[부 인] 이거봐, 비가 쏟아진다. 덮어놓고 나가기만 하면 어떡하니? 준빌 단단히 해야지.
[준 호] 아이, 어머니도, 엎어지면 코달텐데 뭘.
[부 인] 에미말 들어. 괜히 그러다간 감기들어서 어서 식장에서 기침한다.
[의 사] 준호야, 어머니가 하라는데로 해라.
(의사는 이층으로 간다. 준호는 마지못해 부엌으로 돌아와서 덧신을 시는 시늉을 한다.)
[부 인] 내일부터는 춥건 더웁건 감기가 걸리건 말건 네멋대로 하렴. 하지만 에미 앞에 있는
동안은
지각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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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야해 - 내 장모가 아침 일곱시에 찾아가면 좋아할라구. - 우선 요기나 하렴.
[준 호] 금방 돌아올께요.
(물고인데를 뛰면서 무대를 건너간다.)
장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부 인] 아이고 깜짝야 - 비맞는데 서있지 말고 추녀밑으로 들어서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는 하지
못하겠네.
[준 호] 들어가면 안되나요?
[부 인] 아니, 그것도 모르나? 혼인날은 식장에서 신부를 만나는거야. 그전엔 안돼.
[준 호] 안녕히 주무셨어요, 장인어른?
(조합장이 나온다.)
[조 합 장] 잘잤나?
[준 호] 장인께선 이상스런 격식같은것 믿지 않으시겠죠?
[조 합 장] 격식이라고 덮어놓고 나쁜건 아냐. 이치에 닿는게 많단다. (조합장은 오른쪽을
향하여
식탁 앞에 앉는다.)
[부 인]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해왔는데 솔선해서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려고할께 뭐있나?
[준 호] 미선이는 어때요?
[부 인] 아직 일어나지도 않었어. 아무 기척도 없지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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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호] 자고 있어요!
[부 인] 그럴 밖에. 꿰매고 짐꾸리고 하느라고 웬 식구가 눈도 붙여 보지 못했다네. 나하라
는대로
해. 여기 잠간 앉아서 장인하고 얘기하고 있어. 내 이층으로 가서 그애보고 내려와서 한바탕
자넬
놀래주라고 해보지. 여기 생과자가 좀 있으니 들면서말야.
(부인 나간다. 어색한 침묵. 조합장은 커피에 도낫스를 떨어뜨린다. 여전히 침묵이 흐른다.)
[조 합 장] (갑자기 크게)그래기분이 어떠니?
[준 호] (깜짝 놀래어)저요, 전 아주 좋아요. (잠시 사이) 그런데 그런 격식이 왜 생겼을까
요?
[조 합 장] 그건 저 - 신부는 시집가는날 아침엔 머리속이 복잡하거든 --- 옷이니 뭐니 이
것 저것
있지 않니? 생각해 보렴 그렇지 않겠나.
[준 호] 아 - 참, 그렇겠군요. 그 생각을 못했군요.
[조 합 장] 처녀가 시집가는 날에 신경이 날카로운 법이란다.
(잠시 사이)
[준 호] 들어가고 니가고 하는 행진없이 결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 합 장] 옛날부터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아무 소용없어. 결혼식을 요지부동으로
만들어
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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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니까. 지금 같애선 여자들 마음대로지. 결혼식에서는 남자란 아주 보잘 것 없어.
여자들판이라니까.
[준 호] 그걸 인정하시는군요.
[조합장] (민첩하게) 그야, 물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결혼이란
훌륭한거야.-훌륭하고말고. 너도 그걸 잊지 말아.
[준 호] 네 - 근데 장인께선 몇살에 결혼하셨어요?
[조 합 장] 나말이야. 난 열일곱살에 했지. 자네 장모는 - 미선이보다 조금 더 먹었었을까.
사실
결혼에 있어선 나이 같은건 문제가 아냐 - 오히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지.
[준 호] 무슨 말씀이세요?
[조 합 장] 아니, 글쎄 - 내가 무슨 말을 할려고 했나?
(잠시 사이)
그래 자네 처조부께서 내가 장가 가던날밤 하시던 말씀을 생각했다. 우리 아버님 말씀이 "
얘"
처음부터 남편의 위신을 세워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 제일 좋은 방법은 명령하는거야.
설사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말야. 그래서 여자는 복종할 줄 알도록 말야. 그리고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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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는지 아니? "네 아내 때문에 신경질이 나거든 말이다. - 가령 잔소리가 많다든지 뭐
좌우간 그런
일이 있거든 - 벌떡 일어나서 집을 나가버려라. 그럼 정신을 차릴거다. 그리고 절대로 정말
절대로
돈이 얼마 있는걸 네 아내가 알지 못하도록 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
[준 호] 하지만 --- 어떻게 그럴수가 ---
[조 합 장] 그런데 난 그 말씀의 반대로 했거든. 그랬더니 오늘까지 아주 행복하게 살아왔
어. 자네도
그걸 교훈으로 삼게. 사사로운 문제에 대해서 남의 조언을 구할 필요는 없어.- 농장에서 병
아리
키우련?
[준 호] 네?
[조 합 장] 농장에서 병아리 키울테냐 말이다.
[준 호] 아저씨는 양계에 관심이 없으세요. 하지만 제생각엔 ---
[조 합 장] 요전에 진찰소에 책이 한권 왔는데 필로식 병아리 기르는 법에 대해서 쓴 거드
라. 너도
읽어봐. 난 뒷마당에다 조그맣게 시작헤 볼 생각이다. 지하실에 부란기나 한대좋고 말이다.-
(부인 등장)
[부 인] 여보, 또 그 부란기 얘기유? 난 또 두분이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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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한 얘기나 하신다구.
[조 합 장] (쏘아붙이면서) 그렇게 사위한테 충고를 하고 싶으면 난 이층으로 가리다. 단 둘
이
얘기하구려.
[부 인] (준호를 일으키면서) 아침을 먹어야지. 미선이가 안부를 전하데만 만나고 싶지는 않
대.
어서 가게.
[준 호] 그럼 가겠어요. (준호는 당황하고 풀이 죽어서 무대를 건너 자기집으로 간다. 천천
히
웅덩이를 피아여 집 안으로 사라진다.)
[조 합 장] 여보, 아마 당신은 그 해묵은 미신을 모를거야.
[부 인] 무슨 말씀유?
[조 합 장] 이건 옛날 석기시대 때부터 시작된건데 말요, 신랑은 결혼날이나 그 직전에는 장
인을
만나면 안된다는 거야. 그 녀석하고 같이 있으라고 한건 당신야.
(두 사람 무대를 나간다.)
[무대감독] 감사합니다. 여기서 또 실례를 해야겠읍니다. 자초지종을 알고싶군요. - 이 결혼
말에요.
백년을 해로하겠다는 이 계획말입니다. 저는 그런 경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관심이 여간
크지
않습니다. 다 아시는 일이지만 스물 한 두살이 돼거 몇가지를 결정짓고 보면 눈깜짝할 새에
일흔이
된단 말씀에요. 오십년 동안이나 변호사 노릇을 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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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면 바로 여러분 옆의 백발부인은 오만번 이상 여러분과 밥상 앞에 같이 앉은 셈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이제 준호군과 미선양이 자기들이 주고
받던 얘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겁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 말하자면 --- 천생연분임을 알았을 때
얘기죠.
