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으로 그것도 말구유에서 나셨다.”
“낮고 비천한 인간, 그것도 말구유에 나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비슷한 듯한 이 말이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전자의 예수는 원래 ‘높고 귀한’ 분이다. 하지만 ‘고귀한’ 뜻을 위해 스스로 가진 것을 ‘버리고’ ‘낮은 곳’에 오셨다. 희생정신 혹은 사랑의 행동이었다. 정말 대단하고 그래서 더욱 고귀하다. 역시 위대하다고 칭송받을 만한 신의 아들답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고마움을 표하는 것 밖에는 달리 없다.
후자의 예수는 원래부터 ‘버릴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날 때부터 핏덩이 하나 누일 곳조차 마련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더 내려갈 곳도 없다. 솔직히 누구씨인지도 불분명하다. 밑바닥 인생이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은 짓 하다가 결국 처형된 범죄자 아닌가. 진짜 죄인인 것이다. 비참하게 태어나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니 실제로 비천한 인생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후자의 입장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높였다’니 말장난이다. 관점이 조금 다른 것은 그래도 봐 줄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무례하고 교만한 이야기까지 한다. 빈부귀천은 인간의 기준일 뿐 생명 자체, 삶 자체가 존귀하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단다. 원죄와 자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짬뽕이다.
그런데 난 웃기는 짬뽕에 가까운데...그렇다면 웃기는 짬뽕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맘속에서 소리가 난다.
“세상은 험하더라도 너는 험한 꼴 보지 않고 살수 있는 길을 구하느냐? 2009년을 사는 너의 삶에 대해서는 나도 정답을 이야기 할 수 없단다. 네 삶은 너만의 고유한 몫이기 때문이란다. 다만, 넓고, 빠르고 가치있고 바람직한 좋은 길이 있는 것처럼 내세우는 광고에 미혹돼 갈등하며 근심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말아라. 다른 것들로 위축되지도 말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너의 길을 가거라. 네가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가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단다. 네 안에서 너를 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것이 이 세상에는 정말로 없단다. 왜냐면 너는 나와 하나님과 세상과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란다.” <배찬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