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
- 1924년 2월 23일 ~ 2009년 10월 31일
- 경력
-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1970년 제6대 중앙정보부 부장
울산 출신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10월31일 오전 11시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 전 부장은 뇌종양으로 지난 5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전 중 노환 등이 겹치면서 병세가 악화돼 이날 향년 85세의 일기를 마쳤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나온 후 1945년 12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육군 정보국 차장 등을 지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을 맡고, 63년 박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으며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주 일본대사를 거쳐 970년 12월 제6대 중앙정보부장에 올랐고, 71년 제7대 대통령선거를 총지휘하며 대통령에 이어 2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972년 대북밀사로 평양에 파견돼 김일성 북한 주석과 남북비밀회담을 가졌고,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고향인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10.26사태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등장하면서 1980년 권력형 부정 축재 혐의로 재산을 환수당하고, 정치활동까지 규제받는 수모도 겪었다. 이후에는 경기도 하남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은둔에 가까운 여생을 보냈다.
이 전 부장은 울산 출신 정치인 가운데 가장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답게 울산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1960년대초 울산에 공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의 핵심인 울산국가공업단지 지정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한 육영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1960년대 초 열악했던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 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학성여자중학교를 인수해 지원했고, 1966년 울산육영회를 인수해 재단이사장을 맡으면서 육영사업에 본격 나섰다. 이후 울산 최초의 여자상업계고교인 울산여상 설립을 시작으로 학성중, 학성고, 우석고(현 신정고), 언양여상(현 울산미래정보고), 언양여중(현 신언중) 등을 설립했다. 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울산전문대학(현 울산과학대학)과 울산공대(현 울산대)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학성이씨 대종회와 학성이씨 종친회 등 유족회 측에서는 11월1일 남구 달동문화공원 내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을 추모했다. 박맹우 시장과 윤명희 시의회의장, 조용수 중구청장, 김도연 울산대총장을 비롯한 기관 단체장과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첫댓글 중앙정보부장시절 김대중 전대통령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졌죠
"이후락별세"제목이 쫌...거냥 이후락도ㅔ지다.......박정희 독재때 공포정치의 대명사 이후락아닌가.....ㅋㅋ...저승에서도 저주가.....