하지만 그에 앞서 여러분도 옛날로 돌아가셔서 젊음이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
요. 특히
여러분이 첫사랑에 빠졌던 시절을 회상해 보세요. 꼭 몽유병자와도 같이 어디를 걷고 있는
지도 잘 몰고
남이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던 그런 시절 말입니다. 말하자면 약간 미친셈이죠. 그 점을 잊
지
마십시오. 이제 젊은 애들이 세시면 고등학교에서 <<00>> 나올겁니다. 준호군은 이학년 운
영위원장으로
뽑힌지 얼마 안됐읍니다. 그런데다 지금 유월이니까 내년 일년동안 계속해서 삼학년위원장
노릇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미선양은 총무겸 회계로 당선됐거든요. 아시다시피 얼마나 중요한 자립
니까. (그는
의사집 식탁 앞에 있는 의자 중에서 두개를 갖다가 판자뒤에 놓는다. 의자에 앉으면 객석을
향하게
된다.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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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과점(차도 마시고 빵도 파는) 카운터 역할을 한다. 학생들의 말소리가 왼쪽 뒤에서 들린
다.)
저기들 행길로 오고 있읍니다. (미선이가 가상의 책을 안고 왼쪽 행길로 온다.)
[미 선] 안된다니까, 명이야. 집에 가야돼. 잘가거라. 애 기영아! 애! 저녁에 우리집에 와서
영어
공부자. 우리집에 와서 해야 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려. 잘 가아. 숙아, 잘가라. 잘 가아, 희
원이도.
(준호가 책을 들고 미선이를 쫓아온다.)
[준 호] 책 내가 들어다 줄께.
[미 선] (냉담하게) 아니 --- 뭐 --- 그럭헤. 금방이니까.
(미선이는 책을 준호에게 준다.)
[준 호] 잠간 재하고 애기좀 할께 - 애 정식아, 내가 조금 늦드래도 연습 시작해라. 그리고
만석이
연습시킬땐 아주 세게차주란 말야.
[준 호] 미선, 너도 당선돼서 참 잘 됐다.
[미 선] 응!
(그들은 거의 무대 뒷벽에 기대일 정도로 행길에 서 있었으나 객색쪽으로 한걸음 내딛으면
서 준호가
말한다.)
[준 호] 미선아 넌 왜 날보면 화를 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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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내가 무슨 화를 내.
[준 호] 요새 날 이상하게 대하지 않니?
[미 선] 물으니까 털어놓고 애기할테야 -
(선생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선생님 안녕히 사십쇼.
[준 호]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 어 - 뭐야?
[미 선] (그다지 나무래는 태도는 아니나 말하기가 어려워서) 지난 일년동안 준호가 그렇게
변할
수가 있어? 난 그게 싫어. 이런 말해서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시원하게 사실대로 말을 해
야 되겠어.
[준 호] 변했다구? - 무 - 무슨 소리야?
[미 선] 난 일년전까지도 네가 무척 좋았어. 그래서 네가 뭘 하든지 유심히 보곤했어 ---
소꼽친구였으니까. 그런데 넌 축구에 정신이 팔려서 --- 남하고 애기도 변변히 하지않구.
자기
식구한테도 그러지 않어. --- 그분인가 잘난체하고 거만해졌어. 여학생들이 모두 그런다니
까. 내
앞에선 안그럴지 몰라도 뒤에서는 다들 그러거든. 난 그애들이 그런 소리하는게 듣기 싫지
만 그대들만
나무랠수도 없어. 이런 소리해서 안됐지만 --- 할말은 해야지.
[준 호] 정말 그런 말 해줘서 고맙다. 내가 그런중은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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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어. 나라고 잘못이 얻을수야 없지.
(그들은 묵묵히 두서너 발자욱 걷다가 괴로운 모양으로 가만히 서 있다.)
[미 선] 남잔 완전무결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되지않아?
[준 호] 응 --- 하지만 완전무결하다건 있을 수 없지.
[미 선] 하지만 우리 아버진 그래. 그리고 내가 보기엔 준호 아버지도 그러시고. 준호라고
그렇게
되지말란 법이 어디 있어?
[준 호] 그건 정반대야. 남자는 원래가 좀 모자라는거야. 여자는 그반대고.
[미 선] 나도 결점이 없는게 아냐. 남자가 불완전한데 여자라고 어떻게 완전할 수가 있어.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 신경이 예민하거든. -준호 얘기를 이러고 저러고 해서 안됐다. 내가 왜 그
런 소릴
했는지 모르겠어.
[준 호] 미선아 -
[미 선] 난 준호가 나쁘지 않다는걸 알어. 뭐 그게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지!
[준 호] 미선아 --- 아이스.크림이나 뭐 먹고 가지 않을래?
[미 선] 그럭해. (그들 객석 쪽으로 나와서 바른 쪽으로 꺾어져 다과점의 문을 연다. 미선은
흥분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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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머리를 수그린다. 준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준 호] 얘 상철아 - 재미 좋으냐? -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무대 감독이 안경을 쓰고 상점주인역을 하면서 바른 쪽에서 불쑥 나와 객석과 판매대 사이
에 선다.)
[무대감독] 어서들 오너라.- 뭘 들련? - 아니, 미선아 - 너 울었니?
[준 호] (애써 설명한다.) 아주 --- 하마트면 큰일날뻔 했어요. 저 철물전 앞에서 마차에 칠
뻔
했거든요. 마씨 아저씨는 미친사람 모양으로 몬다고들 그래요.
[무대감독] (물을 따르며) 자 미선아. 물을 마셔라. 굉장히 놀랜것 같구나. 요샌 행길 건늘때
양쪽을
잘 보고 건너야 하느니라. 해가 갈수록 고약해진다니까.- 뭘 마실테냐?
[미 선] 전 아이스크림을 들겠어요.
[준 호] 그거 먹지마. 나하고 찬 사이다나 같이 먹자. 아저씨 사이다 한병 주세요.
[무대감독] (꼭지를 따며) 사이다 한병이라. 그럭헙죠. 내가 너희들한테 얘기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말이다. 우리 중한읍내에 자그만치 소말이 아흔 다섯 마리가 있어. 어저께 검열관이
나왔었지.
그리고 자.등.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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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걸 들여오게 됐단 말이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나가지 말고 집에 있는거야. 개
란 놈이
길바닥에서 잠을 주무셔도 까딱 없던 때도 있었건만.
(그는 두사람 앞에 가상의 컵을 놓는다.)
자아, 어서들 들어라.
(그러자 바른 쪽에 손님이 온 것을 본다.)
어서 오십쇼, 아주머니.
(그는 바른쪽으로 간다.)
[미 선] 이건 비싸지 않니!
[준 호] 아냐 - 어서 먹기나 해. 우리 당선 축하거든. 그리고 또 무슨 축한지 아니?
[미 선] 모올라.
[준 호] 나한테 충고를 해주는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 축하지.
[미 선] 제발 그 얘긴 그만 둬. 내가 왜 그 얘길 했을까. 그건 괜히 한말이야. 사실 준호는 -
[준 호] 괜찮어. 솔직하게 말해줘서 기브다. 하지만 앞으로 고칠테야. 그런데 미선아 청이 하
나
있어.
[미 선] 뭔데?
[준 호] 내년에 내가 농과대학으로 가면 이따금 편지 할테냐?
[페이지] 056
[미 선] 하고말고. 꼭 할께.
(잠시 사이. 그들 밀집빨개로 사이다를 빨기 시작한다.) 사년이나 객지에 나가 있으면 자연
소식이
뜸해 질테지. 이 읍내에서 가는 편지는 얼마 안가서 시시해 보일거야. 중한읍이라야 보잘 것
없는
고장이지 하지만 우리 읍내가 얼마나 좋은 고장이니.
[준 호] 내가 떠난다고 해서 이 고장에 대해서 관심을 안갖일리 있니. 그런 일은 절대로 없
어.
[미 선] 내, 편지 재미 있게 쓸께. (잠시 침묵)
[준 호] 이거봐, 미선이. 난 농사짓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농과대학엘 가야만 농사를 잘 짓
느냐고
묻거든.
[미 선] 그래?
[준 호] 정말야. 농과대학에 가는건 시간낭비라는 사람도 있어. 대학 안가도 전문서적을 보
면 다
알수 있거든 그런데다 어저씬 늙어 가시고 - 나만 좋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농장을 물러려
주시겠다는
거거든.
[미 선] 어머 그래?
[준 호] 그런데 네말대로 사년이나 떨어져서 --- 다른 고장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된
다니 ---
난 가기 싫어 사귀든 사람이 좋거든. 새로 사귀는 사람들은 거북해. 미선인 --- 넌 정말 좋
은 친구야.
[페이지] 057
다른 고장으로 가서 낯선 사람들 만날 필요가 어디 있니.
[미 선] 하지만 다른 고장에 거서 여러 가지 배우는게 좋아. 가축을 감정하는 거라든지 토질
이라든지
뭐 그런거말야 --- 난 잘모르지만.
[준 호] (잠시후 아주 심각하게)미선아 지금당장 결정을 짓겠어. 난 안갈테야. 오늘 저녁 아
버지한테
말씀드리겠어.
[미 선] 지금 꼭 결정해야 될게 뭐있어. 아직 일년이나 남았는데.
[준 호] 그 애길 해줘서 고맙다 --- 내 성격의 결함말야. 네말이 옳아. 하지만 너도 한가지
를 틀린게
있어. 내가 일년동안 남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그랬지. 말하자면 내가 너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는
거지? 그건 틀렸어, 넌 내 일거일동을 눈여기 봤다고 그랬지 --- 나도 늘 그랬어. 정말야.-
난 늘 네
생각을 했어. 내가 관심을 둔 사람이라야 몇사람 안되거든. 난 네가 축구구경을 할 때도 어
디 앉았나
확실히 봤거든 그리고 누구하고 같이 왔는지도 알어. 요새 며칠동안은 너를 바래다 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의례히 지장이 생기거든. 어저껜 학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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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넌 국사 선생님하고 같이 집으로 가드구나.
[미 선] 준호 --- 세상은 참 이상해. 그걸 내가 알수 있어야지. 난 또 -
[준 호] 이거봐, 농과대학에 가지않는 이유를 말해줄께. 일단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생
겼다면
--- 물론 그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서로가 인품을 좋아한다면 ---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
냐 말야.
대학보다 더 중요하지. 내 생각은 그래.
[미 선] 중요한 일이고 말고.
[준 호] 미선아.
[미 선] 왜?
[준 호] 내가 차츰 고쳐서 아주 괜찮은 사람이 된다면 --- 나를 --- 저 나를 말야 ---
[미 선] 그래 --- 그렇다니까. 전부터 늘 그랬지.
[준 호] (잠시 사이) 지금 한 얘긴 아주 중대한 얘기야.
[미 선] 응 --- 그래. 중대한 얘기야!
[준 호] (숨을 크게 쉬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찾는 동안 차츰 놀래는 기색이다. 무대감독이 오른 쪽에서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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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몹시 당황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
[준 호] 아저씨, 집에가서 돈을 가져와야겠어요. 금방 갔다 올테니까요.
[무대감독] (기분 나쁜척 하면서) 뭐라구? 아니 그럼 선돈도 아니고 ---
[준 호] 저 그럼 일이 있었어요 - 이거 시계가 있으니까 돈가져올 때까지 맡아주세요.
[무대감독] 괜찮다. 시겐 넣어둬라. 네말을 믿지.
[준 호] 오분 후에 돌아오겠어요.
[무대감독] 십년안에만 가져오면 돼. - 십년에 하루만 넘어도 안된다. - 미선아 언제 좀 진
정이
됐니?
[미 선] 네, 고맙습니다. 대단치 않았어요.
[준 호] (카운터에서 책으 집어들며) 그만 가자.
(그들은 묵묵히 무대를 건너 조합장집 뒤문 창살문을 지나 사라진다. 무대감독은 그들이 나
가는 것을
보다가 안경을 벗으며 객석을 향한다.)
[무대감독] 자, 그럼 -
(그는 손을 처서 신호를 한다.)
이제 결혼식 준비를 하겠읍니다.
(그는 다음 장면을 마련하는 동안 기다리고 서 있다. 무대계원들이 의사집과 조합장집으로
부터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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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창살문을 치운다. 그리고 무대중앙에 교회좌석을 마련한다. 신도들은 뒷벽을 향해서
앉게 된다.
교회의 통로는 뒷벽 중앙에서 시작되어 객석 쪽으로 오게 된다. 조그만 단이 뒷벽에 기대어
있다.
나중에 무대감독이 목사로서 이 위에 서게 된다. 색유리 창의 모양을 환등 슬라이드로 뒷벽
에 비친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무대감독은 전면 중앙으로 어슬렁거리고 나와서 생각에 잠겨 객석에 대
고 말한다.)
결혼식 한번 하는데 그 많은 생각들은 한데 묶을 수는 없읍니다. 특히 우리읍내의 결혼식에
선
그렇습니다. 여기서야 결혼식이라야 아주 평범하고 금방 끝나니까요. 이 결혼식에선 제가 주
례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몇마디 더 말씀드릴 권한이 있는 셈이죠. 이제 잠간동안 연극이 다소 엄숙해
질겁니다.
조금전에 준호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짝을 지어 살게 마련이죠. 이 결혼식은
훌륭한
결혼식입니다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기 때문에 그 훌륭한 결혼식에 있어서도 각자의 마음
속깊이
착잡한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읍니다. 하긴 이 연극에 있어서도 그래야 되겠지만요. 이 장면
의 정말
주인공은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읍니다만 여러분께서는 그게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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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죠. 이세상에 태어나는 어린애마다 완전한 인간을 만들려는 대 자연의 실험입니다. 사
실 우리는
대 자연이 전진하고 노력하는 것을 봐왔죠. 대 자연은 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
리는 다아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결혼식을 치루었던 다른 증인들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요. - 우리
신조들말입니다. 수백만이죠. 그분들도 거의 지어 인생을 출발했읍니다. 네, 수백만이죠. 자,
이것이
제 주례사의 전붑니다. 어쨌든 오래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르간으로 헨델의 라르고
를 치기
시작한다. 신도들이 교회안으로 밀려들어와 묵묵히 앉는다.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준호 엄
마는 오른쪽
좌석 앞줄 통로쪽 첫째자리에 앉는다. 그 옆에 자애와 의사선생, 통로 건너에 미선엄마와 철
수 조합장
소수의 찬양대가 객석을 향하여 자리 잡는다. 미선엄마가 자리로 가다가 돌아서서 객석에
대고
말한다.)
[조합장 부인] 왜 이렇게 울음이 쏟아지는지 알 수 없군요. 하나도 울일이 없는데 망이죠.
오늘 아침
조반을 먹다가 터지고 말았읍니다. 미선이도 아침을 먹고 있었죠. 십구년이란 세월을 제집에
서 먹다가
앞으로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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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집에 가서 먹게 되는군요. 그게 그렇게 서러웠던 모양에요. 그런데 딸애가 갑자기 이렇
게
말하는군요."난 더 못 먹겠어요" 그리고는 식탁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울지 않습니까 글쎄
(미선엄마
자기 자리쪽으로 가다가 돌아서서 덧붙여 말한다.)
정말 말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어요. 딸을 이런 식으로 시집보낸다는 것은 너무 잔인해요.
하기야 제
친구들이 몇마디 주의해줬겠죠. 잔인하구 말구요.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덮
어놓고
정혼해 버린거니까요.
(약간 조롱조를 띠우고 다시 화를 내며) 세상이 나뻐요. 문제는 바로 그거에요.
저기들오는군요.(그는 얼른 자기 자리로 간다. 준호가 극장의 오른쪽 통로로 객석을 지나서
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세명의 축구 부원이 바른쪽 푸로씨니엄 기둥옆에 나타나서 휘파람을 불고
괴상한
소리로 희롱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운동복을 입고있다.)
[축구 선수들] 애, 준호야! 근사한데 - 야! 저얼굴좀 봐,- 겁이 나는 모양이지. 아, 준호야 이
능청아, 시침때지 말어. 네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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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 망신시키지 마라. 와 -
[무대감독] 됐어, 됐어. 그만해 두게. 됐어.
(미소하며 그들을 무대에서 밀어낸다. 그들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몇 번 더 놀린다.) 옛날에
는
결혼식땐 의례히 저런 짖궂은 짓들을 하곤했읍니다. 로오마때, 기르고 그 이후에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개화했죠. - 모두들 그렇지 않습니까. 성가대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부르기 시작
한다.
그돌안 신랑은 무대에 와 있다. 그는 잠시동안 회중들을 응시하다가 오른쪽 푸로씨니엄 기
둥쪽으로
몇발자욱 물러선다. 앞줄에서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어쩔줄 모르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재빠르게 아들에게 온다.)
[의사부인] 준호야, 애, 왜그러니?
[준 호] 어머니 난 나이먹기 싫어요. 왜 모두들 날 이렇게 재촉하는지 모르겠어요.
[의사부인] 아니, 얘야, --- 네가 하고싶어 하는 결혼아니냐?
[준 호] 아니에요. 어머니, 나는요 ---
[의사부인] 글쎄 왜 이러니 - 넌 인제 어린애가 아냐.
[준 호] 저 어머니 - 꼭 한가지만 들어주세요 --- 다른것 다 싫고요, 그저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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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얘, 누가 들을라! 그만해둬. 어째 그모양이냐.
[준 호] (제정신으로 돌아가 힐끔 식장을 돌아보며) 미선이는 어디 있어요?
[의사부인] (안심이 되어)얘, 정말 놀래게 하는구나.
[준 호] 걱정마세요. 결혼할테니.
[의사부인] 잠간 진정해야겠다.
[준 호] (어머니를 위로하며) 자 어머니 목요일 저녁은 따로 잡아놓으세요. 미선이하고 목요
일마다
저녁 먹으로 갈테니까요 --- 그렇게 하겠어요. 울긴 왜 우세요? 어서 시작하도록 해야죠.
(부인은 감정을 억제하고 아들의 타이를 잘 내주고 귓속 이야기를 한다. 그러는 동안 신부
는 흰옷에
베일을 쓰고 객석을 통하여 들어와서 무대로 올라온다. 그도 교회의 회중을 보자 놀래어 뒤
로
물러선다. 성가대가 "형제의 연락"을 시작한다.
[미 선] 이렇게 외로운건 처음야. 준호는 어쩌면 저런 표정을 --- 밉살마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아빠, 아버지.
[조 합 장]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스럽게 딸에게 온다.)얘야, 이게 무슨 짓이냐.
[미 선] 아버지 - 난 시집 안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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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합 장] 쉬 - 쉬 - 침착해야 한다.
[미 선] 잠시동안 이대로 있고 싶어요. 다른데로 가요.-
[조 합 장] 안된다 안돼. 진정하고 잘 생각해 봐라.
[미 선] 아버진 잊어버리셨나봐. 늘 뭐라고 그러셨어요? 밤낮 하신 말씀이 있지 애아요? 난
아버지
것이라고 하시고서는. 어디고 아버지 하고 갈 수 있어요. 제가 아버지를 봉양 하겠어요. 살
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조 합 장] 쉿 - 그런 생각하는게 아냐. 걱정이 돼서 그러지?
(그는 돌아서서 부른다.)
준호군 새신랑 이리 잠간 오세.
(딸을 준호쪽으로 인도하며)
네 신랑같은 청년은 좀체 보기 힘든다. 준호는 사람이 됐거든.
[미 선] 하지만 아빠 -
(의사 부인 조용히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조합장은 한쪽 팔을 딸의 어깨위에 얹고 한쪽 손
은 준호의
어께에 엊는다.)
[조 합 장] 준호군, 내 딸을 잘 위해 줘야 해.
[준 호] 그럼요 --- 그렇게하겠어요. 미선이 최선을 다하겠어. 미선이를 사랑해. 미선이가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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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줘야 겠어.
[미 선] 날좀 도와줘. 내 소원은 누군가 날 사랑해줬으면 하는거야.
[준 호] 내가 사랑할테야. 미선이 내가 사랑하겠다니까.
[미 선] 영원히 사랑해줘야 돼. 알았지? 영원히 영원히.
(서로 포옹한다. 로오엔그린 행진곡이 들린다. 무대감독이 주례역을 맡아서 후면 중앙의 단
위에
선다.)
[조 합 장]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글쎄 아무 걱정없다니까. 어서 빨리. (준호 슬쩍빠져나가
무대감독 겸 목사의 옆에 자리잡는다. 미선이는 아버지 팔을 끼고 통로 를 걸어간다. 둘이서
나란히
주례 앞에 선다.)
[무대감독] 신랑 김준호군에게 묻겠읍니다. 그대는 신부 이미선양을 아내로 맞아 --- (정아
엄마가
옆의 사람들을 보고 째지는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말소리가 너무 크고 높아서 목사의 다음
말이
들리지 않는다.)
[정아엄마] 정말 짭짤한 혼인식이구려 이렇게 훌륭한 혼인식은 처음야. 이런 조촐한 혼인식
을 보면
정말 마음이 기뻐요. 미선이가 제법 색시티가 나지 않아요!
[준 호] 네.
[무대감독] 신부 이미선양에게 묻겠읍니다. 그대는 신랑 김준호군을 남편으로 섬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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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그의 다음 말은 정아엄나의 말소리에 먹혀 버린다.)
[정아엄마] 이렇게 조촐한 혼인식을 본 것같지 않다니까요. 헌데 늘 눈물이 나오거든요. 왜
그런지
늘 눈물이 터진다니까요. 젊은 애들은 금실이 좋아야돼요. 참 대견도 하지.
(반지를 끼어주고, 상견례를 한다. 무대는 갑자기 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하다. 무대감독
은 먼
곳을 응시하며 혼자말 같이 말한다.)
[무대감독] 저는 이백쌍 이상이나 결혼을 시켰죠. 잘한 일이냐고요? 글쎄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청춘남녀가 장가를 들고 시집을 가고 --- 여행, 유모차 첫번째 류우마티스 그리고 손
자들이
생기고 두번째 류우마티스, 임종, 유서낭독 -
(그는 이제 비로소 관객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다음 말부터는 비꼬는 말투를 쓰지
않는다.)
근심걱정이 없이 살다 죽기란 가물에 콩나기지요.- 자, 멘델스조온의 결혼 행진곡을 해주세
요.
(오르간이 행진곡을 친다. 신랑신부는 기쁨에 차서 그러나 몹시 위엄을 세우며 통로로 나온
다.)
[정아엄마] 신랑신부가 귀엽기도 하지. 이렇게 훌륭한 결혼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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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요. 아기자기 하게 잘 살거야. 행복 그게 첫째거든. 제일 중요한건 행복하게 사는거야.
(신랑신부는 객석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도달한다. 그들에게 밝은 조명이 비친다. 그들 객석
으로
내려서서 명랑하게 통로를 뛰어간다.)
[무대감독] 여러분 이것으로 2막이 끝났읍니다. 십분동안 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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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제 3 막
막간 휴게시간에 무대계원들이 무대를 마련해 놓았다. 중앙에서 조금 바른쪽에 열두서너개
의 의자을
석줄로 간격을 두어 객석을 두어 객석을 향하여 놓은 것이다. 이 의자는 공동묘지의 무덤
역할을 한다.
휴계시간이 거의 다 끝날 때 배우들이 들어와서 자기 자리에 앉는다. 앞줄에는 무대 중앙
쪽으로 빈
의자 하나, 그 다음이 준호어머니, 그 다음이 지위자. 둘째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아엄마
가 끼어
있고. 세째줄에는 철구. 죽은 사람들은 머리나 시신을 좌우로 들러지 않으나 뻣뻣하지 않게
조용히
앉아있다. 그들이 말할 때는 말투가 극히 실제적이어서 감상적인데도 없고 특히 애저로운
빛이 없다.
무대감독이 자기 자리에 와서 객석의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감독] 그동안 십년이 흘러갔읍니다.- 1970년 여름입니다. 우리읍내도 많이 변했죠. 흔하
던 말도
없어졌지요. 농촌에서는 경운기르 볼고 읍내에 들어오곤 합니다.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대문
을 채우게
됐죠. 아직 읍내에 도둑이 들지는 않았읍니다만 도둑얘기야 늘 듣는거니까요. 이곳은 확실히
우리
읍내의 중요한 지점입니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등성이인데다 늘 산들바람이 불죠 - 올
려다보면
끝없는 하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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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는 구름조각 - 이따금 햇볕이 내려 쪼이고 달빛이 고요하고 별이 반짝이고 --- 화창
한 오후
이곳에 올라와보십시오. 잇다은 산맥 - 저쪽 저수지와 금강 옆의 사들이 얼마나 푸릅니까.
(객석이
있는 데를 가리키며) 저아래에 우리 읍내가 있죠. 그렇습니다. 이 산마루는 참 아름다운 곳
에요.
철죽꽃과 아카시아가 한창이지요. (왼쪽 무대를 가리키며) 오랜 비석이 삼국시대것과 임진난
에 왜적을
물리친 의병장의 비석입니다. 여름철이 되면 묘지를 거니는 사람들이 옛날비석에 새긴 비문
을 탁본
해가곤 한답니다. --- 서울에서 역사학자들도 오곤 합니다. - 자기들 조상을 조사해달라는
사람들이
경비를 대는 모양입니다. 인간도처에 우습고 싱거운 것 없는데는 없으니까요. 삼일운동때 억
울하게
죽은 영영들이 저쪽에 있읍니다. 애들은 ---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죠. 일치단결해서
나라를
지켜야한다고. 이건 새로 생긴 묘집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의사선생부인, 그리고 가만있자
- 이건
교회 합창 지휘자의 무덤이군요 그리고 정아엄마 무덤. 결혼식에서 얼마나 좋아했읍니까 -
기억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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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많습니다. 조합장 댁 자제 철수가 등산대원으로 설악산에 조난을 당해 죽었죠. 그
렇습니다.
수많은 슬픔이 이 언덕위에 고이 깃들고 있읍니다. 슬픔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이 친척을
데리고 이
언덕까지 올라 오곤했죠. 그 정결을 상상할 수 있으시겠죠? 그리고 날이가고 --- 해가 쪼이
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잠자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우
리도 생명의
고동이 끊어지면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겠지요. 현대 우리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좀체 돌이
켜 보려고
하지애는데 있읍니다. 영원한 무엇이 있는걸 우린 다 알면서도. 그게 뭣이겠읍니까. 집도 아
니오.
이름도 아니오, 지구도 아니오, 저 별도 아닙니다. --- 그러나 우리는 무엇인가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과 바로 그것이 인류와 관련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읍니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이 우
리에게 한
말은 뭣이있죠? 오천년이란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사람은 늘 그 영원한 무엇의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심오하고 영원한 무엇이 있는거에요. (잠시 사이) 여러문도
아시다시피 우리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관심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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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아닙니다. 차츰 차츰 그들은 지구에서 멀어져가고 --- 그들의 야망이나 --- 그들의
쾌락이나 ---
그들의 고통이나 --- 그들이 사랑하던 사람들 --- 이 모든 것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들
은 지구로부터
떨어져나간거죠 -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읍니다. - 떨어져 나갔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육
체가 다
삭아버리는 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에요. 그러는 동안 그들도 읍내에서 일어나고 있
는 일엔 차츰
무관심하게 되는 거죠. 그들은 기다리고 있읍니다. 무엇인가 찾아올 것만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하고 훌륭한 무엇이죠. 그들 속에 있는 영원한 것이 확실히 나타나기를 기다
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이 말하는 것이 여러분의 감정을 상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죠. --- 어머니와 딸 --- 남편과 아내 --- 원수와 원수 --- 돈과 명예 --- 이런 없어
선 안될
중요한 것들이 이기서는 차츰 빛을 잃게 되는 것이죠. 기억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습니까?
자시이
누군지나 알겠읍니까. 안그래요?
(그는 잠시 객석을 보다가 무대로 돌아선다.)
장의사 장서방이 저기서 갓 만든 무덤을 다듬고 있군요. 그리고 우리읍내의 소년 하나가 여
기
옵니다. 저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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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를 떠나서 큰 도시로 갔었죠.
(장씨가 우면에서 이정거린다. 남주가 힘이 들어서 이마의 땀을 씻으며 왼쪽에서 들어온다.
우산을
들고 앞으로 나온다.)
[남 주] 안녕하세요. 장씨 아저씨.
[장 씨] 응, 응. 가만있자, 누구냐?
[남 주] 남주에요.
[장 씨] 아니 이게 누구냐 --- 장례식 때문에 돌아온걸 몰랐구나! 이 고장을 떠난지가 오래
됐지.
[남 주] 십이년이 넘었죠. 지금 포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어요. 이종 형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겸사해서 고향에 왔죠. 신수가 좋아 보이시는군요.
[장 씨] 응, 밥술이나 먹으니까. 자네나 내나 이 꼭대기 올라오는건 서글픈일야.
[남 주] 그렇지요.
[장 씨] 사실야. 늘 얘기지만 젊은 사람 장례 치르는건 정말 싫거든. 모두들 금방 올걸세. 난
여기
미리 왔지- 아들놈은 상가집에서 거들고 있네.
[남 주] (비석을 읽으며) 박영감님, 전에 그댁 일 많이 해 드렸죠. - 국민학교 나오고 말에
요. 늘
요통으로 고생하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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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 그래, 여기 묻힌지 여러해 됐어.
[남 주] (의사부인의 무릎을 응시하며) 아니, 이모님 --- 돌아사신걸 잊어버리고 있었어
--- 이럴
수가 ---
[장 씨] 응, 의사선생낸 삼년전에 부인을 잃으셨지 --- 이맘땔거야. 그런데 오늘 또 이런 일
을
당하다니.
[의사부인] (성가대 지휘자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저앤 내 조카이라우, 수남이말야.
[성가대지휘자] 난 산 사람들이 옆에 오면 도무지 편안치 않아서요.
[의사부인] 잠자코 있어요.
[남 주] 이모님들도 거의 다 돌아가셨군요. 가만히 있자, 어딜까 ---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
고
싶었는데.
[장 씨] 저쪽에 있네 ---
[남 주] (성가대 지휘자의 비문을 읽으며) 이분은 교회의 합창지휘자었죠?- 모두들 주정뱅
이라고
했죠.
[장 씨] 그렇게 될줄야 누가 알았겠나? 말썽도 많드니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살했다네.
[남 주] 저런 그래요?
[장 씨] 다락방에서 목을 맸어. 모두들 쉬쉬하지만 어디 비밀이 있나. 비석의 글귀도 자기가
골라둔거야. 보게그려. 거 뭐 시라고 할 수 없지만 말야.
[남 주] 아니, 이건 악보가 아녜요? - 뭐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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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 나도 몰라. 그 당시 신문마다 대서특필 했다네.
[남 주] 근데 무슨 병으로 죽었읍니까?
[장 씨] 누가?
[남 주] 제 이종형수말예요.
[장 씨] 아니 몰랐나? 어린애 낳다가 잘못 됐다네. 둘째 아이였지. 네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
어.
[남 주] (우산을 펴며) 무덤을 저쪽에 쓰나요?
[장 씨] 여기 김씨 문중 묘지엔 자리가 없어. 그래서 옆에 새로 가족 묘지를 마련했지. 모두
들
오는군.
(무대 후면 왼쪽에서 중앙으로 장례식 일행이 온다. 남자 넷이 관을 들었으나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우산을 펴들었다. 대충 다음의 인물들이 보인다. 의사, 준호, 조합
장집
사람들, 기타 이러사람들. 그들은 무대 후면 중안 약간 왼쪽에 있는 무덤 주위에 모인다.)
[정아엄마] 저건 누구유?
[의사부인] (눈을 움직이지 않고 우리집 며느리, 미선이라우.
[정아엄마] (약간 놀랬으나 아무 감정없이) 원 저런!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길이 여간 질지
않았을텐데. 무슨 병으로 죽었우?
[의사부인] 해산하다 그렇게 됐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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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엄마] 해산. (사뭇 웃으면서) 어린애 낳는 것도 잊어버렸군. 참, 전생엔 얼마나 - (한숨
지으며) 좋았우!
[성가대지휘자] (곁눈지 하며) 좋았다구요?
[의사부인] 이거봐요. 잘 들어둬요.
[정아엄마] 저애들 결혼식 때가 생각나는군요. 얼마나 조촐한 혼인식이었우! 졸업식 때 답사
를 잘도
읽더니. 고등학교 나온 애들 중에서 그렇게 머리좋은 애도 쉽지 았았어요. 교장선생이 그애
얘기하는걸
여러번 들었거든요. 내가 죽기 직전에 그애들 새살림하는 농장에 찾아갔었지. 잘도 가꿔놓았
읍니다.
[죽은여인] 같은 시굴이었어.
[죽은남자] 그래, 아담한 농장이었지.
(그들 침묵을 지킨다. 무덤 옆의 사람들은 "형제의 연락"을 부른다.)
[죽은여자] 난 늘 저 찬송가를 좋아했지. 저사람들이 찬송가를 불렀으면 했는데 잘 됐어.
(잠시 사이, 갑자기 미선이가 우산 사이에서 나타난다. 그녀는 흰옷을 입었다. 머리는 등으
로
늘어뜨리고 어린애모양 흰 리봉으로 맺다. 그녀는 천천히 오면서 죽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며 약간
어<< >>해 한다. 그는 도중에 발을 멈추고 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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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한다. 잠시동안 조객들을 보고나서 의사부인 옆의 빈 의자로 천천히 걸어가서 앉는다)
[미 선] (그들 전부에게 미소하며 조용하게) 안녕하세요?
[정아엄마] 아이구 미선이구나.
[죽은남자] 어서 와요.
[미 선] (부드럽게)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의사부인] 아가.
[미 선] 어머님. (놀래며) 비가 오는군요. (조객들을 돌아다 본다.)
[의사부인] 그래 --- 금방들 갈거다. 잠간 쉬어라.
[미 선] 그 이후 벌써 수천년이나 된 것 같군요 --- 저건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였죠. 아버
지도 그건
아시고 계셨으니까요. 저도 진작 이리 올걸 그랬어요. 오놀 에야 오게 되니 아주 서투르군
요. 지휘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 휘 자] 오래간만이군요.
(미선이는이상한 미소를 띠우고 주의를 돌아본다. 자기 마음으로부터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생각을
씻어버리는려는 듯이 약간 초조한 태도로 의사부인에게 말을 건다.)
[미 선] 어머님, 애 아빠하고 둘이서 그 농장을 잘 가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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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았어요. 하나님께서 보시면 깜짝 노랄실거예요. 둘이서 늘 어머님 생각을 했지요. 새 축사
를
보여드리고 싶었죠. 소물마시는 곳도 분수식으로 만들었어요. 세멘트로 된니 건데 아주 길어
요.
어머님께서 남겨주신 돈으로 샀죠.
[의사부인] 내가 줬던가?
[미 선] 잊어버리셨어요?- 저희들에게 유산을 남겨주셨죠. 백만원도 더 됐어요.
[의사부인] 그래?
[미 선] 그런데 그 분수식 물먹는 것은 특별한 장치가 돼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물이 넘질
않거든요.
(그녀의 음성은 차츰 사라지고 시선을 장례식 군중에게 들린다.) 저 없이는 손이 모자랄거예
요.
하지만 참 조촐한 농장이죠. (갑자기 의사부인을 똑바로 본다.) 산 사람들은 잘 모르지않아
요?
[의사부인] 그래 - 잘 모르지.
[미 선] 그 사람들은 조그만 상자속에 갇혀있는 것같지 않아요? 벌써 천년전쯤에 그 사람들
을
안것만 같아요 --- 어린 것은 낮에는 옆집에서 놀아요.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사람을 본다.)
안녕하세요? 우리애가 낮에는 댁에서 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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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남자] 그래요?
[미 선] 그렇답니다. 아주 재미들였답니다. - 어머님, 저흰 경운기도 한대 있어요. 하지만 전
운전을 못해요. 어머님, 언제나 이 기분이 사라질까요? - 저도 --- 산 사람중의 하나라는
그런
기분말에요. 오래 걸릴까요?
[의사부인] 쉿. 꾹 참고 기다려라.
[미 선] (한숨 지으며) 네,- 저기 좀 보세요. 모두들 가는데요. 다 끝났군요.
(우산을 쓴 사람들은 무대를 나간다. 의사가 자기 아내의 무덤에 와서 잠시동안 그 옆에 서
있다.
미선이 그를 올려다 본다. 의사 부인은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
[미 선] 어머님, 아버님께서 오셨어요. 부재분이 꼭 닮으셨죠? 어머님, 살았을땐 전혀 몰랐어
요.
얼마나 괴롭고 또 --- 얼마나 암담하고 어두운데서 살고들 있는지 지금까진 몰랐어요. 아버
님들
보세요. 아버님은 참 좋은 분이셨어요. 사람들은 늘 괴로운 일뿐이죠.
(의사 가버린다.)
[의사부인] 아까보다 좀 시원해졌군 - 그래, 비가 오더니 더위가 좀 가셨어. 북동풍이 불어
도 언제나
시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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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아득한 평온이 깃든다. 무대감독이 담배를 피우며 푸로씨니엄 기둥앞에 나타난
다.
미선이는 무슨 생각이 나자 갑자기 정색을 한다.)
[미 선] 어머님, 돌아갈 수 있겠죠? 돌아갈수 있어요 --- 살고있던 세상으로 말에요. 그런
기분이
나요. 지금 막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농장말에요. 잠간동안 거기 가봤어요. 어린걸 제
무릎 위에
올리놓았죠. 정말에요.
[의사부인] 그야 돌아갈 수 있지.
[미 선] 돌아가서 좋은 시점을 다시 살 수 있을 거에요 --- 안될게 어디 있어요?
[의사부인] 아가, 그런생각 말어라.
[미 선] (무대감독에게 애가타서 호소한다.) 갈 수 있지않아요? 저서 살 수 있어요 --- -
돌아가서
--- - 다시
[무대감독] 그야,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 금시 이곳으로 되돌아오지요.
[의사부인] 아가, 아예 생각을 말아. 아서. 생각과는 다른거야
[미 선] 하지만 슬픈날을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행복하던 하루를 고르겠어요.- 애기아빠를
사랑한
것을 처음으로 알던그날을 말에요. 그게 그렇게 괴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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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아니지 않아요? (그들은 말이 없다. 미선이의 질문은 무대감독에게 돌아간다.)
[무대감독] 당신은 지금 그 생활 속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자신은 관
찰하고
있는 거예요.
[미 선] 그래서요?
[무대감독] 관찰하고 있노라면 자신은 저 아래 사람들이 -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
죠.
말하자면 미래를 보게 되는 거죠. 그 뒤에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잘 아시겠죠.
[미 선] 하지만 그것이- 괴로울까요? 왜요?
[의사부인] 괴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건 아니다. 여기 오래 있게된
면
자연히 알게 돼 이곳 생활이 그런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앞에 올것 만을 생각하게 한단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게 되는거야. 오래 있게 되면 알게 돈다니까.
[미 선] (부드럽게) 하지만, 어머님, 전생의 그 생활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 생활밖에 더 있어요? 제 생활이라고는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정아엄마] 이거봐, 미선이.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야.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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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하지만 제가 기어코 알아야될 일이에요. 어쨌든 행복했던 날 하루를 택하겠어요.
[의사부인] 안된다니까 - 정히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날을 골라라. 네 일생동안에 제일
보잘것
없던 날을 잡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미 선] (혼자말로) 그렇다면 결혼 이후나 애기를 낳은 이후는 안되겠군요.
(무대감독에게 간절하게)
생일쯤 택하는건 괜찮겠지요?- 제 열두살 되던때의 생일을 고르겠어요.
[무대감독] 좋아요. 1946년 이월 십일일. 화요일 - 시간을 특별히 정하겠읍니까?
[미 선] 아뇨. 온 하루가 필요해요.
[무대감독] 그럼 새벽부터 시작합시다. 여러날 전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던 것을 아시겠지.
그러나
생일 전날밤에 눈은 그쳤어. 그래서 모두들 길으리 눈을 치우기 시작했죠. 해가 뜹니다.
[미 선] (일어나며 소리 지른다) 신작로가 저기 있군요 --- - 아니 저건 읍내 다과점 개조
하기 전
그대로군요 --- 그리고 저기 마차 세놓는 집이 있네요.
(삼막이 시작된 이후 무대가 몹시 어둡지는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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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왼쪽 절반이 차츰 밝아진다. - 싸늘한 겨울 아침이라 맑고 밝다. 미선이는 행길쪽으로
걷는다)
[무대감독] 그러니까 1946년, 지금으로부터 십사년 전 입니다.
[미 선] 어머나, 어렸을때 보던 읍내 그대로군요. 그리고 저건 우리집 울타리에요. 다 잊어
버렸군요. 얼마나 좋아요! 안에들 계세요?
[무대감독] 그럼요, 어머님께서 조금 있으면팅아침지으러 내려오실겁니다.
[미 선] (부드럽게) 그래요?
[무대감독]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대엿새 전에 어디 가셨다가 오늘 새벽차로 돌아오셨죠.
[미 선] 무슨일이었지요?
[무대감독] 강연하러 서울 모교에 가셨었죠. -
[미 선] 아니 저기 변씨 아저씨가 있네요. 안순경도 있고요. 허지만 변씨 아저씨는 돌아가셨
어요.
(변서방, 안순경, 복남이의 말소리가 무대 왼쪽에서 들린다. 미선이는 기뻐하며 듣는다.)
[변 씨] 몽돌아! 워! 안녕하시요.
[안 순 경] 잘 주무셨오?
[변 씨] 일찍 일어나군요.
[안 순 경] 사람하나 살렸지요. 저쪽 철뚝넘어에서 얼어죽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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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있었어. 술이 고래가 돼가지고 눈더미 위에 쓰러져있더군요. 내가 흔들어 깨니까 이
불속에
있는줄 안 모양야.
[미 선] 아니, 누구야, 저건 복남이 아냐?
[복 남] 순경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저씨두.
(미선엄마 부엌에 나타나 있었으나 미선은 자기를 부를때까지 어머니를 보지 못한다.)
[부 인] 얘들아! 철수야 미선아 --- -, 일어날 시간이다.
[미 선]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는 어쩌면 저렇게 젊어보일까. 저렇게 짊으신줄 몰랐어요.
[부 인] 부엌으로 들어와서 불 옆에서 옷을 입으렴. 어서 서둘러라. (변서방 행길로 들어서
서
장작을 배달한다.) 어서와요. 변씨, - 춥죠.
[변 씨] 제집광속에 김치독이 얼었어요.
[부 인] 저런!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요.
(그녀는 벌벌 떨면서 장작을 들어 놓는다.)
[미 선] (억지로) 엄마, 파란 머리 리봉이 없어.
[부 인] 눈만 크게 뜨고 찾아보렴. 어마가 내놓았다.- 저기 화장대 위에 있지않니.
[미 선] 네, 있어요.
(미선은 한쪽 손을 가슴위에 댄다. 조합장이 행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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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 안순경을 만난다. 그들의 동작과 음성이 냉냉한 대기 속에서 차츰 활기를 띠운다.)
[조 합 장] 편히 쉬셨요.
[안 순 경] 안녕하십니까. 이르시군요.
[조 합 장] 사실은 서울에 있는 모교에 갔다 왔어요. 뭘 별일 없었죠?
[안 순 경] 전 철뚝넘어 친구 때문에 일찍 일어났죠.- 얼어서 다 죽게 돼었답니다.
[조 합 장] 신문에 내야 되겠는데.
[안 순 경] 그런걸 뭘.
[미 선] (속산인다) 아버지.
(조합장은 말의 눈을 흔들어 털고 집으로 들어선다. 안순경은 오른쪽으로 가버린다.)
[조 합 장] 여보, 장 있었오?
[부 인] 강인 잘 하셨우?
[조 합 장] 그만하면 괜찮었을거요. 몇가지 애기해 줬지.- 그래 별일 없어요?
[부 인] 네 - 뭐 별다른 일이라고 없었어요. 여간 춥지 않구려. 변씨 집에 김치독이 얼었대
요.
[조 합 장] 그래, 그럼 서울이 더 추운 셈이군. 학생들 귀가 떨어질 지경이니까. 을씨년스러
워. -
그래 신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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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거 없읍디까?
[부 인] 별로 눈에 띠지 않던데요. 조반 드시겠우? 그방 되니까. (조합장 이층으로 간다.)
여보, 잊어버리면 안돼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우? 미선이 생일에요. 선물 사오셨우?
[조 합 장] (주머니를 두드리며) 응, 여기 다 사왔어.
(계단 윗쪽으로부른다.)
얘, 아가. 미선아. (왼쪽으로 나간다.)
[부 인] 여보, 내버려둬요. 아침먹을 때 주면 되지않우. 갠 원래 으림뱅인걸. 빨리들 해라.
일곱시다. 이제 다시는 안 부를테다.
[미 선] (부드럽게, 슬프다기보다는 신기해서) 벅차는 가슴을 억제할 길이 없군요. 두분은 어
쩌면
저렇게 젊고 아름다우시까요. 뭣 때문에 늙어야만 되었을까요? 엄마! 내가 왔어요. 나도 컸
죠. 난 엄마
아빠 모두 좋아. 뭣이고 다 좋아요. - 너무 마음이 씨어서 못보겠어요. (무대감독의 마음을
떠보느라고
말을 걸어본다.) 들어가봐도 괜찮을까요?
(무대감독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다. 미선은 문으로 가서 어머니 왼 쪽 방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열두살 먹은 소녀의 음성을 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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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잘 잤우?
[부 인] (딸에게 와서 포옹하고 키쓰하며) 생일 축하한다! 늘 좋은 일이 있어야지! 근사한
선물이
있다.
[미 선] 아이, 엄마도. 그런건 뭣하러 했우?
(그는 괴로운 시선을 무대감독에게 보낸다.)
도저히 - 참을 수 없군요.
[부 인] (음식을 만들며 객석을 향하여) 허지만 생일이건 아니건 천천히 맛있게 먹어라. 커
서 앓지
말아야지. 거기 파란 종이로 싼건 네 고모가 보낸거고 우편엽서 앨범은 누가 가져왔는지 짐
작하겠지.
남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온 모양이다. 이렇게 추운데 --- - 그얜 참 됐어.
[미 선] (혼자말로) 준호,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군 --- -
[부 인] 천천히 잘 씹어 먹어라. 기름기를 먹으면 추위를 덜 타지.
[미 선] (아주 다급해서) 엄마, 잠간 저좀 보세요. 그전처럼 말예요. 벌써 십사년이 흘러갔어
요. 전
죽었어요. 엄마는 할머니가 되시고요. 전 준호한테 시집갔죠. 철수도 죽었어요 등산갔다가
조난을
당했죠. 얼마나 모두들 놀랬어요! 하지만 지금 잠간동안이나마 한자리에 모었군요. 엄마, 잠
간동안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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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거예요. 서로 쳐다 보기라도 해요.
[부 인] 그 노랑종이 안에 있는건 다락에서 나온건데 네 할머니가 입으시던 옷가지 들이다.
너도
이젠 다 컷으니까 맞을거야. 내가 좋아할 줄 알고 꺼냈다.
[미 선] 정말 좋아요. 얼마나 갖고 싶었다고요. 참좋아요.
(두팔로 어머니의 목을 끌어 안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반찬을 만들면서 기뻐하는 표정이다.)
[부 인] 네가 좋아할줄 알았다. 웬통 가계마다 뒤졌지. 층주 아주머니가 거기서 사질 못해
시울까지
사람을 보내서 구했단다. (웃는다.) 철수 선물도 있다. 공작시간에 만들었다는데 얼마나 자랑
을
한다고. 너도 보면 좋아 할거다. 아버지께서도 선물을 사오셨어. 뭔진 나도 모르겠다. 쉿 -
오신다.
[조 합 장] (무대 뒤에서) 얘, 우리 예쁘고 착한 귀부인 어디있니?
[미 선] (무대감독에게 커다란 소리로) 그만 두겠어요. 더 계속 할 수가 없어요.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걸요.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어요.
(울음이 터진다. 왼쪽 무대 조명 희미해진다. 미선 엄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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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 난 몰랐어요. 모든 것이 자꾸 지나가는데 우린 그걸 모르고 있었는 거예요. 날데려
다
주세요.-산마루턱- 무덤으로요. 아니 잠간만 시간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안녕. 세상아 잘 있
어. 우리
읍내도 ---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아버지. 째깍 거리는 시계도 잘 있어 --- - 그리고 엄마
가 가꿔놓은
해바라기도, 맛있는 음식도. 새로 대려놓은 옷괴 더운 물이 나오는 목욕탕도 --- 잠자는 것
과 눈을
뜨는 것도. 아, 대자연.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어서 그 진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인가.
(그는 눈물을 흘리며 몸을 움추린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는 없을까요?- 자기들이 살
고 있는
일분일초를 말에요.
[무대감독] 그렇지 못하죠. (잠시 사이)
성인들이나 시인들은 혹시 - 아는이도 있겠죠.
[미 선] 인제 그만 돌아가겠어요.
(의사부인 옆의 자기 의자로 돌아간다. 잠시 사이)
[의사부인] 재미있었니?
[미 선] 웬걸요 --- 어머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어요. 사람들 사는게 다 그렇군요. 장님같은
생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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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얘, 비가 갰다. 별이 나오지 않니!
[미 선] 저, 음악가 선생님 괜히 갔다 왔어요.
[지 휘 자] (차츰 격렬해지며 쏘는 듯이) 그렇다니까. 이제야 안 모양이지. 산다는게 다
그런거라니까. 무지의 구름장이나 타고 떠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의 감정을
무시하면서 그냥 올라갔다 내려왔다하는 것밖에. 흡사히 백만년이나 살것처럼 세월을 헛되
히 보내고
이기적인 걱정의 밥이 되고. 이제야 아셨지 - 그게 바로 당신이 돌아가 보고 싶었던 행복한
생활이라는
거에요. 무지와 무분별과 --- -
[의사부인] (생기 있게) 반드시 그렇지도 애아요. 잘 아시면서 그러우. 아가, 저별쫌 보렴. 이
름이
뭐드라.
[죽은남자] 내 아들 덕이란 녀석은 선원이었는데. - 별 이름을 다 알고 있었지. 저녁이면 모
기불을
피워놓고 앉아 별이름을 주어대곤 했어. 참, 신통합니다. 별은 좋은 친구지.
[죽은여인] 그렇고 말고요.
[지 휘 자] 저세상 사람이 또하나 오는군.
[죽은사람] 이 밤중에 여기가 어딘데.-맙소사.
[미 선] 어머님, 애 아빠가 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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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부인] 조용히 쉬어라.
[미 선] 준호씨에요.
(준호가 왼쪽에서 들어와서 천천히 무덤 쪽으로 온다.)
[죽은남자] 우리 아들 덕이란 놈이 말씀야, 별에 대해선 횅하거든 - 늘 하는 말이 저 조그
만 빛이
지구까지 오려면 수백만년 걸린다는 거야.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애기지만 그애 말이니까
믿어야지 -
수백만년 -
(준호는 무릎을 푹 꿇고 미선의 발 앞에 쓰러진다.)
[죽은여인] 맙소서, 저게 무슨 짓이야.
[정아엄마] 집에 있지 않고.
[미 선] 어머님.
[의사부인] 오냐 아가.
[미 선] 모두들 남의 맘을 몰라주는군요.
[의사부인] 그래. 그렇단다.
(무대감독이 바른쪽에 나타나서 한쪽으로 까만 커튼을 잡고 천천히 닫는다. 멀리서 종소리
가
아주적게 들려온다.)
[무대감독] 우리 읍내에선 모두들 꿈나라로 가버렸읍니다. 몇몇 집엔 아직 불이 켜져 있군
요.
아랫마을 정거장에는 역장님이 청주행 막차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리고 주막 집에선 몇몇
이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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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읍니다. - 비는 개었고, 별이 촘촘합니다.- 먼 옛날부터 한결같이 저 별들은 하늘을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읍니다. 학자들은 아직도 규명을 못하고 있읍니다만 별에는 생물이 없다고 생각
하는
모양이죠. 그냥 백악덩어리거나 --- -불덩어리거나. 그러나 이 지구만은 쉬지않고 일하고
또 일하고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죠. 때문에 열여섯시간마다 누어서 쉬게 마련이랍니다.
(시계를 감는다.)
우리 읍내엔 밤이 깊어갑니다. - 여러분도 편히 쉬십쇼. 안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